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원정사 [5-1] (1985~1986년) *-

한국13팀네팔히말라야로집중

한국산악계의해외원정활동은84년과다를바없이히말라야등반에편중되었다.82년부터

매년늘어나던히말라야원정대수는85년에와서는13개팀으로늘어나또다시기록을갱신

하기에이르렀다.특이한것은13개팀모두가네팔히말라야로만집중되어새로운지역으로

진출하지못하는국내산악계의한계를드러냈다.85년의또다른특징은7개팀이한꺼번에겨울

시즌에몰렸으며그들중3개팀이에베레스트에몰렸다는것이다.이세가지경향,즉네팔히

말라야편중현상과동계원정대급증,그리고최고봉에베레스트선호경향은이후한동안한국

원정대의원정패턴으로자리잡게된다.

허영호,투쿠체-로체샤르연속등정시도

청주대산악부투쿠체원정대
85한국로체샤르원정대

▲85년3월청주대팀의허영호와윤홍근에이어,9월에는부산교대팀의양정환이정상등정송공한투쿠체(6,920m)

85년도의프레몬순에는단지두한국원정

대만이장도에올랐다.청주대산악부가

투쿠체(6,920m)등반을위해출국했고,이

등반에참가했던허영호개인이로체샤르(8,400m)에도전장을냈다.제천산악회원

인그는전해인84년에청주대학체육과에

특기생으로입학,투쿠체원정에대원자격

으로참가했다.그리고그등반이끝난후

일시귀국했다가다시단신으로로체샤르

원정에나선것이었다.
투쿠체(Tukuche)는세계제6위의고산인

다울라기리북동쪽에위치한산이다.이산

의이름은동쪽기슭에위치한다카리종족

의마을투크체에서따온것이다.

청주대의투쿠체원정대는남기창대장(44)의지휘아래김학영등반대장(26),윤홍근(23),임해

훈(24),정창혁(24),이동환대원(25)과여기에허영호대원(31)이합류,7명으로구성되었다.

이들은1차정상공격에실패한후대원들만으로등반을속개1캠프(6,100m)에서정상공격에

나섰다.3월12일허영호,윤홍근두대원이2차공격에서정상에올랐다.경비조달의어려움

을극복하고이루어낸충북최초의히말라야원정이었다.투쿠체등반을마치고귀국한허영

호는곧바로로체샤르원정을위해동분서주했다.그는마나슬루를등정한83년이산의입산

허가를받아놓았던것이다.대원은오직그한사람뿐이었다.

카트만두현지에서두명의셀파를고용해베이스캠프에도착한것은5월10일,프레몬순의

등반기간을불과20여일남긴시점이었다.이때부터등반을개시한그는4캠프(7,300m)까지

진출한후5월29일정상공격을시도했다.그러나8천미터지점의플라토까지오르는데많은

시간을소모해그곳에서후퇴해야만했다.마지막캠프를너무낮게설치했음을깨달았으나

이미등정을재시도할기간이남아있질않았다.네팔정부가공식허가한프레몬순기간의

종료일은5월31일이기때문이었다.

히말출리북봉초등정으로빛난85년가을

우정산악회가우리샹카르원정대



서울의가우리샹카르원정대는박종수대장(31)을비롯해서송종만(25),선형근(29),박종윤

(25),이정신(23)등5명의히말라야초행자들로꾸려졌다.로왈링산군의맹주격인가우리

샹카르(GauriShankar)는등정로의어려움으로인해6번의시도끝에79년에가서야미국

대에의해초등정된산이다.그후에도84년가을까지모두11개팀이정상등정을노렸으나

오직84년의미국대에게만두번째등정을허락할정도로도도하기로이름난험봉이다.이

산은19세기중엽부터금세기초반까지세계최고봉으로인식될정도로네팔히말라야에서는

명봉으로꼽힌다.산의이름은‘화려하게빛나는여신’이란뜻이다.가우리샹카르에도전한한국

대는미국대가초등한남서릉을따라등반을개시했으나2캠프에서눈사태를만나는등고전을

거듭하다가맥없이물러서고말았다.

부산교대산악회투크체원정대

부산의투쿠체원정대는신호진대장(32)과이동본(31),양정환대원(22)등3명의대원으로구성

되었는데이들역시히말라야는초행길이었다.이들은카라반도중카메라장비를도난당하는

불운을겪었지만봄시즌에청주대산악부가오른북릉루트를따라2개의캠프를전진시킨끝에

무난히등정에성공했다.

에이스산악회가네쉬원정대

한편가네쉬1봉에도전한대구의에이스산악회는서릉의대암벽을돌파하지못해힘없이물러

났다.이산의등정가능한루트는55년에초등정된동남릉이나그곳의베이스캠프는중국의

티베트영토였기때문에네팔정부로부터입산허가를받아내질못했다.현지에가서야이사실

을알게된원정대는어쩔수없이서릉등반을시도했지만단지3명으로구성된약체의원정

대로대암벽을뚫는다는것은역부족이었다.이원정대의대원은박지원대장(36)과안승호(24),

이심희(여·24)대원등3명이었다.

울산지부현대중공업합동히말출리북봉원정대

울산지역최초로꾸려진히말출리북봉원정대는대산련울산지부와현대중공업이합동으로

추진한팀이었다.원정대는김억석(65·부산운봉산악회장)단장과이규진(42·울산지부전무이사)

대장의지휘아래박경서(34·진산악회),신영철(34·미도알파인클럽),이재홍(31·진산악회),김

성출(29·가지산우회),남봉희(26),이용순(20·이상진산악회)대원등총8명으로구성되었다.
히말출리북봉은주봉인히말출리(7,893m)에서북서쪽으로3.5킬로미터떨어져있는위성봉으

로주봉이60년에일본대에초등정되고서봉(7,540m)이78년에역시일본대에의해초등정된

후마나슬루산군의마지막미답봉으로남아있었다.85년가을이봉의초등정을노리고한국

대와폴란드대가동시에들어오게되었다.

한국대는북등릉을택했고폴란드대는반대쪽인남서릉으로등반을개시했다.한국대는10월

2일베이스캠프(4,050m)에도착,10월23일까지세개의캠프를전진시키며6,400미터지점

까지고정로프설치를마쳤다.드디어10월26일6,800미터까지올라가설동을파고비박을

감행한공격조가정상공격을단행,27일오후3시이재홍대원과4명의셀파가미답의정상을

밟는데성공했다.폴란드대는그로부터5일뒤인11월1일2명의대원이정상에섰으나이미

세계초등정의영광은한국대에게와있었다.울산산악인들의히말출리북봉등정은82년의

고줌바캉,83년의바인타브락2봉초등정에이어또하나의세계기록을추가한값진등정이었다.

겨울철사상최다팀기록한한국대


85년겨울은한국히말라야원정사상가장특이한시즌으로꼽힌다.겨울한시즌에전부7개

의원정대가네팔히말라야로몰린것이다.그것도최고봉에베레스트에만한꺼번에3개팀이

집중되어네팔관광성을놀라게했다.에베레스트(8,848m)에몰린한국대는동남릉을노린고려

대팀과서릉의전국합동대,그리고남서벽원정대등3개팀이각기다른루트를목표로삼았다.

그밖에진주초모롱마산악회가가우리샹카르(7,134m),대구-부산합동대가캉테가(6,779m),

일합동대가타우체(6,501m),그리고은벽산악회가카료룽(6,511m)등대부분동계초등정을

목표로한원정대들이었다.

히말라야에서의동계등반은공식적으로는80년2월에폴란드팀에의해이루어진에베레스트

등정을최초로꼽는다.그후네팔히말라야에는겨울철원정대가급속히증가하기시작했고매

년7천~8천미터봉들에대한동계초등정기록이속출했다.그결과자이언트봉에서는82년에

다울라기리,83년에마나슬루,84년에는초오유와안나푸르나가각각동계초등정되었고85년

에와서는캉첸중가가폴란드대에의해등정되었다.때마침히말라야원정전성기를맞은한국

산악계도82년푸모리(7,145m)동계원정을시발로83년에아마다블람(6,812m)과틸리초피크

(7,134m)를등정했고,84년에는에베레스트원정과안나푸르나와쟈누봉동계초등정을이룩해

냈다.그리고85년에와서그기세가더욱고조되어에베레스트에만3개팀이도전장을냈는가

하면7천미터급동계초등정을노린원정대가대거출현하기에이르렀다.

겨울에베레스트에서한국3팀각축

한국동계에베레스트서릉원정대



가장먼저베이스캠프에도착한팀은김기혁(31·하켄클럽,양정산악회)대장이이끄는서릉원정

대였다.84년캉첸중가산군의쟈누(7,710m)봉을동계초등정한바있는김기혁대장은그여세

를몰아에베레스트에도전장을냈다.전국에서희망자를선발해조직한이등반대는김대장을

중심으로조동혁부대장(33·양정산악회),임삼균(28·대전쟈일클럽),박계현(27·경남동악회),정

용선(27·제주오현등고회),김영환(27·대전쟈일클럽),서성수(27·부산뫼우리산악회),이재하

(27·악우회),유의선(27·대전클라이머스),최태수(26·충남고OB),박성만(26·울산산악회),이상

헌(26·부산뫼우리산악회),안일섭(26·인덕산악회),박정식(24·양정산악회),이상구(23·인천교

대산악회),위용범대원(21·하켄클럽)대원등모두16명으로구성된대부대였다.

에베레스트서릉동계등반은80년영국대가최초로시도했으나패퇴하였고82,84년에프랑스

대가공략했으나역시뜻을이루지못한채로남아있었다.그만큼서릉은난이도가높을뿐더

러겨울철에는강력한제트기류에노출되는지형이라서등반이극도로곤란한곳으로정평이

나있었다.한국대는11월30일서릉의첫번째관문인수직벽을돌파하고로-라(6,050m)라불

리는안부위에제1캠프를설치했다.이곳에서두번째캠프까지는고도900여미터의암설벽

을올라야하는난코스였으나대원들은3명의셀파들과함께6일간의작업끝에12월5일2캠프

(6,950m)를설치하는데성공했다.

그러나8일부터는몸을가누기조차힘든거센바람이불어닥쳐아래캠프로피신해야했고,

급기야그곳마저도강풍으로텐트가찢겨나가자12월15일전원베이스캠프로후퇴하고말았

다.그과정에서텐트를포함한많은장비와식량이유실되어더이상등반을계속할수가없었다.

이로써서릉에대한한국대의첫도전은등반개시21일만에막을내렸다.

고려대학교동계에베레스트원정대

한편노말루트인남동릉을목표로한고려대팀은14명의셀파를고용해11월26일베이스캠프

에들어왔다.79년알래스카매킨리원정을성공리에마친바있는고려대산악회는84년에에

베레스트정찰을마치고입산허가를받아놓았었다.이들은세팀중유일하게매스컴(한국방송

공사)을후원처로잡아원정을꾸렸다.참가대원은김상겸단장(50·고려대교수)과남상태대장

(44)의지휘아래김종호부대장(32),홍성암(32),장경순(28),김영대(27),박동석(22),박성우

대원(22)과한국방송공사에서파견한정성근(30),백승민(29),김창훈기자(27)를포함하여총

11명으로구성되었다.

▲85년12월에베레스트3캠프를떠나사우스콜로향하고있는고려대팀대원.같은시즌에서릉과남서벽에도각각한국원정대가도전했으나악천후로모두고배를마셨다.

12월1일등반을개시한원정대는14일만에3캠프(7,400m)까지설치하고12월20일에는사우스콜(8,000m)에마지막캠프를설치하는빠른전진을보였다.그리고21일새벽1시30분김종호부대장과박동석대원이앙리타셀파와함께1차정상공격을단행했다.그러나이들은혹독한추위로해드랜턴이작동되지않고산소마스크도얼어붙자200여미터를전진하다가후퇴했다.
사우스콜로내려온공격조는하루를더기다려다음날아침재차정상공격에나섰다.셀파없이두대원만이나선것이다.그러나8천미터의고도에서이틀을지낸이들의체력은극도로약해져있었다.8,500미터지점에다다른시각이오후3시.더이상의전진은과욕이라고생각한김부대장은후퇴를결심했다.

일단베이스캠프로철수한대원들은이후닥쳐온악천후로15일만에야다시사우스콜로진출할수있었다.그러나이미그곳의텐트는모두찢겨져있었고날씨마저호전될기미가보이지않아다시철수했다.그후원정대는남체바잘(3,440m)마을까지하산,휴식을취하고1월22일등반을재개했지만3캠프에도달하는것을끝으로2월13일통한의철수를결정하게되었다.장장75일동안주어진동계등반기간을모두사용하면서끈질기게버텼지만에베레스트의가공할겨울바람은정상의문을열어주지않았다.

한국동계에베레스트남서벽원정대

한편박영배대장(39·크로니산악회)이이끄는남서벽원정대는세팀중가장늦은12월14일에

야쿰부빙하에들어왔다.서릉대와마찬가지로전국에서자원한대원들로구성된이원정대도

자금사정이원활치못해일정에차질을빚었다.참가대원은박대장외에서봉준부대장(33),

도종득(33),정계조(30·강원대산악회),김보열(25·대륜고OB),한성환(29),김영복(30),김환

중(27·충남의대),엄홍길대원(26·크로니산악회)등9명.대장을포함하여이들모두가히말라

야는초행길이었다.

에베레스트의남서벽은75년에영국대에초등정된후82년에소련대가남서벽의왼쪽벽을통

과하는독자적인루트를뚫은것외에는이때까지재등을허락하지않고있었다.더구나겨울

철등정은외국대도감히엄두를못내고있었다.오직프랑스대가82년겨울이벽을오르고자

시도했지만초입에서포기했었다.한국대는5명의셀파와함께등반을개시했다.이들은남동

릉으로등반중이던고려대와2캠프(6400m)까지루트가같았기때문에아이스폴에사다리나고

정로프설치작업이없이손쉽게웨스턴쿰까지오를수있었다.그곳에서독자적인등반에나

선이들은그러나남서벽을등반하기에는경험과물자등모든면에서역부족이었다.3캠프

(약7200m)까지오르는데도대원들은고소순응이안돼많은시간을소모해야했다.오직엄홍

길,김보열대원이1월10일7,500미터지점까지도달할수있었을뿐이었다.한계를절감한박

대장은1월18일베이스캠프를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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