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앉은허영호(53)의이름은익숙했지만,그는내가술잔으로어울리던산악인들과는분명히다른종(種)이었다.그는에베레스트봉(8848m)에등정한뒤전날귀국했다.햇볕과눈(雪)에그을린흔적으로어느탄광막장에서막뛰쳐나온얼굴이었지만,짧게이발한머리에단정한옷차림새였다.
이번에베레스트등반은혼자였다.네팔현지에서두명의셰르파를데려갔을뿐이다.그등정소식은단신(短信)으로처리됐다.나는“혼자서하는원정은외롭지않았나요?”라고물었다.질문의속뜻을그는간파했다.
“당연히외롭고힘들죠.그러나나는오랫동안혼자서해왔어요.”
여기서입을다물었다.나는다시물었고,그는또짧게대답했다.질문과단답(短答)이수차례빗겨갔다.
“큰원정대를꾸려가면마찰이많아요.대원들이말을안듣고대들기도하고….무엇보다약속을안지키는친구들이태반이에요.”
“돈문제로마찰을몇번겪고는손을들었어요.원정비용을얼마씩분담하겠다고약속했으면지켜야지요.산악인들이그런약속을잘안지켜요.서약서쓰면뭐해,꽝인데.산악인들은거의무위도식해요.등반하는사람들이자기가열심히벌어서원정을갈생각을잘안한다고요.그러니나혼자가면,빨리결정하고마음대로조절할수있어편하죠.속이안썩죠.”
그는한국탐험사에서늘기록을남겨왔다.그전까지한국산악인16명을앗아갔던‘악마의이빨’마나슬루봉(8163m)정상을그는무산소로처음으로밟았고,1995년에는7대륙최고봉과남·북극점도달의위업을달성했다.그는세상의‘영웅’이됐지만,산악계에서는어느순간그의이름이지워졌다.그를둘러싼‘소문’이퍼져나갔다.산악계에서그는모습을나타내지않았다.그런고립과단절의세월이8년이됐다.이런내막은물론세간에는알려지지않은것이다.
“그런이유가많죠.원정경비를분담한다는약속을해놓고안지키니까싫다이거지.약속은꼭지켜야하잖아요.”
산악회에제명시켜달라했죠”
“산악인들도먹고살아야하니까돈은중요하죠.그것을등한시하면나이가들어자연스럽게도태될뿐이죠.산을좋아하는사람은대부분이가난해요.손가락·발가락을잘린산악인들이솔직히뭐영웅이야?먹고사는게더중요하잖아요.”
“등반에만매달려손가락발가락잘린걸훈장이라고생각하면안된다는것이죠.그런만큼일상생활에서도열심히살아야한다는이야기인데.그렇지않고하늘만쳐다보면돈이나와,뭐가나와요.지금까지탐험도그렇고등반도그렇고,저는항상조용히다녔어요.등반에대해과장되게말안하고등산복에태극기도안달고다닙니다.산이좋아서가는사람이태극기를달이유가없죠.정상에올라서면태극기들고촬영하면되는일이지,그외에는자기가국가대표선수도아닌데왜태극기를달아요.
함께다니는대원들에게‘제발폼잡지말라’는말을많이했지요.그리고등산이끝나면‘깨끗하게다녀라.바로면도하고머리도깎아라’라고말해요.이제산생활이끝나고세상으로돌아왔다는것이지요.산은산이니까그렇다치고,왜여기와서표시를내느냐는겁니다.저는다른산악인들처럼여럿이어울리는술자리에는오래있지못해요.그게한국적사회생활에서는문제가됐는지모르죠.”
“안하죠.가족이제일중요하죠.가족도제대로부양하지못하면서등반을계속해서뭐해요.그런친구들이사회에서성공하나요?성공못하지.저는등산보다는먹고사는게중요하다고봐요.등산이더좋다면결혼하지말고혼자사는길밖에없죠.”
“아니,저는등반을하면서비즈니스를한게없는데무엇을훼손했다는것이죠?이윤이남아야지비즈니스를할수있는것아니에요?”
“스폰서를받죠.하지만거의남는게없어요.제기준으로봤을때는그래요.원정비용보다모자라거나그걸다쓰게되지.내가등반과탐험을하면서전체적으로집에서가져다쓴돈이1억원이넘을거예요.”
“그쪽에서말해오면,제가조정하는경우가있어요.액수는자존심과도관계된문제이니까요.”
“등반은무상의행위라는것이나,탐험등반했던당시의목표와정신력에관해주로이야기를하죠.”
“젊은대원들은순수한등반이많고요.원정대에그냥따라오니까.그러나원정대장은스폰서를구해서전체적으로운영해야하니까약간틀리죠.그럼에도크게보면등반자체는무상행위이죠.고생하고대가가없잖아요.밥벌이와는전혀상관없어요.손해를보면손해를봤지,등반에서남는돈은하나도없어요.있다면명성밖에없어요.”
“명성이죠.유명해지는것이었죠.물론처음에는명성보다는,히말라야를안가봤으니까높은산을올라가봐야겠다는호기심으로시작했지요.다행히내체력과맞아서정상을밟게됐지요.그래서이름이나니까,또다른도전을하고더명성을얻게되는것이죠.명성을얻지못하면스폰서가안붙죠.”
“글쎄,내스스로는그렇게잘못한게없다고봐요.누구에게피해를준적도없으니까.후배들이내게대접을소홀히하고인사를안한다고크게상처를받을게없어요.그냥그렇게받아들여요.나는상관안해요.”
그의등반인생에서결정적시점은1999년한국산악회원정대장을맡아에베레스트의북벽루트로갔을때다.그원정대는고난도벽(壁)앞에서실패하고되돌아왔다.문제는결산과정에서일어났다.그가원정비용의일부를빼돌렸다는소문이돌았다.소문의진상은가려지지않았지만,분명했던것은이로인해산악계에서그의‘자리’가사라졌다는점이다.
“전체예산에서지출경비가4000만원쯤넘어버렸어요.모두영수증이있고수차례점검을했어요.어쨌든이것을책임지는사람이없었어요.산악회도책임을안졌어요.원정대원들이등반경비를부담하기로서약하고도안낸것도있었고.그런데내게책임지라는것이었죠.나는‘한국산악회’이름으로대장을맡아서갔을뿐인데.그런시비가2년을끌었어요.그러니말들이얼마나많겠어요.결국내가아파트팔아서다갚아주고,한국산악회에나를제명시켜달라고했어요.산악회회원,이따위는싫다이거예요.”
“사람들이싫으니까안하죠.산악계에꼭남아있어야등산을하는것도아니고.그뒤로나는나대로산에가고탐험하고했지요.혼자돼도열심히내가스폰서찾아서등반하면되니까.난남들에게준것도없지만피해준것도없어요.”
하지만홀로된그심사가늘평정을유지할수는없다.이번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에서그는국내의한지인에게전화를걸어“한국원정대가4팀이나와있고,박영석원정대도있지만내게얼굴한번안비친다”고쓸쓸하게말한적이있었다.
“선배로서해줄게없는데.내가능력이안되어서해줄게없는데무슨책임을져요.능력이안되는데폼잡으면뭐해요.사회에서도태가될뿐이죠.”
“아니오.혼자안살죠.그러나나는산악계말고도또다른모험일을열심히하고있어요.”
“그때는직장(시멘트회사)을갖고있었어요.먹고사는것은보장을해놓고산에다녔던것이죠.대부분지금젊은산악인들은거의무위도식하는데,그것과는틀려요.세상에는먹고사는것이가장중요하죠.산을탄답시고무위도식한아이들이너무많아서안타까워요.”
“1982년마칼루봉원정때는정상에서추락해서죽을뻔했고,83년마나슬루봉가을등반에서는눈사태에파묻혀셰르파들의구조로살아났고,87년에베레스트원정때는내려오면서크레바스(빙하가갈라진틈)에빠진적도있었지요.거기서죽을수도있었지요.그런사고를겪으면이제그만해야한다는생각을하죠.그런데그게,세상으로돌아오면또산에가고싶어지니까.”
“예.빠졌죠.한1억원짜리비행기를날렸지요.당시바다에빠져도사나흘은생존할수있는준비를다했어요.세상사람들이봤을때는‘바다에서어떻게살까’그랬지만,저는사고대비준비를다해갔던셈이지요.모험이란늘준비된모험이지요.제게는비행기가한대더있어요.다음달초다시도전할거예요.”
“북극원정이제일힘들었어요.나는그것을1995년에이미했잖아요.10년전에내가했는것을,그다음에박영석이가했지요.박영석이가그걸로매스컴에크게나는걸보면서,‘나보다더큰도전을해야하는데’라는생각이들었지요.”
“저는늘그렇게해왔어요.그래야스폰서를끌어들일수있는거죠.위험강도가계속높아져야죠.하지만자기가죽으면모험이무슨소용이있어요.그러니까그수위를자신의나이수준에적절하게맞춰야죠.”
그런데세상에돌아오면또산에가고싶어지니……”
“안좋게생각하죠.고산등반같은것은이제그만하라고하죠.”
“대답안하죠.가만히있죠.저는말을많이하는편이아닙니다.”
“그렇죠.등반준비는사무실에서하니까아내는모르죠.나중에출발할때쯤통보를합니다.고산등반들을미리상의하면아내에게무슨도움이돼요?불안하게만들뿐이죠.”
“그과정이몹시고통스럽고지루하죠.하지만목표가세워져있기때문에쉽게포기하지는않죠.어떻게든지버틸때까지버텨보는것이지요.현실적으로원정은많은돈이들어가는겁니다.그런원정을실패하면다시기회를잡기가어렵죠.더욱이두번세번실패하고나면스폰서를구하기가힘들어지죠.늘스폰서에대한그런강박관념이있죠.”
“아주좋다고생각해요.정말행운이죠.이번에베레스트에서도올라가다가눈사태가나서추락했거든요.그전날발목이빠질정도로눈이왔어요.경사가있고로프가직선으로걸렸어요.고정로프니까크게불안하지는않았죠.딱잡고올라가는데눈이확쏠리면서몸이20m쯤날라갔죠.”
“모르죠.늘피해갈지….이번등반을하는동안에베레스트남서벽에박영석원정대의오희준·이현조를멀리서봤어요.벽(壁)에붙어있는것을보고600mm줌카메라로사진을찍어놨어요.그리고나서이틀만에이친구들이사고로숨졌지요.운명이지요.나도혹죽음을맞게되었을때,이게내운명이구나그래야겠죠.”
“울었죠.엉엉울었죠.1987년추락했을때엉엉울었지요.또하늘을쳐다보고운적많아요.몸이말을안들어서엉엉운적이많아요.
“버릴수있죠.그것을못버리면안되죠.나도몇번씩정상바로밑에서그냥돌아온적이많은데요.”
“베이스캠프텐트로돌아와서는후회를엄청나게하죠.‘죽더라도다치더라도갔어야했는데’하면서땅을칩니다.”
“그게아니라미리준비를더하는거죠.그런상황이발생해돌아오지않게끔말이죠.언제다가올지모르는위험과불확실성을가능한한꼼꼼하게계산하고준비합니다.”
“지금까지세상을많이다닌것만으로도행복합니다.다른사람보다그게내재산이지요.내일죽어도인생의후회는없어요.”
그러면서“사실아직도몇군데더가야할곳이남아있기는한데…”라고덧붙였다.그의답변은처음보다훨씬길어져있었다.나는이세속화된듯한산악인과작별하면서,내가어울렸던순정(純情)의산악인들이왜그를싫어할수밖에없는지를알게됐고,그싫어함이얼마나막연한감정에사로잡힌것인지도알게됐던것이다.
1982년그는마칼루봉원정대원선발테스트에합격했다.남다른체력과폐활량으로정상공격조에뽑혔고정상을밟았다.그가세상에명성을얻은것은이듬해마나슬루봉원정.한국산악인16명을숨지게했던이악명높은봉우리를그가등정해낸것이다.
1987년에는에베레스트의국내최초동계등정에성공했다.이번에베레스트등반은자신의기록에대한20주년기념등반이다.1993년에는티벳방면에서에베레스트정상을올라가네팔쪽으로넘어오는종단등정에도성공했다.1994년에는남극,1995년에는북극도보원정에성공해‘3극점7대륙최고봉도달’의위업을달성했다.
그는요즘어린시절의꿈처럼경비행기로의세계일주탐험에빠져있다.하루두시간씩체력단련을하고여러탐험장비사용법을익히는등직업산악인으로서자신의관리에철저하다.꼼꼼하고내성적이며가정적이다.산에서내려오면말술을마시고노래하는‘낭만파’산악인들의이미지와는거리가멀다.
“등반을통해서나오는소산물들이있으니까.그걸로기업체등에초청강연을다니는거죠.한달에한15번내지20번쯤되지요.그강연료수입으로먹고살고사무실을운영하고세금을내죠.”
山만쳐다보면돈이나오나요?”
“모르겠어요.잘하는지못하는지.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