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올라서자눈물만나왔다.에베레스트를비롯해수많은설산들이너무도웅장했다.곽정혜는이후그날의감동을잊을수가없었다.“아마다블람등정으로자신감을얻은것은아니에요.대신다시한번가고싶다는욕구가뜨거워진거죠.다른대원들도마찬가지마음이었을거예요.
그러나대부분학교에복학하거나복귀해야하는상황이었기에꿈을더이어나갈수없었던거죠.”곽정혜는원정뒷정리를하던중결심했다.그리곤곧바로이상배씨에게“고산등반을좀더해보고싶다.기회를달라”고간청했다.이씨는잠시고민스러웠다.한창공부에힘써야할나이에너무산에빠지는게아닌가하는염려와,가녀린몸이고산등반에맞을까하는의문때문이었다.
“일단노력해봐라”는이상배씨의말이떨어진직후부터이상배씨의산행을쫓아다녔다.당일산행도훈련이라는자세로임했고,기회는언제올지모르니항상몸이만들어져있어야한다생각했다.겨울뿐아니라봄,여름,가을에도플라스틱이중화를신었다.배낭무게는늘30kg에맞춰져있었다.
“한동안이중화를신고산행할때마다발바닥과발목이아파혼났어요.발이워낙작아사이즈가세치수큰이중화를신어야했으니불편하고힘들수밖에없었죠.그래도참았어요.히말라야에가려면이정도고생은당연히견뎌야한다면서말이죠.이상한눈초리로쳐다보는사람들이많았어요.한여름에웬스키화냐는시선이었어요.”
키158cm에몸무게가47kg밖에나가지않는왜소한체격을지녔지만훈련은황소같은남자들못지않게해냈다.그런힘든훈련을잘참아내는모습에이상배씨는메라피크중앙봉(6,461m)등반이라는선물을주었다.“등반보다마오이스트들이두려웠어요.호기심도있었고요.
진짜총을들고와서돈을요구할때는겁나더라고요.그래서1인당3,000루피씩뺏겼답니다.메라피크등반은어색할적이많았어요.많은대원들가운에홍일점이라서그랬을거예요.심적으로도어려운데대원들대부분히말라야가초행인지라잘해야한다는부담때문에버겁기도했어요.정상으로이어지는플라토는유난히길더라고요.지루할정도였어요.그래서그런지정상에올랐을때는덤덤했어요.”
-“중동팀과한왕용선배의은혜는평생못잊어”
귀국한지몇달지나지않아유럽알프스최고봉인몽블랑등반에나섰다.그녀는상업등반대를인솔하는이상배씨의보조역할을맡았다.“이대장님과남학생동기와셋이서11인분의텐트와취사구를짊어지고다니느라정말힘들었어요.도우미로동행한동기가고소증세로제역할을못해더욱힘들었죠.
하산길에선동기가다리가풀려하산시간이늦어지고,그바람에열차를놓쳐무거운짐을메고3시간이나걸어내려가야했답니다.그래도그등반에서설벽스텝을깎는법만큼은제대로배운것같아요.”그해가을안나푸르나트레킹을다녀오자이상배씨는내년봄네번째에베레스트도전에나선다며,8,000m급등반에대비하라고했다.
곽정혜는들떴다.꿈의8,000m급거봉등반이이루어진다생각하니꿈만같았다.너무빨리왔다는사실을잘알면서도기회를놓치고싶지않았다.“처음엔로체에가기로돼있었어요.이상배씨와두어달남겨놓고양산시에서경비지원이확정되는바람에에베레스트로바뀐거였죠.8,000m급봉만해도꿈만같은일인데세계최고봉을오르게되었으니하늘을날듯한기분이었죠.”
곽정혜는이상배씨와함께2006년봄에베레스트등반에나섰다.또한명의대원은로체조였다.다른사람들은아이스폴지대를지날때면빙탑이무너지면어떡하나,크레바스에빠지면어떡하나하는두려움에가슴을졸이고,C1과C2사이의거대한빙하를오를때지루함과강렬한햇살에몸서리를쳐도그녀는마냥즐겁고행복하기만했다.“불평하는게오히려이상하다싶었어요.당연히겪어야하는일인데말이죠.저는에베레스트를오른다는생각에즐겁기만했는데말이에요.”
->▲아이스폴에서이상배대장과곽정혜씨
많은눈으로늦춰지던시즌초등은5월17일이루어졌다.그날곽정혜는이상배씨와함께C3(7,300m)에서마지막캠프(C4·약8,000m)로향했고,그날밤9시쯤세계최고봉정상을향해한발한발올랐다.곽정혜의걸음은시종일관가벼웠으나,C4에너무늦게도착해쉬지도못하고등정길에나선이상배대장의걸음은시간이흐를수록점점무거워졌다.
“평균5시간걸리는발코니(8,500m)에도착했을때환해지기시작했어요.6시쯤해가뜨니까9시간쯤걸린셈이죠.벌써정상에서내려서는사람들도있었고요.시간이너무늦어진다싶어고민스러웠어요.정상은포기하고가는데까지라도가보자는생각이들었으니까요.”
어느순간이상배대장은“나때문에너까지못올라가면안된다”며“먼저가라”고했다.등정하든실패하든모든성패가둘이함께이루어져야한다고늘강조해오던이대장은자신이너무지쳐있다는판단에생각을바꾸었다.이후곽정혜는셰르파한명과함께빠른속도로등반,정오경정상에올라서는데성공했다.
동행한셰르파가날씨가나빠지고있다며하산을재촉하는바람에어렵게올라온세계최고봉정상에서오랜시간머물지도못한채하산길에들어서야했다.“오를때는몰랐는데하산할때는힐라리스텝에서혼란스럽지뭐예요.깔려있는여러가닥의로프중어떤걸잡아야할지고민이되었던거죠.잘못잡으면삭은줄에몸을실을수있으니까요.발이꼬이면서로프에걸리곤해서정말애를먹었어요.”
어렵고위험한구간을빠져나와남봉(8,751m)에내려섰을때이상배대장이보였다.이대장은산소가떨어져고통을겪고있는데도설동을파고비박한다음다시정상에갈생각을하고있었다.곽정혜는셰르파에게등정길에데포시켜놓은산소통이어디있느냐물었으나,그산소통은다른셰르파가이미가지고내려간뒤였다.
1시간쯤설득해함께하산길에들어섰으나,눈발이날리면서앞이제대로보이지않았다.추락에대한공포때문에기마자세로다리에힘을주면서한발한발내려섰다.그렇게어렵게발코니에도착했을때지친이대장이셰르파에게잠깐쉬었다가자고했으나셰르파는거의다왔다며연결된로프를풀러내곤혼자내려가버렸다.
두사람은얼마지나지않아헤어지고말았다.곽정혜는정상적인고정로프를따라내려섰으나,이대장은장비나산소통을걸어놓기위해고정로프에걸어놓은로프를따라내려섰다.곽정혜는그줄이아니라고몇차례외쳤지만바람소리는그외침을삼켜버리고말았다.날씨가더욱나빠지고‘여기서이렇게죽는구나’공포를느끼게되자곽정혜는하산길을재촉할수밖에없었다.
그렇게어렵게하산하다가,이제다내려왔다싶어마음을놓고배낭을벗는순간몸이기우뚱하면서미끄러졌던것이다.“얼음판에누워6시간쯤있었나봐요.장갑이벗겨진손을겨드랑이에끼고있었지만멀쩡할리가있었겠어요.해발8,000m가넘는고도와추위속에서.친구가찾아왔어요.그것도두번이나요.
어린시절헤어진이후한번도만난적이없는친구였죠.저승사자구나싶었어요.그러다누군가부르는소리에깨어난거예요.중동고팀선배님들이었어요.지금생각해도너무도고맙고죄송스러워요.저때문에정상길에나섰던박재우,최인수선배두분은포기해야했으니까요.”
1차공격에성공한중동팀의2차공격조대원3명은이날밤정상을향하던중눈에익은옷차림의사람이얼음판에쓰러져있는것을발견했다.그리곤캠프로옮긴다음세사람중두사람은시커멓게죽어있는곽정혜의손을치료해주기위해등정을포기했다.이상배대장은곽대원을데리고캠프에내려섰다다시정상을향한중동팀이명호대원에의해발견되어셰르파들의도움을받으며무사히캠프로내려설수있었다.
->▲로체서벽을배경으로.
곽정혜는이튿날에도탈진상태였으나,동상이악화될우려때문에하산을서둘렀다.셰르파들의도움을받으며로체서벽을거쳐C2까지내려선다음BC에서사고소식을들은클린원정대(대장한왕용)가올려보낸셰르파들의들것에실려BC로내려설수있었다.
“중동팀선배님들은너무나도고마운분들이었어요.한왕용선배님도많은도움을주셨어요.셰르파여러명을올려보내주어C3에서베이스캠프까지들것에실려내려갈수있었으니까요.그분들의은혜는정말잊지못할거예요.”곽정혜씨는귀국후동상치료를받다가손가락을절제해야한다는의사의권고대신동상부위가괴사하여떨어져나갈때까지기다리며치료를받고있다.
현재오른손은새끼손가락손톱부위가괴사후떨어져나간상태로끝났지만,왼손은붕대를감은채지내고있다.“매주한두번씩서울에서치료받고있어요.다섯손가락모두두마디씩은포기해야한대요.저절로떨어지기를기다리고있는거예요.그래야후유증이덜하다고하니까요.사고직후엄마는담담하게대처하셨는데,출국전인명은재천이라며덤덤해하셨던아버지께서손에붕대를칭칭감고공항에도착한제모습을보곤오열하셨어요.저도따라울고말았죠.”
->▲에베레스트에서사고당시들것으로구조되는곽정혜씨.
곽정혜씨는에베레스트등반에대해손가락을잃는실수를범하고말았지만“실패한등반이었다”는평에대해서는인정할수없다말한다.“걱정마세요,전아직젊잖아요”“후회요?아마다블람등반전부터이런일이일어날수도있으리라는생각을가지고있었어요.죽는것보다더나쁜최악의상황이라상심한적도있었어요.
지금은아니에요.정상에올랐고이렇게살아내려왔으니까요.분명제에베레스트등반이완벽하게성공한건아니에요.이렇게손가락을잃었으니까요.하지만실패라고생각하지는않아요.실수였죠.실수로인한사고였던겁니다.”이상배씨는곽정혜씨의치료비마련을하기위해경남도차원에서모금운동을하려했으나곽씨의거부로이루어지지않았다.
그녀는“주변사람들이무엇보다무모했다는말을너무쉽게해서마음이상할적이많다”고한다.“동정받는게싫어요.저는나름대로최선을다했고,신중했어요.그래서어떨때는다시올라야겠다는생각을하기도해요.나자신에게최선을다했다는사실을증명해보이고싶기때문이죠.저혼자서도충분히일어설수있어요.두고보세요.
저는운이좋은편이에요.좋은선배만나히말라야고산등반의기회를빨리얻었으니까요.간혹그렇게혹독한일을겪고도산에갈생각이나냐고묻는사람들이있어요.이제저한테산빼면뭐가남겠어요?”그녀는무척밝고긍정적인사고를지닌젊은여성산악인이다.사고직후병원에서만났을때나그후1년가까이지나밀양에서만날때나밝고맑은웃음을잃지않았다.
그녀의꿈은사회체육이나스포츠마케팅분야에서일하는것이다.“공부할때가빨리온것같아요.내년쯤제가원하는분야에관련된과가있는학교에편입할계획이에요.그래도손가락을자유롭게쓸수있으려면2~3년은더걸릴것같네요.그기간동안공부하면서체력을다질거예요.새로운분야와새로운산을기대하면서요.이젠공부하는산악인이되고싶어요.산은높든낮든계속다닐겁니다.우선손이나으면백두대간부터시작할까해요.걱정하는분들이많으신것같은데전괜찮아요.전아직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