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 [6-1] (1987~1988년) *-

못벗긴17년전의추렌히말등정의혹


중동산악회추렌히말원정대


87년국내첫히말라야원정대는봄시즌의추렌히말(7,371m)원정대였다.중동산악회가꾸린이원정대는중동고설립80주년을기념하는것외에도70년한국대의초등정의혹을풀어보겠다는목적을가지고있었다.한국히말라야원정사의첫페이지에남아있는추렌히말초등정에대한의문부호는그비중으로봐서반드시진위가밝혀져야할과제로남아있었다.

중동고산악부졸업생들로구성된원정대는도창호대장(36·77년에베레스트원정대원)의지휘아래지훈구(32),김은창(28),신장섭(25),이정근(25),장인수(25),조원철(24),이상만(24),천성구대원등9명으로짜여졌다.이들이‘시비의산’추렌히말의카페빙하위에베이스캠프를설치한것은4월6일,그로부터34일간의전진끝에다섯번째캠프(6,650m)를설치한것은5월10일.등반로는70년당시와거의같은것이었다.

이들은본래같은높이의서봉과중앙봉도함께등반하려했으나네팔관광성의규정에각기입산료를지불하게되어있어동봉만을택해올랐다.5월11일새벽5시40분,17년전보다250미터가높은5캠프를출발한김은창대원과셀파는4시간만에예리한몇개의봉우리를넘어동봉으로이어지는동릉의첫봉우리에도착했다.여기서동봉까지는불과1킬로미터도안떨어져보였다.리지의양쪽벽은낭떠러지를이루고있었고전진할수록능선은더욱칼날같아져어떤자세로도전진이어려웠다.

11시40분에고도7,200미터까지전진했으나그속도로는하루에정상을왕복하기가불가능하다는판단이섰다.보고를받은대장은철수를명령했다.동릉을통과하기위해서는또하나의캠프가불가피하다는결론을얻었지만장비와식량은이미고갈되어버렸다.정상부분의동릉에대한연구가없었던것이실패의원인이되었다.이들은다음해의재도전을다짐하며카페빙하를떠났다.

렌포강에서등로주의실현한전남의대팀

전남의대산악회렌포강원정대

▲87년9월,렌포강(7,083m)서벽을개척하고있는전남의대산악회팀대원들.이루트는후에하늘길이라고명명되었다.

가을시즌의유일한원정대는전남의대산악회가꾸린렌포강원정대였다.이들은국내최초로꾸려진의과대학단일팀으로현역의사와의과대학재학생들로구성되어관심을끌었다.
네팔중부의쥬갈히말라야최고봉인렌포강(7,083m·1983년네팔관광성은6,979m로발표)은크고하얀산이란뜻의‘빅화이트피크(BigWhitePeak)’으로더알려져있다.이는1955년에이산을처음등반한영국여성대가붙인이름으로그들의뜻을존중하는뜻에서한동안그렇게불렸었다.그러나후에이산의고유명칭이티베트어로‘설산’을의미하는렌포강(LenpoGang)임이밝혀져네팔정부가공식사용하게되었다.

렌포강은일본대가60년부터3차례에걸쳐초등정을시도한끝에62년5월3일이산의동쪽에서중앙릉을경유하여정상에오르는데성공했다.그후중국과의정치적인이유로20년동안등반이허가되지않다가82년에와서일본의동해대학팀이동릉으로제2등을기록했다.그러니까한국대는이산의세번째등정을노리고출사표를던진것이다.참가자는윤재룡단장(56)과조석필등반대장을중심으로권현(32),홍운기(23),이정훈(23),김수현대원(21)등6명이었다.

전남의대팀이랑시샤빙하를거슬러올라가다4,750미터지점에베이스캠프를건설한것은9월3일.이곳에서전진베이스캠프(5,000m)를거쳐9월22일에는전인미답의서벽에1캠프(5,750m),2캠프(6,200m),3캠프(6,650m)를전진시켰다.전남의대가돌파한서벽은고도의기술을요하거나극심한난이도를가진루트는아니었으나서벽전체를가르고있는빙괴의눈사태를피하는것이가장큰관건이었다.

이들은1캠프까지이르는구간을‘토왕길’,그리고3캠프가있는능선까지의구간을‘하늘길’로명명했다.이제남은것은정상등정.9월27일오전6시20분이정훈,김수현대원과두셀파가3캠프를떠났다.이들은7시경정상피라밋아래를통과하여8시15분마침내정상을밟았다.
이등정은호남지역에서이룩한최초의히말라야등정이며,국내에서도손꼽을만한등로주의등반으로기록되었다.

허영호,숙원의동계에베레스트등정이룩

한산합동동계에베레스트원정대



87년한국산악계의핫이슈는이해겨울철히말라야에서쏟아져나왔다.에베레스트와캉첸중가,그리고고줌바캉등자이언트급봉에출사표를던진3개의한국대가전부성공을거둬87년의마지막을화려하게장식한것이다.그중에서도12월22일에있었던허영호의에베레스트동계등정은84년이후한국산악계에가장크게부각되었던관심사를한꺼번에풀어준쾌거였다.즉고상돈에이은제2의에베레스트등정과,계속적으로고배를마시던‘겨울철’에베레스트등정이라는두과제를동시에해결해준것이다.


86년겨울에이미한차례고배를마신바있는허영호(34)는이번에는함탁영대장(48·82년마칼루원정대장)이꾸린한산합동대의대원으로참가하게되었다.이원정대의스폰서이면서직접참가한김일권단장(38)을비롯해서신승모부대장(40),최종열(29),정갑수(28),손재식(31),김춘수(32),김재신대원(30)까지포함하여모두9명이참가한원정대였다.

▲87년12월22일한국산악인으로는10년만에세계최고봉정상에오른허영호.그의등정은겨울철로는네번째였다.

이들은11월30일해발5,400미터에베이스캠프를구축한후빠른전진을보여12월4일1캠프(6,100m),6일에는남서벽하단에2캠프(6,500m),10일에로체페이스상단빙설벽에3캠프(7,200m),그리고18일에는최종캠프를사우스콜(7,980m)에설치했다.그리고12월19일허대원과셀파가1차정상공격에나섰으나남봉부근에서길을잃고배회하다가뒤돌아서고말았다.

허대원은그다음날단신으로재차정상공격에나섰다.그러나혼자서남봉과힐라리스텝을통과할수는없다고판단,또다시후퇴의길을택했다.
그리고12월22일새벽1시허대원은앙리타셀파와세번째공격을감행했다.그는두번의실패를거울삼아길을찾아올랐다.마침날씨는쾌청하게맑았다.오전6시에는남릉허리에도달했고,11시에는남봉위에올라섰다.마지막난관인힐라리스텝을넘어섰을때는오후1시가넘어있었다.이곳에서날카로운정상설릉을1시간넘게전진한끝에오후2시20분,드디어최고봉의정상에섰다.

세계3위봉캉첸중가동계등정과의혹

대륙산악회동계캉첸중가원정대



캉첸중가는55년에반스대장이이끈영국대가얄룽빙하를경유하여남서면으로초등정한이래77년인도대가북동릉으로두번째등정을이루었고,78년봄에는스페인대가중앙봉을,폴란드대가남봉을초등정하는데성공했다.그후북면으로영국과일본이새루트를뚫었으며82년에는메스너일행이최초로무산소등정에성공하는등87년까지통산21회의등정이이루어졌다.
부산의대륙산악회가이원정을추진할85년당시만해도이봉은동계미등으로남아있었으나86년겨울폴란드의쿠쿠츠카일행이먼저등정해버렸다.

▲부산대륙산악회87년동계캉첸중가원정대원들.왼쪽에서네번째가이정철,한사람건너이주이,이재춘대원.해를넘긴88년1월2일이정철대원이단독무산소로정상에올랐다고발표했으나후에정상사진을제시하지못해의혹을받았다.

대륙산악회는이산의두번째동계등정을목표로원정대를결성했다.전해에정찰을다녀온바있는정상무대장(49)을중심으로하해룡(37),이성호(35),이주이(26),이재춘(34),성자영(40),이정철(34),이종연대원(26)등모두9명으로구성된원정대였다.이들은선편으로보낸원정화물지연으로선발대를먼저보내12월10일얄룽빙하위에베이스캠프를설치케했다.그러나후발대로오던이성호대원이갑자기고산병증세로절명하는사고가발생했다.

이대원의죽음에도이들은등반을속행,12월31일네번째캠프(8,000m)를설치하는데성공했다.이어서88년1월1일이주이대원과두명의셀파가무산소로정상공격을감행했다.그러나이대원은8,470미터의암벽지대에이르렀을때양쪽발가락에동상증세가있는것을알고과감히후퇴했다.1월2일,이번에는이정철대원과세명의셀파가두번째공격에가담했다.이대원은산소통하나를지고20~30분간격으로약간씩만마시면서정상을향했다.그러나지친셀파들은도중에차례로등정을포기한채하산해버리고결국에는혼자만남게되었다.

그곳의고도가8,500미터.이제불과80미터밖에안남은것이다.이곳에서이대원은3시간20분이나걸려혼자등반한끝에캉첸중가정상에섰다.86년폴란드에이어이산에대한두번째동계등정이이루어지는순간이었다.이정철대원의등정은허영호의에베레스트동계등정에버금가는성과였다.그러나안타깝게도그는정상에서카메라작동미숙으로사진을남기지못했다.가뜩이나불신풍조가만연되어있는국내산악계에서등반정황을증명할수있는정상사진을완성하지못함으로써그는등정시비라는정신적고통을감수하지않으면안되었다.

고교생들이이룬고줌바캉동계초등정

광운공고OB산악회동계고줌바캉원정대



한편,이해겨울시즌마감을불과4일앞둔88년2월11일광운전자공고에재학중인두고교생이네팔쿰부히말라야에있는고줌바캉(7,743m)을동계초등정했다는외신이국내에전해졌다.이것은국내는물론히말라야등반사상매우특이한등반으로기록되었다.불과10대후반의고교생들이이산을등정했다는것은세계최연소등정기록으로,30대가넘어야고소적응에유리하다는이때까지의통념을깬것이었다.


등정자는유광렬(19),최미호대원(17)으로정진양대장(41),이창호(36),용철호(35),이용원(29),최상현(33)과함께이등반에참가했다.겨울시즌이거의다지나간1월25일베이스캠프(5,100m)를설치한광운공고팀은2월9일까지네개의캠프를전진시켰다.그리고2월11일새벽6시유광렬,최미호대원이셀파3명과함께7,300미터에있는네번째캠프를떠나10시간28분을등반한끝에오후4시28분정상에선것이다.고줌바캉동계초등정의성과도캉첸중가동계등정과마찬가지로허영호의에베레스트동계등정에가려져주목을끌지못했다.

한국,올림픽과함께8천미터급원정확산

히말라야원정대의급격한증가와8천미터등정열기가높아지고있던세계산악계의경향은88년한국산악계에도그대로반영되어나타났다.87년에불과5개팀이진출해히말라야에대한원정열기가한풀꺾이는듯했던한국산악계는88년에다시13개팀으로급증했다.88년은서울올림픽이개최된해로스포츠에대한관심이그어느때보다도고조되어있었고,20년이상지속되던강권정치가막을내리고민주화의열기가고조된해였다.

따라서한국산악계의해외원정도그와같은분위기에편승해대거양산되었다.이해의빅이벤트라할수있는대한산악연맹의에베레스트-로체동시등정계획은당초부터서울올림픽을기념하기위해추진된것이었다.88년에가장많은한국원정대가몰린곳은단연히말라야였다.이해의히말라야진출은봄에1개팀,가을에9개팀,겨울에는3개팀으로모두13개팀을기록했다.특히8천미터를목표로한팀이5개팀이나되었는데,파키스탄의브로드피크(8,047m)와낭가파르밧(8,125m),그리고네팔히말라야의로체(8,516m),다울라기리1봉(8,167m)에각한팀이,에베레스트(8,848m)에는가을(로체와동시목표)과겨울에1팀씩출사표를던졌다.

이것은한국의히말라야진출사상한해동안가장많은8천미터급원정대를파견한기록이었다.
88년의7천미터급원정대는5개팀으로울산합동대가다울라기리6봉(7,268m)과구르자히말(7,193m)등2개봉에도전한것을비롯추렌히말(7,371m),라키오트(7,070m),갸충캉(7,952m),눕체북서봉(7,745m)등6개봉이한국대의목표가되었다.그밖에6천미터급원정대도3개나있었는데가을시즌에눔부르(6,957m)에1개팀,그리고아마다블람(6,812m)에는가을과겨울시즌에각각1개팀이출사표를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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