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원정대’다시!에베레스트다’
18인의영웅들…그들의에베레스트는끝나지않았다
->에베레스트등정30주년을맞아77원정대원들이다시에베레스트를찾는다.출정을앞둔대원들이1976년훈련도중숨진동료대원들에게인사를하기위해지난16일설악산사고현장에모였다.조영호기자
‘8848’은
전화번호뒷자리로이4개의번호를고집하는사람들이있다.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8,848m)의영광을기억하고자하는사람들이다.에베레스트에처음으로태극기를휘날린‘77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77KEEㆍKoreaEverestExpedition)’만큼‘8848’의감흥을크게가지고있는이들은없을것이다.77KEE의등정일기는장편의드라마다.
쉽게뚝딱해서정상에오른게아니다.국민들의철저한무관심속에산악인들은수년을준비해장도에올랐고,거머리와해충에시달리며한달의행군끝에베이스캠프에도착했다.고소를배회하는사신과사투를벌인끝에마침내세계의지붕에올라섰다.
정상에오른이는고(故)고상돈(당시29세)대원이지만이는나머지18명대원의체계적인지원을통해이뤄낸결과였다.하지만사람의기억은늘단편적이다.언론은‘첫발의사나이’고상돈에집중했고사람들은에베레스트를고상돈의이름으로만떠올렸다.
77KEE대원중누군들정상에오르고싶지않았을까.당시최종정상공격을앞두고대부분의대원들은원정일기에“나는더오르고싶다”고꾹꾹눌러적고있다.어떻게고생해서온에베레스트인데정상의꿈을놓을수있었겠는가.에베레스트원정드라마는1971년히말라야로체샤르원정팀이네팔에가서에베레스트등정신청을하면서시작됐다.
73년에네팔외무성에서77년가을에들어오라는통보가왔고드디어에베레스트로가는물꼬가터졌다.대한산악연맹과창간20주년을맞아도약을꿈꾸는한국일보가의기투합,큰일을저지르기로했다.원정자금을마련하고원정대원을모으느라바빠졌다.
세계최고봉을오른다는소식에전국의난다긴다하는산사나이들이몰려들었다.4차에걸친모진훈련을산악인들은이를악물며견뎌냈다.세계의지붕에서겠다는꿈하나때문이다.76년설악산동계훈련중눈사태로3명의대원을잃는큰사고가났지만에베레스트를향한투지는꺾이지않았다.77년마지막동계훈련때일이다.
77KEE대원인대한산악연맹김병준(59)감사는“설악산사고1주기추모행사를위해현지에훈련대원들이모였다.연맹이미리맞춰놓은떡이오래돼곰팡이가슬어있던것을모두나눠먹고배탈들이났다.하지만그누구도내색을하지못하고끙끙속으로만앓았다.에베레스트로갈정예대원을뽑을날이가까웠기때문이다”고회상했다.
지금은네팔의수도카트만두까지직항노선이뚫리고카트만두에서해발2,800m인루크라까지비행기로이동해1주일정도만도보로캐러밴을하면베이스캠프에이를수있다.하지만당시에는태국방콕등을경유해야카트만두로들어갈수있었고,카트만두인근람상구에서베이스캠프까지380km를한달여걸어야도착할수있었다.
‘주가’라부르는거머리떼의습격에시달리는고난의행군.그래도마음은희열로터질것같았다.꿈에그리던산이점점가까워오기때문이다.베이스캠프에도착해서는한국에서부터지고온100개의사다리를이용해거대한빙하지대아이스폴의크레바스를건너가며본격적인등정에나섰다.
고독,고소의냉혹한한기에시달리며대원들은조금씩높이올라갔다.그해9월박상열ㆍ앙푸르바1차공격조의안타까운실패를딛고,마침내2차공격조인고상돈ㆍ펨파노르부가정상에섰다.77KEE박상열부대장은“다른원정대도계속해서모임을가지지만77원정대만큼활발하게지속되는모임은없다”고했다.
에베레스트첫등정의영광과꼭그만큼의그늘은사반세기가넘도록대원들을하나로묶는세월의자일역할을하고있다.그는“우리의‘영원한대장’김영도대장이팔순을넘긴나이에도지금껏모임을이끌고있다”고했다.세계의정상을처음밟은한국의산악영웅들이지난감격을되새기며이제31일이면다시에베레스트를향해그들의영혼한조각미련없이저당잡힌에베레스트품속으로날아간다.
"후회는없다"77원정대부대장박상열씨회고
셰르파와죽음의비바크…’정상’대신’우정’얻어
->에베레스트정상에오르는첫번째관문은거대한빙하인아이스폴을건너는것이다.얼음과얼음사이죽음의홀인크레바스위에사다리로길을놓고조심스레나아갔다.한국일보자료사진/등정을마치고귀국한대원들이에베레스트원정을적극후원했던한국일보장기영창간사주의묘소를찾아분향하고있다./국민의영웅이되어돌아온77대원들이카퍼레이드를하며시민들의박수갈채를받고있다.한국일보자료사진(왼쪽부터)
77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77KEE)의성공이후뜬스타가정상에섰던고(故)고상돈대원이라면,비운의사나이는박상열(64)부대장이다.고상돈보다먼저정상에도전했던대원이다.만일그가성공했다면세상은에베레스트를‘박상열’의이름으로기억했을것이다.
1977년9월5일김영도원정대장이대원들을모아놓고정상공격조를발표하는날.1차공격조에선택된사람은박상열부대장과셰르파앙푸르바였다.정상공격조는미리뽑는게아니라최종단계에서가장컨디션이좋은대원을뽑는다.
대원들의평균폐활량이4,000cc인데비해‘곰’으로불린박부대장의폐활량은6,000cc를넘었다.김대장은원정일기에‘그가스쿠버다이빙을해서폐에자신있는것은알았지만그렇게까지뛰어난체력을가지고있을줄몰랐다.고산족인셰르파도놀랐다’고적고있다.
대원들의염원을양어깨에짊어진채박부대장의가슴은투지로불탔고,내딛는발걸음은진지했다.사우스콜을지나마지막캠프를해발8,490m에차렸다.이곳에서하룻밤만보내면드디어정상을공격하는날이다.텐트에서잠을자는데새벽2시께산소마스크에서갑자기산소가나오지않았다.영하30~40도의혹한에천막밖으로나가산소통을새것으로갈아끼우는일은여간번거롭지않다.
머리속에서는일어나산소를갈아끼워야한다는경고음이울렸지만한번육체를점령한잠은좀처럼떨치기어려웠다.그대로잠들었다.고소에서산소공급없이잠드는것은하룻밤사이몸을극도로쇠약하게만든다는사실을몰랐을리없건만잠의달콤한유혹은그만큼강력했다.
새벽무전기소리에일어나니몸이무겁다.셰르파앙푸르바와서로몸을묶고밖을나서니엎친데덮친격으로산더미같은폭풍설이몰아쳤다.허리위로쌓이는눈을헤쳐가며몇걸음올라보지만자꾸눈더미에밀려내려온다.남봉을넘어나이프릿지를지나힐러리스텝앞에섰을때.마스크에서산소가또나오지않는다.산소가다떨어졌다.
이대로돌아갈까고민하다가정상으로발걸음을향했다.무산소등정.무모한도전이었지만그만큼정상에대한열망이컸다.결국정상을불과40m앞에두고고집을꺾을수밖에없었다.악천후에산소까지떨어져자칫생명을잃을수도있는상황이었다.앞에서서힘겹게한걸음씩디디며내려오는데앙푸르바와자신을잇던줄이팽팽해졌다.
뒤돌아보니앙푸르바가쓰러졌다.“컴다운”을외치니그가지긋이쳐다보다가줄을풀어버렸다.혼자가란다.자기한몸추스르기힘든극한상황,그러나사지에동료를버리고갈수는없다.다시되짚어올라가앙푸르바를겨우일으켜내려오는데해가졌다.산소도없고텐트도없는해발8,700m의눈보라속이다.
미끄러지지않으려고피켈을다리사이에꽂고서로를껴안고는비바크(Biwakㆍ불시노숙)에들어갔다.운명을하늘에맡기고죽음과맞설뿐.침낭도없고허기를달랠비스킷도없다.가지고있는것은식어가는서로의체온뿐이다.세찬눈보라가얼굴을때리자앙푸르바가배낭을뒤져윈드재킷을꺼내서는얼굴을감싸줬다.우정에감동해얼굴로그의얼굴을비벼댔다.
얼마나지났을까,갑자기날이맑아지며바람이멈췄다.산소없이인간의생존이불가능하다는8,700m에서무산소로비바크를하고살아났다.세계최초의기록이라면기록이다.캠프5로내려와몸을뉘었다가동료들의도움을받아겨우하산했다.
얼마후베이스캠프에서고상돈대원의성공소식을들었다.기뻤다.그리고허전했다.박부대장에게“후회하느냐”고물었다.그는“후회없다”고잘라말했다.천상산사나이의얼굴에편안한미소가스쳤다.그는“등산은산이주는온갖시련을이겨낸뒤산에서내려와등산화끈을풀때가장큰보람을느끼는것”이라고일러준다.
다시물었다.“정말후회하지않는가.”그는“세계의정상40m앞에서아쉬움을접고살아내려왔기에또다시에베레스트를찾아갈수있는거아니냐”며말문을막았다.8,700m고지에서죽음의비바크를함께했던앙푸르바의아내는그시간딸을낳았다고한다.노총각이었던그도귀국한다음해가정을꾸렸다.
박부대장은“무산소비바크에서살아남을수있었던것은어쩌면떠날때어머니가손에쥐어준부적과고모가벽에걸어준성모상,김영도대장의사모님이보내신성경책덕이었는지도모르겠다”며슬쩍미소를짓는다.세상모든종교의선인들이그를지켜준셈이다.
고소에서의산소결핍과눈부신설원에서고글없이노출된탓에그의눈한쪽은시력을잃었다.그래도그는히말라야가좋다.이번박영석원정대와의동행이히말라야방문으론11번째다.그는“매번이번이마지막이라고했지만설산에중독된몸과마음은벌써다음갈길을손꼽는다”고했다.
▲77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등정일지
1971년로체샤르원정대(대장박철암)에베레스트등정신청서네팔
외무성에제출
73년네팔외무성한국원정대등정허가
74년1~2월지리산칠선동계곡에서1차동계훈련
75년1~2월설악산공룡능선에서2차동계훈련
75년8~11월1차정찰대에베레스트파견
76년2월설악산3차동계훈련중최수남송준송전재운대원눈사태
로조난
76년9~11월2차정찰대에베레스트파견
77년2월오대산서4차동계훈련
6월11일원정대발대식
7월2일원정대출국
7월6일원정대카트만두도착
7월19일람상고에서캐러밴대장정(람상고-준베시-남체-탕보
체-고락셉)시작
8월14일베이스캠프(5,400m)도착
8월15일아이스폴돌파제1공격캠프(6,100m)설치
8월20일웨스턴쿰6,450m에제2공격캠프설치
8월26일로체페이스7,500m에제3공격캠프설치
9월5일정상공격조(1차박상열,2차고상돈한정수)발표
9월6일1차공격조출발
9월8~9일심한눈보라속8,600m서비박후귀환
9월12일2차공격조(고상돈)출발
9월15일고상돈대원셰르파펨파노르부와정상등정
9월20일베이스캠프철수
9월24일카트만두도착
10월1~6일카트만두출발,방콕홍콩타이페이경유서울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