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여름파키스탄을향해출정,베이스캠프를구축한다음대원들과함께벽밑에까지짐을옮긴다음부터베이스캠프를지켰다.“루트관측이제임무였죠.새로운선을찾아내기위해몇날며칠을살펴보던중어느날아침해뜰무렵거대한바위에서뭔가반짝이는거예요.미국팀이박아놓은볼트에서반사되는빛이었습니다.정말감격스런순간이었죠.하단부에새로운등반선을찾아내는순간이기도했으니까요.대장이너무움직여선안된다는사실을깨달은등반이었습니다.대원들의등반을관측하면서루트를확인해주고,위쪽에서벌어질위험을미리피하게해주는게대장에게주어진가장큰의무니까요.
실제로길도찾아주었지만엄청난눈사태를예견,사고를막기도했답니다.눈사태가일어나는데마치광목한필을확풀어놓는것같더군요.길을잘못들어서거나위쪽상황이나쁠때마다하도소리를쳤더니14피치등반때도BC에서질러대는소리를들었다고하더군요(웃음).”이렇게해서대원들성(姓)의알파벳앞글자를모은LSCK원정대는트랑고타워하단벽에‘코리아판타지’라는루트를뚫었다.이듬해인98년가을에는최승철과김형진이주축이되어탈레이사가르북벽등반에나섰다.
한국등반대로서는93년첫도전이후일곱번째도전에나서는팀이었다.당시그동안요세미티와트랑고타워에서펼친뛰어난활동으로주목을받았고,기대했던대로최승철·김형진과신상만은최대관건이라는블랙타워를돌파하는데성공했다.그런데마지막정상설원을오르던중추락사하고말았다.“학기중이라동행할수없었던등반이었죠.정말좋은후배들이었는데….”이상조교장은2003년후배들의느낌이라도받을생각에탈레이사가르원정에나섰다.이번에는최승철대신그의아내김점숙(의정부샤모니인공암장대표)과김형진대신형김형일(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강사)이참가했다.
기대를모았던등반이었으나,날씨를비롯한여러여건이허락하지않아뜻을이루지못한채돌아서야했다.그후3년이지난9월9일서울시연맹구조대에의해북벽등반이완성된것이다.이상조씨는후배들을대신해탈레이사가르북벽에새길을내는일은성공하지못했지만,그들의꿈을계속이어오고있다.인공등반기술을전파하는일이다.그는97년최승철·김형진두산우가주축이되어만든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교장직을2003년부터맡아오고있다.
“이기술로못올라갈데가없죠”“형일이가어느날‘형님,익스트림등산학교에교장이없어요’하지뭐예요.그래서내가한번알아볼게했죠.그랬더니‘그냥맡으시면되죠’하더군요.형일이는학교장을얘기했는데,저는교육장으로생각했던거죠.어거지로떠맡은셈이죠.대신선을그었어요.도와주는선에서만하겠다고.제가맡으면적어도후원자는한명이라도구할수있으려니하는생각에서였죠.”그생각이맞아떨어졌다.동문들의도움도많았고,그가졸업한신일고선후배들의도움도많았다.
게다가포리스트시스템과같은등산장비업체의후원도큰힘이돼주었다.2003년탈레이사가르원정뿐아니라도봉산기슭에학교사무실을마련할수있었던것역시포리스트시스템의적극적인후원덕분이었다.“인공등반의매력은기술을제대로익히면못올라갈데가없다는거죠.그것도남들이가지않은선을말입니다.사실인공등반이란게80년대말자유등반붐이일기전엔이미해오던거아닙니까?그게장비가훨씬다양해지고기술도발전한거죠.”그는이제등산학교와인공등반대회가인공등반을전파하는데어느정도역할을해냈다는생각이든다고말한다.
“지난봄18기졸업생까지300명넘게교육시키고,동문들이그들산악회나지역클라이머들에게기술을전파하고있으니인공등반에발을들여놓은사람이제법될겁니다.이번대회를통해보더라도분위기가무르익었고요.봇물이터지기직전분위기처럼느껴지니까요.”그러나인공등반의폐해에대해걱정도많다.가장자연스런선을찾아등반하는게좋은데어거지로루트를내려하다보니아무데나볼트를박는등자연훼손을가져오기때문이다.그래서방치된채석장을교육장소로활용하고있다.
“처음한동안은덕정리채석장을많이이용했죠.그다음발견한유양리채석장같은곳은이제인공등반의메카로인식될정도랍니다.인공등반붐이이는것은자유등반의한계를벗어나려는의식때문일겁니다.지금은시작단계지만곧터질것같습니다.최근까지우리등산학교만인공등반기술을가르쳐왔는데,다른등산학교에서도교과과정으로넣을움직임을보이고있으니까요.”이상조씨는클라이머이전에화가다.신일고시절부터산악부생활을할만큼산에흠뻑빠져지내왔지만,화가의길에몰입하기위해오랜세월제대로산을찾지못했다.
“제가2회인데1회때있다가없어졌어요.그래서저희때는비공식적으로활동해야했죠.선생님들에게들키는날이면큰일날일이었죠.공부외에는생각도못하게하던분위기였으니까요.우이암이첫바위였죠.엉성한장비지만그래도열심히다녔답니다.그렇지만고등학교1학년때이미그림으로진로를정했기에산보다는그림에더욱열중했습니다.대학에가면더열심히산에다닐줄알았는데그게안되더군요.그림에몰입해지내느라다른일을생각할겨를이없었던거죠.”
다시산이그리워진것은시간강사시절인1984년이었다.서른을넘어서자고교시절함께산을다니던친구들이그리워졌다.뒤늦게생긴홍대미대산악부후배들과함께산을다니기시작,홍대출신그림동호인들끼리겨울깊은산악회라는등산모임도만들어백두대간을종주하기도했다.그러다아예산을그림의대상으로삼고말았다.“외국의비엔날레를참관할때마다회의가일었어요.서구의논리와창작세계가선뜻받아들여지지않아고민스러웠던거죠.우리와그들의정서는전혀다르죠.살아온환경이다르니그럴수밖에없는거아니겠어요?그래서내게맞는주제가무엇인가고민하게되었답니다.
그결론이산이었던거죠.무엇보다화가의상상력과클라이머의상상력이딱맞아떨어진다싶었습니다.”그의화법은독특하다.접착제를섞은돌가루를캔버스에덕지덕지바른다음쇠브러시나미장용흙손으로긁어내기도한다.물감을흠뻑바른다음분무기로뿌려상고대분위기를연출하기도한다.그의개인전15회중산을테마로삼은전시회가10회나된다.모두‘산을향하여’란타이틀이다.“저는그림을그린다는생각보다는산을만든다는마음으로작업합니다.돌가루를재료로사용하는것은강한질감을나타내기위해서입니다.
캔버스의공간대부분을산으로꽉채우는것은웅장함을표현하기위해서고요.제그림은한번봐서는답이잘나오지않습니다.그렇지만들머리가보이기시작하면바위도보이고,계곡도보입니다.나무도있고,짐승도있고말입니다.한후배가그러더군요.‘뭐이런그림을줬냐’고.그러다얼마안지나또이렇게말하는거예요.‘형,아침햇살이비칠때보니까정말계곡도있고,바위도있습디다’하고말입니다.그래도산을오래다닌사람들은제그림을비교적빨리이해하더군요.”낮에는전국곳곳의대학을찾아다니며강의하느라바쁘고,밤에는그림작업에열중하느라짬이나지않았다.
1987년이후미대산악부후배들과짬짬이암벽등반도다닌그는91년전임강사로전북대에부임한이후조금여유가생겼다.함께다니면서바위에재미붙인아들에게제대로클라이밍을가르쳐야겠다는생각에집부근정승권등산학교실내암장을찾았다.“산에간다고말만꺼내면아들녀석이따라가겠다고하는바람에함께다니곤했습니다.그런데볼더에만가면끼가나오는거예요.자꾸올라붙으려했으니까요.그래서기왕이면제대로가르쳐야겠다는생각에집근처클라이밍아카데미실내암장을찾았던거죠.아이도좋아했지만,저는더좋더군요.훈련효과가바로바로나타나곤했으니까요.스물살차이나는데도형님,형님하면서지내게된후배들도여럿만나게되었고요.”
▲2003년탈레이사가르에서추모동판부착.
98년가을탈레이사가르에서돌아오지않은최승철,김형진과의인연도거기서비롯됐다.“전도사처럼치열하게등반했던후배들이지요.일반산꾼들과달리무척밝고적극적이었고요.예의도바랐으니까요.그런데산밑에서그렇게말잘듣는친구들이바위에만가면조금도봐주지않는거예요.인수봉정상에올랐다가클라이밍다운도시켰고말이죠.정말아슬아슬한등반을좋아하던후배들이었습니다.얼굴이앳되보이는바람에오해산적도여러번있었답니다.후배들과다니다보면등뒤에서반말하는사람이간간이있었죠.뒤돌아서면미안하다고했지만요.그래도젊은사람들과산에다니는게그렇게좋을수없습니다.저도젊어지는느낌이었으니까요.그런데그러다보니저한테형이라고부르는후배한테제아들이또형이라고부르는묘한관계가형성되기도하더군요(웃음).”
북한산성의실체를그림으로재현하고파
그는52년생용띠다.머리카락은반백에가깝지만얼굴만큼은40대초반으로보일만큼앳된그다.뇌졸중으로쓰러져6년째투병중인아내를돌보며지내는생활이녹록할리없다.“스트레스를잘안받는체질이긴하지만쉽진않네요.그래도산이있어얼마나좋은지모르겠습니다.열심히바위를타고,후배들과산얘기나누는사이모든것을잊을수있으니말입니다.아마산에다니지않았다면모든게힘들기만할겁니다.”그는91년전임강사로전북대에부임,학교곳곳을둘러보던중산악부에들른게인연이되어94년부터전북대산악부지도교수를맡아오고,전북산악연맹부회장으로지역산악발전에도이바지하고있다.
▲청소년오지탐사중국천산천지호수에서스케치중인이상조교수
“실제제대로역할을하지못해학생들이나연맹식구들에게미안한마음을가지고있습니다.익스트림등산학교의봄가을정기반교육에참가하는것만해도시간에쫓긴답니다.화가가다른일에신경을쓰다보면본분을제대로지키기어렵답니다.어려서부터한가지에몰두하면헤어나지못하는스타일이었어요.고교시절선생님들이마음놓고산에다니게했다면아마꽤나이름난산쟁이가되어있지않을까싶습니다.지금도클라이머보다는화가로남고싶습니다.명화는아니더라도적어도내가만족할수있는그림은꼭그리고싶고요.기왕이면산을주제로한작품이면더욱좋을것이고요.특히우리민족에게자주정신의상징이랄수있는북한산성을표현하고싶습니다.북한산의역사와실체를다큐멘터리형으로그리는거죠.”
▲고구려역사자료수집차방문한장군총에서.
그는역사다큐멘터리를그림으로재현하는작업에열중하고있다.
그의꿈은북한산성의역사를그림으로재현하는것이다.오랜숙고끝에성을구축하게된배경에서돌멩이하나하나를쌓던석수장이의심정에이르기까지모든것을그림한장한장으로표현하는게꿈이다.그래도그는천생산꾼일수밖에없다.“그림이그렇듯이등산도사람이하는행위라좋은것같아요.사람들이산에만가면친근한느낌을얻는것은역시오른다는게무상의행위이기때문일거고요.그래서어려운등반을해냈다고우쭐해하는클라이머들을보면마음에들지않아요.무상의행위인데말입니다.
원정갈때도그랬고,등산학교교장을맡을때도내가주역이되겠다는생각을해본적은단한번도없습니다.후배들을도와주는것으로만족했던거죠.그런데요즘은욕심이생겨요.내가직접선을그으면어떨까하는마음이죠.그래서내년쯤파키스탄이나중국에있는5,000m쯤되는산을갈까합니다.내년에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가개교10주년을맞거든요.후배들과함께신나게등반해보는거죠.”
글:한필석기자/월간산[444호]20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