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 통신] ‘알피니스트의 에덴동산 ‘*-

[알프스통신]

-달빛벗삼아오른’알피니스트의에덴동산’-

◇쿠베르클산장은바위아래에둥지를틀고있다.이곳에서메르데빙하를

건너면몽탕베르역에닿는다.

지구온난화의영향인지이번겨울은춥지않다.하지만1월말한차례닥친한파로유럽에서48명이나동사할정도로자연의힘은크다.바로이한파가지나간다음,여전히매서운추위가남아있지만아르장티에(Argentiere)빙하의주요한북벽하나를오르기로했다.방학을맞아이곳에온민경원씨의귀국일정에맞춰더는등반을미룰수없었기때문이다.

2박3일일정으로단단히등반짐을꾸려샤모니를떠났다.약20분후,버스는아르장티에마을의그랑몽테(GrandsMontets·3295m)케이블카역에멈췄다.며칠전에내린신설을즐기기위해많은스키어들이몰려있었다.줄을서케이블카를타고중간역인로냥(Lognan·1930m)에이른다.여기서케이블카를갈아타고그랑몽테로올라야하는데,한시간이상지루하게기다린끝에야차례가돌아온다.

곧도착한3200m고지의그랑몽테전망대는몹시춥다.강한바람에날리는가루눈은사정없이얼굴을맹타해그랑몽테콜(Col)을내려서기가힘겹다.급사면을약200m내려선후,설피를신었지만눈이발목까지빠진다.몇몇가파른사면을걸어내릴때는깊은눈이편하다.한시간이상걸어아르장티에빙하에내려선다.

케이블카중간역인로냥에서오려면두시간은더걸리는거리다.이제부터완만한빙하를따라오르면아르장티에산장(Refuged’Argentiere·2772m)이다.

드넓게펼쳐진아르장티에빙하는언제보아도너른품으로맞아주는듯하다.‘알피니스트들의에덴동산’이란말답게수많은등반대상지들이도열해있다.그중간에우리가오를레쿠르테(LesCourtes·3856m)북벽이그위용을자랑하고있다.

1961년초등된표고차800여m의레쿠르테북벽

쿠르테를보며한동안빙하를따라오른후,왼편으로발길을돌린다.에귀아르장티에언저리에위치한산장에닿기위해서다.너덜지대의급사면을올라3시간만에산장에이른다.여름철성수기에는150명이상묵을수있는이큰산장에는겨울추위에더욱썰렁하게아무도없었다.땀에젖은옷을말리며차를끓여마시는데,남녀두명의독일산악인이문을열고들어온다.

전날산장에왔다는그들은빙하상단부의몽돌랑(MtDolent·3823m)쪽으로빙벽등반을하러갔지만눈이너무깊어접근하는데애만먹고돌아왔다고한다.은근히우리또한심설에고생하지는않을까걱정이다.준비해간빵에차만끓여마시고일찍침상으로향했다.짐을줄인다고우모복도가져가지않았기에담요를다섯장이나덮는다.새벽2시에는일어나야한다는생각으로저녁8시에누웠지만잠이오지않는다.

그래도잔뜩몸을웅크리고누워있으니주방탁자에춥게앉아있는것보다낫다.이런저런생각에설핏잠이들려는순간,우모복까지입고바로옆에누운민경원씨가부스스일어난다.곧있을등반에대한긴장감으로잠이오지않는다고한다.그게아니라초저녁에누웠으니어찌잠이오겠냐며그에게한마디쏘아붙인나또한애써초조함을감춘다.10여차례나알프스를찾은그가이제껏오른어떠한벽보다큰벽을,그것도겨울에오를예정이기에잔뜩신경이쓰이는것은당연하리라.

이리저리몸을뒤척이는소리를들으며얼핏든잠에서깨시계를확인한다.그래도시간은잘도가자정이지났다.또다시눈을뜨니새벽1시,이윽고2시반이다.뒤늦게잠이들어코까지골고있는민경원씨를불러깨운다.추운겨울의이른새벽에따뜻하게데워진잠자리를박차고일어나려니힘겨울수밖에.그러나곧있을등반을생각하며우리는힘차게담요를걷어차고일어난다.

눈을녹여차를끓이며장비를챙긴다.이른새벽에먹는아침이라입맛이없다.하루내내행할등반을위해억지로라도삼킨다.새벽4시가덜되어드디어떠날채비가되었다.헤드램프를밝히며산장을나선다.어두운밤하늘에는별들이초롱초롱하다.

동계등반을위해충분히옷을입었기에추위는견딜만하다.급경사모레인지대를내려와설피를신는다.레쿠르테북벽을향해천천히빙하를거슬러오른다.이드넓은빙하에우리둘뿐이라는사실이좋다.칠흑같은어둠에휩싸인이런적막감이좋을따름이다.급할게없다는생각에알맞게쉼호흡을하며걷는다.

한시간후부터는설사면이급해진다.설피의뒤꿈치를높인다.설피가없다면접근하는데꽤나고생할텐데줄리앙이라는친구에게서잘빌려왔다싶다.평소사용하던게있지만이북벽등반을위해보다가벼운것을빌려왔던셈이다.바로이때헤드램프가말썽이다.흐릿해지더니아예먹통이되어버린다.앞으로날이밝으려면적어도한시간은지나야될텐데낭패다.민경원씨의최신헤드램프에의지해아무리고쳐보려해도되지않는다.

앞으로한시간후면날이밝을것이고초저녁에는상현달이있으니괜찮을것이라며램프를어둠속으로던져버린다.한10년사용했던거라아쉬웠지만그만큼등반짐이가벼워져후련하다.북벽에접근할수록설사면의경사가급해진다.그럴수록눈이깊지않아좋다.곧더이상설피를신고오를수없을정도의사면이다.아이젠으로갈아신고오르니한결수월하다.민경원씨가뒤에서비춰주는불빛으로몇몇크레바스를우회하며오른다.

이윽고본격적인등반이시작되는지점에닿았다.작은베르그슈룬트가앞길을막고있다.적당히설사면을다져배낭을내려놓는다.산장에서이곳까지2시간반소요되었다.등반장비를챙기며따뜻한차를마신다.등반을위해우리는물통을두개씩챙겼는데,이무게만도무겁게느껴진다.

이제시간은아침7시가넘어서고있다.희미한회색으로날이밝아온다.이제불빛이없어도될정도라곧장등반을시작한다.조심스럽게베르그슈룬트를타넘는다.30m즈음올라후등자확보를본다.이후크러스트가잘된설사면이이어져우리는중간확보하나없이4~50m정도간격을두고함께오른다.누구하나추락하면끝장이지만800m높이의북벽하단부이기에그다지위험을인식하지못한다.

이렇게서너피치오르니가파른강빙구간이나타났다.청빙에아이스하켄을하나박고계속해서오른다.하지만그다음피치에서는도저히불안해후등자가도착하길기다린다.고드름이아닌결코어렵지않은직벽구간이지만확보없이선후등자가함께오를엄두가나지않았다.자일을나눠묶은상대에대한믿음이부족했던탓일까.곧이어도착한민경원씨의확보를받으며오른이후부터또다시우리는함께오른다.

이렇게해야등반시간을절약할수있다.이미해는꽤나떠오르고있지만북벽에는전혀닿지않고있다.얼음이얇아피켈의피크가튕겨나오는믹스구간들이이어진다음,긴설사면이펼쳐진다.도중에데드맨이나스노바등으로중간확보를하며계속해서오른다.시간을보니이제정오가지나고있다.아직반도오르지못한상태다.차츰북벽의중앙으로접근하자1961년8월에초등된이오스트리아루트를우리가제대로오르고있는지확신이서지않는다.가이드책자에서본기억을최대한되살려보지만자신이없다.할수없이가장쉬워보이는곳으로오른다.

◇레쿠르테북벽으로접근하기위해서는아르장티에산장이기점이된다.산장은샤르도네와에귀아르장티에를바라보며빙하를건너게된다.

북벽을반이상오르자찬바람이어깨를움츠리게한다.여름이면이북벽에그래도햇살이닿을텐데라며벌써부터따뜻함을그리워한다.차츰상단으로진입할수록얼음이단단해진다.설상가상으로왼발아이젠이말썽이다.이등반을위해오랫동안사용한설벽용아이젠을신었더니청빙을얼마오르지않아앞쪽이이중화앞축에서빗나가있다.불안한생각에아이스하켄을설치해매달려아이젠을다시착용해보지만마찬가지다.

가파른빙사면에서아이젠을신느라온몸의힘만빼낙심이다.삐뚤어져얼음에튕겨나는왼발을조심스럽게디디며오른다.당연히후등자의확보를받으며오른다.정상부에가까워지자고도감이안전의식을높여서로조심하자며다짐한다.오후4시가넘어서도아직정상은멀다.열심히뒤따르고있는민경원씨는정상이멀었는지묻지만이런알파인벽에선생각보다정상이멀기에느긋하게그저열심히오르기나해야한다며파이팅을외친다.

등반내내먹은거라곤몇모금의물밖에없다.춥고시간적인여유도없어수통의물또한제대로마시지못했다.도중에쉬고싶지만해가기울고있기에정상에도착할때까지쉴순없다.오후5시가넘자뒤편의샤르도네(Chardonnet·3824m)나아르장티에(Argentiere·3902m)침봉들에저녁놀이물들기시작한다.시간이없다.해가지기전에정상에도착해야만한다.정상부사면은단단한얼음이라인내의한계를요하고있다.

바짝긴장한채프런트포인팅에여념이없다.아이스하켄하나에60m로프를통과시키고함께오른다.끝나지않을것같던정상부빙사면이드디어끝났다.정상이다.저멀리서쪽에위치한몽블랑우측으로태양이떨어지고있다.정상부설사면아래의암각에자일을휘감아후등자확보를보며주변풍광을카메라에담는다.좀더일찍올라왔으면하는아쉬움이들지만이렇게무사히정상에도달한것만으로위안을삼는다.

좀늦은석양을배경으로민경원씨가정상에이른다.힘들어하는기색이역력하지만피켈을번쩍든그의모습에동계북벽을오른기쁨이엿보인다.세찬바람만이우리를반겨주지만다행히하늘이맑다.이제하산이문제다.한겨울에정상부위의눈밭에서비박을할수는없다.콜델라뚜르데쿠르테(ColdelaTourdesCourtes·3720m)까지이어지는칼날설능을어떻게내려가느냐가관건이다.차갑게식어버린물로목만축인채하산을서두른다.

아무도밟지않은커니스구간을조심스럽게오르내린다.이미어둠이우리를감싼상황,다행이떠오른반달이헤드램프없는나를안심시킨다.도중에가파른빙벽구간이우리를가로막았다.조심스럽게민경원씨를먼저내려보내고그에게도착해보니또다른강빙구간이아래에위협적으로펼쳐져있다.아이스하켄을설치하고그를먼저하산시킨다.그가천천히내려가고있는긴긴시간동안갈등이인다.

이아이스하켄을회수하고클라이밍다운을하느냐,아니면이춥고어두운상황에서혹슬립이라도하면북벽아래로직행한다는불안감에그냥이정도의장비는버려야마땅하지않느냐고.결국미련없이버리자는쪽으로마음을굳히고곧바로아이스하켄에줄을걸고하강한다.이윽고사면은충분히걸어내릴정도가되어얼마후콜에이른다.이후줄곧45도정도의설사면이쿠르테빙하까지이어진다.

앞서내려가는민경원씨를확보보며뒤따른다.콜아래쪽사면에서는다행히바람이없어추위가덜하다.또한차츰어둠이짙어지자반달이충분히주위를밝힌다.빙하로내려서는설사면은끝이없을듯펼쳐져있다.종종주저앉는민경원씨는잠깐의휴식으로힘을내움직이길반복한다.

꿀르와르하단부의베르그슈룬트상단에서하강지점을찾으며한시간정도시간을허비한후,훨씬우측으로돌아마침내빙하로이어지는완사면에닿았다.안심이다.이제우리를위협할것은없어보인다.천천히심설의완사면을걸어내린후,설피로바꿔신을지점에서우리는배낭을내려놓고타는목을축이기위해버너로눈을녹여마신다.따뜻한차를마시니힘이솟는다.이미시간은자정을넘겼다.정상에서쿠르테빙하의안전지대까지여섯시간이나걸린셈이다.

◇1961년8월초등된레쿠르테북벽은몇몇구간을제외하고크게난이도높지는않다.

2박3일간만끽한동계알파인등반이제쿠베르클산장(RefugeduCouvercle·2687m)만찾아가면된다.이제부터탈레프(Talefre)빙하를걸어내린다.상현달이고요히빙하위를밝히고있다.몸은힘들지만달빛에드러난풍광이기쁨을안겨준다.한참을걸어내려산장이위치한언덕아래에닿았다.이제이오르막하나만오르면편안히휴식할수있는곳이다.

마지막힘을다해오른다.가파른구간에선설피가미끄러져넘어진다.무릎을이용하면서까지필사적으로기어오른다.드디어쿠베르클산장이다.산악인들을위해비수기에개방해두는윈터룸이큰바위아래에자리잡고있다.시계를보니새벽3시다.아르장티에산장에서약하루만에북벽을넘어이산장에도착한셈이다.산장은텅비어있었다.급히눈을녹여차나스프를마시지만등반식으로준비해간빵은먹히지않는다.민경원씨는녹차만넘길정도다.

곧바로침상으로가담요를다섯장이나덮고눕는다.하지만한시간도되지않아목이말라일어난다.따뜻한스프를끓여마시고다시눕는다.또다시한시간도되지않아고픈배를채우기위해차갑게언빵을몇조각넘긴다.옆에누운민경원씨는꼼짝도않고있다.이렇게몇번이나침상과주방을오가니날이밝아왔다.북벽을오르내리느라몸의열량을모두소모한탓인지담요속에서몇시간이지나도땀에젖은속옷이나양말이마르지않는다.할수없이나무를찾아난로에불을지핀다.

연기만자욱하게피어나지만그래도우리는발바닥을맞대며양말을말린다.아침9시가넘자햇살이창문으로쏟아져들어온다.대충아침을챙겨먹고산장을나선다.지난밤에오른언덕길을따라내린후,가파른꿀르와르를따라레쇼(Leschaux)빙하에내려선다.며칠만이긴하지만인간의흔적을만나니반갑다.누군가지나간설피자국을따라메르데빙하(MerdeGlace)로내려선다.

몽탕베르(Montenvers)언덕이한참아래에보이는지점이다.3명의산악인이다가오고있었다.그들은우리의등반차림을보자발걸음을멈췄다.재작년에낭가파르바트루팔벽을알파인스타일로오른스티브하우스일행이다.매력적인얼굴의스티브는자신들의그랑드조라스북벽등반을위해몇가지등반조건을묻는다.그들의성공을바라며우리는계속해서빙하를거슬러내린다.땀에전발바닥이쓰려온다.이윽고몽탕베르산악열차역이다.

마침누군가가어깨를두르려돌아보니지난가을에로쉬포트능선에서만났던이태리산악가이드프란세스코이다.자신에게보내준사진에대한고마움을표하며무척반가워한다.이렇게그를다시만나게될줄은생각지못했기에나또한기쁜마음으로대한다.그는손님을데리고발레블랑쉬설원에서스키로내려왔다고한다.잠시그와대화를나눈후,우리는산악열차에올랐다.덜컹거리는산악열차창밖으로막저녁노을이펼쳐지고있다.이제힘든여정후의즐거운축배가남았다.

-글:사진/허긍열알프스통신원-/월간마운틴2007,03.-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