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세사람은가파른설릉상에2인용젤트를설치하고들어섰다.비좁은공간에서눈을녹여물을끓이는사이바람에텐트는요동을쳤다.날씨는더욱나빠졌다.바람이점점강하게불어대고,눈까지퍼부었다.그런데도유동옥의머리에는정상만맴돌았다.
22일새벽녘에출발하려던계획은악천후에의해점점늦어졌다.분명되돌아서야하는상황이었다.세사람은그선택대신등정길을택했다.그리곤한발한발정상을향했다.주변을제대로살필수없을만큼눈보라가휘몰아치는상황에서파상노르부,유동옥,템바라마순으로한발한발올랐다.동옥은아무생각없었다.그저오를뿐이었다.시간이흐르면서뒤따르던템바도속도가떨어지고,자신도체력이바닥나가는느낌이들었다.
어느순간파상이외치는소리가들려왔다.정상이었다.하지만덤덤했다.눈보라는그어떤감정도허용하지않았다.오후3시반경정상에도착한동옥은69년설악산동계훈련중죽음의계곡에서눈사태로사망한한국산악회10동지와절친한산우(山友)였던고한정현씨의사진을배낭에서꺼내눈속깊이묻은뒤곧바로하산길에들어섰다.
하산길에들어선다음눈보라가더욱거세게몰아치자셰르파들은잠시크레바스안에서쉬자고하더니밤을넘기고하산하자고제의해왔다.동옥은자신이없었다.무엇보다이중화를신은발이점점부어오르는느낌이들었기때문이다.그래서우선젤트를쳐놓은비박지까지라도내려가자고했다.
그런데하산길에서동옥은밴드가풀리면서왼쪽아이젠이벗겨지는황당한상황을만나고말았다.이후그는셰르파두명이위아래서안자일렌상태로확보해주고,피켈로설사면을찍은다음아이젠이벗겨진왼발을옮기는과정을수없이반복하면서엉금엉금기는상태로하산해야했다.크레바스를빠져나올무렵이미칠흑같은어둠이깔리고,눈보라는더욱강하게몰아쳤지만,그래도비박지에도착했을때다행히젤트가이들을반겨주었다.
젤트에들어가자마자깊은잠에빠진세사람이이튿날아침깨어났을때는밤새몰아치던폭풍설은잠잠해지고,언제그런일이있었냐는듯하늘이맑았다.그러나이중화를신으려하는데발이잘들어가지않았다.우겨넣다시피하여이중화를신고내려서다가이번에는황천길로들어서기직전의상황을만났다.
C4가빤히바라보이는설사면에서배낭을벗고,피켈을옆에꽂아놓은채쉬고있는데,폭탄터지는굉음과동시에앉아있던설사면이무너져내렸다.판상눈사태였다.눈에묻히지않으려고안간힘을다했다.손바닥으로눈을내려치는가하면,수영하듯눈을헤쳤다.경사면이죽어들면서눈사태는서서히멈추고,새카맣던주변이바라보였다.설사면에서쉴적에한참아래있던C4가바로옆에있었다.눈가루가기도를막는바람에컥컥대다숨이차분해지고나서야살아있구나하는안도감이들었다.
“눈사태에휩쓸려내려오는데사람이이렇게두번죽는가보다싶더군요.눈가루가입으로들어오자기도가막히고,그다음에는눈에묻혀죽는거죠.책에서보고배운대로눈사태에쓸려내려오면서도묻히지않으려고헤엄치듯했는데도목이막히더군요.평온을되찾은다음에도한동안말을할수없을정도였으니까요.”
폭풍설과눈사태에서벗어났지만고통의시간은계속되었다.C4에앉아쉬고있는사이셰르파들은하산해버리고,이후날씨가나빠지는바람에하룻밤C4에서묶였다.이후C1에서또하루더묵은다음BC로내려섰을때는하산길아이젠이벗겨졌던왼발은엄지검지발가락은까맣게죽어있고,오른발은발가락다섯개모두엉망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마을로내려올때는이중화가맞지않아오버슈즈를신었어요.잠무지했던거죠.응급조치를취할만한의료장비도없었고요.마지막마을에서조랑말타고하룬가이틀을가고,이후광주리에실린채포터의등짐으로내려갔죠.그런데도심각성을깨닫지못했답니다.외국트레커의말을듣고서야긴장이되었으니까요.”
하산트레킹도중만난외국인의사가잘라야할지도모른다고했다.귀국후병원에입원한다음에는버텼다.왼발은다섯개모두,오른발은엄지와검지발가락이새카맣게죽고바람빠진듯형편없이변해버렸는데도혹시하는기대를버릴수가없었다.당시만해도국내에는히말라야등반중동상에걸려치료를받은사람이없었기에뚜렷하게조언해줄만한이도없었다.하지만3주뒤결국절단을권하는친구의말을들어야했다.
▲젊은날의열정을불사른안나푸르나4봉전경.오른쪽설릉을타고정상에올랐다.
백운대남면·적벽크로니길등개척
유동옥씨는천생산쟁이나다름없다.대구태생인그가중학교1학년봄텐트치고놀려고간곳이산이었다.신록에물든산,맑은물이흐르는계곡가에텐트를쳐놓고친구들과노닥거리다보니시간가는줄몰랐다.“군용텐트쳐놓고놀다보니동학사에서시내로들어가는마지막버스를놓쳤어요.그바람에집까지밤새걸어와야했고,이틀간꼬박드러누워지내야했답니다.”
온가족이서울로이사하는바람에고등학교때부터서울에서생활했다.환경이바뀌었는데도산에가는게좋았다.함께갈친구가없을때는혼자북한산이고도봉산을오르내렸다.그러던어느날우이동솔밭부근의버스종점에서고교산악부생활을잠시했던하정문씨를만나게되었다.
“1년선배인데바위에관한한제게사부와같은존재였답니다.우이암을간다기에따라갔죠.만장봉이나도봉동으로잇는도보산행으로생각하고말입니다.그런데우이암밑에가더니휑하니올라가는거예요.줄도없이말이죠.저도뒤쫓아올랐죠.그러더니정상삼각바위밑에도착하더니‘여기는줄없이못올라간다’며내려가자는거예요.올라갈땐몰랐는데내려갈때암담해지더군요.막판에어떻게내려섰는지모를정도로정신이없었답니다.”
이후동옥은툭하면우이암을찾았다.겁없이난도높은길로도들어서고,낙하산줄이라일컫는가느다란슬링에매달려하강하는위험한행동을하기도했다.그러다부모님께이핑계저핑계로돈이모이자남대문시장으로달려가군용자일을구입하곤눈을다른바위로돌리기시작했다.
“학교1년후배이자친구의사촌동생인한정수(하켄클럽·고인)를통해인수봉을알게되고,자누클럽전호걸선배를통해선인봉을알게되었답니다.인수봉엔A나B코스,선인봉에는박쥐길,남측십자로,뜀바위코스가고작이던시절이었죠.그래도어찌나재미있던지토요일에는가방에책대신자일을넣고학교에갔다니까요.교복에단화신고바위를타기도했으니까말이죠.”
재수를거쳐67년대학에입학한이후에도산을향한열정은좀체식어들지않았다.끼리끼리몰려다니다보니한계를느낀유동옥은인사를나누며지내던이들을끌어모았다.이렇게박만익,김성국,박영배,정범진-범채형제등7명이모여69년이른봄발족한모임이크로니산악회다.“크로니(crony)는친구란뜻이에요.산도산이지만좋은사람끼리모인모임이라는성격이더욱강한거죠.인수최장의루트인크로니길도우리가만든거고요.창립기념개척코스인셈이죠.”
아쉽게도유동옥은길을내는데참가하지는못했다.69년가을개척가능성을타진한뒤70년초부터3년간군생활을해야했기때문이다.73년제대후다시불이붙었다.그동안인수봉에등반로가여럿생겨났지만휴일이면만만한루트에클라이머들이몰리다보니마음에드는길을오르려면기다려야할적이많았다.눈을돌렸다.백운대남면이었다.
“세개쯤냈어요.대부분크랙루트지요.사실난이도가문제가되지는않았어요.크랙에박힌돌과흙을긁어내고,잡풀과잡목을뽑아내는일이힘들었지요.아무튼아무도가지않은길을오른다는것은정말매력적이고흥분되는일이랍니다.간혹흩어진회원들의힘을모을수있는좋은계기도되고요.”
크로니산악회는창립직후하루재부근과깔딱고개밑에샘을파놓기도했다.깔딱고개는휴식년제실시이후물길이사라졌고,하루재부근의크로니샘은수질이좋지않다는이유로폐쇄되어버리고말았지만,북한산계곡물이맑던70년대와80년대초반까지는클라이머뿐아니라도보등산인들에게도잘알려져있었다.
“제가끝까지마무리짓지는못했지만그래도적벽개척이가장기억에남는답니다.좋은데있는데,한번가보지않겠냐는후배의말에솔깃해따라갔다가등반한벽이었죠.각이어찌나센지출발지점부터몸이벽에서떨어지더군요.74년부터3년간매년시도했는데,76년하계등반때2피치위의오버행을진입하다접어버렸습니다.
아글쎄크랙을잡고몸을일으켜세우는데크랙안에서새카만눈동자두개가나를빤히바라보지뭐예요.질겁했죠.그바람에잡았던크랙을놓쳤고,그충격으로겹쳐박아놓았던나이프가빠지면서추락하고말았고요.확보보던후배가한번더해보라고권했지만,그만두겠다고말하곤내려와버렸죠.지금도정확히모르겠어요.크랙안에있던게뱀인지뭔지.아무튼그때는정말놀랐답니다.”
그이태뒤인78년유동옥씨가안나푸르나에서돌아와동상치료를위해병상에서지낼때후배들이완성시킨적벽크로니길은기술과장비모든게열악했던당시상황에서는우리등반사를한단계끌어올린루트라는게산악계의평이다.
안나푸르나원정은산친구인고김항원씨(크로니)의권유로이루어졌다.73년알프스샤모니의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에서빙벽등반연수를받고,75년안나푸르나정찰등반을다녀온김항원씨는유동옥씨에게한국산악회입회를권했다.본원정에나서려면한국산악회회원이필수자격이기때문이었다.
김항원씨의말대로한산에가입하고원정대에지원했지만,최종대원에선발된다는것은하늘의별따기나다름없었다.서울지역에서최고로꼽히는클라이머들은물론,전국각지부에서내로라하는클라이머들이모두지원했다.치열한경쟁에서살아남으려면최선을다하는수밖에없었다.주말등반의강도를높이고,평일에는헬스장을찾아힘을키웠다.2년간의고된기간이었다.그래도흰산을떠올리며강도높은훈련을이겨냈다.
“77년1월1275m봉동계등반도했답니다.어쩌면겨울시즌첫등반일지도모르겠네요.김재근(한국산악회실버원정대훈련대원),신승모(미국브리지포트대학교수)와함께셋이서올랐죠.어찌나추웠는지젤트안에서오돌오돌떨며비몽사몽간에지냈고,벽등반을끝낸뒤설악동에내려가서는발가락에동상걸렸다고난리들을쳤답니다.여관방에들어가물을덥혀발을담그고하룻밤을지냈으니까요.정말열심히훈련했던것같아요.”
유동옥씨가훈련중일때는살을에는듯추웠지만마른겨울이었다.그런데하산직후눈이퍼붓기시작했고,쌓이고쌓인눈이77에베레스트훈련대원들을덮치는바람에3명이목숨을잃어야했다.2년간의훈련기간동안등반대상지는안나푸르나1봉에서4봉으로바뀌고,대원수는12명에서절반으로줄어드는등수많은우여곡절이많았지만유동옥씨는끝내원정에참가했고,그로인해평생씻을수없는큰대가를지불해야했던것이다.
“적벽크로니길은제가병원에누워있을때완성되었답니다.후배들이크로니길을마무리하러간다는얘기를들을때마다정말답답했답니다.내가마무리지어야한다는생각으로가득차있던루트였으니까요.그렇다고안나푸르나원정에나선것에대해후회해본적은한번도없어요.후회할거라면아예가지도않았을거고요.”
유동옥씨는걷는데큰어려움이느껴지지않게되자다시산을찾고,바위도탔다.“한동안은다섯발가락모두없는오른발은암벽화안쪽에헝겊을채워넣곤했지만몇년지나절단부위가어느정도아무니까가만히놔두지않더군요.뜨거운모래밭을걸으면좋다며친구들이속초앞바다로데리고가선모래밭에서걷게하고….그리고끝났겠어요,당연히술판으로이어졌지.아무튼한동안절개부위의감각을죽이겠다고홍두깨로후려치기도했지만이태쯤지나자언제그랬냐는듯이통증을느끼지못해요.지금은왼발에맞는암벽화를그냥신어요.한창때처럼앞장서오르지는못해요.대개중간에서바위를타죠.그래서‘중간맨’이라불린답니다(웃음).”
“이제산은삶자체예요”
유동옥씨는사고이듬해부터산에서사랑을키운박향련씨(51·이대문리대산악부OB·데레사여고교사)와80년결혼하고,86년이후부산에서살고있다.교사인아내따라옮기게된제3의고향이지만부산에서도그는산열정은좀체식지않았다.청웅대(靑雄臺)라는산꾼들의모임을만들고,금정산을비롯해부산주변의산을찾고,한두달간격으로크로니산악회산행을위해서울을오가며환갑나이가낼모래인데도식지않는산열정을이어나가고있다.
“부산도산다니기좋아요.특히금정산은걷기도좋고,바위탈데도많아요.부채바위부근에가면전용야영장도있답니다.산행마치고온천장에서목욕한다음한잔하는맛도쏠쏠해요.산도좋지만사람이좋아서계속산에다니는걸거예요.10대중반부터이어온인연을지금까지도이어오고있으니까요.악돌이(본지박영래객원기자)도그때멤버라니까요.”
유동옥씨는“가난하고고민많던젊은시절산은안식처이자분출구였고누구에게도간섭받지않은상태에서젊음을마음껏구가할수있는곳이었는데,지금은몫이더욱커져이제는삶의터전,삶자체”라고말했다.그는“몇해전부터바위하다보면입에서단내가나는게느껴질적이자주있다”며“그래서운동좀해야겠다는생각에인공암벽에도매달리곤했는데얼마전에는팔꿈치인대를다쳐제대로못하고지낸다”고했다.
“세월은어쩔수없나봐요.마음은그렇지않은데몸이따라주지않는걸보면….큰딸은호주유학중이고,둘째딸은대학다니느라집을떠나있어요.부산집에는저와아내둘밖에없는거죠.그래서산친구들에게애착이더욱가는가봐요.올겨울열심히운동해내년봄이나여름엔적벽에가볼까해요.2000년에마음을먹었었는데,마침속초공항에예약해놓은부산행비행기시각때문에시도하지못했답니다.내년엔꼭해봐야죠.크랙안에까만눈동자굴리던놈들이아직있는지도궁금하고요.”
-글/’월간산’[446호]2006.12./한필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