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원정사 [7-1] 1989년 *-

지방팀러시로절정이룬한국히말라야원정

89년한국산악계는1년동안무려21개에달하는원정대가히말라야로진출해절정기를맞았다.이것은88년의13팀보다무려8팀이증가한것으로한국은62년히말라야에첫진출한이래100개원정대를넘어서게되었다.89년은또한철의장막에갇혀한국산악인들로서는꿈도못꾸던소련의파미르산군으로첫진출이이루어진역사적인해였다.

파미르지역은중앙아시아의중심부에서소련과중국,그리고아프가니스탄의경계를이루고있는고원지대인데이곳으로부터천산산맥과카라코룸이뻗어나갔다.한국인의파미르지역첫진출은네팔,인도,파키스탄에만국한되었던히말라야고산등반영역이확장되었다는데의의가컸다.89년원정대수가폭발적으로늘어난것은6공화국출범이후행해진정부의해외여행완전자유화조치에힘입은바크다.여기에다80년대중반이후고조된지방의해외원정열기가더해져러시를이루었다.

89년의21개팀중13팀이지방에서꾸린원정대였다.80년대초반까지만해도지방에서원정대를꾸릴경우인적,물적자원의부족으로여러산악회에서합동으로대를꾸리는예가많았으나차츰원정경험자가늘어나고경제적인여건과각종정보수집이원활해지면서이제는지방의단위산악회에서도앞다투어원정대를결성하기에이르렀다.

국내첫초오유등반실패,랑시사리등정

에델바이스산악회초오유원정대

89개인합동랑시사리원정대


89년의봄시즌에는단두팀이네팔히말라야로진출했다.서울의에델바이스산악회가국내에서는처음으로초오유(8,201m)에출사표를던졌고,두명으로만구성된원정대가랑탕지역의랑시사리(6,427m)에도전했다.초오유원정대는지윤수대장(47)의지휘아래김종수(26),조영현(34),이인기(26),우선필(25),박우재대원(22)등6명으로초오유남면고줌바빙하로향했다.

초오유(ChoOyu)는네팔과중국의티베트자치구사이에솟아있는데54년3명의오스트리아대가티베트쪽서릉으로초등정했다.그후58년인도대,64년독일대가초등루트로등정한후입산이금지되었다.네팔측루트로는78년오스트리아-독일합동대가고줌바빙하에서남벽으로첫등정에성공했다.그러나이들의등반은네팔정부로부터허가받지않은것이었기때문에전대원이5년간입산금지처분을받았다.


초오유는그뒤81년봄에야입산금지조치가해제되었는데네팔로입산한많은원정대들이낭파라를넘어중국쪽루트인서릉으로등반해왔다.한국대는남면버트레스로등반을시도했지만6,600미터에서역부족으로물러났다.한편랑탕히말의랑시사리에는동국산악회소속오인환대장(43)과박영석대원(27)이단촐하게입산,셀파1명과함께남동릉을경유하여올랐다.

한국대처녀진출한파미르에서분패

대한산악연맹파미르코뮤니즘원정대
89고경산악회코뮤니즘원정대

▲89년7월소련의개방정책으로철의장막이걷히고한국인최초로파미르의코뮤니즘(7,495m)에진출했다.대산련과고경산악회에서8명이도전했으나정상에오르지는못했다.사진은2캠프의대원들과그뒤로펼쳐진플라토와정상.

89년7월,한국산악인들에게도소련산의문이열렸다.소련의지도자고르바초프가주도한개혁과개방정책이산악계에도밀어닥친것이다.마침한국의6공화국정부도북방진출을원하고있었으므로자연스럽게화해무드가조성되어아직정식수교전이었으나소련입국이가능해졌다.한국산악인들은79년부터소련측에파미르지역등반허가를타진해왔었는데10년만에결실을보게된것이다.

대한산악연맹과고경산악회가파견한국내첫소련원정대는파미르최고봉이자소련최고봉인코뮤니즘봉을목표로삼았다.코뮤니즘봉등반은소련측이74년부터개설한파미르국제캠프의제3프로그램에해당하는것으로7월6일부터8월4일까지한달간개설되었다.

대산련의코뮤니즘봉원정대는장봉완대장(37),정승권(28),최경주(29),김상기(36),박쾌돈(26),박인식대원(38)등6명으로구성되었고고경산악회팀은양명선대장을비롯해12명이출국했으나등반팀은권순호,고재성,최철호대원등3명이었다.이해에는파미르캠프에전부25개국,250명이들어왔다.

한국대두팀의베이스캠프는달랐으나등반루트가같았다.1933년에초등된이루트는일명포르탐벡루트라고도부르는데6천미터에형성된대설원파미르플라토를두고위아래로두번의급사면을이루고있다.하단에는제1캠프(5,000m),그리고플라토로올라서서2캠프(5,800m)가상례로설치된다.그리고장장12킬로미터에달하는플라토가가로놓여있고그끝에3캠프(6,000m)가설치되고여기서다시급사면을이루어4캠프(6,400m)를거쳐두산베피크(6,900m)에다섯번째캠프를설치하게된다.

그러나처음대하는소련의산에서한국대들은고전할수밖에없었다.고경산악회팀의권순호,최철호대원은소련산악인두명과함께8월2일6,500미터지점에서강풍을이겨내지못하고돌아섰고대산련팀은8월3일4캠프에서등정길에나섰으나정상을불과300여미터남겨두고돌아서고말았다.

파키스탄진출두한국대세대원사망

성균관대가셔브룸2봉원정대

▲89년6월가셔브룸빙하를거슬러카라반하고있는성균관대산악회가셔브룸2봉원정대포터들.이원정대는7,350미터에서폭설을만나후퇴했다.

카라코룸의가셔브룸2봉에국내최초로도전한성균관대팀은6월12일선발대가베이스캠프에도착해제1캠프(5,900m)를설치한뒤28일본대가들어왔다.김홍기대장(34)의지휘아래김창선(29),이하영(26),박완석(26),이민우(24),좌우진(22)등6명으로구성된원정대는폭설이멎기를기다려7월9일2캠프(6,500m)를설치했다.

그리고10일에는김창선,이민우,좌우진등세명으로구성된등정조가3캠프(7,350m)를설치하고1차공격을노렸으나역부족으로돌아섰다.이어서13일에재차공격길에나섰으나다시악천후가닥쳐와후퇴했다.그후엄청난폭설을만나3캠프에있는무비카메라를비롯한장비들을포기한채7월25일베이스캠프를떠났다.

전주대산악회낭가파르밧원정대

조병선대장(46)등7명으로구성된전주대산악회낭가파르밧원정대는디아미르벽의킨스호퍼루트를택해5월28일등반을개시했다.대원은유길만등반대장(28),채수산(28),정은상(29),하정래(26),김광호(22),전성일대원(26)등대장을포함하여전부7명으로구성되었다.
세계제9위의고봉낭가파르밧은일찍이알프스에서등로주의를선창하고나선머메리가히말라야등반사의첫장을열었던산이다.

그로부터58년뒤인53년독일-오스트리아합동대의헤르만불에의해초등정되기까지독일인에게여섯차례나실패를안겨주었고그과정에서31명의희생자를낸산이기도하다.보다높고어려운등반을추구하는머메리즘의실현대상으로서의낭가파르밧은8천미터급산중에서가장많은희생과고통을요구하는산이었다.한국대는준비해간2천미터의고정로프를설치하며6월22일드디어2캠프(6,200m)건설을마쳤다.

가장어려운구간을통과한이들은등정을낙관하고있었다.그러나다음날이들에게불행이닥쳤다.2캠프로올라오던김광호대원이암벽지대상단부에서유마르조작실수로추락,사망한것이다.초등자헤르만불이말했듯이이산은‘오직희생만요구할뿐아무것도주지않는거인’이었다.낭가파르밧에서의사고는83년악우회이정대대원의바인타브락2봉사고이후파키스탄히말라야에서발생한두번째사고로기록되었다.

디란봉에서두대원눈사태로실종

울산카라코룸히말라야디란원정대



한편3개팀중에서가장먼저출국했던울산의디란원정대는5월25일베이스캠프(3,300m)를설치하고등반을개시했다.디란피크(7,257m)는파키스탄훈자지방의소카라코룸라카포시산군에속해있는‘흰봉우리산’으로미나핀(Minapin)피크라고도불린다.이산은일찍이1892년에영국의콘웨이팀이남면으로탐험한바있고그뒤여러원정대가등정을시도했으나실패끝에1968년8월에야오스트리아대에의해초등정되었다.

울산지역에서가장오래된울산산악회회원들로구성된원정대는정창수대장(48)의지휘아래이수희(27),정윤일(27),하상원(26),정성도(26),정봉화대원(26)등6명이었다.5월27일등반을개시한원정대는6월1일1캠프(4,300m)를설치했으나폭설로장비가유실되었고등반이지연되었다.12일에야재진출에나선울산팀은루트를변경,18일어렵게2캠프(5,100m)설치를마쳤다.

그런데이곳으로눈사태가지나갈줄누가알았으랴.20일밤,서릉아래스노우밴드까지루트공작을마치고2캠프로돌아와쉬고있던하상원,이수희대원의텐트로엄청난규모의눈사태가덮친것이다.다음날아침,베이스캠프에서이들을찾았으나두대원은이미불귀의객이되어버린후였다.원정대는24일까지구조작업을펼쳤으나시신도찾지못하고모든등반을포기해야만했다.

초오유속공등정과시비부른정상사진

대구경북연맹초오유원정대



가을시즌에가장먼저등정소식을전한팀은대구경북연맹의초오유원정대로베이스캠프설치16일만인9월2일서면루트로이동연(31),홍경표대원(27)을올리는데성공했다고발표했다.이들은네팔정부로부터허가된남면루트를버리고중국측루트인서릉통상루트를택해속공으로등정을마침으로써시즌최초등정을기록했다.그러나이원정대는정상에서에베레스트를배경으로한사진을남기지못해후에등정시비에휘말렸다.

▲89년8월30일초오유(8,201m)서릉에4캠프를설치한대구경북연맹초오유원정대.이들은9월2일정상등정에성공했다고발표했으나후에정상사진미비로의혹을받다가등정대원의양심선언이있었다.

원정대는네팔과중국의국경인낭파라(5,612m)를넘어8월29일3캠프(6,700m)를구축했다.대원은박상열대장(46)의지휘아래곽규열(36),이동로(37),이중길(35),이동연(31),김종길(29),홍경표(27),엽상욱(26),김경현(24),여훈동(23),우순식대원(21)등모두11명으로구성되었다.

8월30일7,500미터의북서릉상에4캠프를설치한원정대는다음날이동연,홍경표,셀파1명을정상공격토록했다.그러나이들은1시50분제1록밴드상단에서심설로일단후퇴했다.9월1일재차공격에나선세사람은어제도달한곳에서100여미터높은곳에텐트한동을설치하고하룻밤을보냈다.

이어서2일아침6시50분정상을향해출발했다.제2록밴드를넘어서니오후1시가되었고깊은눈을헤치며느린전진을계속한끝에오후3시23분짙은개스로뒤덮인어떤봉우리에올랐다.그러나그곳은정상이아니었다.한시간을더가서야비로소정상에닿을수있었던것이다.
초오유에대한등정의혹은90년봄에대산련회지「산악인」과월간「사람과山」에‘14좌등정의혹설’이발표되면서더욱구체화되었고이것은후에등정자의한사람인홍경표대원이「사람과山」96년1월호에‘양심선언’을함으로써미등정으로결론나게되었다.

18년만에등정된로체샤르

대구등산학교로체샤르원정대



대구등산학교출신들로구성된로체샤르원정대도10월4일등정에성공했다.로체샤르는71년과85년두차례에걸쳐한국대가도전했으나뜻을이루지못하고숙제로남아있었다.등산학교개교7년을맞아추진된이원정은조남제단장(45)과한광걸대장(45)의주도로차재우부대장(38),김영수(31),마종호(31),강성도(30),천영호(29),안승호(28),권춘식(27),이영학(26),박재욱(25),정용진(25)등12명으로8월16일베이스캠프를건설했다.


22일부터남동릉으로등반을개시한이팀은9월4일1캠프(5,700m),9일2캠프(6,100m),17일3캠프(7,000m),24일4캠프(7,700m)를설치했다.10월3일권춘식대원과두셀파가5캠프(8,100m)를설치하고다음날정상공격에나섰다.새벽6시20분,마지막캠프를나선세사람은12시30분에동봉에도착했고1시20분에는콜을거쳐오후3시마침내정상에올라섰다.이산에대한7번째등정이었다.그러나이들도정상사진을제시하지않아‘14좌의혹설’에시달려야했다.그러나이원정대는<공포!그러나영광의로체샬>이라는상세한보고서를남겨그러한의혹을불식시켰다.

캉첸중가산군의얄룽캉국내첫등정

원주치악산악회얄룽캉원정대

▲89년동계얄룽캉원정대

캉첸중가산군의또다른8천미터자이언트봉인얄룽캉에출사표를던진원주치악산악회는9월19일베이스캠프(5,470m)에서등반을개시했다.대원은박순조대장(46),김동욱부대장(36),강병호등반대장(30),홍문표(34),김영일(27),서강호(24),심영학(46·의사)등모두7명으로원주지역기업체와시민들의성원으로원정이성사될수있었다.
9월23일남동면에1캠프를구축한원정대는28일2캠프를설치했다.이어서10월6일3캠프가설치되었고셀파들의비협조로등반이지연되다가12일에4캠프(7,900m)까지진출했다.여기서서강호대원과두셀파가다음날새벽5시에출발,오후3시55분어렵게정상에올라섰다.이것은강원도지역에서의첫8천미터급등정이었다.치악산악회의이등정은84년캉그루(6,981m)등정에이은두번째히말라야등정이었다.

FONT>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