-* 한국의 산악인 엄홍길, 박영석, 한완용. *-

8000미터14좌등정자엄홍길,박영석,한완용.

■히말라야8,000m14좌거봉완등자엄홍길,박영석,한왕용세산악인을비교해보려고한다.그들의완등기간,원정스타일,장비,식량,마트코트등의공통점과차이점을이해하면서한국이낳은세계적인산악인의면모를살펴보는것도산악인이되려고하는사람들에게좋은참고가되리라믿는다.

엄홍길(43),박영석(40)에이어최근한왕용(37)이히말라야8,000m급14개거봉완등을이루어냈다.이로써한국은14좌완등자를3명이나배출한세계최초의국가가됐다.한국산악계는대원과셰르파까지15명이한꺼번에눈사태로죽음을맞는등히말라야원정초창기인60년대초부터10여년간은불운과불명예의연속이었다.

그러다77년고상돈이한국최초로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를오른후양과질에서일취월장했다.78년1회,80년과81년각각2회,82년과83년에각각6회,84년13회등말그대로기하급수적으로해외고산원정횟수가늘어났다.근본적으로는오름짓그자체의긴장과고독을사랑하지않고는결코지속할수없는것이등반이다.

고상돈에이어허영호등선배산악인들에게서등반으로영예도거머쥘수있음을확인한산꾼들이너도나도하얀산의꿈을품기시작한것이다.고봉등정이라는꿈의실현에는필연적으로돈이드는데,마침한국사회는70년대에이어80년대에도고도성장을지속하였으므로,경제적으로많이윤택해졌다.

여기에89년해외여행자유화조치가이루어지면서한국산악인들은그야말로봇물터진듯해외고산을향했다.이과정에서축적된한국산악계의역량이절정기에이르러거둔결실이곧세산악인의14좌완등이라고할수있다.인간의한계를극복하고이루어낸히말라야14좌완등은등산인의꿈이되었다.

그러나이는물론세산악인나름대로의특별한노력없이는불가능했을성과다.세사람은다른산악인들과무엇이어떤점에서어떻게달랐던것일까.이들이14좌완등이란위업을이루기까지선택했던등반방식,장비,식량,등반스타일등의공통점과차이점등을알아본다.

완등기간

완등을이루기까지걸린기간은엄홍길이12년,박영석은8년,한왕용은10년이걸렸다.세사람모두거의매년한개이상의8,000m급거봉을오른것이다.엄홍길은88년첫8,000m급거봉으로에베레스트를오른이후5년여는에베레스트남서벽등벽등반에몰두하다가93년부터본격적으로거봉등정레이스에나섰으므로그도실제로는8년여가걸린셈이다.

그는95년한해에마칼루,브로드피크,로체3개거봉을오르기도했다.박영석은93년에베레스트등정으로거봉등정레이스를시작했다.97년봄다울라기리등정후에그는1년내5개거봉을올랐고,이듬해는4개거봉을오르는괴력을보였다.한왕용은94년초오유로시작,올해브로드피크로끝맺었다.그역시한해에2,3개의거봉을오르는강한체력을보였다.

특히어려웠던봉

등반은역시세계제2위봉인K2와캉첸중가가가장어려운산이다.세사람모두이두봉우리는충분히경험을쌓은뒤후반기에등정을이루었다.엄홍길은안나푸르나에서중상을한번입었고5회도전끝에야등정했다.이봉을가장어려웠던것으로꼽는다.그러나이봉외에어려운봉으로는역시K2,캉첸중가,마칼루이며이는박영석,한왕용도같다.

원정스타일

엄홍길,박영석,한왕용세산악인은상호경쟁적,혹은보완적관계를맺으며거봉완등을이루어갔다.각각다른원정대의대장,혹은대원으로나갔다가현지에서힘을합해등정을이루기도했다.그러나엄홍길과박영석은사뭇치열한경쟁관계였다.나중엔누가먼저완등을이루게될까궁금해질정도로등정봉우리숫자도비슷해졌다.

2000년봄엄홍길이13개봉을올랐을때박영석은11개봉을올랐다.엄홍길이마지막남긴봉은어렵기로악명높은K2였다.그러나엄홍길은2000년7월31일무난히K2를등정하며거봉레이스에종지부를찍었고,박영석은이해브로드피크와시샤팡마를오른데이어이듬해K2를오르며딱1년늦게완등을이루었다.

엄홍길,박영석두산악인은같은원정대에속했던경우도극히드물었다.그러나한왕용은엄홍길,박영석두선배산악인과여러번같이등반했다.특히박영석과한왕용의동행이잦았다.박영석이주도해꾸린원정대에한왕용이대원으로참가해오른봉우리가여러개이며이로써한왕용이등반가로서기반을다질수있었다는점에서한왕용은박영석의덕을적잖이입었다고할수있다.

한왕용을키우기위해한왕용소속의전주개척산악회가꾸린원정대에등반대장으로서박영석이참가,성취한등정도몇된다는점에서는박영석과한왕용은상부상조한관계라고도할수있다.엄홍길은스페인산악인들과함께오른봉우리가5개나된다는점이특이하다.

그는거봉완등레이스의중반기인95년부터마나슬루,브로드피크,로체,가셔브룸1봉,안나푸르나를스페인바스크팀대원들과합동으로올랐다.성품이호방한그는스페인의정열적산꾼들과호흡이잘맞았던모양이다.그가거봉완등행보에서가장자주함께했던이는바로스페인의거봉완등자인후아니토오이아르자발로,5개봉등정을그와함께이루었다.

한국산악인중엄홍길이가장자주동행했던사람은박무택,나관주두후배로각각4회,3회함께등정을이루었다.그외그는민경태,이인,모상현,구은수,박주훈등과한두번씩함께등반했다.이렇듯엄홍길은특정산악단체나그룹에매이지않고자유분방하게이런저런산악인과뜻만맞으면동행하는스타일이다.그는총34회거봉원정을나갔고그중18회성공했다.

박영석은늘동행하는후배그룹이있다.한왕용도그중한사람이었으며,오희준,강성규,이현조,김형우,나관주,홍성택,유철목등여러사람이그와더불어원정하여,그들은덩달아8,000m고봉3~6개씩을오른실력자가됐다.박영석은대학산악부(동국대)출신답게팀웍과인화를중요시하며이렇듯후배산악인키우기에도많은신경을쏟은것으로정평이나있다.

대원1명을추가하는데수백만원씩경비가더든다.또한초보자들은데려가보았자짐만될뿐이다.그럼에도그는능력이닿는한대학산악연맹후배들을동행했다.그의이러한배려로고산경험을쌓은산악인들이크게늘어난점만으로도그는한국산악계에크게공헌했다고할수있다.

박영석이이끄는원정대대원으로서8,000m거봉등정자가된사람은모두20여명이나된다.

그의해외원정횟수50회중8,000m급거봉원정은31회로,그중18회등정에성공하고13회는실패했다.한왕용은우석대산악부부원으로등반을시작했고나중에전주개척산악회에가입했다.

초반기에는박영석과함께줄곧등반하며경력을쌓다가98년엄홍길과더불어안나푸르나를올랐다.또한엄홍길의거봉완등마무리등반인2000년K2원정에동행,등정을이루었다.이렇듯그는두선배들과동행하며캐리어를쌓았지만,한편두선배는그의남다른능력이자신들의등반에도움이됐던것도사실이다.

한왕용은7번째봉인낭가파르밧부터박영석선배와다른독자적행보를시작했다.그러나두선배의그늘에가린그는별도로저만의원정대를꾸리기가매우어려웠다.대개거봉원정은기본이몇천만원인이든다.98년낭가파르밧은그와나관주대원단두명이700만원만으로등정했다.고소포터도,쿡도없었고,워낙짐이없어포터도고작20명뿐이었다.

그의어느후배는한왕용의내핍등반에대해이렇게비교해말한다.왕용이형이등반하려고올라갈때의장비·식량보따리와홍길이형등반끝나고하행카라반할때의장비·식량보따리양이똑같답니다.한왕용의거봉완등행보는두선배덕에쉽기도했고,한편두선배의명성에가려어려웠다고도할수있다.한왕용은거봉원정을총20회나갔고그중14회성공했으니성공률로는두선배보다단연앞선다.

셰르파고용

셰르파는고소등반시매우중요한존재다.세사람은각자의스타일에따라선호하는셰르파도달랐다.엄홍길은나티와다와두셰르파와자주동행했다.그러나두사람은모두등반도중사망하고말았다.박영석은첫8,000m급등정시동행했던가지셰르파와모두8개봉을함께올랐다.

그리고세라부장부와는4개봉을함께하는등이친구들은셰르파가아니라파트너라고얘기한다.한왕용은밍마와왕추셰르파를좋아해,각각2~3번씩동행케했다.이렇듯세사람모두대원이든셰르파든과거손발이한번맞았던사람을계속선호하는경향을보였다.이는사실모든산악인들에게공통된것이다.

등반스타일과등반식량

엄홍길은여러차례동행했던스페인팀에대해이렇게말한다.준비성이우선철저하고,개인주의적이면서도팀웍이아주좋습니다.그러니까경량등반이되죠.그러면전대원등정도가능해지고말이죠.될수있으면1차시도에등정을노리는스타일입니다.그리고즐기는스타일이구요.

이는그대로엄홍길자신이좋아하는등반스타일이기도하다.그는베이스캠프에서도대원들의술담배를통제하지않았다.그러나매사지지부진하면혹독하게몰아친다고밝힌다.

등반중에는대개대원이나셰르파들이지는만큼자신도짐을지고움직였고,길이막히면직접나서서루트개척을해야직성이풀렸다고한다.

그는별명이탱크다.이별명은그의강한힘과더불어강한추진력도상징한다.그의이러한탱크같은괴력을타대원들이좇기란쉬운일이아니었다.그는자신이그렇게탱크처럼자못저돌적으로등정을추구하는스타일이된연유를90년대의어느쓰라린추억에서찾는다.내자신이루트대부분을뚫었으나정작등정조에서는제외됐던아픈과거가있다고그는돌이킨다.

아무튼남다른괴력을가진그가이렇듯강하게밀어부치는방식의등반을추구하며당연히크고작은사고가여러번생겼다.동료대원이하산도중실종,혹은추락사한사고가여러건있었고,그자신또한100여m를추락,발목이뒤틀리는중상을입기도했다.이때그는3일간에걸쳐이를악물고기다시피하며베이스캠프로살아내려오는강한투지를보였다.

그는베이스캠프에서나고소캠프에서나식사에신경을많이쓰는편이다.먹는것에는돈안아꼈다고그는말했다.그는야채와육류만현지에서구입하고그외거의모든것을국내에서준비해갔다.이미89년부터네팔인요리사덴지를원정때마다동행,조리를맡게했다.때문에덴지는엄홍길의취향을그누구보다잘알아아예식단을알아서조절할정도가됐다고한다.

웬만한한국식당주방장보다낫다고엄홍길은그를칭찬한다.베이스캠프에서엄홍길은주로된장찌개,김치찌개등찌개류를즐겨먹는다.그리고가능하면베이스식단을최대한위로올린다는주의다.C1,C2까지도가능하면덴지가조리한음식을지퍼백이나날진통에담아서올려보내게하여누룽지끓인것,아니면알파미를먹는스타일이다.

운행때도그는가능하면김밥을챙겨간다.등정을앞둔최종캠프에서는꼬리곰탕캔에밥을말아먹기를즐긴다.때문에등정전8,000m고소에서도반드시대변을보아야한다.이렇게철저히밥을챙기는대신운행중주전부리는거의하지않는다고한다.

박영석도대원들술담배는모자랄까봐통제는할망정자유롭게놓아두는편이다.그러나그역시후배들이반드시명에따르게한다.고산에서는경험자의판단이곧최선이기때문이라고그는말한다.K2고소캠프에서내려가라는말듣지않고버티다가하반신이마비되는바람에아래캠프로후송하느라다른대원여러명이죽음의위험을감수해야했다면서그는대원통제는아무리강조해도지나치지않다고말한다.

먹는스타일은엄홍길과판이하다.베이스캠프에서무지하게먹고,등반중에는일주일까지도굶는다고그는밝힌다.그는어릴때꿈이주방장이었을만큼요리를좋아한다.공군복무시말년에일부러장교식당관리병으로자원해가서요리자격증을가진군무원과방위근무자에게요리를배우기도했다.

그는베이스캠프에서도각종음식을직접조리한다.육류를주로섭취하고김치말이냉면등도즐긴다.대장(大腸)이좋지않아툭하면설사를하기에일단베이스캠프를떠나면물,비타민,그리고미숫가루나좀타서마시는것으로끝낸다.특이한점은박영석은C2에스프라이트,혹은콜라나사이다를20~30개나올려두고속이더부룩할때마다마신다.

그러고나서트림을한번하면속이편해진다고한다.설사를미리막기위해C2쯤에서그는정로환4알과로페린2알을복용한다.그후며칠이고먹지도않고대변도보지않고버티다가등정후베이스캠프로내려와서야비로소배변을하는데,물론변이돌덩어리처럼굳어엄청고통을겪는다고한다.

엄홍길도여러번그런등반을했지만,박영석은이런체질때문에라도세미알파인스타일로최대한등반을빨리끝내는스타일을선호했다고한다.고전적인고봉등반방식은캠프를하나설치해두고내려와서쉬다가그다음제2캠프를설치,거기서고소순응을한뒤베이스캠프나제1캠프까지내려왔다가제3캠프로전진하는이른바극지법을선호했다.

이렇게내려오지않고계속캠프를위쪽으로옮겨설치하며오르는방식을알파인스타일이라하는데,이두가지방식을혼합해쓰면세미알파인스타일이다.8,000m급고봉등반서는캠프를3~4개설치하는데,박영석은캠프를반쯤생략하거나,아니면C1설치하고베이스

캠프로내려왔다가그다음곧바로C2,C3로올라가자고는등정하고곧바로베이스캠프로내려가는식으로했다.

2001년K2때도C2까지설치하고C3,C4는올라가면서설치,곧바로등정했다.로체때는C1만세우고그다음C2,C3를치고정상에갔고,시샤팡마남벽때는C1을치고C2,C3는설동파고자고곧바로등정했고,뭐거의다그런식이었다고말했다.그런식으로그는초오유를1박2일만에등반을마쳤다.

중간에C2만설치하고잔뒤다음날곧장등정후베이스캠프까지내려왔던것이다.등반은셰르파를앞세우고가다가기술적으로어려우면자신이나서서뚫었다.눈이허벅지까지빠지는초오유정상설원을돌파할때도셰르파와교대로러셀을했다.그와늘동행해온후배들또한힘좋기로정평이나있지만박영석을앞서지는못한다고한다.

단1%라도가능성이남아있으면포기하지않았다고그는밝힌다.이러한등반스타일은당연히여러번극한상황을가져왔다.안나푸르나에서하산중크레바스에빠졌으나배낭이걸리며천운으로살아났다.초오유에서는한왕용과텐트안에있다가눈사태에휩쓸리면서갈비뼈가부러진적이있고,에베레스트북동릉에서도눈사태로700m나쓸려내려가기도했다.

에베레스트남서벽에서는150m나추락,안면이뭉개지는중상을입고외국인의사에게마취없이고소캠프에서수술을받는고통을견디어야했다.역시같은에베레스트남서벽하산도중디피컬티크랙위15m직벽에서고정로프두가닥중한가닥에(50%의확률에)목숨을걸었다가결국살아났을때는너무무서워서통곡을했다고한다.

그는늘많은대원들을동행한만큼사망사고도여러건발생했다.그는그때마다또너무슬퍼서엉엉한참을울었다고그는돌이킨다.세사람중그의거봉완등여정이특히나드라마틱하다.한왕용은전형적인극지법등반을선호했다.C1설치후바로베이스캠프로하산해머물다가C1올라가서자고,C2설치후다시곧바로베이스캠프로하산,날씨가좋아지면C3까지전진,그대로잔다음날등정하곤했다.

또한그는조금이라도위험이커진다싶으면정상을바로앞에두고라도되돌아섰다.한왕용이두선배와달리등반도중큰부상을한번도입지않았고또동행자중사고로사망한이가한명도없었던것은이런안정적방식을주로택한덕이클것이다.그는의식할경쟁상대가없었다는점에서한결편한마음으로거봉완등을해나갈수있었다.

그러나,그도거봉완등이란험로를완벽하게무사한상태로지나지는못했다.K2에서산소마스크를유한규선배의등정을위해넘겨주고그는무산소로등정했으나그때문에귀국후네차례뇌혈관수술을받아야했다.한왕용도또한크레바스에여섯번빠졌고,눈사태를두번이나맞았다.

마지막봉인올여름의브로드피크등반중에도크레바스에빠졌으나마침자일로다른대원과연결돼있었던덕분에살아났다.그외,그는추락이나실족도여러번겪었지만부러지거나한적은없었다.그러므로그는세사람중특히나운좋은사나이다.한왕용은짐을셰르파들이나거의마찬가지로많이지고움직이는것으로널리알려져있다.

또한10회에6~7회는앞장서서루트개척을하는스타일이다.등반방식은사뭇다르지만앞장서서루트를여는스타일이란점은세사람이공통된다.한왕용은베이스캠프에서는거의육류식단으로일관한다.불고기나염소고기요리,혹은닭백숙등을즐긴다.또한어떻게든밥을해먹는편이다.

그는C1까지도압력밥솥을가져간다.C2부터는알파미밥에멸치를고추장에찍어먹기를좋아한다.때문에그는늘원정때면멸치를10kg이나가져간다.그는간식거리로도멸치가최고라고한다.고소캠프에서는쇠고기죽,옥수수죽아니면가루우유에비스킷을즐긴다.그러다등정시는물한통과사탕만몇알가져간다.

엄홍길,박영석두사람은베이스캠프에서도술을즐기지만한왕용은일체입에대지않는스타일이다.평소에도술을크게즐기는편은아니다.등정일은언제어떻게결정하는가.세사람모두일기정보보다는직감에크게의존했다.날씨가아무리좋아도직감이좋지않으면결코움직이지않았고,그러다느낌이좋아지면등정길에나섰다.

등반장비

세사람모두고소에서모자는철저히챙겨썼다.엄홍길은눈만나오게도쓸수있는복면같은발라클라바는주위의고무줄이답답해거의사용하지않았고,주로차양달리고볼을감쌀수있는구조인고소모를애용했다.그는그외모든등반용의류는평소입는것보다한사이즈큰것을고른다.숨쉬는것도어려운데옷마저답답하게조여서야쓰겠습니까?하고그는반문한다.

그는목에는반드시실크스카프를둘러보온을했다.상의는안에라이크라같은신소재반팔티,그위에서브제로내의,그리고얇은파일로만든티셔츠를겹쳐입었다.그렇게움직이다가추우면다운조끼,아니면고어텍스재킷을걸쳤다.

하의는헐렁한트렁크스타일의팬티에서브제로내의,그위에역시얇은파일을입었다.최종캠프에서자고등정할때는발란드레우모복을애용했다.원피스는대소변때불편해반드시투피스를입었다.장갑은얇은윈드스토퍼5지장갑을끼고다니다가추우면신슐레이트를보온재에안에파일을대고겉에고어텍스로처리한5지장갑으로바꾸어끼었고,더추우면벙어리우모장갑을더끼었다.

고글은일반형과방풍이완전히되는스키고글하나씩챙겼다.눈보라칠때스키고글은코도따듯하게해주는등보온상엄청난차이가있다고한다.등산화는스패츠일체형인원스포츠것을쓰며,벽이라고해도플라스틱이중화는발이시려서거의신지않는다고한다.피켈은그리벨70~80cm짜리를주로썼고,스키폴도늘휴대하고,상황에따라번갈아썼다.

아이젠은실수로벗겨지는일이없는구조인샤를레모제원터치식을애용하고,벨트는넓적다리부분이분리되는티롤형하단만사용했다.8자하강기는장갑낀상태로쓰기에불편하고자칫잃어버릴수도있어안전벨트에연결한채로자일을걸고뺄수있는로보트형을쓴다.

랜턴은배터리팩을가슴에품을수있는구조의페츨랜턴을90년들어서부터써왔다.최근유행하는LED랜턴은장시간쓸수있지만,눈밭에서는눈이부시고빛줄기가멀리가지않아루트파인딩하는데불편해쓰지않는다고말했다.배낭은국산써미트65리터짜리만거의사용해왔다.자신의체형에가장잘맞고또편하다는것의그의평이다.

버너도국산코베아가고소에서도쓸만했다고한다.수통은날진통에커버를씌워사용했다.주둥이가넓어서물을담거나마시기에좋으며,반드시2개를챙겼다가잘때물을덥혀담은뒤침낭발치에하나넣고가슴에하나안고자면최고라고한다.

박영석은C2이상에서는늘발라클라바얇은것을쓰고지냈다.그러다더추우면그위에고소모를덧썼다.고글은일반형에옆은빛가리개가달린것을애용한다.둥글게휘어얼굴에딱맞게된신형고글은땀이차서별로라고한다.목은실크스카프얇은것을두번감아주면보온도되고햇볕도차단해주어최고라고한다.팬티는땀이차는등불편하여거의입지않는다.

옷은고소내의를입은다음그위에반팔티셔츠와반바지를입었다.C2까지도대개그복장으로오르내리다가추우면윈드스토퍼의류를겹쳐입는것으로끝냈다.빠른속도로움직이기때문에그것만으로도늘충분했다고한다.우모복은등정때나입었다.장갑은바닥에가죽을댄5지장갑을애용했다.

그는하강기하나라도무게를줄이기위해하강때도하강기를쓰지않고로프를등으로돌린상태로이장갑으로잡고쏜살같이내려가는방식을즐긴다.등정때는물론우모벙어리장갑을쓴다.안전벨트는블랙다이아먼드의허리벨트만썼다.등산화는엄홍길과마찬가지로거의원스포츠만쓰지만낭가파르팟같은벽을오를때는플라스틱이중화로갈아신기도했다.

피켈은그역시그리벨70~80cm짜리를,아이젠도그리벨제품을썼다.수통은그도역시날진통을썼다.랜턴은리튬전지를쓸수도있고좌우로크기와밝기가다른조명구가붙어있는일제내셔널랜턴을오랫동안써왔다.아마더좋은것이있겠지만고산에서특히랜턴같은장비를성능을잘알지못하는새로운것으로써본다는것은곧목숨을건다는뜻이므로장비를바꾼다는것은쉽지않다고그는말한다.

배낭은노스페이스제품중최경량인것을골라,거기서프레임을빼내고장식슬링도잘라내버렸다.이렇듯무게에신경쓰이는것이고산등반인데,세사람은등정때는모교,지원단체,후원사등의깃발들때문에골치를앓는다.대개작게규격을정해만들어오게하지만,그래도적잖이무게부담이된다고한다.

한왕용역시해발3,000m를넘으면서는잘때도고소모를쓴다.머리보온에세사람모두이렇듯철저하다.한왕용은습기로뿌옇게가리는것이싫어,통기가잘되게끔고글의옆가리개까지떼어내고쓴다.두선배와달리목도리는하지않는대신목이긴폴라티셔츠를입는다.

상의는고소내의얇은것과두꺼운것을겹쳐입고,등정때는그위에우모복을겹쳐입는다.하의는그위에신축성이좋은파일로만든한편방풍도어느정도되는파워스트레치를입는다.장갑은얇은장갑위에윈드스토퍼5지장갑을끼고등정까지대개한다.손이따듯한편이어서우모장갑은거의쓴적이없다.

신발은아솔로검은색이중화를신고8개봉을올랐으며,2000년부터원스포츠제품을썼다.그외수통사용법까지도그는두선배와비슷하다.다만하강기는8자하강기를고수하며스키스톡은크레바스확인이필요할때나쓰고주로피켈에의존한다.랜턴은선배박영석처럼일제내셔널제품을쓰다가LED랜턴으로바꾸었는데오래가고가벼워아주마음에든다는그다.

마스코트&트레이드마크

엄홍길은96년부터라고부르는네팔문양석목걸이를지니고등반해왔다.눈(眼)의모양이드러나는몽당연필만한크기의이것은에너지가생긴다는의미를가진일종의네팔부적으로서값이매우비싸다.그는목욕할때도이것을걸고있을정도로의미를주고있다.

엄홍길의트레이드마크는갈색중절모.93년칸텡그리포베다봉등정후카자흐스탄매니저로부터선물받은것이다.2001년그것을잃어버린후비슷한것을구해쓰고다니고있다.

박영석은가느다란끈으로된목걸이가마스코트다.이목걸이를차고모두13개거봉을올랐다.이것이없으면뭔가겁이나서산에가지못할정도가됐다고한다.그는다소휑한머리를가릴겸노스페이스채양모자를트레이드마크삼아늘쓰고다닌다.

한왕용은주술(?)을걸어둔마스코트는없지만,밀레마크를새긴벙거지가어느새그의상징처럼됐다.

모산(母山)

한해에8,000m급거봉을몇개씩오르는등,힘으로말하면세사람모두일반인들로선족탈불급인수준이다.이들은어떻게그런힘을키운것일까.엄홍길은경남고성에서태어나어릴때도봉산기슭으로이사,유년을보내며산과친해졌다.79년양주고교를졸업한후엔설악산희운각대피소에서매주서너번20~30kg의물품을저다주며2년여산중생활을했다.

그후그는해군수중폭파대에입대,3년을지나며강철같은몸을키워냈다.박영석은서울남산기슭에서태어나고자랐으며,동국대산악부시절매일남산약수터까지10km뜀박질을하며체력을다졌다.한왕용은91년부터2년간지리산뱀사골산장에서지내며매주서너차례반선에서뱀사골산장까지긴산길을50kg의짐을지고오르내리는아르바이트를했다.

이어1년간은전북학생산악연맹에베레스트원정대원에선발돼주중닷새간은하루4~5시간씩체력단련을하고주말은산행하는생활을했다.이렇듯세사람은청년시절몇년간강도높게산을통해체력을다지는시기를가졌다는공통점이있다.엄홍길을도봉산과북한산이키워냈다면,박영석은남산이,한왕용은지리산이키워냈다고할것이다.

후원자들

세산악인이어렵고도긴거봉완등행보를이어갈수있었던것은주위선후배들의도움이없고서는거의불가능했다고할수있다.엄홍길은자신을홍보이사로영입,안정적으로가정을유지하며원정등반에몰입할수있게해준파고다아카데미고인경회장,그가속한거봉산악회회장으로서몇차례원정대를꾸리는데앞장서준동진의강태선사장,KBS이거종부국장,코오롱정보센터책임자였던유한규씨,트렉스타이상도사장등의덕을크게입었다.

박영석은동국대산악부선배인이인정한국등산학교교장,대학산악연맹선배정상욱씨,자신을이사로영입해연봉을주어온노스페이스상표의영원무역성기학사장,홍보효과보다는인간적인매력을느껴적극후원해준엘지화재구자준사장,거의아무런반대급부도요구하지않고거액을원정자금으로쾌척한인터넷게임회사NC소프트김택진사장등을그는특히고마운분으로꼽는다.

한왕용은개척산악회선배이동호씨가동분서주하며원정비를마련해주는등그의후원이없었다면거봉완등이매우어려웠을것이다.전주소정형외과소병겸원장,강익수단장등도잊어서는안될고마운후원자이며,특히마지막2개봉을남겨둔상황에서부장으로특채,안정적사회생활이가능케해준한고상사한철호사장을그는거명한다.

세산악인의등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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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산이야기’http://blog.naver.com/san0116/12001568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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