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클라이머의 삶] 왕청식-대식 형제 *-

[이클라이머의삶]왕청식-대식형제

“산안에내가있다는사실이늘행복하다”고형제는말한다.2006년여름왕청식(王靑植·38)과대식(大植·28)형제는미국데날리국립공원의난봉헌터(4,442m)등반에나섰다.이들이도전한북벽은정상을한해에6명이내에한해내줄만큼어렵고까다로운벽이다.원정을떠나면서왕청식은고민이많았다.등반의어려움때문은아니었다.‘산에함께가더라도줄은절대함께묶지말라’는항상해오신어머니의당부때문이었다.그런데다행스럽게도열살터울인동생대식이북벽아래짐을올려놓고스키를타고베이스캠프로돌아오던중스키가눈에꽂히면서무릎이다치는부상을당해등반을할수없게되었다.


▲헌터정상에오른왕청식.

“헌터등반때죽은선배가옆에있는것같아”

이후형청식은후배와둘이서신루트를노리고북벽에두차례나도전했다.낡은덧옷으론물이스며들어늘젖어있는상태에서추위와눈사태,스노샤워를무릅쓴등반이었다.한데등반사흘째수직고1,600m의북벽을1,000m쯤올려친지점에서난공불락의오버행을만났다.실크랙이눈에띄었지만,크랙에끼워넣을장비가없었다.장갑을벗고맨손으로크랙에집어넣고매달려보는등안간힘을다해보았다.한치도오를수없었다.고립이었다.젖은옷은얼어붙어오고바람마저강하게몰아쳤다.

이렇게첫번째도전은22시간이란긴탈출로막을내렸지만,사흘뒤재도전에나섰다.그리고나흘간의벽등반끝에정상에올라섰다.하지만후배홍성현씨가정상을80m남겨놓은설원에서심한동상증세로등반을포기해청식은홀로정상에올랐으나,정상바로아래의크레바스에서하룻밤을보내야했다.모질게불어댄강풍은하산할엄두를못내게했다.베이스캠프에서망원경을통해형의등반모습을지켜보는동생대식은초조했다.왕청식은홍성현씨가손발을잘라야할지도모른다는생각에동생을통해베이스캠프부근의레인저들에게헬기구조를요청하였다.

당시데날리전체를휩쓴강풍은헬기마저도꼼짝못하게묶어놓았다.그래도천우신조였는지오후3시경30분안팎의짧은시간동안바람이잠잠해주었고,그틈을이용해구조에나선헬기를타고무사히베이스캠프로귀환할수있었다.청식과대식에게몇년세월처럼길게느껴졌던닷새였지만베이스캠프에서만났을때씩웃음을그으며“형,고생했어”,“너도수고했다”는인사로모든고민을날려버렸다.

“형은늘날머슴부리듯했어요.”“가끔옛일을되돌아볼때마다동생한테미안할적이있어요.너무괴롭혔다싶고요.확보연습시키겠다며줄을잡게하곤제가10여m아래로뛰어내린적도있어요.그러면등줄기에뱀자국이시커멓게생기곤했으니까요.”“그래도그런과정을거쳤으니까지금의제가있는거아니겠어요?”산은형이먼저다녔다.중학교때육상부생활을한청식은공부에관심이없었다.집안형편도어려웠고본인은말썽꾸러기나다름없었다.고교도말썽부릴것을작정하고들어갔다.이를눈치챈친구아버지가못본체하지않았다.

당시북인천산악회등반대장이었던이건영씨(전인천시연맹회장)는아들과절친한청식의정서를위해산에다니기를권했다.그래서북인천산악회에입회하자마자얼떨결에참가한첫산행이설악산천화대북인길개척등반이었다.북인길A는뭐가뭔지도모르는상태에서참가했으나,한해동안선배들을통해기량을갈고닦은뒤이듬해나선북인길B코스개척때는중추적인역할을해냈다.학교는1년쯤다니다그만두었지만산은미친듯이다녔다.85년에는나흘간인수봉에매달려당시알고있던루트를모두잇는연장등반(1,800m)을,그이듬해에는선인봉연장등반(1,500m)까지해냈다.

"요세미티거벽에도전해보겠다고시도한훈련등반이었죠.말이연장등반이지굶는훈련이라는게맞는표현일거예요.무거운쇠장비에비박장비까지메고사나흘등반하다가땅을밟을때면뱃가죽이등짝에닿을정도였으니까요.그렇게미친듯이산에다닌것은무엇보다산사람들이좋아서였던것같아요."이렇게산에한창미쳐있을때충격적인사고가일어났다.88년2월운악산무지개폭포에서였다.야영을들어간건데그날밤선배한분과저만집으로돌아갔어요.무슨일이있었던것도아니었는데-.이튿날남녀선배두분이추락사했다는소식이왔지뭐예요.

선등자가추락하면서뒤따르던두사람이추락사한거였죠.선등자는살았는데말이에요.늘함께줄을묶어오던사이였으니당연히충격이컸죠.저를달래주겠다는마음에어머니께서영안실에와서조문객들에게국을퍼주는등사흘간애를써주셨을정도였어요.”상상도못했던일이었다.친형친누나같은선배를잃은슬픔도대단할수밖에없었다.더큰것은외로움이었다.사고의충격으로그많던동기들이산악회에서싹빠져나가고,홀로남게되었다.선배들대부분군복무중이었던터라산에가면혼자일적이많았다.

“사고이후인수와선인에서한두달씩혼자지내곤했어요.고민도많았죠.그기간동안혼자서살아가는법과외로움을달래는법을많이배웠던것같아요.가장큰건산속에있는내자신이있다는사실을깨닫게된거였어요.산이제삶에깊숙이들어와있었던거죠.”원정의기회도잡았다.89년가셔브룸원정이었다.거의한해동안원정준비에몰입했다.선배의꿈을이루겠다는마음에더욱열심히훈련에열중했다.하지만출국을한달여남겨놓은시점에서원정은무산되고말았다.원정대신택한군복무30개월은오히려산열정을뜨겁게달아오르게했다.

훈련을마치고배치받은육군정찰부대에서하는훈련이란게산을오르내리는일이었다.제대를한달남겨놓고도부대뒷산의바위에등반루트를내느라바위에서매달려살다시피할만큼그의군생활은산행의연속이었다.그러나제대후한동안산을끊고지내야했다.“제대하자마자산부터올라갔죠.그랬는데이건영선배께서‘너직업잡기전엔산에올생각말아라’하면서내려가라하시지뭐예요.맞는말씀이었죠.고등학교도다니다만놈이산만다니겠다고했으니앞으로세상살아갈일이암담하다싶으셨을거예요.저도곧현실을깨달았죠.”

고교를그만둔이듬해인86년검정고시에합격한청식은제대후인93년전문대학에진학하고졸업하자마자대학에편입했다.그리곤95년부터는직장생활에전념했다.생활이안정되면서산에대한열정이되살아났다.마침북인천산악회에서는백두대간구간종주산행계획을세웠다.그종주대에끼어2년간매월두차례산행을하는사이산릉에서바위를만지면서여러해동안억눌러왔던열정이서서히되살아나던중99년가을선배들의천화대산행에동참,침봉에서서장엄한외설악을바라보는순간용암이분출하듯바위열정이터지고말았다.

“등반은중독이에요.거리를둬야해요”

▲85년첫바위를북인천길개척으로장식한왕청식(오른쪽).


동생대식은초중고시절국가대표감독이그의집에데려다놓고훈련시켰을만큼촉망받는기계체조선수였다.때문에어려서부터강한훈련을받아왔으나어깻죽지인대가끊어지고,발목또는팔이부러지는등부상이거듭되었다.그런상태에서국비보조를받으며인천체고를다니던대식은2학년때전국체전에참가한이후몸상태가더욱악화되는바람에결국학교마저도그만두어야했다.지금도어깻죽지인대가반쯤은끊어져있는상태다.대식이바위를처음맛본것은92년중학교1학년때였다.동생과둘이서인수봉패시길을등반한형청식은상단에접어들어난구간을만나자혹떨어지면동생이잡아내기어려우리라는생각에동생에게‘저기가서줄좀걸어라’했다.

“아그런데이친구가확보지점까지유유히걸어가지뭐예요.난이도가5.10급은되는구간이었는데말이에요.대식인어려서부터바위를참잘했어요.보는사람마다칭찬했으니까요.”“그날이후론바위하다똑바로못하면줄에그냥매달아놓는거예요.꼭밥먹기전그랬답니다.어렸을적사진보면늘인상을쓰고있어요.형이엄청괴롭혔거든요.”대식은친구들과어울려산에가기를좋아했다.혼자서도다녔다.그러다산에가려마음먹고장비를챙길때마다암벽장비가사라지곤하자청식은불안해졌다.결국청식은동생의산행을금지시키고말았다.

그런데다시산을다니라권한것도형청식이었다.기계체조로엉망이던대식은검정고시로고교졸업장을마련한뒤전문대에입학해2000년졸업후곧바로사회생활에열중했다.어깨인대부상으로군대를면제받았던터라대식은같은여건의친구들에비해빨리사회생활을했다.그러나밤늦은시각까지책상머리에앉아지내야하는건축업에몰두하는사이몸은더욱망가져버리고말았다.“2002년한해는아예누워서지냈어요.어깨인대부상은물론목디스크가악화되었던거죠.165cm의키에몸무게가70kg에육박했으니,정말엉망이었답니다.”

청식은동생이살을빼고근육을보강하는데는등산만한게없다싶었다.처음에는걷는것조차힘들어했다.그래도참고걷고,걸을만하다싶어지자뛰었다.한해쯤운동한결과몸무게는8kg가까이빠져60kg으로가벼워졌다.몸에어느정도자신이붙을즈음청소년오지탐사대선발소식이들려왔다.“안된다는거예요.너무약하다면서요.그래서형한테그러면내년이맘때몸이좋아지면허락할거냐물었죠.”대식은2003년봄인천마라톤대회에참가했다.형청식이진행요원으로참가한대회였다.형의만류에도불구하고고집을피워끝내참가했지만,제대로훈련을거치지않은대식이제대로해낼리없었다.

“기다리다걱정돼자전거를타고뒤쫓아갔죠.25km쯤가니까보이더군요.거기서도당연히말렸죠.그런데도억지로뛰지뭐예요.38km쯤갔을까,진행요원들이철수하는모습이보이더군요.거기서달래다안듣자윽박질러겨우마지막패트롤카를태웠답니다.”대식은결국이듬해2004년대산련오지탐사대에참가해멕시코의고산을경험했다.대식은새로운문화에대한욕심에참가를원해왔다.하지만막상만년설덮인올리자바(5,730m)와이스탁시우아틀(5,300m)을오르는사이산에대한열정이뜨겁게달아올랐다.귀국하자마자인공벽등반기술교육에주력하는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에들어갔다.

큰벽을오르려면인공등반기술을배워야겠다는생각에서였다.낯선장비사용에익숙해지고,자유등반에비해안전하다는데확신이서면서더욱재미를붙이게되었다.거벽등반의기회도곧다가왔다.그해겨울천안의실내인공암장에서트레이너로근무하던김형일씨는대식을만나자“트랑고타워에가볼생각있냐?”는뜻밖의제의를해왔다.익스트림라이더강사인김형일씨는15기총무로교육을받던대식을눈여겨봐왔다.대신“정상까지의동행은안되고,원정을배울마음가짐이돼있다면참가하라”는조건이붙었다.등산전문지를통해봐오던김형일,김팔봉,장기헌과같은클라이머들과원정을나갈수있다는데어떤조건이붙든고마운일이었다.

▲헌터정상에서헬기로탈출한뒤베이스캠프에서만난왕청식-대식(오른쪽)형제.

트랑고타워원정을한달앞두고요세미티등반의기회도주어졌다.선배들이히말라야거벽등반에앞서대식에게경험을쌓을기회를주기위해마련한등반이었다.600m높이의오버행암벽인리닝타워(LeaningTower)를등반하고돌아오자마자1주일간서둘러준비하고출국한대식은계획대로주력대원들을돕는데만족했다.“세명이서남벽12피치짜리루트를등반하는데3피치를빼곤모두앞장섰어요.2박3일걸렸죠.그리고트랑고타워를등반해서인지고도에대한공포감이전혀없었어요.고소증세도없이컨디션도좋았고요.정말기뻤던것은역시등정길에동행했던거예요.

전진캠프에짐을올려놓고베이스캠프로내려가려고하는데형일이형이‘가긴어디가냐.함께왔으면정상까지함께가야지’하면서말이에요.”왕대식은,갈비뼈가부러진상태에서도등반을강행한김형일,김팔봉씨와1차등정에나서신루트인크럭스존(TheCruxZone)개척에이어등정에성공했다.“하루하루가너무도즐거웠어요.히말라야에있다는자체만으로무조건즐거웠으니까요.매일눈만뜨면시인이된듯한기분이었어요.무엇보다멋진형들과호흡을맞추면서등반도하고즐길수있다는게기쁨이었나봐요.”

‘이안’이라명명한신루트를개척한헌터북벽등반은북인천산악회창립30주년기념행사였다.산악행사때마다참가하다보니등반이어떤것이라는사실을잘알고있는모친은아들들에게“등반은함께가더라도줄만은함께묶지말아라”고강조해왔다.때문에형이나동생모두헌터등반에나서면서걱정했는데,우연히동생대식씨가다리를다치는바람에줄을묶지않을수있게된것이다.“첫번째등반중탈출할때사용한장비가다무지개빙폭에서유명을달리한최지훈형거예요.

빅버드,허밍버드,캐멀롯2조가모두….어떤상황이든불안하지도않았어요.꼭지훈이형이옆에있는기분이었어요.그래서내내든든했죠.그래서보고서에이렇게썼어요.죽은선배께바친다고요.”(형청식)동생대식을만났을때는미국서귀국한지20일쯤지나서였다.전문대졸업후종합대학에입학,건축을전공중인대식은지난여름헌터원정을끝마치고미국로스앤젤레스에머물렀다.새로운세상을접해보고픈마음에서였다.대식은미국에서지내는동안재미한인산악인들과함께안데스산맥의알파마요를등반하기도했다.

▲알파마요콜캠프로향하는왕대식씨(오른쪽).

“빠른속도로등반하다보니까막판에고소가심하게왔어요.기침을심하게하다보니가슴이너무도아픈거예요.그모습에재미연맹선배께서그만두자고하시더군요.100m쯤남겨놓은지점이었어요.등반하겠다고이나라저나라다니는사이앞날에대한생각을많이했습니다.어떤일이보람되면서도나한테어울릴까하는고민이었죠.원정을꾸리고정상공격까지이어지는원정전체를기획하고매니지먼트하는일을해보고싶어요.감독같은역할이죠.그래서다시미국으로돌아가서경영학을공부해볼까해요.”

대식은“건강을위해산을다니면서산에대해깨닫기시작했고,건강이얼마나중요한가도깨달았다”며,“그렇지만산과조금거리를두고생활하려한다”고말한다.“2003년태백산을오를때였어요.맨뒤에서오르는데내가산을보면서걷고있다는사실을깨달은거예요.어렸을적엔늘앞장서리드하기는했지만땅만보며걸었던거죠.산은제인생에있어서선생님인것같아요.어려서부터무슨고민이있으면산에갔어요.산을한바퀴돌고산밑으로내려서는사이모든것을털어버리고이해할수있게되곤했으니까요.

다짐도많이했죠.제스스로인내심이약하다는생각에한발한발오르면서자신과타협하지말자,자만하지말자며다짐했으니까요.아무튼등반은중독인것같아요.한해한해산만다니면서지내다보면아예못빠져나올것같아요.그래서조금거리를두고지내려해요.”동생대식씨가청소년오지탐사대에참가했을때중국서부탐사에지도위원으로동행,자진자보·다쿠냥·얼쿠냥3개봉을등정하기도했던왕청식씨는2005년7월인천시부평구부평4동에인공암장을차렸다.클라이머들의사랑방같은장소가되었으면하는바람에클라이머산장이라이름지었다.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는동생보다후배예요.동생은15기인데저는17기니까요.일반등산2급심판(2002년),OL3급지도자(2002년),산악2급경기지도자(2005년),2급등산강사(2006년)등산에대해조금이라도더알려고자격증도여러개땄어요.후배들에게도움을주려면우선저부터공부를해야하니까요.인공암장은사랑방같은곳이되어주었으면하는바람에서차렸어요.솔직히말씀드리자면쉽지가않네요.특히제가자리를비워서더그런가봐요.원정한번다녀오면썰렁하다싶을만큼회원이주니까요.”

98년배관공사전문업체인청송엔지니어링을창업하고진은숙씨와결혼,2녀1남를둔왕청식씨의꿈은특별하지않다.그가존경하는선배산악인들처럼흰머리날리면서도등반할수있도록노력하는것이다.“아내는산은몰라요.올해처음인수야영장에데려갔어요.한밤중에술이떨어지자‘야영할때후배가할일이술사오는거야’했더니진짜우이동까지가서술을사오지뭐예요.아이들도잠자다가도산에가자는귓속말을들으면벌떡일어날정도로산을좋아해요.그래서세아이를한주에한명씩데리고다니고,마지막주는혼자간답니다.인천산악연맹에서2008년에베레스트원정을계획하고있어요.가능하다면벽쪽으로올랐으면해요.어쨌든山열정을오래도록유지해흰머리날리면서도등반을할수있다면그게최고일것같아요.”

/글:한필석차장/월간산[447호]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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