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통신]눈과바위로빚은장엄한오케스트라능선
◇마지막설능을올라서면로쉬포트능선으로접어든다.
발아래깔린운해를배경으로등반중인산악인들.
이미배낭꾸리기에는이력이났지만전날싸두었던짐을풀고다시꾸리는것만큼맥빠지는일은없다.가을이한창이던어느아침이었다.함께떠나기로한가이드지망생줄리앙에게서전화가왔다.전날꼴데몽떼에서함께볼더링을하던중손가락을삐었던그는이른아침전화통화에서도저히산행을못하겠다고했다.몇주전부터약속한등반이었지만할수없었다.
알파인등반에서손가락하나아픈정도는별지장이없을만도하건만무리하게그를부추기고싶지는않았다.어쨌든혼자라도떠나기로했다.원래등반계획은이탈리아와프랑스국경에접한암봉당뒤제앙(DentduGeant·4013m)을오른후,로쉬포트(Rochefort·4001m)능선을횡단하여그랑드조라스안부까지가는것이었다.할수없이당뒤제앙은다음기회로미루고로쉬포트에만다녀오기로한다.
짐을최대한줄이기위해안전벨트등암벽장비는배낭에서뺀다.그래도한배낭가득이다.‘바위장벽’이라는말뜻그대로로쉬포트는당뒤제앙에서그랑드조라스까지수킬로미터의긴능선을이루고있다.프랑스와이탈리아의국경선을이루고있는로쉬포트의긴능선은당연히샤모니나꾸르마이어쪽에서그위용이두드러진다.그래서언젠가꼭가보고싶던참이었다.
◇로쉬포트등반을끝내면따로하강하는것이아니라왔던길을되돌아가야한다.
안자일렌을하고한발한발조심해하산중인영국산악인들.
곤돌라에서바라보는몽블랑산군파노라마
곧장에귀뒤미디(Aig.duMidi·3842m)케이블카역으로향했다.이제가을철이라관광객이많이빠져긴줄에서기다릴필요없이곧바로케이블카에올라탄다.플랑데귀(PlandeAig.·2310m)에서갈아탄케이블카는약십여분후에귀뒤미디전망대에이른다.하늘에는잔뜩구름이깔려있다.여기서산행출발지인헬브론너(Helbronner·3462m)로가기위해선발레블랑쉬(ValleeBlanche)설원을걸어서건너갈수도있지만그곳까지가는몽블랑파노라마곤돌라를이용하기로한다.
혼자설원을몇시간동안걷고싶진않기때문이다.좀체이곤돌라를이용치않았지만어쩔수없다.4인용곤돌라에혼자탑승한다.아래에내려다보이는코스믹산장주변의눈밭엔단하나의텐트만이쳐있다.가을시즌에접어들어등반하는산악인이적기때문이다.한창등반시즌인여름철엔수십동의텐트가형형색색으로텐트촌을이루지만이제는한적하다.아니,드넓은설원은황량하기까지하다.수평으로약20분을이동한곤돌라는헬브론너에닿았다.
프랑스와이탈리아국경에접해있는이전망대는에귀뒤미디전망대보다몽블랑을가까이조망할수있다.에귀뒤미디에서는몽블랑의북사면을볼수있는데비해이곳은동면을환히바라볼수있다.전망대엔몇몇관광객들이사진을찍고있다.이내전망대에서빠져나와아이젠을착용한다.제앙빙하상부까지가는게오늘목표이기에시간적인여유가있다.느긋하게걷는다.
에귀뒤미디아래쪽설원엔텐트가한동밖에없었는데,이곳엔서너동의텐트가있다.토리노(Torino·3371m)산장이지척이라평소이곳에텐트를치는경우는드물다.한동안완경사의설사면을걸어내려간다.두명의산악인이제앙빙하상부에서내려오고있다.오르막설사면이시작되는지점에서배낭을벗어놓고그들을기다린다.급할게없는나는그들이지나가는모습을사진에담고싶었다.
등반후지친발걸음탓인지한참후에나도착한그들은젊은남녀두명이다.남자는행색이가이드다.묵묵히헬브론너로오르는그들을보며나도배낭을짊어진다.몇걸음옮기지않아빗방울이떨어진다.곧이어싸락눈으로변한다.텐트를칠지점까진아직도한시간은더가야하기에낭패다.
그래도비가아니라다행이라여기며가팔라지는설사면을오른다.
이윽고제앙빙하상단부,당뒤제앙하단부바위지대언저리의빙하에밀려툭튀어나온작은돌언덕에도착했다.몇년전겨울에산악스키로와본적이있는곳이다.전망이좋아언제한번이곳에텐트를치고싶던참이었다.마침누군가가사용한야영지의흔적이남아있었다.적당히돌을치우고언덕꼭대기에텐트를친다.지도상에표기된높이는3516m지점이다.내리던눈은이제그쳤다.
꼭대기라바람은불었지만전망이좋다.저멀리오른편그레퐁(Grepon·3482m)에서부터에귀플랑(Aig.Plan·3673m),에귀뒤미디,몽블랑뒤따귈(MontBlancduTacul·4248m),몽모디(MontMaudit·4465m),몽블랑,심지어왼편저멀리이탈리아내륙에위치한그랑파라디스(GrandParadis·4061m)까지시야에들어온다.뭉게구름이오락가락하는사이로언뜻햇살이텐트에닿는다.선선했던기온이어느새따뜻해져온다.
느긋하게텐트바닥에누워있으니기분이좋다.이렇게혼자한가한시간을가지는것도오랜만이다.알프스의산골샤모니에와지낸지5년이되었다.하지만시즌,특히여름철에는한국산악인들이심심치않게찾아오기에이렇게혼자산에올기회가없던참이었다.물론동료와함께하는산행의재미도멋지지만혼자만의산행또한즐길만한것임을새삼느낀다.어느덧저녁이되었다.
하늘엔여전히구름이짙게머물러있다.조금있으니산들바람이불어온다.곧바람에흩어진구름사이로멋진장관이시작된다.서쪽에펼쳐진샤모니의침봉들너머로멋진저녁놀이물들고있다.
멋지다.
아름답다.
멀지않은바위사면에서떨어지는낙석소리가신경쓰이게하지만결코위협적이지않다는사실을알고있기에느긋하게저녁풍경을즐긴다.간단히저녁을먹고일찍잠자리에든다.바람이텐트천을살랑살랑흔드는소리를들으며잠들었다.이른아침,맑게갠하늘을보며급히자리에서일어난다.서둘러아침을먹고짐을챙기니7시전이다.
이미세산악인이당뒤제앙아래의바위지대에닿고있다.급히그들뒤를따른다.토리노산장에서출발했다는그들은모두영국인이다.가이드한명이둘을인솔하고있다.안자일렌을한셋의움직임이느릴수밖에.천천히그들앞뒤를오가며몇몇멋진지점에서는그들을기다렸다가사진을찍는다.그들도좋아한다.
낙석이심한바위사면이계속해서이어진다.이윽고두시간후당뒤제앙바위벽밑에이른다.시즌이지나이벽을오르는이들은없다.지난여름에두선배와오르려다날씨가나빠오르지못했는데,이번에줄리앙과또인연이닿지않은것이다.일년후인내년여름에는꼭오르길희망하며당뒤제앙뒤의,동쪽으로이어진로쉬포트의날카로운설능에접어든다.앞선영국산악인셋은커니스로된설능을조심스럽게오르내린다.
그들뒤를바짝따르며열심히사진을찍는다.한데완경사의칼날설능이휘어지는지점에막들어선순간오른발의아이젠이왼쪽바짓가랑이를찢는다.상체가기우뚱하며하마터면넘어질뻔한다.이마에식은땀이맺힌다.아찔한순간후,안도감이몰려온다.능선양쪽은1000m이상되는낭떠러지이다.추락하면끝장이다.사진도좋지만사는게더중요하다는생각에몇몇구간에선아예카메라를집어넣고앞선이들을따라오르내린다.
◇커니스와칼날능선이발달한로쉬포트능선.
가장뒤편의봉우리가해발40001m의로쉬포트정상이다.
로쉬포트정상을남기고여유있는산행만끽
커니스로된날카로운설능중간중간에는몇몇바위구간이나타났다.잡을데가많아그다지어렵지는않지만고도감이상당하다.오른편이탈리아쪽은구름에가려보이지않지만왼편프랑스쪽전망이좋다.메르데빙하(MerdeGlace)가한눈에들어오며저멀리드류나에귀베르뜨,드로와떼쪽산들이한눈에들어온다.한시간이상능선을횡단했을즈음,로쉬포트의전위봉(Antecime·3933m)에이른다.
세영국인들은여기서자리를잡고쉬고있다.여기서로쉬포트정상에가려면하강을한다음,정상부바위구간을올라야한다.배낭을푼그들은아예점심까지먹으며자신들은여기서돌아갈생각이라한다.가만히생각해보니더이상전진할이유가없다.아니가려해도하강용로프가없기에갈수가없다.물론클라이밍다운을하면되겠지만무리하지않기로한다.마침로쉬포트정상에다녀오는두명의산악인이지나간다.
그중가이드인한명이영국인가이드를알아본다.서로아는사이였다.
정상에다녀오는둘은어제그랑드조라스서쪽언저리에위치한깡지오(Canzio·3825m)비박산장에서자고오는길이라한다.이제돌아갈시간이다.오후부터날씨가나빠진다며하산을서두르는영국산악인들뒤를따라당뒤제앙까지긴능선길을되밟는다.이탈리아쪽에서몰려오는구름이심상치않다.
되돌아오는능선길은또다른경치를보여준다.몽블랑과당뒤제앙을배경으로움직이는영국산악인들의모습이멋지다.조심스럽게당뒤제앙까지온나는시간적인여유가있어좀더있기로했다.영국인들은자신들이찍힌사진이궁금해이메일주소를건네며꼭보내달라고한다.그러지않을이유가없다.멋진모델이되어주지않았던가.로쉬포트능선을돌아보니왼편이탈리아쪽에서구름들이몰려오고있다.
가만히보니가파른능선에까만점두개가보인다.그들을기다리며점심을먹는다.구름은이제하늘을뒤덮는다.얼마후도착한두명의산악인은이탈리아사람들이다.프란체스코(Francesco)라는젊은산악가이드와50대중반의남자손님은연신쾌활하다.능선아래,편편한바위에서쉬며이런저런이야기를나눈다.날씨가나빠지고는있지만오늘토리노산장까지만가면된다는그들도여유가있다.
프란체스코또한자신이찍힌사진을원한다며이메일주소를알려준다.흔쾌히약속한다.그는자신들뒤로더이상능선을가로질러올산악인이없다며함께내려가자고한다.그러기로하고그들뒤를따른다.프란체스코는호의를보인답시고로프를함께묶지않겠냐고제의하지만정중히사양했다.당뒤제앙아래의너덜바위지대는오를때보다내릴때더신경이쓰인다.
무턱대고그냥디뎠다간디딘돌들과함께곧장아래로쓸려내려갈판이다.이렇게마구잡이로쌓여있는가파른돌밭사이에난하산로도불투명하다.
이곳에숱하게와봤을산악가이드프란체스코도몇몇구간에선헤맬정도다.
이윽고무사히바위지대에서벗어난우리들은환한웃음으로작별의악수를나눈다.멀어져가는그들을지켜보며텐트에이른다.
누가기다릴턱이없는텐트앞에서헛기침을하며지퍼를연다.
흐트러지게펼쳐놓은바닥을정리하며차를끓여마신다.
못다먹은점심도먹는다.오후3시가넘은시간이라또느긋하게자리를잡고눕는다.어차피샤모니로돌아갈시간은늦었다.헬브론너에서에귀뒤미디로가는곤돌라의막차시간이오후3시이기때문이다.
잠시눈을붙이지만30분도되지않아일어난다.먹구름들사이로햇살이오락가락한다.텐트에누웠다무료해지면카메라를들고주변을서성인다.어느덧시간은저녁7시가되어어둑해질무렵이다.버너를피워저녁을먹는데,싸락눈이텐트를두드린다.제법매섭게내린다.급기야천둥번개마저내리친다.짐을줄인답시고텐트플라이를가져오지않아불안하지만천장에쌓이는눈을가끔털어주니견딜만하다.
무료함을달래기위해지도를펼쳐든다.이제껏가보지않은몽블랑산군의구석구석을뒤진다.한데천둥번개는더욱심해진다.번개의섬광은지도를비춰보고있는랜턴보다밝게텐트속을환히밝힌다.하늘을갈라놓는듯한섬광이번쩍인후곧바로텐트옆에서포탄이터지는것같은천둥소리가천지를뒤흔든다.
급히침낭속에들어가몸을잔뜩웅크린다.제아무리번개가내리치더라도매트리스위침낭속에있으면번개에맞지않을거라위안을삼는다.한편세상어떠한오케스트라도이처럼장엄하고아찔한화음을만들어내지는못할것이라는생각마저든다.‘피할수없으면즐겨라’는말처럼짜릿함을즐긴다.이런저런뒤숭숭한생각들로머리가어지러운가운데,약두시간이지나자그토록기승을부리던악천후가한풀꺾였다.
자정이지나자먹구름사이로보름달이휘영청고개를내민다.산의고요가찾아든다.눈아래보이는설원이달빛에희뿌옇다.다음날아침이밝자맑은하늘이펼쳐졌다.2박3일간묵었던정든자리를털고하산한다.설원을가로지르며헬브론너로오른다.침봉들의그림자사이에나의그림자또한새겨져있다.그림자의침봉들을오르내리는한사람의모습을지켜보며발걸음을옮긴다.
/글·사진/허긍열알프스주재기자/[월간마운틴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