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클라이머의삶]가의용-최오순부부
산이인연이되어인생의길동무로끌어올린가의용-최오순부부는"함께간다면어떤길이든좋아요."지난1월중순수원의모찻집에서가의용(賈誼龍.40)와최오순(崔五順.40)씨를보는순간떠오른단어가천생연분이었다.최오순씨는산애기를한창나누던중찻집에들어온남편가씨를보자활짝웃었다.10년쯤살았으면다른사람앞에선체면상이라도덤덤한표정을지을법한데,꼭한창열애중인애인사이처럼느껴졌다.두사람은10년넘게살아오면서말다툼한기억조차없다는잉꼬부부다.
"제가좀굼뜨거든요.그래서산에갈일있으면옷부터장비에이르기까지모든걸챙겨줘요.산에오래못가면꼭열병을앓고드러눕곤해요.그걸치료해주는사람도남편이에요."최오순씨는남편앞에서남편자랑을줄줄이늘어놓았다.무엇보다어떤일이든아내를이해하고적극적으로도와주는남편에대해고마워했다.산으로는아내최오순씨의지명도가한참높다.그녀는에베레스트등정자이다.
-<에베레스트한국여성초등자인아내>-
93년대한산악연맹여성원정대대원으로서지현옥대장,김순주대원과함께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8,488m)를올랐다.그전에는에베레스트기슭의임자체(6,160m)도올랐고,천산산맥의칸텡그리(7,010m)도올랐다.에베레스트이후에도94년메킨리(6,194m)를등정했으며,95년에는인도차우캄바2봉(7,068m)원정에참가했다.
-언제나다정한가의용,최오순부부-
최오순씨는“8남매중일곱번째로태어났죠.초등학교때영양주사를아예달고다녔어요.운동장조회때면픽픽쓰러지곤했으니까요.빈혈이워낙심했던거죠.고등학교도그모양으로지내니까2학년때담임선생님이등산을권하시더군요.건강에는최고라면서말이죠.산악반에들어간이후거의매주다녔어요.농사꾼이셨던아버지는처음에는말리는듯하시더니건강이좋아지니까농사일거들지않고산에다니는데도즐거워하시는거예요.
남녀공학이다보니산악부역시여고산악부와달리강했어요.전문등반도했고요.선운산도솔암에서바위하다스님한테걸려혼난적도많았답니다.”전북고창군무장면영선종합고를나온그녀는그해말삼성전자수원사업소에취직한이후에도함께취직한고교동창들과어울려2년가까이설악산,지리산,오대산,덕유산등전국명산을찾아다녔다.그러다한1년은산을끊었다.
“입사후한동안고향집이그리워힘들었어요.그래서친구들과산에도다니고,재미있는사내동아리를기웃거렸죠.서예는정말제대로배워보고싶었어요.그래서한1년간산에못다닌거예요.”89년가을에사내산악회에입회원서를냈지만정식회원이된것은정작이듬해봄이었다.“그때만해도산악부에들어가기가쉽지않았어요.입회원서를낸다음한달에두번씩정기산행에참가해테스트를받아야했으니까요.
그러다이듬해3월첫째주시산제때정회원으로결정되었답니다.대통령기등산대회도두번이나나갔어요.”90년봄정회원이되자마자정승권등산학교도들어갔다.“선배들이권하기에등산을무슨학교서배우냐고했죠.그래도그덕에정승권선배를비롯해많은산사람들과인연을맺게되었던거죠.그해입회한경기도산악연맹산악구조대에서도열심히활동했고요.그렇게한창산과산사람들에게빠져지내다보니저를예뻐해주신선배들의추천으로여성원정훈련대에원서를내게된거예요.”
▲94년매킨리정상에오른최오순씨.
91년말에베레스트훈련대에지원하곤이듬해봄회사를그만두었다.최종대원으로선발되려면최선을다해야한다는생각에서였다.“박태원(대산련응급처치교수·돌비알산악회)형한테아침마다스틱보행법을배우고,아침밥은남상익(경기도연맹부회장)선배께서운영하시는장비점인아이거산장에서먹었어요.두분모두엄청도와주셨죠.92년초설악산훈련에참가하고나서2월초인가히말라야전지훈련에참가하라는연락을받았어요.
1차선발대원18명중10명만보낸다면서요.즉시사표를냈어요.한달이상휴가를낸다는것은불가능한회사였으니까요.적당히해서는안되겠다싶었던거죠.아무튼그렇게해서전지훈련에참가하기는했지만해발5,000m가넘는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를올라가자니쉬울리있었겠어요.그전까지해외산경험이란게일본북알프스가고작이었으니말이에요.베이스캠프가빤히보이는데졸음이어찌나쏟아지던지병든닭처럼쪼그리고앉아한참졸았답니다.처음느껴보는고소증이었죠.”
에베레스트원정을한해앞둔92년봄임자체로부제훈련등반에참가하고귀국하자또다른원정이기다리고있었다.돌비알산악회의천산산맥원정이었다."임자체등정으로6,000m급고소는맛보았으니까7,000m급고산을경험한다면원정대에발탁될가능성이높으리라는남상익선배님의배려덕에참가한원정이었습니다.귀국하자마자함숙소로달려가한달간합숙훈련을거친다음곧바로원정에나섰으니체력으로무척힘들었습니다.새벽에일어나광교산을뛰어오르고,저녁때는돌덩이퍼럼무거운배낭을멘체주마링연습을하자니온몸이깨져나가는기분이었어요.아침이면침낭속에서나오지않자선배들이침낭째앞마당으로들어내기도했으니까요."
-94년겨울설악산실폭등반자최오순-
칸텡그리(7,010m)부터먼저하는다른팀과달리포베다(7,439m)부터등반했다.캠프3개를치면서해발6,800m지점의설동캠프까지무난히올랐다.그리곤1차공격조가출발한다음설동캠프속에서선배한명과함께2차공격을기다렸다.“태원형조가하산길에폭풍설을만났어요.비박을두차례나한뒤돌아오다조난신고를받고올라온카자흐스탄구조대원을만나무사히귀환할수있었다.
하지만,그사이태원형의발가락은썩어들어가고있었죠.결국귀국후10발가락모두잘라내야했어요.아무튼그런일을겪고났으니진이다빠져나간상태일수밖에없었죠.”그런상태에서최오순은뒤늦게도착한남상익씨를비롯한선후배들과포베다등반에나서알파인스타일로밀어붙이며정상까지올라섰다.이듬해5월11일이루어진에베레스트등정은이렇게선배들의지속적인후원의결과나다름없었다.
“운도좋았어요.모두들최선을다해등반을펼쳤는데,막판에제게기회가왔으니말이죠.컨디션이좋았던것같아요.C1(6,000m)에처음올랐다BC(5,400m)로내려온이튿날아침‘C1에올라갈사람?’하고대장님이물었을때손을들었으니까요.하루산행을마치고캠프에도착하면늘힘이30%쯤남아있다는기분이들었어요.”
사우스콜캠프(8,000m)에서정상으로향할때도다른팀보다1시간은늦게출발했는데,거의다추월했고,정상에서실컷시간을보내고힐라리스텝을내려설때외국산악인들이올라오고있었다.“무엇보다합숙훈련중세끼꼬박꼬박먹으면서지낸게큰보탬이된것같아요.혼자자취할때는귀찮다는생각에끼니를건너뛰기일쑤였으니까요.출국전선배언니가45만원이나되는큰돈을들여마련해준보약도큰도움이된것같아요(웃음).”
-<등산학교수료식에서첫눈에반해버린남편>-
에베레스트얘기가한창무르익을즈음남편이찻집에들어섰다.“어머자기왔네.”동갑내기남편이들어오자너무도반가워했다.두사람은결혼전산친구사이였다.가의용씨와최오순씨두사람이인연을맺은것은에베레스트원정을마치고귀국한직후였다.93년5월말가의용씨는전문등반을배우기위해경기도등산학교기초반을수강중이었다.
“졸업직후산에다닐때는몰랐는데91년제대후산에다니자니부족한게많이느껴졌어요.특히능선종주중당황할적이많았죠.모르는사람뒤쫓아가다가암릉에서당황한적도있고,바위에매달려있는줄을잡고오르다놓치는바람에땅바닥에패대기친적도있어요.그래서제대로배워야겠다는생각에등산학교에들어간거예요.지원엄마를처음본게기초반수료식에서였죠.얼굴이시커멓게탔는데도마음이확끌리는거예요.그때찜했어요.”
박태원씨가수원시권선구교동에서운영하던생맥주집인베이스캠프가만남의장소였다.“다음에원정가면도와주겠다”는삼성전자수원사업소공장장의권유로‘한번퇴사자는재입사불가’라는불문율을깨고최오순씨는삼성전자에재입사했지만,근무시간외에는베이스캠프가주거지였고,가의용씨에게는매주산행출발장소가베이스캠프였다.가씨일행은산행출발전두어시간씩박태원씨에게응급처치요령에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