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보고]로체샤르남벽
"엄홍길·모상현·변성호,64일간의등반끝에등정"
▲C4를향해등반중인필자.
사람들이물었다.로체샤르에는왜가냐?14좌에도들지않고유명하지도않은봉우리를왜가냐?로체남벽도아니고,로체샤르는뭐하려고가냐?난대답하지못했다.내겐그들을이해시킬방법이없었다.대답을가져오리라.처음‘엄홍길14+2등반대’로부터로체(8,516m)와로체샤르(8,400m)를남벽으로같이오르자는제의를받고는잘만하면두마리토끼를잡을수있지않을까하는생각도속으로해보았다.
로체남벽BC에도착해거대한벽앞에서보니,미련없이로체샤르만바라보게되었다.로체남벽은나같은수준의등반가가도전할만큼만만한존재는아닌것같아보였다.벽때문이아니라정상능선때문이었다.8,000m이상의높이에서며칠을체류해야저수많은전위봉들을넘어설수있을지내능력으로는가늠조차되지않았다.로체남벽은그렇게내마음속에서멀어져갔다.
원정대의계획은로체와로체샤르사이에있는계곡의오른쪽사면을타고8,000m까지올라가좌측로체,우측로체샤르두봉우리를공략하는것이었다.하지만모든일이계획대로될리없었다.BC에서모든루트가한눈에들어오고,대부분루트가직선에가까운데다가실제보다짧아느껴져몇몇대원들은금방끝낼것처럼들떠있었지만,결과적으로C2를만드는데BC입성후한달이나걸렸다.
3,000m거벽의위용에초반에질려
▲로체정상벽.맨왼쪽이로체가운데중앙봉,오른쪽로체샬이다
끊임없이불어대는모래바람으로BC에서도편안할새가없었고,매일들이치는눈보라는등반을시작조차할수없게만들었다.대부분의히말라야지역이그렇듯정오를전후로눈이내리는데,거대한로체남벽은사면에내린눈을모두계곡으로몰아한꺼번에쏟아내며대원들을당황케했다.게다가등반루트가긴계곡사면을따라가다보니크고작은눈사태는피할길이없었다.그저날씨가좋기를바라며새벽에운행하는방법밖에는없었다.매일매일이정상공격날이고,모든캠프가C4처럼확보가불확실하고비좁은자리였다.
▲설사면을깎아만든캠프에서등반준비중인대원들.
3월29일BC도착6일만인4월4일기존의로체남벽루트에C1(5,900m)을만들었다.오버행바위벽밑이라눈사태는피할수있었지만자리가좁아텐트는한동밖에들어가지못했고,때문에눈이많이내려자리가넓어진4월까지셰르파들은플라이를벽에붙이고그밑에서잠을자야했다.
C1위로는본격적으로새로운루트를만들어가야하는구간이시작되었고,이곳에서한달을소비했다.두벽을등반하겠다고비교적많은대원이원정에참여했지만3,000m벽의위용에이미전의를상실한상태여서승부는일찌감치끝나는것만같았다.
C1설치후26일이나걸려워낙어렵게구축한C2(6,800m)라서이곳만통과하면남은구간은쉽게풀리지않을까예상했지만,C2와C3사이의암벽구간은BC에서는보이지않는많은난제들을숨기고있었다.낙석과스노샤워,불확실한확보물,대부분사선으로만생성되어있는크랙들로인해피켈을걸곳이없었고,아이젠을댈만한곳을찾기난감했다.
▲사다리를타고C1으로향하는엄홍길대장.
로체(왼쪽)와로체샤르가살벌한분위기로솟구쳐있다.나는선등을서다가10여m떨어지면서허벅지와어깨에타박상을입었지만,그렇다고BC로철수했다가는좋은날씨를아깝게날려버릴까봐캠프에서쉬고다음날다시루트작업에매달렸다.또그사이눈사태로설치해놓은고정로프들이쓸려내려가일정구간루트를변경해서다시작업해야만했다.
더이상지체할시간이없다고판단하여C3를설치하고,C4를만들면서정상까지가는계획을세웠다.물론무리한계획이다.한달가까이지내면서겨우캠프2개설치해놓고정상공격을하겠다는건.그러나방법이없다.벌써5월20일이지나고있다.
사흘전신동민대원과배영록대원이깔아놓은로프를이용해변성호대원과둘이서C3자리에올랐다.텐트를설치하려고눈을까보지만,직벽이다보니1m도채파지않아바위가나온다.같이왔던셰르파2명은해지기전에내려가고,둘이남아계속작업해보지만,텐트칠만큼넓은자리가안나온다.결국루트에서옆으로한피치트래버스해작은바위밑을두군데파서따로떨어져비박하기로했다.7,400m의비박지는매트리스한장으로참기어려운한기가올라왔고,침낭위에쌓인눈이어깨를시리게했지만그래도신발이라도벗고누울수있어서다음날등반이가능했다.
그곳에서변성호대원과나는4박5일간루트작업을했다.그사이엄홍길대장과셰르파들이정상공격을하고자C2로올라왔지만C4를설치하지못하고C3에있었기에더이상위로올라오지못했다.많은양의눈과벽을타고넘는구름때문에정상으로가는쿨와르를찾지못하고루트작업은더디기만했다.올라온모든장비를사용했지만C4는멀게만느껴졌다.
엄홍길대장이무전으로물어왔다.
“C3,더버틸수있겠어?”
C3에서만4일째밤이었으니BC를떠나운행한지1주일이되어가고있다.더이상축축한침낭에들어가는것도,젖은양말도언신발도신고싶지도않지만,차마내입으로내려가고싶다는말은못하고상황을담담하게설명했다.“정신적으로는버틸수있다고생각합니다만,만약며칠더작업하고C4를만든다해도우리가정상공격까지하는것은효용가치가떨어질겁니다.다른대원을올리고장비를더보급해주어야할것같습니다.”
“알았다.내일철수하자.”
당장은고맙기그지없는대답이돌아왔지만,날짜는이미5월20일인데,이제내려가면언제또기회가있을까.이러다가등반이끝나버리는건아닐까.BC에도착하니대원들얼굴에서무거운분위기가흐른다.BC분위기도침체된듯하다.장비를정리하고있는데한대원이에베레스트남서벽팀사고소식을전해준다.두명의대원이눈사태로사고를당했다는것이다.남의일같지않았다.내주변의등반력뛰어난산악인들은대부분죽거나혹은다쳐서더이상예전처럼등반할수없거나,그도아니면좋지않은평판만을남기고후배들에게외면당하거나했다-.나는어떤부류일까?
▲설벽중간의작은바위아래설치한C3에서등반준비중인필자.
고봉들이구름을뚫고히말라야의신비스럽게솟아있다.
▲C2.눈처마를깎아내고텐트두동을밀어넣었다.
신동민대원과배영록대원이C3로올라갔고,이틀간작업의결과로C4(8,050m)자리에2인용텐트한동을설치하고내려왔다.다음날,엄홍길대장,변성호,우성호대원과함께제단에향을피우고안전등반을기원하며로체샤르의우뚝선삼각봉우리를쳐다본후빙하지대로발걸음을옮긴다.3일밖에쉬지못한탓인지발걸음은무겁고한국팀의사고소식을접한뒤라나뿐만아니라다른대원들도심리적으로많이위축된듯보인다.
캠프들을지나C4에도착해대원들이사용할3인용텐트를설치하고엄대장,변성호,우성호대원과함께텐트속으로들어갔다.예상했던곳보다낮은곳에C4가설치되었고,루트작업이안되어있기에하루만에정상으로가기에는불가능했다.
“상현아,나좀텐트로데리고가줘”,‘형,미안해요…’"형어차피내일바로정상까지가긴힘들것같으니까내일은제가우성호대원과루트작업을할테니까두분은쉬셨다가모레움직이시죠.”
▲C4를향해등반하는대원.
어차피선등은한명만있으면되니까전력을분산해서움직이기로하고새벽일찍C4를나섰다.C4주변에서부터는예전체코팀루트와겹쳐서몇군데하켄과오래된고정로프가보였다.정상아래쪽설벽을건너서우측으로뻗은쿨와르를따라루트를이어갔다.그사이우성호대원과셰르파들은내려가고나와사다파상둘이서마지막남은로프를모두소비하고보니저녁6시쿨와르가끝나고있었다.
다음날아침,정상공격의날이다.성호형과셰르파2명이새벽2시텐트문을열고나서고,어제작업한구간까지주마링을마쳤다는연락을받고엄홍길대장과함께출발했다.우성호대원은컨디션이안좋아하산시켰다.우리가올라가는사이변성호형은몇동의줄을더깔았고,정상능선아래에설때쯤합류하게되었다.이제더이상줄은남아있지않았다.
때문에두동의줄을걷어서한사람이선등을서면나머지셋이주마링으로따라가는방식으로정상능선에도착했다.이때가12시.정상에서야할시간인데저멀리보이는정상은대여섯시간은더가야할것같다.이미발의동상기는참을수없을정도로악화되었지만,차마내려가야겠다는말이나오지않았다.
“성호형,나발이너무시려도저히안되겠는데?”
“나도시려.”
“….”
더이상말을붙일수없었다.정상능선은서있을수없을정도로거센바람이불어와산소마스크를벗어도서로의대화도알아들을수없다.그사이셰르파웅추가내려가버리고사다파상과엄대장,변대원,나이렇게넷만남게되었다.‘포기만하지않는다면실패는없다.어떻게될지는모르겠지만끝까지한번가보자.’
▲정상능선을향해등반중인필자.
정상능선은왼쪽으로로체남벽정상능선과평행을이루며중앙봉쪽으로향해있는데,내앞에펼쳐진로체샤르능선보다도자꾸왼쪽에펼쳐진로체정상능선으로눈과카메라가향한다.정말생전처음보는기막히고살벌한풍경이다.수많은전위봉들이톱날같이늘어서있고,마지막정상은성벽처럼마른직벽이막아서고있었다.‘봐,역시내수준으로저걸넘긴무리야.’
능선을중심으로양쪽에서불어오는바람에머리를거북이처럼움츠리고원피스모자로눈만빼놓고앞만보고올랐다.한개,두개,세개,네개.몇개의작은봉들을넘고돌아서니원뿔형태의봉우리가하나서있는데그뒤에있는봉들보다높다.정상이다.기쁨도,감동도없다.그저바람이무섭고춥기만하다.엄대장도바람이너무세다보니단하나의깃발도꺼내지못하고몸을움츠리고그사이성호형이비디오를돌렸다.나도카메라를꺼내보지만몇장찍지도못하고도망치듯내려선다.
시계를보니오후6시50분.언제시간이이렇게됐는지도모르고정상에설수도있겠다는즐거움으로시간이가버린것이다.넘어져도피가나야우는어린아이처럼이제와서겁이덜컥났다.불현듯현실로돌아와보니여긴8,400m정상이고,해는지고있으며고정로프가있는곳까지는표고차400m는내려가야했다.산소는각자한통씩만가지고움직였으므로이미바닥났고,성호형은비디오촬영중에설맹에걸려앞을보지못한다.첩첩산중이다.
바람이심해눈보라가일고날이어두워올라갈때박아둔하켄은쉽게눈에띄지않고더이상박을하켄이없어클라이밍다운을하며앞이안보이는성호형과고정로프까지내려왔다.다행히보름달이떠올라길을잃지는않았지만모두지쳐하산은더디기만했다.먼저내려가던나는엄홍길대장이성호형을데리고내려오기힘들것을알면서도내몸하나건사하기힘들다는핑계로뒤도안돌아보고C4를향해발길을옮겼다.
먼저내려간사다파상은어디갔는지보이지도않고,뒤로는따라오는불빛이보이지않았다.순간,어쩌면이벽에나만남아있는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었다.BC에서는계속불러대지만무전기를꺼내보겠다는용기가나지않았다.하강하고있다고생각한어느순간머리를박고졸다가추위에깨면혼자라는사실이두려워고래고래소리를지르고머리를쥐어박으며졸음을쫓았다.‘난살수있다!난살수있다!’
눈앞에신기루처럼텐트가보이자문을열고상체를집어넣고는그대로뻗었다.목도마르고,배낭도벗어야하고,신발도벗어야하는데.
“상현아,상현아.좀나와서도와줘.”
꿈속아득한곳에서성호형이내이름을부르고있었다.
“상현아,상현아,좀나와봐.”
꿈이아니었다.텐트앞에서성호형과대장님의목소리가날부르고있었다.‘형들이살아서내려왔구나.’순간안도의기쁨이밀려왔다.하지만꼼짝할수없었다.간신히들어온이텐트에서다시바람부는저벌판으로나갈힘이없었다.
“상현아,좀나와서텐트로데리고가줘.”
‘형,미안해요….’
수많은등반을같이하며10년간파트너로등반해온성호형이도와달라고날불렀지만내입에선미안하다는말만힘겹게뱉고있었다.모른척하고싶었다.잠에서깬셰르파들과엄대장이가까스로성호형을텐트로데리고들어왔고,그제서야성호형도살았다는안도감에멍한눈으로엄홍길대장에게고맙다는말만되풀이했다.
난아무말도못하고힘든척만하고누워있었다.그것밖에안되는내자신이부끄러워고개를들수없었다.이때가6월1일새벽5시,정상에서C4까지10시간이나걸려하산한것이다.그사이엄홍길대장과성호형은얼마나많은죽을고비를넘겼을까.오전11시바람이잠잠해진틈을이용해엄대장과셰르파들은하산하고아직설맹으로시력이회복되지않은성호형과탈진한나는하루더쉬고2일오전8시하산을시작했다.
성호형은다행히설맹이회복되었으나동상이심해줄을잡기힘들어했고,나는발에동상이심했으나손은그나마나은편이라먼저내려가며하강했다.그와중에도나중에사용할거라고침낭에피켈,산소마스크레귤레이터등C4에있던장비를둘이서나눠배낭에넣었다.배낭이너무무거워힘겨웠지만,얼마짜린데하며쑤셔넣었다.
“살려만주세요.제발살려만주세요”
C4아래쪽에로프가끊어져있어다시정상쪽으로한피치를올라가로프를끊어내려와연결해서하강했다.중간에줄이삭은부분이있었는데,그곳까지잘라서이어붙이면줄이모자랄것같아그냥하강했는데,어느순간내몸이아무확보없이흘러내리고있었다.줄이끊어진것이다.내몸이그냥흘러내리고있었다.‘살려주세요,제발,살려만주세요.’아무소리도못내고아무행동도못하고그냥흘러내렸다.
아직내가해야할일이남아있는지어느순간갑자기기적처럼딱멈추어졌다.정신을차려야한다는생각에주변을둘러보니우측에작은바위가손에잡힐것같았다.그바위를오른손으로잡고발을다져서눈을차고는조심스럽게배낭을벗어옆으로돌렸다.배낭속에있던비싼장비를다버리고피켈을꺼내찍고나니긴숨이쉬어졌다.
다시주위를둘러보니내가매달려있는바위아래쪽에확보지점이보였다.조심스레클라이밍다운해서확보하고위를올려다보니성호형이멍한눈으로날내려다보고있었다.
“너혼자그렇게가버리면난어떻게하라고.”
위에서내가추락하는걸지켜보고있을수밖에없던성호형의잠긴목소리에나도그만눈물이핑돌았다.C3,C2,C1을지나며혹시마실물이있을까텐트를뒤져가며마지막하강을마치니송준교대원과김정배대원이셰르파두명과우리가부탁한뜨거운물과세숫대야,그리고캔맥주를가지고마중나와있다.
해질녘어두워지는벽을올려다보며동상걸린두발은뜨거운물에담그고입으론시원한맥주를마시며생각해본다.죽기는싫어발버둥치면서이런벽등반은왜하는건지…..
/글모상현청암산우회
/사진원정대제공
/’월간산'[453호]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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