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원정사 [5-2] (1985~1986년) *-

가우리샹카르,캉테가,타우체동계초등


마차푸차레산악회가우리샹카르동계원정대

85년겨울한국대의가장큰성과는가우리샹카르동계초등정이다.네팔의7천미터급산중에

서는쟈누,가네쉬1봉,록노어,팡,눕체등과함께난이도가높은곳으로정평이나있는가우

리샹카르의동계초등은이원정대의전력으로보아예상외의성과로평가되었다.진주마차푸

차레산악회가파견한이팀은선적서류분실로화물통관이지연돼12월18일에야베이스캠프

(4,800m)를설치할수있었다.대원은서정배대장(43)과성락건(40),최한조(33),이희봉대원

(29)등4명이었는데히말라야는모두초행길이었고실제등반이가능한인원은더적었다.7천

미터급봉우리중상급의난이도를가진이봉을동계등반하기에는너무적은대원이었다.그래

서이들은5명의등반셀파를고용해부족한전력을보충했다.

셀파들과함께등반을시작한한국대는1캠프를설치해놓고해를넘겨1월9일2캠프(6,300m)

를설치했다.이어서13일에는남서벽의6,800미터지점에3캠프를설치완료했다.몇차례의

기상악화로텐트가찢기고장비가유실되었지만16일최한조대원과2명의셀파가정상공격을

감행,드디어정상에섰다.이등정은최초의동계등정이며통산세번째등정으로기록되었다.

비록셀파의존도가높았지만무려13개팀에게실패를안겨준이봉의등정은괄목할만한것

으로평가되었다.


동계파라마운트캉테가원정대

▲대구파라마운트산악회가85년12월31일동계초등정을기록하며오른쿰부히말라야의캉테가(6,779m)위용

한편대구의파라마운트산악회가부산,마산의한국산악회

원들과합동으로꾸린캉테가원정도10명의인원으로이산에

도전,동계초등정을이루었다.캉테가(Kangtega)는쿰부히말라야에서이웃한탐세르크,타우체,아마다블람등과함께6천미터급봉우리중에서는등반성이인정되고있던산이다.이산들이히말라야의황금시대가막을내리던60년대초에차례로등정된것은곧이어등장하는철의시대를예고하는전주곡이었다.캉테가는63년힐라리가이끄는뉴질랜드대에의해초등정된후79년에일본대가,그리고84년에스페인대가등정했을뿐겨울철에는미등인채로남아있었다.

이산의동계초등정을노리고들어온한국대는전경수대장(37)의지휘아래신재호(40),노종백(37),윤용수(35),민진기(34),한창복(27),이대석(26),박창우(22),손병진대원(22)등10명이었는데전년도에탐세르쿠를등정한바있는노종백대원을제외하곤모두첫히말라야원정이었다.12월1일부터본격적인등반을시작한이원정대의이대석대원은남릉을경유남서벽으로붙었다.그리고12월31일새벽4시셀파1명과함께3캠프를출발,오후4시에정상에섬으로써또하나의한국대동계초등정기록을남겼다.


한일합동타우체원정대

▲86년1월14일쿰부히말라야타우체(6,501m)정상에오른허영호대원.최초의한일합동히말라야등반에서동계초등정을달성했다.

한편이해겨울에는사상최초로한일합동히말라야등반이있어관심을끌었다.쿰부히말라야에있는타우체(6,501m)봉을목표로한이원정대는한국측에서오인환(39·한국측대장),김태섭(42),이봉훈(40),허영호(31)등4명과일본측에서오니시다모쓰대장(43)외5명이참가했다.
타우체는74년에프랑스대가초등정을했으나허가를받지않고등반한것이밝혀져5년간입산금지처분을받았고동계시즌에는미등으로남아있었다.산이름은티베트어로‘커다란말’이란뜻이다.

본래한일양측대원은함께정상등정을하기로되어있었으나먼저등반에나선일본대의가다모또아쓰요시(26)가해를넘긴1월5일남릉5,100미터지점에서고정로프가끊기면서추락사하는사고가발생했다.이사고로일본대원들

은철수해버리고한국대원들만이셀파들과함께등반을속개해1월13일6천미터지점에1캠프

를설치하고다음날등정에성공했다.등정자는허영호대원과앙푸르바셀파.이들의등정은

동계초등정으로기록되었다.

은벽산악회캬료룽동계원정대

한편로왈링지역에위치한카료룽(6,511m)에도전한은벽산악회팀은이산의북동벽을통하여

등정을시도했지만6,400미터지점에서간단히돌아섰다.대원은84년안나푸르나동계원정대

를지휘했던안창열(35)대장과김영호(28),박문석(28),고흥렬대원(26)등4명으로만구성되

었다.

한국3년연속히말라야에13팀진출


86년을맞은한국산악계의해외원정양상은전년도와마찬가지로히말라야를중심으로전개되

어갔다.전부18개팀이해외의고산을찾았는데히말라야로는13개팀이나간반면알프스를

목표로3개팀,그리고알래스카매킨리로2개팀이진출해상대적으로저조했다.전부13개팀

이몰린히말라야는시즌별로봄에3개팀,여름에1개팀,가을에5개팀,겨울에4개팀이등반

활동을펼쳤다.이들원정대들중봄과가을시즌에7천미터급준봉을택한원정대들은주로지

방의단위산악회들이꾸린것으로대부분초행자들로구성된팀들이었다.이것은히말라야원정

이지방으로확산되어그저변이확대되고있음을보여주는현상이었다.이에비해여름과겨울

의원정대는거의가경험자들중심으로조직된8천미터급대규모원정대들이었다.

국내최초혼성팀강가푸르나등정

한국강가푸르나원정대

▲86년4월15일2캠프루트공작중인강가푸르나원정대.동릉루트를택한이원정대는4월18일과20일두차례에걸쳐4명의대원을정상에올렸다.

86년들어가장먼저히말라야등정보를보내온팀은강가푸르나원정대였다.남녀혼성으로구성된합동대가두차례에걸쳐남녀각각두명씩등정한이색기록이었다.총8명으로구성된이원정대는김기철대장(33)을비롯하여남난희(여·29),정영희(여·26·이상록파티산악회),엄개성(31),남용현(45),민경영(24·이상강릉대설산악회),심건식(39·시민산악회),석채언대원(25·양정산악회)등4개산악회에서참가했다.
강가푸르나는네팔중부안나푸르나산맥중앙부에위치한봉우리로서쪽에타르케캉과동쪽에안나푸르나3봉을사이에두고솟아있다.이산은65년독일대에의해초등된이래85년가을까지11개팀이도전하여5개팀이정상에섰다.국내에서는83년겨울시즌에이석우(피톤산악회)가단신으로도전했다가북면7,100미터에서패

퇴한바있었다.

3월16일78명의포터와함께이산의남면4,200미터에베이스캠프를설치한원정대는29일

빙탑지대에1캠프(4,800m),4월10일2캠프(5,600m),14일에는3캠프(6,300m),그리고17일

에는동릉을올라4캠프(6,800m)설치를완료했다.22일동안4개의캠프를전진시키면서정

상공격채비를마친것이다.그리고4월18일에엄개성,남난희대원이오전7시40분정상을

향해출발,오후1시42분등정에성공했다.이어서20일에는2차공격조석채언,정영희대원

이정상에섬으로써국내최초로혼성등정기록을남겼다.

24년만에등정된다울라기리2봉

팔공산악회다울라기리2봉원정대

한편다울라기리2봉에도전한한국대는국내히말라야원정사의첫장을장식한산을목표로

했다는데서관심을끌었다.62년가을에경희대산악회가히말라야의장을열었으나여러가지

여건상정찰등반으로만족해야만했던이산을24년만에한국산악인의이름으로재도전에나

선것이다.이산은그후10여년동안처녀봉으로남아있었으나71년오스트리아팀이동릉으

로초등정했다.그다음에일본대가78년과79년에등정했고86년까지어느팀에게도정상을

내주지않고있었다.

대구팔공산악회원들로만구성된한국대는이돈용대장(36)과김성규(26),조명호(27),김기태

(24)대원등4명으로짜여졌다.우연히도24년전과같은대원수였다.이들은먼저산의남쪽

마양디빙하위에베이스캠프를설치하고4월11일부터본격적인등반을개시했다.19일에1캠

프(5,400m),21일에2캠프(6,000m),27일에3캠프(6,500m)가구축되었고5월4일에는마지막

캠프가7,300미터지점에설치되면서정상공격준비가끝났다.그러나이곳에서눈사태가발생,

밤10시에3캠프로탈출해야만했고정상공격은지연되었다.5월9일,식량이얼마남아있지

않았음을깨달은이대장은2차정상공격대원들만남기고포카라로철수하는모험을감행했다.

5월12일김성규대원과두명의셀파는세번째캠프를떠나12시간30분만에고도800미터를

극복하고오후4시30분드디어정상에섰다.감격의순간이었다.그러나그러한감격은오래가

지않았다.12시간이상의고소등반에지친김대원이탈진한몸을이끌고하산하다가추락하고

만것이다.다울라기리2봉원정은네번째등정이란성과에도불구하고이처럼비극으로끝나

고말았다.

서강대산악회가네쉬2봉원정대

86년봄시즌에유일하게등정에실패한팀은서강대산악회의가네쉬2봉(7,111m)원정대였다.

서강대개교25주년기념으로추진된이원정은경비마련이여의치않게되자당초보다대원

을줄여3월20일장도에올랐다.참가자는박종태대장(34)을비롯박춘상(29),이태열(28),

김철한(24),최억림(21),이강오대원(21)등6명이었다.일명랍상카르보(LapsangKarbo)

라고도불리는이봉은대단한험봉으로79년에와서야일본대에게북면루트로정상을허락했

다.그후에도5개의원정대가등정을시도했으나84년봄프랑스대가남서벽으로두번째등정

을이루었을뿐이었다.

서강대의당초목표는79년초등루트인북면이었으나이곳은네팔정부가중국과의국경분쟁으

로84년이후입산을제한해부득이서릉으로루트를바꿔야했다.85년가을가네쉬1봉에도

전했던대구에이스산악회와같은경우였다.원정대는4월10일4,100미터베이스캠프에서등

반을개시15일에1캠프(5,000m),5월3일에2캠프(5,700m),그리고8일에는3캠프(6,200m)

를설치하고정상등정태세를갖추었다.이어서5월9일새벽4시40분박춘상부대장과최억림

대원이1명의셀파와함께설릉으로이어진정상을향했다.그러나능선은예상보다길고경사

가급해많은시간과체력이소모되었다.급기야는날이어두워져비박을해야했고다음날기

력이쇠잔해진일행은등정을포기했다.이들이도달한지점은서릉6,600미터지점이었다.

세계2위봉K2에세대원우뚝

대한산악연맹K2원정대

86년여름,한국산악계는또하나의8천미터급봉등정을성공시키는개가를올렸다.대한산악연

맹(회장오한구)이파견한K2원정대의장봉완,김창선,장병호대원이세계에서두번째로높은

8,611미터의정상에선것이다.이들세대원은8월3일새벽5시다섯번째캠프(8,250m)를

출발하여11시간16분간의등반끝에정상에올랐다.이들은등정후그날로최종캠프까지귀환

하지못하고8,400미터지점에서악몽같은비박끝에다음날생환할수있었다.

▲86년8월3일대한산악연맹소속장봉완(좌),김창선(우),장병호대원이남동릉으로K2정상에올랐다.이등정은77년고상돈의에베레스트등정에버금가는성과였다.

대산련이77년에베레스트원정이후9

년만에추진한이원정은86년아시안게

임을기념한다는취지를가지고국고지원과

한국방송공사의후원으로이루어졌다.원정

대는3년여에걸친준비끝에전국에서16명의

대원을선발,5월31일장도에올랐다.77년에베

레스트원정대원이었던김병준대장(37)의지휘아

래윤대표등반대장(34),장봉완부대장(34),정상

모(32),김현수(31),김창선대원(26)등80년대

전반기의히말라야원정을주도한경험자들과홍

옥선(30),배종원(33),유재일(31),박승기(30),

송정두(29),권순호(29),하관용(26),장병호(25),송영호(30),정덕환대원(34.의사)등총16

명이선발되었다.여기에한국방송공사에서파견한민상기(36),임경수(34),최덕신기자(29)가합류해전체인원은19명이나되었다.

K2는그높이에서뿐만아니라등반에있어서도많은어려움을가지고있는산으로정평이나

있었다.이봉우리가세계두번째고봉으로알려진것은1858년의일이다.에베레스트와같은

방식으로이산을측량한결과8,611미터라는숫자가나온것이다.이때까지이산은K2(카라

코룸제2봉이란뜻)란기호로쓰여왔던것인데우연하게도세계2위의고봉으로밝혀지자그

대로`케이투`라고부르게된것이다.한국대가도전하게된86년까지이산은19개의원정대가

들어와10회의등정기록을냈다.

한국대가도전한86년에는전부13개팀이한꺼번에몰려와북새통을이루었다.한국대는6월

20일베이스캠프를설치하고27일1캠프(6,300m),7월3일2캠프(6,900m),7일3캠프(7,500m)

를설치하는빠른전진을보였다.그러나이후에는날씨가악화되고전진이지연되어8월2일에

야최종캠프(8,050m)를설치하고다음날정상공격에나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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