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에서 온 편지] 트렐레조 계곡 [1] *-

[알프스에서온편지]트렐레조계곡

‘나는낭가파르밧을당신의말대로공평한수단으로올랐다’
헤르만불이머메리에게헌사한<8000미터위와아래>

헤르만불(HermannBuhl·1924-1958)을생각하면으레떠오르는사진이있다.하룻밤사이에젊은청년에서늙은노인으로변한그의모습은,특히한창산의세계에빠져든필자에게는충격이었다.히말라야8,000m봉우리를초등하고서그것도단독으로올라극한의지대에서하룻밤비박하며혹독한시련을이겨낸인간의모습이과연저럴까싶었던것이다.

▲헤르만불의<8000미터위와아래>

8,000m고지의천길낭떠러지위에서확보도없이꼿꼿이선채극한의비박을이겨낸후,입술이부르트고이마엔수많은주름살에70세노인의모습보다더했던그의표정은어쩌면그하룻밤사이에알피니즘이란화두를완전히깨친위대한알피니스트의바로그모습이아닐까싶은생각도해본다.하여튼그는20세기,아니전알피니즘사를통틀어영향력있는산악인에속하는인물임은분명하다.

▲계곡상단으로오르자7월말인데도잔설이꽤나남아있었다.

7월말에접어들자한국에서알프스를찾는산악인들이줄을이었다.이곳서처음만나는이들이나이미알고지내던이들모두반가운분들뿐이다.이들과어울려나누는산이야기는어느것하나즐겁지않은게없다.당연히혼자만의시간이줄게되어,심지어지인들과며칠그린델발트지역으로떠난산행에바로헤르만불의<8000미터위와아래>를가져갔지만,단한페이지도넘겨보지못했다.이래선안되겠다싶어샤모니로돌아온다음날배낭을꾸렸다.혼자만의호젓한산행을하며헤르만불을만나보기로.

아침을먹고느지막이샤모니를떠난다.프랑스와스위스의국경으로향하는몽블랑익스프레스산간열차는곧장샤모니를벗어나계곡위로향했다.곧이어레프라(LesPraz)마을을지난다.20대중반의헤르만불이맨처음샤모니에왔을때머문마을이다.당시엔그를초청한프랑스국립등산스키학교(ENSA)가이마을에위치해있었다.몽테안부의터널을지난열차는르뷔에(LeBuet·1,303m)에도착한다.아담한산촌분위기가느껴지는이곳에서부터산행이시작된다.샤모니쪽과는다르게돌로지은샬레들을지나전나무숲으로들어간다.

코르보고개넘어스위스땅으로

이마에땀이맺힐즈음,전나무숲에서벗어나베라르(Berard)계곡초입에이른다.수십미터높이의폭포로떨어지는세찬물줄기가시원하다.계속해서계곡을따라오른다.마치설악산의어느계곡처럼맑은물이흐르는계곡건너편에한여름의더위를식히는가족들이옹기종기모여있다.필자앞을걷는일가족다섯은이제막영글기시작한밀티유라는작고까만알파인열매를따먹으며걷고있다.밀티유의새콤달콤한맛에침이솟지만갈길이멀다.

▲샤모니쪽과는다르게돌로아름답게지은르뷔에마을을지나오른편계곡으로오른다.
약30분만에계곡을건너는다리에닿는다.초등학생열댓명이인솔교사와함께나무그늘에서점심을먹고있다.필자또한배낭을내려놓고먹을것을뒤진다.전날볼더링을하다다친이빨이며혀때문에연한빵을먹는필자에게는질기고단단한바게트를맛있게물어뜯는그들이부럽다.계곡을건너한동안아래로이어지던오솔길은방향을급회전하여숲길로들어간다.곧이어나타난숲속의오두막베란다에서할아버지한분이흔들의자에누워땅콩같은것을열심히주워먹고있다.인간배짱이가아닐까싶은생각에웃음이절로나온다.

▲[좌]스위스의에모송에서출발해국경을넘어르뷔에로내려가고있는트레커들.[우]빙하에씻긴매끄러운바위사면위를오르고있다.

숲을벗어난양지바른풀밭에선노부부가점심을준비하며인사말을건넨다.모두여유로운노년의모습들이다.아마헤르만불이생존해있다면저분들또래가아닐까.이제부터본격적인오르막이시작된다.차츰낮아지는나무사이로난좁은길을거슬러오른다.고도가높지않은한낮이라덥다.30분쯤오르자급경사바위사면이나타난다.오른편에쇠사슬이설치되어있다.조심해서오르다그만오른쪽팔꿈치를찧고만다.이를악물며바로이100m높이의바위구간을올라한숨을내쉰다.

이어나타난야생화밭에는먼저오른트레커셋이쉬고있다.나이든아버지와큰딸,그리고아들은즐겁게환담을나누고있다.필자또한배낭을내려놓고물한모금마신다.그들보다먼저출발한필자는깊어지는계곡의오른쪽사면을오르내리며걷는다.트레커둘이내려오며필자를반긴다.그들은이른아침에스위스의에모송(Emosson)댐을출발해국경인코르보고개(ColdesCorbeaux·2,602m)를넘어내려온다고한다.좀더오르니길이평탄해지고야생화가지천으로피어있다.뒤따르는일가족셋을기다려카메라에담는다.이제부터그들뒤를따르며오른다.차츰고도를높이고계곡깊숙이들어가자7월말인데도잔설이꽤나남아있다.

▲프랑스와스위스국경인코르보고개정상.
또다시급사면이이어져한동안땀흘리며오른다.이윽고일명‘물의계곡’인트렐레조계곡(ValdeTrelesEaux)상단부다.큰바위언덕의표면이빙하에씻겨매끈매끈하다.전망좋은작은언덕하나를골라바위위에자리를잡는다.약5시간소요되었다.이제껏함께오른일가족셋이코르보고개로오르는모습을보며텐트를친다.곧정적이감돈다.오랜만에맛보는호젓함이좋다.이제부터<8000미터위와아래>를펼쳐들시간이다.

-/허긍열한국산악회대구지부회원/월간산[455호]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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