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클라이머의삶]박본현이정옥부부 "좋은열매맺으려면좋은거름줘야"
그클라이머의모습은고교시절뿐아니라군복무를마치고사회생활을할때에도머릿속에서사라지지않았다.경북군위태생인그가90년서울의모전자회사에근무할때였다.휴일에다른직원들처럼술마시는것도마음에와닿지않고,할일없이지내는게너무나무료했다.혹시하는마음에북한산을찾았다.예상했던대로인수봉을오르는클라이머들이눈에띄었다.즉시어린시절부터간직해온꿈을실현하기로마음먹었다.
1,000명에이르는직원가운데는의외로등산을좋아하는사람들이많았고,직장산악회회원도150여명에이르렀다.그중바위를좋아하는사람들을찾아냈다.그리곤10여명이서‘노둣돌’이란암벽등반클럽을만들어북한산일원의바위들을찾아다녔다.하지만바쁜일과는그를산에몰두하게놓아두지않았고,결국1년쯤다니다흐지부지되고말았다.
“노적봉에서였습니다.선배누나가김동칠씨가가르쳐준대로펜듈럼을하다가오도가도못하는상황에처한모습을보곤왜저러나싶어웃고말았죠.그런데,저역시똑같은상황을겪고말았답니다.수십길절벽아래를내려다보니아찔해지면서정말겁이났습니다.얼마뒤에는슬랩에서하강하다카라비나에서자일이빠져나가는황당한상황을겪었답니다.그것도두차례나말이죠.”
그는적당히해서는안되는게암벽등반이라는사실을깨달았다.눈에띄는등반기술서적은몽땅구입했다.그리곤등반기술과장비다루는법에대해열심히공부했다.훈련을제대로하고자연암장을찾아야겠다는생각에실내암장도찾았다.그가문을두드린노량진클라이밍스포츠센터는당시내로라하는클라이머들이많이훈련하는곳이었다.때문에뜨거운열정에사로잡힌클라이머들을통해그의등반열의도더욱달궈지고,기량도급속도로향상됐다.
암장에서인연맺은김동현씨(국제루트세터)의권유로코오롱등산학교암벽반에들어가기초를또다시다지고,그해겨울에는동계반도마쳤다.거의산에사로잡혀지내던시절이었다.설악의바위를마음껏오르고픈마음에설악산구조대에들어가야겠다는마음도먹었을정도였다.
그러던어느날고민이생겼다.직장생활의한계를느낀그는나이들어서도할수있는기술을배우고싶었다.그게목수였다.생활터전도고향가까이대구로옮겼다.그리곤자연스럽게당시유일한인공암장인대구클라이밍센터를찾았다.
박본현씨는서울과달리대구일원에는자연암장이많지않다는사실이안타까웠다.휴일에는차례를기다려야할적이많았다.해결방법을찾았다.그게새로운암장개척이었다.우선연경도약대부터찾았다.이미90년대초반부터극등회를비롯한여러팀들이개척한루트가있었지만,개척여지가많은암장이었다.
이곳에서박본현씨는권종국씨와함께97년봄부터그해추석전날까지반년넘게심혈을기울여40여개를추가했다.박씨는난이도가너무높아찾는이가많지않다는점을고려해초보자들도시도할수있는쉬운루트를개척하는데도주력했다.
상주에서태어나4살때부터대구에서생활한이정옥씨는어린시절부터몸이약했다.때문에건강을위해고교를졸업한90년부터산을찾았다.어느날금정산을찾았을때였다.금정산은부산클라이머들에게메카나다름없는산이지만,그런지식이전혀없던터였다.
그런이정옥씨는대륙암에다가서는순간황홀한광경을목격했다.여성클라이머가멋진자세로바위를오르는모습이었다.그날은그것으로끝났지만,몇해뒤팔공산바윗골에서클라이머들이바위를타는모습을보곤견딜수가없었다.그녀역시등산전문지를뒤졌다.그리곤책에소개된실내인공암장인대구클라이밍센터를찾았다.
당시만해도스포츠클라이밍인구는많지않았다.그렇지만운동하고있으면누군가다가와가르쳐주려니했다.그런데하루가지나고이틀사흘이지나도누구한명관심을보여주지않았다.대부분‘저러다제풀에지쳐그만두겠지’하는표정이었다.오기가발동했다.어떻게오르는게제대로하는것인지도모르는상태에서매달리고또매달렸다.
그렇게석달쯤지날무렵한명한명다가왔다.그녀의끈기를높이샀던것이다.하나하나배울때마다신이났다.기량도부쩍부쩍향상됐다.그런데한창재미가붙기시작할즈음어이없게도사고를당하고말았다.
“루프를돌파하다추락하고말았죠.등으로떨어졌으면큰부상을당하지않았을텐데발이먼저떨어지면서발목이부러지고말았답니다.한동안목발신세를져야했죠.정말답답했답니다.눈만감으면암장이떠오르고홀드가손에잡히는것같았으니까요.그래서깁스를풀자마자암장으로달려갔어요.”
그녀는체격은작지만뛰어난힘과꾸준한노력덕분에한해훈련으로97년과98년대구산악연맹회장배암벽등반대회에서우승을차지했다.그사이틈틈이암장식구들과자연암벽도찾았다.그녀의자일파트너는‘바위를좋아하는사람들’이었다.멤버중한명이이정옥씨였고,또한명이박본현씨였다.
박본현씨는도약대에서길만낸게아니라사랑도얻었다.이정옥씨와사랑이싹튼것은개척등반을하는사이잦은만남덕분이었다.등반에대한열정을서로이해할기회가주어졌고,그렇다면백년해로도가능하다고두사람은생각했다.98년1월결혼식을올린그들은결혼기념으로삼을만한계획을짰다.
“96,97년은개척등반에몰입해지내는등바위에한창빠져지내던시절이었습니다.그런데체계적으로훈련할마땅히장소가없었습니다.결혼한지다섯달쯤지날무렵결심했죠.우리암장을만들자고말이죠.좋아하는선후배들이함께모여훈련도하고꿈에대한얘기를나눌장소도있어야한다는생각도크게작용했습니다.”
당시두사람모두직장생활을할때였다.때문에암장을꾸리려면동료들의도움이절대적이었다.벽에구조물을설치한다음합판을덧대고,칠을하고,거기다홀드를하나하나붙이기까지암장을만드는데에는‘바위를좋아하는사람들’의멤버인권종국씨와황성기씨의도움이컸다.이렇게낮에는동료들의도움을받아야했지만,해가떨어진뒤에는두사람도가만히있을수없었다.때문에퇴근하자마자암장으로달려가새벽한두시까지작업을해야했다.
1998년6월13일암장문을열던날은너무도기뻤다.자신들과후배들이함께어울려등반할수있는공간이있다는게무엇보다기뻤다.이튿날에는유학산둥지바위보고회를갖는등꿈에부푼날들이었다.하지만,한달한달지나면서갈등이점점심해졌다.암장만마련하면그런대로굴러갈줄알았건만매달백만원이상집세와운영비로들어갔다.
“너무서둘렀다싶었죠.이후한3년동안정말남들몰래운날이많았습니다.남편은목수여서육체적으로힘든일이많았고,저는직장에서하루종일모니터를쳐다보며지내다보니목이좋지않은상태였습니다.목디스크가생겼던거죠.한데그렇게어렵게일을해서받는봉급이밑빠진독에물붓기식으로들어가니정말갑갑했답니다.”
그런상황에서도박본현씨는개척등반에대한꿈을계속이어나갔다.암장을오픈한이후에는다부동유학산개척등반에주력했다.역시아내와권종국,황성기,손상원으로이루어진‘바위를사랑하는사람들’멤버들과함께였다.최근까지개척한루트는학바위에48개,둥지바위에28개등총76개에이른다.또한2002년이후의성금성산무지개바위에28개루트를개척하고,‘석기시대’라이름지은바위는지금도개척중이다.
“돈도많이들어갔습니다.선후배들이주머니털어마련한돈이죠.바위밑에올려놓은발전기를도난당하는황당한일도겪었답니다.다양한난이도의루트를내려고애썼습니다.그래야많은사람들이등반을즐길수있을테니까말입니다.산꾼들의갈증을해소함과동시에놀이터를넓힌다는게보람이라면보람입니다.”
박본현씨는새롭게등반에입문한사람들을위해99년부터파워클라이밍학교를운영하면서2000년이후매년한차례씩등반대회도열고있다.첫대회는당시열린아시안게임에출전하지못한클라이머들의사기를올리고자하는마음에서마련한축제성격의작은행사였다.그런데뜻밖에국내최고클라이머들이거의다출전,지금은산악인들사이에서전국대회로인정받고있다.
“7회째를맞는파워게임은선수와관중이혼연일체가되는축제같은행사입니다.올해는실내대회에서벗어나실외에서대회를열고싶어요.”
그는실내암장훈련이큰등반을위해서는꼭필요하다고생각하면서또한등반이어느한쪽에치우쳐서는안된다고생각하고있다.그런주관때문에그는암벽등반에입문하자마자겨울철이면빙벽도열심히찾고있고,그의성향덕분에암장식구가운데절반이상이겨울이면빙벽등반을즐긴다.
박본현씨는2002년한옥바닥공사중치명적인부상을당해연골제거수술을받은뒤한동안등반을못했다.몇년동안재활운동을하면서많이좋아지기는했지만,지금도무리한등반은피하고있다.대신파워클라이밍학교암벽반과빙벽반교육에열중하고,각종암빙벽등반대회에서심판으로활동하고있다.
“심판이건루트세터건간혹경기에나가야한다고생각합니다.그래야루트감각을유지하고,선수들의심리도이해할수있으니까요.아무튼이틀간치르는대회하나를세팅하려면사나흘이걸립니다.선수들은오전9시부터경기를펼쳐오후서너시면끝나지만,루트세터들은새벽부터벽에매달려홀드를붙이고,또경기가끝난다음에는다음날대회를준비하느라밤늦도록벽에매달려있어야합니다.
아내이정옥씨도남편과마찬가지로건강운이좋은편은아니다.96년7월에는등반에막열정이오르려고하는데발목골절상을당했고,2001년1월에는설악산100m폭에서빙벽등반중낙빙에맞아어깨뼈에금이가는부상을당했다.같은해에는재발한목디스크로3주간드러누워꼼짝못하고지내야했고,결국그로인해10년가까이다니던직장도그만두었다.그렇지만등반을못하는틈을이용해심판2급자격을따내는등등반열정을계속가꿔나가고있다.
지금도수시로물리치료를받고있는그녀는특히겨울철에는근육에무리가많이가는스포츠클라이밍은삼가고있다.대신빙벽에몰두,2004년에는청송빙벽대회에서2위,2005년에는선수권대회에서3위에올랐다.그덕분에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에발탁되기도했다.
박본현씨가개척등반과고전등반을추구하는편이라면,아내이정옥씨는고난도하드프리를즐긴다.이런성향때문에뜻밖에같이줄을묶은적은거의없다고한다.하지만이는등반성향보다는같이줄을묶고등반하다보면서로마음을졸이느라등반하기어렵기때문이아닌가싶다.
암장에서얘기를나누다늦은점심을먹기위해5분쯤떨어진식당OK목장으로자리를옮겼다.2004년봄에베레스트정상에올라섰다하산길에탈진사한후배박무택씨를구하기위해올랐다실종된백준호씨가운영하던식당이었다.
“참좋은사람이었습니다.운동도참열심히했죠.로체등반중입은동상으로손가락한마디를잘라내고도상처가아물자마자암장을찾아왔을정도니까요.”
박본현씨는스포츠클라이머뿐아니라정통파산악인들과도교분이많다.그역시알파인등반을추구하기때문이다.그런데그는2월중순좋아하던술을끊었다.후배신윤선씨와의약속때문이다.오는11월열릴대산련선수권대회에서신윤선씨가좋은성적을올리게하기위해박씨가함께술을끊은것이다.
“약속을어길때마다어긴사람이자일한동씩사주기로했습니다.후배들이멋지게꽃을피우고,좋은열매를맺게하려면저도참을때참아야겠죠.”
파워클라이밍센터에는초중등학생도많이온다.하지만이정옥씨는혹독한훈련이성장과학업에방해가될까싶어너무깊이빠지지않게하거나아니면아예더큰다음에오라며돌려보낸다고한다.이씨는“아이들에게클라이밍의미래가밝다는말을할수있는날이오기를기다리고있다”고했다.
부부에게는꿈이많다.박본현씨는언젠가는거벽에도전해보겠다는꿈을가지고있고,이정옥씨는5.14급이꿈이다.또한대구파워클라이밍센터가지금의하나에머물지않고두세곳더생겨대구경북산악계에밑거름이되었으면하는바람도가지고있다.그러나역시가장큰바람은후배들이잘되는것이다.
“중학교때부터꿈꿔왔던클라이밍인데제꿈이왜없겠습니까.워킹할때히말라야트레킹이꿈이었듯이등반에몰입한이후에는큰산도가고싶고,거대한벽에도붙어보고싶습니다.하지만그에앞서후배들의앞날을위해보탬이되는선배가되었으면합니다.파워클라이밍센터를만들때생각이그랬듯이저희부부는후배들이좋은열매를맺을수있도록좋은거름이되었으면하는게바람입니다.”
글=한필석기자/월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