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은82년과함께한국히말라야원정의양적성장을가시적으로보여준해로기록된다.이2년동안에시도된원정은모두14개팀으로1962년부터1981년까지20년간에있었던13개팀보다도오히려많았다.또한이두해는비단양적인증가만이아니라등반의내용에있어서도비약적인발전을보여준해로꼽힌다.단지2년동안에2개의세계초등정을비롯해서2개의8천미터봉등정과1개의동계초등정,그리고국내최초의단독등정,여성등정,복수등정등의기록이속출하고그활동무대도네팔에서인도와파키스탄지역으로확대되어갔다.
83년도의첫히말라야원정은5월에가서야이루어졌다.악우회(회장정홍택)가파키스탄의카라코룸지역에있는바인타브락2봉(6,960m)에재도전하면서83년의포문이열리게된다.81년원정에서정상을불과60미터남겨두고통한의후퇴를했던,그리고하산도중이정대대원을잃었던악우회는2년만에‘사람잡아먹는귀신’바인타브락에다시도전장을던졌다.한국대는5월17일김포공항을출발했다.총대장은정홍택(47)악우회회장이맡았고대장에윤대표(31),부대장유한규(28),그리고임덕용(28),이진섭(27),곽영운(24),신한철대원(23)등전부7명으로구성된원정대였다.
이들이스카루드에서카라반을시작,베이스캠프에도착한것은6월1일.이로부터27일뒤에는정상벽바로아래의6,520미터지점에세번째캠프를설치하는데성공했다.그러나7월2일부터세찬바람과함께눈이오기시작해공격조는1캠프로후퇴해야했다.이로부터열흘간이나계속된눈보라는전구간의운행을마비시켰다.7월15일기다리다못한원정대는눈보라를뚫고정상공격을감행했다.공격에참가한대원은윤대표,유한규,임덕용대원.새벽5시에세번째캠프를출발한일행은8시간만에6,700미터지점의빙벽에도착했으나그곳에서100미터의빙벽을오르고나니오후7시가되어버렸다.
비박이불가피한상황이었다.한시간반이나작업한끝에겨우세사람이쪼그리고앉을만한빙동을마련했으나추위로인해밤새한잠도못자고‘악몽같은밤‘을보냈다.다음날오전9시15분,눈보라가진정되기를기다리다못한일행은그대로정상공격을결심했다.윤대장은만일에대비해비박지에남기로하고유,임대원만이정상을향해출발했다.남은것은정상까지1백60미터의고도.두사람은그칠줄모르는눈보라속에서쉬지도못하고등반을감행,오후1시50분에마침내정상에섰다.이로써한국은전년도의고줌바캉등정에이어또하나의값진세계초등정성과를얻게되었다.
악우회의바인타브락2봉초등정소식이국내에전해진직후한국산악계에또다른희소식이접수되었다.다름아닌인도펀잡히말라야에서포항향로산악회가눈(7,135m)봉을등정했다는소식이었다.정병택대장(34),고상배부대장(31),왕봉순(27),김정렬대원(31)등포항제철직원으로구성된등반대가국내에서는최초로인도히말라야에진출,정상등정에성공한것이다.눈(Nun)봉은높이는그리높지않지만인더스강상류인스르계곡일대에는이보다높은봉우리가없어특별히뛰어나보이는산이다.
이산의옆에는또다른7천미터급산인쿤(7,077m)봉이함께솟아있는데각기‘세르’와‘메르’라는별명을가지고있다.티베트어로각기‘소금의바위산’과‘수정의버들’이란뜻이다.이것은눈과쿤봉이얼음과눈으로이루어진아름다운피라밋모양을하고있는데서온것이다.눈봉은1953년프랑스팀에의해서릉으로초등정된이래인도(71,79,82년),스웨덴(75년),체코(76년),프랑스(77,82년),미국(77,80,82년),일본(78,79,80,82년),영국(79,81년),오스트리아(80년),서독(81년),스위스(82년)등10개국에서20회에걸쳐비교적많은등정이이루어졌다.한국대의등정은11번째국가에21회째등정인셈이었다.
6월17일베이스캠프(4,100m)를구축한한국대는1캠프(4,850m)를거쳐22일에는빙하상단아이스폴지점에2캠프(5,250m)를설치했고,27일에는3캠프(5,600m)를,그리고7월10일에는4캠프(6,250m)설치를마쳤다.1차공격에실패한후고상배,왕봉순두대원은7월19일북릉의마지막캠프를떠나11시간30분만에눈봉의정상에올랐다.이들이80년4월원정을추진하기시작한지3년만에얻은수확이었다.
83년가을에접어들자3개의국내팀이히말라야로향했다.모두가네팔쪽원정대였다.은벽산악회가안나푸르나1봉,영남대산악회가안나2봉그리고허영호가주축이되어3명이마나슬루에각기도전장을냈다.
안나푸르나는크게북쪽과남쪽에루트가나있는데북쪽은초등정된루트고남쪽은급경사의벽으로이루어져있어70년에야등정되었다.당시까지에베레스트,다울라기리남벽과함께히말라야의3대남벽으로꼽히는이벽의등정은히말라야등반에있어서철의시대를알리는신호탄이되었다.그러나이산의북쪽루트는지형상눈사태가잦고남벽보다그위험도가심해초등정이후82년까지모두27명의생명을앗아간곳이었다.여기에한국대는또하나의희생자를추가하는불행한결과를맞았다.
안창렬대장이이끄는83년의한국대는이산의12번째등정을노리고북면의네덜란드루트로입산허가를받았다.대원은허정식부대장(28·82년마칼루대원)을비롯해서이현수(28),차예철(27),김청환(27),김영자(여·30·82년닐기리중앙봉대원),정양근(27),허인석(26),조수헌(35·의사)등9명으로구성되어7월4일한국을출발했다.9월2일안나푸르나북면4,300미터지점에베이스캠프를설치한원정대는4일부터등반을개시했다.좋은날씨로초반에는루트공작이순조로워첫날1캠프(5,000m),6일2캠프(5,400m),그리고9일에는세번째캠프(6,250m)를설치했다.
그러나10일에는눈사태가발생,2캠프의장비가유실되자등반이지연되기시작했다.9월21일에는4캠프까지진출했으나다음날부터폭설이내리기시작하더니3일간이나지속되었다.그리고9월24에는무게를견디다못한상층부의눈더미가마침2캠프에있던정양근대원과두명의셀파를덮쳤다.이눈사태로한명의셀파만이극적으로살아났고정대원과셀파는불귀의객이되고말았다.이것은1972년에있었던한국대의마나슬루참사에이어국내에서는두번째의눈사태사고였다.
한편같은시즌같은산군에서영남대산악회가안나푸르나2봉(7,937m)을공략하고있었다.이들은81년에정찰을마치고2년여의준비끝에대구매일신문사후원으로장도에올랐다.대원은정상모(30)대장의지휘아래권봉기(30),정영수(26),홍경용(26)등4명이었다.안나2봉은주봉과불과154미터의표고차밖에나지않는고봉으로7천미터급산으로는세계에서세번째로높은산이다.이산에처음으로도전한것은1950년영국의틸만대였다.그러나이산에바로오르는길을발견하지못하고옆에있는안나4봉허리부분까지진출하는데그쳤다.
55년에이르러안나4봉이독일대에의해초등되자2봉에대한관심이다시고조되기시작했다.57년에는영국대가4봉을오른후2봉까지등정하려했으나뜻을이루지못하고돌아섰다.60년봄시즌에이산의초등을노리고영국-인도-네팔3국의군인들로구성된합동대가꾸려졌다.이들은북서릉상에4캠프(6,980m)를설치하고산소를사용하면서정상공격을하여5월16일에드디어등정에성공했다.이등정은인도최초의7천미터급초등정기록이되었다.
안나2봉은초등정된이후로도82년까지15개팀이도전하였으나69년유고대와73년일본대에게만정상이허락되었다.이산의4등을노리고북쪽의서릉루트로등반에나선영남대팀은8명의셀파를고용하여7,200미터까지올랐으나때마침안나푸르나지역에내린폭설과계속되는악천후로끝내등정을포기하고돌아섰다.반면에반대편인남측에서공략한오스트리아팀은등정에성공해남면초등기록을세웠다.
83년가을네팔히말라야로진출한한국원정대세팀중유일하게등정에성공한것은허영호일행이시도한마나슬루였다.그는당시그의소속산악회인제천산악회송만배회장(49)의후원으로단둘이서원정을떠났다.
8월말네팔의카트만두에도착한일행은여기에서마낭등산학교에입교하려고머물고있던대구파라마운트산악회소속손기오(24)를비공식대원으로합류시켰다.세명으로늘어난원정대는2명의셀파를고용9월15일베이스캠프(4,800m)에도착했다.예정보다늦은일정이었다.그뒤2주간에걸쳐3캠프지점까지진출했지만갑작스런폭설로인근부락으로피신다시좋은날씨를기다려야만했다.
10월17일날씨가호전되자허대원은손대원과2명의셀파를데리고다시베이스캠프로올라가5,200미터에전진베이스캠프를구축했다.그리고19일에는6,400미터,21일에는7,200미터지점에각각캠프를설치했다.여기서허대원은단독등정을결심했다.이미고소순응은되어있었고,날씨만좋다면정상까지의표고차944미터를하루에왕복할수있을것같았다.허대원은23일새벽1인용텐트와약간의식량을가지고단독정상공격에나섰다.새벽3시30분2캠프(과거에는3캠프)를출발하여5시간만에7,700미터고지에도착,가지고간소형텐트를치고잠시휴식을취했다.
그리고오전10시다시정상을향했다.한참만에바람이몰아치는플라토에이르자남면쪽에서올라오는독일등반대원들이보였다.여기서조금더전진하자암봉으로이루어진전위봉이나왔고그곳을지나쳐설릉을고통스럽게올라오후3시30분드디어정상에섰다.그곳은바람이너무심해오래머물수가없었다.잠시후하산을시작한허대원은독일팀의두셀파를만나사진도찍고휴식도취했다.허대원이지친몸을이끌고마지막캠프로돌아온것은오후7시,날은이미어두워졌을때였다.허영호의등정은7,200미터지점부터이긴하지만단독등정이라는데서기록될만한등반으로평가받았다.
3개의한국대중에서가장먼저정상을밟은팀은아마다블람원정대였다.이미전년도에푸모리에서국내최초로동계등정에성공한바있는남선우대장(28·양정고,중앙대)은김영수(35·중앙대),임병길대원(28·양정산악회)과함께아마다블람의동계초등을노리고소규모원정대를꾸렸다.아마다블람(AmaDablam)은비록7천미터에못미치는봉우리이지만호쾌한릿지와아름다운설벽으로이루어져산악인들의등반욕구를채워줄아주매력적인봉우리로여겨져왔다.에베레스트가있는쿰부계곡의가장자리에우뚝솟아있는이산은일대의산기슭어디서고그모습을볼수있다.이산의이름은셀파어로어머니를뜻하는‘아마(Ama)’라는단어와목걸이를뜻하는‘다블람(Dablam)’이합쳐진것이다.
83년겨울이산의동계초등정을노리고찾아든한국대는3명의대원과2명의셀파로속공등반을펼쳤다.동계등반개시일은12월1일부터로규정되어있었지만한국대는11월말의좋은날씨를이용해1캠프(5,350m)까지물자수송을마쳤다.그리고12월2일에는남서릉상의가장어려운50미터크랙지점을돌파두번째캠프(6,150m)를전진시켰다.12월4일세번째캠프설치를위해셀파와함께등반을개시한남대장은6시간만에3캠프(6,450m)에도착해여기에서다음날곧바로정상공격에나설결심을했다.
5일새벽혼자서마지막캠프를떠난남대장은남서릉을따라오르다서벽의불거진빙하에붙었다.그리고11시경부터가파른정상설벽에스탭을만들면서올라12시30분넓은정상에도착했다.아마다블람에대한동계초등정과단독초등정이함께이루어지는순간이었다.다음날새벽6시나머지김,임두대원이다시정상공격을시도12시에정상에도달했다.이등정으로한국대는대원전원이등정에성공하는또하나의기록을세웠다.
83년동계시즌에틸리초(Tilicho)에도전한알파인가이드협회는82년에공식적으로출범한국내최초의프로가이드협회로이용호(31)대장을중심으로윤대표(31),장봉완(31),김영운(21)등4명으로구성했다.
이들은11월20일에마르상디계곡을따라카라반을개시,4,200미터캉사르강가부터는포터들의파업으로갖은고생끝에12월3일에야베이스캠프(5,100m)를설치했다.한국대가오를루트는북릉경유북벽루트로78년프랑스팀(대장글레아망)이초등한루트였다.이산은초등정후에도일본(79년),스위스(80년),네팔(82년),서독(82년)팀이올랐고81년에는네팔경찰대가동계초등정을기록했다.한국대는동계2등과동시에통산6등을노리고있었다.
이산의이름은안나푸르나주봉북쪽기슭에있는틸리초호수에서유래한것으로‘틸리(Tilli)’는근처투크체마을의다카리족언어로‘멀다’라는뜻이고‘초(Cho)’는‘호수’를뜻한다.12월5일부터등반을시작한한국대는전대원이함께등반에나서7일에는꿀루와르를통과북릉중간지점까지올라섰다.여기서김대원이고소순응에실패이대장과함께하산하고윤,장두대원만남게되었다.두사람은이곳에서캠프없이속공으로정상공격을하기로하고우모복상의와예비장갑,양말,카메라등만챙겨정상으로향했다.중간에비박을하며계속전진했으나다음날도정상에미치지못하고두번째비박을해야만했다.
크레버스속에서고통스런밤을보낸일행은10일아침얼어붙은이중화를겨우녹여신고정상으로향했다.정상벽의왼쪽모퉁이를돌아오르니갑자기시야가확트이며정상이눈에잡힐듯가까이보였다.그곳에서왼쪽오버행눈처마를넘어서자운동장만한정상설원이나왔고,바람이거세게불고있었다.알파인가이드협회팀은셀파의도움없이속공등반을펼침으로써국내히말라야등반의새가능성을제시해주었다는평을받았다.
한편단신으로강가푸르나에도전했던이석우는셀파1명과함께등반에나섰다.이들은84년1월31일북벽을뚫고정상으로연결되는능선7,100미터까지진출했으나시간이늦은데다가비박장비도휴대하지않은상태여서아깝게후퇴하고말았다.그는80년부터세차례나이산을정찰하며등반기회를노려왔던것인데포터들의물자수송기피와악천후로등정기회를놓쳐버리고말았다.
이로써전부8개팀이나선83년한국히말라야원정은5개팀의등정과3개팀의좌절로막을내리게되었다.83년은한국히말라야원정이성숙기로진입하는데중요한가교역할을한해로기록된다.83년활동은다음해부터가히폭발적으로늘어나는히말라야원정의전초전이었다.
히말라야에서슈퍼알피니즘이란새로운등반사조가강력히대두되던84년은한국이히말라야원정본궤도에깊숙히들어선해였다.전부13개팀이히말라야에서등반활동을펼치며그어느해보다많은기록을남겼다.우선이해의첫등반시즌인프레몬순기에한국은네팔히말라야에서전체33개외국팀중5개팀을파견해최다원정국을기록했다.이것은전년도봄가을에각각6팀과10팀을기록했던일본대가이해봄에4개팀으로줄었기때문이었다.
그러나일본대는84년네팔히말라야에서한국대보다도적은10개팀을기록했지만인도에15개,파키스탄에10개,부탄에3개,그리고중국에7개팀등한햇동안모두45개팀이란엄청난등반대를보내국력을과시하고있었다.84년봄네팔히말라야로몰린5개의한국원정대는외대산악회의바룬체(7,129m),경남공고OB의푸타히운출리(7,246m),알파인가이드협회의샤르체(7,459m),원주치악산악회의캉구루(6,981m),정원산악회의츄렌히말(7,371m)원정대로,특이한것은5팀모두가7천미터급봉우리를택한소규모의원정대란점이었다.
84년봄의원정대들중에서가장먼저정상에도달한팀은푸타히운출리팀이었다.부산의경남공고산악부졸업생으로구성된원정대는조정술(38)대장과정상균(29),윤대효(28),김경남(24),강영기대원(24)등5명으로구성되어이산의남릉을택해등반에나섰다.푸타히운출리(PuthaHiunchuli)는다울라기리산군의서쪽끝에있어일명다울라기리7봉이라고도하는데1954년가을영국의로버츠가이산군의북쪽을정찰하다가가야콜라를거쳐초등정한산이다.
3월21일베이스캠프(4,100m)에서등반을개시한한국대는다음날로1캠프(4,800m)를설치하고24일2캠프(5,600m),그리고28일3캠프(6,400m)를설치하는빠른전진을보였다.그리고4월1일정상균,강영기대원이두명의셀파와함께3캠프를떠나중간의7백미터에달하는암벽지대를돌파,이날오후4시5분에정상에섰다.등반개시불과12일만의등정이었다.이등정은82년파빌봉등정에이은부산지역의두번째개가였다.
쿰부히말라야지역의바룬체(7,129m)를목표로등반에나선한국외국어대학산악회원정대는이산의북서벽을택했다.이팀은77년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원이었던김병준(35)대장의지휘아래정광식(28),배경철(28),정상욱(27),오영택(25),류승대(23),채경석대원(23)등7명으로구성되었다.
바룬체(Baruntse)는1954년힐라리가이끈뉴질랜드대가남릉으로초등정한이후스페인(80년),일본대(80,81년)가역시남릉으로등정했다.그리고83년가을에프랑스대가이산의가파른북서벽을올라북봉을등정했다.외국어대팀은노멀루트인남릉을피해어려운북서벽을목표로삼았다.3월23일임자빙하에베이스캠프(5,100m)를건설한이들은30일1캠프(5,550m)를건설하고75도경사에800미터의북서벽을돌파,2캠프를설치했다.그리고북릉위에3캠프(6,500m)를설치한이들은4월9일두팀으로나뉘어북봉과주봉을공략했다.
먼저북봉(7,057m)에오영택,유승대대원이올랐고주봉을향해출발한정광식,정상욱두대원은1시간뒤인11시45분중앙봉(7,066m)에도착했다.그러나그곳에서본주봉은길고넓은크레버스로나뉘어져있어사실상등반이불가능해중앙봉등정으로만족해야했다.외대팀의등정은비록주봉을등정하지는못했지만남동쪽의노멀루트를피해북서벽바리에이션루트를택함으로써국내최초로‘등로주의’를실현한등반이라는평가를받았다.
강원도에서는최초로결성된원주치악산악회의캉구루원정대는박순조대장(38)을비롯하여홍순국(31),강인선(28),강병호대원(26)과알파인가이드협회의허정식대원(29)이지원차동행해전부5명으로꾸려졌다.안나푸르나산군의북측에있는캉구루(KangGuru·6,981m)는55년슈타인메츠가이끈서독대가초등정한이래모두여섯번의등정이이루어진산이다.캘커타로보낸화물연착으로카라반출발이늦어져4월20일에야등반을개시한한국대는빠른속도로등반을진행,9일만인4월28일남동릉6,300미터지점에세번째캠프설치를완료했다.
다음날홍순국,강인선대원이정상공격을시도했으나정상을백여미터남겨두고역부족으로후퇴하고말았다.그리고5월1일두번째정상공격에나선강병호대원과두명의셀파는오전6시30분3캠프를출발한지5시간만에나이프리지를통과하여정상에오르는데성공했다.이산에대한통산7번째등정이었다.
84년봄의5개한국원정대중가장높은산을택한팀은알파인가이드협회의샤르체(7,459m)원정대였다.전년도에알파인가이드협회를발족시키고틸리초원정을주도했던이용호대장(32)을비롯해서바인타브락초등정자윤대표(32)와박병원(30),곽효균(32),홍옥선(29),그리고홍일점김정자대원(32)등6명으로구성된이원정대는샤르체에이어눕체서봉(7,795m)까지등정할계획을세웠다.
샤르체(Shartse)는쿰부지역에베레스트산군에서도로체에서동쪽으로길게이어지는능선상에솟은봉우리로동쪽을의미하는‘샤르’와봉우리를의미하는‘체’의합성어로결국동봉이란뜻이다.한국대는4월19일베이스캠프(5,220m)에서본격적인등반에들어가25일2캠프(6,100m),28일3캠프(6,360m),5월1일4캠프(6,600m),2일5캠프(6,750m)그리고3일에는6캠프를7,000미터지점에설치했다.13일만에6개의캠프를전진시킨것이다.
이어서5월7일에는윤대표,곽효균대원이한명의셀파와함께정상공격을감행,중간에하룻밤비박끝에정상에오르는데성공했다.이것은74년독일대에의한초등정이있은지10년만의등정이며정상부남서벽은루트초등으로기록되었다.이루트는‘아리랑루트’라명명되었다.그러나이들은두번째목표인눕체서봉등반은포기했다.
한편단두명으로이루어진추렌히말원정대는71년도한국대의등정의혹을풀어보겠다는야심찬계획을세우고출발했으나역부족으로패퇴했다.김병훈(31·대장),조건호(27)등정원산악회회원으로구성된이원정대는이산의서릉으로등반을시도하긴했으나긴설릉을통과하지못하고6,700미터지점에서돌아서고말았다.이들은84년봄시즌의다섯한국원정대중에서유일하게등정에실패한팀이되었다.
84년가을시즌에는5개의한국원정대가네팔히말라야에서등반활동을펼쳤다.부산합동대의탐세르쿠(6,623m)를비롯해서광운대산악회의캉구루(6,981m),조선대산악회의안나푸르나3봉(7,555m),미국남가주한인산악회의푸모리(7,145m),그리고강릉합동의글레이셔돔(7,193m)원정대등5개팀은3명에서6명의소수대원으로꾸려져한국대가점차소규모화되어가고있음을보여주었다.
또한이들5개팀중에서3개팀이지방팀이어서원정사상최초로지방원정대가서울지역의원정대수를능가하는이변을보였다.따라서84년은한국히말라야원정지방시대의원년으로기록된다.또이해에는미국에거주하는교포산악인들이원정대를꾸려관심을모았다.
부산의알파인클럽등4개산악회가공동으로꾸린탐세르쿠원정대는신용태대장(43)을비롯해서정인길(43),김장환(42),김석태(36),노종백(35),신창제대원(32)등6명으로구성되었는데이들모두가히말라야초행자들이었고평균연령38세나되는고령의원정대였다.탐세르쿠(Thamserku·6,623m)는1964년힐라리가이끄는뉴질랜드대에의해초등정된후79년과80년에일본대에게제2,3등을내주었다.
한국대는이산의네번째등정을노리고남릉에서동벽으로이어지는루트를택해9월15일등반을개시했다.9월17일1캠프(4,850m),21일2캠프(5,700m),그리고25일에는6,400미터지점에3캠프설치를마쳤다.이어서9월27일노종백,신창제대원과그리고두명의셀파는마지막캠프를떠나6,623미터의정상에서는데성공했다.등반개시13일만의등정이었다.
탐세르쿠원정대가최고령원정대였다면광운대재학생들로만구성된캉구루원정대는최연소원정대였다.배승렬대장(26)과양용덕(22),박희동(21)등3명으로만구성된이원정대는총비용770만원으로원정을성사시켜경량등반의가능성을보여주었다.캉구루는이미이해봄시즌에원주치악산악회팀에의해남동릉으로등정된바있었지만이들은서릉을택해등반개시7일만에정상에올라최단기일등정이라는또하나의기록을세웠다.9월13일등반을개시16일에1캠프(5,920m),18일에2캠프(6,570m)를설치하고곧바로등정에성공한것이다.
한편안나푸르나3봉(7,555m)에도전한조선대팀은카트만두에서의행정업무가늦어지는바람에10월중순에야베이스캠프를설치했다.고광수(27)대장의지휘아래임형칠(26),최경주(24),소병현(26)대원등4명으로구성된이팀은호남지역에서는첫히말라야원정대였다.3봉은61년인도팀에의해북측면으로초등정된이래일본(70년),이태리(77년),영국(79년),스위스(80년)에의해등정되었다.한국대는이산의제6등을노리고남쪽으로접근하였으나6,700미터를최고도달지점으로간단히물러서고말았다.
일명타르케캉(TarkeKang)이라고도불리워지는글레이셔돔(GlacierDome·7,193m)에는강릉산악인들이도전장을던졌다.엄개성(29)대장을비롯해이경수(34),최기순(26)등3명의대원은모두한국산악회소속이었다.안나푸르나3봉과같은산줄기에서서쪽으로강가푸르나를사이에두고솟아있는이산은64년일본대에의해초등정된후12개팀이등정을시도,7번등정이이루어진바있었다.한국대는이산의북쪽루트를택해등반을개시했다.4,600미터의베이스캠프를출발한이들은25일만에1캠프(5,400m),2캠프(5,900m),3캠프(6,400m)를전진시킨후10월27일엄개성대장과두셀파가정상에오르는데성공했다.이등정은강원도에서는원주치악산악회의캉구루등정에이은두번째성과였다.
한편미국의남가주한인산악회에서한국일보L.A지사후원으로꾸려진푸모리원정대는이산의동벽루트를목표로하고9월3일벽아래에1캠프를설치했다.푸모리는이미82년에한국대에의해남서릉으로동계에등정되었으나이들이오르려는동벽은60년초등정된루트로‘제2의아이거북벽’이라고불릴만큼800미터의암설벽을이루고있었다.김기환대장의지휘아래이윤우부대장,이성하,최상범,주영,최태현대원등모두6명은9월7일동벽등반을개시했다.초등루트보다직선으로길을뚫기시작한이들은10일에2캠프를설치하고14일에는주영과최상범대원이3캠프(5,800m)까지진출했다.
이어서17일에는4캠프가설치되었고동벽이거의끝나가는지점까지올랐다.그리고20일김대장과주영,그리고셀파2명이정상공격에나섰다.이들은중간에서하룻밤을비박한끝에드디어동벽을돌파,6,400미터의능선에오르는데성공했다.그러나이곳부터정상까지는그리만만치가않았다.이미장비를모두사용해버린이들로서는더이상전진할수가없었다.김대장은후퇴를선언했다.남가주팀은비록등정은못했지만동벽에직등루트를내고‘코리안다이렉트’라고명명하였다.이들이동벽을등반할때소요된장비는100여개의하켄과1,200미터의고정로프였다는것이그어려움을말해준다.
84년겨울한국원정대중에서은벽산악회의안나푸르나원정대가가장먼저등정보를국내에보내왔는데그것은한국산악인들뿐만아니라세계산악계를깜작놀라게할만한엄청난성과였다.다름아닌김영자(31)대원이여성으로서는최초로안나푸르나를올랐으며그것도동계초등정이란경이적인기록을함께세웠다는것이다.84년12월7일북릉에설치된4캠프(7,700m)를떠난김영자대원과파쌍노르부등4명의셀파는10시간만인오후3시20분드디어안나푸르나정상에선것이었다.그러나하산도중두명의셀파가제트기류에휘말려추락사하는사고가발생했다.
이사고로원정대는추락한두셀파의배낭속에있던카메라를잃어정상사진을제시하지못하는아쉬움을남겼다.어쨌든이등정은한국히말라야등반사상77년에베레스트등정이후가장획기적인사건으로꼽혔다.안나푸르나동계초등정을성사시킨안창열(34)대장은홍일점김영자대원과김청환(30),박만진(27),김호영(26)등5명의대원만으로원정대를조직했다.경비조달의어려움에도불구하고원정대는10월6일장도에올라11월27일4,300미터지점에베이스캠프를설치,등반개시10일만에등정을이루어냈다.
그런데84년도세계산악계의최대이슈가된안나푸르나등정에찬물을끼얹는사건이발생했다.이등정에의혹이제기된것이었다.당시카트만두에주재하던로이타통신기자엘리자베스홀리(여·61)가‘한국대안나푸르나등정의심스럽다’는제하의글을영국산악잡지에기고하면서의혹이제기된이사건은일본의산악전문지<암과설>에토픽으로게재되었고급기야는국내에까지알려지게되었다.이것은이등정이가진이슈만큼이나국내외산악계에커다란파문을몰고왔다.등정의혹설에접한은벽산악회팀은등정진위여부를가려줄분명한증거를제시할수가없었다.정상사진은하산중추락한셀파의배낭에들어있었기때문이다.따라서이등정을둘러싼각종구설수가산악계에난무하기만했다.
무엇보다이등정에의문을가지고있는홀리기자나프랑스팀에대해보다명확한해명이나항의가없이시간을넘김으로써이등정은국제적으로인정받지못하게되었다.그리고2년뒤인86년겨울에있었던폴란드대의등정(예지쿠쿠츠카외1명이87년2월2일에등정)이동계초등정으로기록됨으로써공식화되었다.이러한과정에서당사자들이나한국산악계가공식루트를통해보다논리적으로대처하지못했다는비난을받았다.서양산악인들의자의적인해석여부를떠나서반목과질시로일관한한국산악계의취약점을보여준것이었다.
안나푸르나등정과함께84년겨울을화려하게장식한것은쟈누봉동계초등정이었다.전국에서합동으로구성된쟈누원정대는‘스핑크스’또는‘잠자는사자’라불리는히말라야의괴봉쟈누(Jannu·7,710m)봉겨울철첫등정을이룩해주목을받았다.이원정은82년닐기리중앙봉을등정한바있는김기혁(31.하켄클럽·양정산악회)대장의지휘아래전국각지에서자원한최성수(29),김동재(25),신교봉(24),박정식(23.이상하켄클럽),송정두(27·거리산악회),서성수(26·부산솔뫼),박성만(25·울산산악회),안신현(22·부산대륙산악회)대원등9명으로구성되었다.이들은경비절감을위해단지1명의셀파와1명의고소포터만을고용해등반에나섰다.
모든짐수송과루트공작을대원스스로가하는소위‘멤버클라이밍’으로밀어붙인끝에12월6일7,100미터지점에마지막캠프를설치하고다음날1차정상공격에나섰다.그러나송정두,박성만,신교봉과두명의셀파가나선이날공격은길을잘못들어무위로끝나고말았다.12월9일이번에는김기혁대장이직접나서두명의셀파와함께두번째정상공격을시도,오후2시40분에드디어정상에섰다.카라반이길고난이도가높아동계등반이전혀시도되지않았던쟈누봉이한국산악인에의해첫등정된것이다.
한편84년겨울시즌3개의한국대중에서가장의욕적으로출발한양정산악회의에베레스트동계원정대는77년고상돈의에베레스트등정이후7년만에다시시도되는원정이라는점에서관심을모았다.특히국내유일의에베레스트등정자인고상돈대원이이듬해매킨리에서사망했기때문에생존한등정자가없는당시의상황에비추어가장이슈가될만한원정이었다.
이원정대는오인환(36)대장을위시해서정기범부대장(34),남선우등반대장(29),심상돈(30),전석훈(29),장석창(29),임병길(29),김백수(27),이승민(25),석채언(23)등양정고산악부출신들로구성된대원진과한국방송공사에서파견한민상기(36),정성근(29),백승민기자(28)를포함하여13명으로구성되었다.11월17일부터등반을개시한이들은일주일만에아이스폴을뚫고1캠프(6,050m)를설치했고26일에는2캠프(6,400m)를건설했다.
그리고베이스캠프에서3일간휴식을취한후12월1일부터다시등반을속개,13일에는3캠프(7,300m)까지올랐다.그러나이원정대는12월16일모처럼좋은날씨를셀파들의파업으로놓치고사우스콜을목전에두고강풍과추위를견디다못해후퇴하고말았다.이들이도달한최고고도는7,900미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