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 [8-2] (1990년) *-
캉첸중가,마칼루,안나푸르나연속패퇴

90년가을시즌에는에베레스트외에도충북연맹합동대가캉첸중가중앙봉(8,482m),울산청산악우회팀이마칼루(8,463m),그리고서울의어센트산악회가안나푸르나1봉(8,091m)에각각도전장을냈다.결과는3개팀모두가등정에실패,에베레스트와여름시즌낭가파르밧의두한국대패퇴까지합하면무려6개팀이연속해서8천미터급자이언트봉에서고배를마시는저조한기록을남겼다.

충북연맹캉첸중가중앙봉원정대

대산련충북연맹이파견한90한국캉첸중가원정대는8월13일본대가출발했다.이들은캘커타화물의통관지연으로카라반출발이늦어져9월21일에야얄룽빙하5,350미터지점에베이스캠프를건설했다.이들의목표는캉첸중가산군에서아직한국대가시도하지않은중앙봉이었다.주봉은87년겨울부산대륙산악회이정철대원이동계2등을기록하며올랐었다.

▲캉첸중가2캠프(6,250m)바로밑에서발견된예티(?)의발자욱

23일부터등반을개시한원정대는두번에걸친폭설로일주일만인30일에제1캠프(6,000m)를설치했고,10월2일에2캠프(6,250m),8일에3캠프(6,900m),그리고10일에는4캠프(7,200m)에진출,정상공격준비를마쳤다.10월12일,공격조박경식대원과셀파2명은새벽5시마지막캠프를출발했다.커다란크레버스를우회하여65도경사의꿀루와르를오르는데5시간걸린끝에소련대가비박지로사용했던커다란바위를만났다.

고도는7,900미터.이곳에서동상으로발의통증을호소하던셀파는하산하고박대원과1명의셀파만이계속해서정상으로나아갔다.산소통없이등반을감행한공격조는중앙봉으로보이는봉우리를향해마지막안간힘을썼다.그러나그곳은중앙봉이아니라전위봉이었다.등반을속개한두사람은휘몰아치는눈보라를헤치며오르다가오후3시30분역부족으로돌아서고말았다.이들이도달한지점은8,350미터,정상을불과130여미터남겨두고아깝게돌아선것이다.원정대는이후재기의기회를노렸으나캉첸중가는끝내길을열어주지않았다.

울산청산악우회마칼루원정대



한편쿰부히말의세계5위봉마칼루에도전한한국대는9월3일선발대가베이스캠프(4,800m)를건설했다.이팀은또한울산지역에서최초로결성된8천미터급원정대로주목을받았다.원정을위해사재를쾌척한김관준대장(50)을비롯이건욱부대장(41),이상호등반대장(31),박규호(28),김영태(26),신영호(39),김미애(여·30),황두환대원(44·의사)등모두8명으로구성된울산팀은모두청산악우회소속회원들이었다.

이들은캉첸중가팀과마찬가지로캘커타로선박수송한화물의통관지연으로9월9일에야본대가카트만두를떠났다.먼저도착한선발대는본대가합류할때까지동남릉루트에제1캠프(5,400m)와2캠프(6,100m)를구축해놓았다.본대가헬기두대를동원해눔까지장비를수송하여9월16일합류하자나머지캠프에대한루트공작이이어져17일에는6,700미터의동남릉콜에3캠프를설치했다.

말로만듣던이곳의바람은가히엄청난것이었다.워낙바람이심해텐트대신설동을팔것을고려해보았으나눈이단단하지않아포기했다.그런바람을뚫고19일에는4캠프(7,200m)가설치되었다.일단하산한이들은9월23일제5,6캠프를설치하기위해다시베이스캠프를떠났다.심한바람으로이미설치해놓은텐트들이일부파손되어있었지만26일에는4캠프까지전진했다.그런데28일새벽2시경2캠프에눈사태가덮쳐텐트와장비들을흔적도없이쓸어가버렸다.그곳을혼자지키던셀파1명은극적으로탈출하여구조를기다리고있었다.이사고로등반보다전대원의안전이더중요하다고판단한김관준대장은철수를명령했다.

어센트안나푸르나1봉원정대



84년겨울은벽산악회의김영자대원이올라산악계를떠들썩하게했고,후에프랑스대가의혹을제기해다시화제를모았던안나푸르나에6년만에한국대가도전장을던졌다.어센트산악회가추진한이원정은노멀루트인북면이아니라히말라야거벽등반의상징으로남아있는남벽을노린것이어서관심을끌었다.


이벽의제8등을노리고안나푸르나빙하에들어온한국대는박봉래단장(58)과전두성대장(37)을비롯김융기부대장(36),조양호(40·의사),노영수(32),유순복(31),안충근(27),노원일(28),이정권(25),신동석(25),황규화(24),김민성대원(34)등모두12명으로구성되었다.

▲90년안나푸르나1봉남벽원정대발대식

한국대는본격적인등반을개시한일주일만에4,800미터에제1캠프와5,100미터지점에2캠프를설치했고,8월31일에는6,100미터에3캠프가구축되었다.중간에셀파의우두머리인사다가말썽을부려해고하자셀파들이등반을거부해대부분의루트공작은대원들에의해이루어졌다.

3캠프부터는등반이매우어려워졌다.루트의난이도도문제였지만매일같이폭설이내렸다.한국대는일주일간시도하던리지를포기하고500미터가량좌측으로우회하여4캠프예정지가바로보이는꿀루와르로진입했다.70여도경사에400미터에달하는이꿀루와르를등반하다눈사태를만나4명의대원들이극적으로목숨을건지기도했다.

그러나계속되는시도에도불구하고꿀루와르는문을열어주지않았다.등반이재개되어4캠프예정지를눈앞에두게되었으나이때는이미식량은물론대원들의체력도거덜나버렸다.여기서대장단은숙의끝에철수를결정했다.이미10월하순으로접어들었으나이때까지이들이오른고도는6,700미터에불과했다.

가을시즌7천미터급네팀모두등정

90년가을네팔히말라야로진출한9개한국원정대들중에서8천미터급에서는다섯팀중한팀만이등정하는저조한기록을보인반면,7천미터급산에도전한4개팀은모두등정하여대조를보였다.이들4개팀은모두네팔중부의안나푸르나와다울라기리산군에서등반활동을펼쳤다.


산비둘기산악회닐기리북봉원정대

▲정상에선박주홍대원

7천미터급4개팀중에서가장먼저승전보를올린것은닐기리북봉(7,061m)원정대였다.산비둘기산악회가꾸린이원정대는강한철대장(35),정기화부대장(34),박주홍(27),박용환(26),김연수대원(25)등5명으로구성된소규모팀이었다.

이들은일찌감치카트만두를떠나8월17일3,800미터에1차베이스캠프를건설했다.안나푸르나산군에있는닐기리는북봉,중앙봉,남봉으로이루어졌는데주봉이라고할수있는북봉의초등정은1962년일본대가북벽을통한서릉으로,2등은81년일본대가동릉으로이룩했다.

한국대가택한루트는남동릉,이곳은80년봄한국대(대장오인환)가루트초등을노렸으나6,200미터에서역부족으로돌아섰고,그후82년봄일본대가초등을,83년가을호주팀이재등한루트였다.
원정대는8월5일카트만두를떠나12일간의카라반끝에베이스캠프를건설했고26일에제1캠프(5,200m),9월1일2캠프(5,800m),6일에는3캠프(6,500m)를설치했다.비교적순조로운등반이계속되었다.

9월7일,오전8시박용환,김연수대원과셀파2명이마지막캠프를떠나4시간만에정상에오르는데성공했다.그런데이들이오른정상은83년호주팀이오른곳으로이곳을초등정한일본대의정상과는다른곳임이밝혀졌다.일본대가오른정상은좌측칼날능선을10시간정도가야만하는거리라는것이다.그러나과연이들이오른곳이닐기리북봉의정점이었는지는명확한자료가없어가려지지않았다.산비둘기팀은9월8일두번째등정길에나서박주홍대원과셀파1명이오전7시36분정상에올랐다.


동아대글레이셔돔원정대

▲정상에선백진국대원

같은안나푸르나산군의글레이셔돔에도전한동아대산악회원정대는9월2일베이스캠프를건설한지8일만에정상에오르는쾌거를올렸다.글레이셔돔은이미84년10월27일강릉합동대엄개성대장에의해북면루트로등정된바있다.글레이셔돔이란산명은1956년마차푸차레봉을정찰하러안나푸르나남쪽빙하로들어온영국의로버츠가빙설로덮인둥근모양의산을발견하고명명한데서비롯된것인데,86년네팔정부가‘타르케캉(TarkeKang)’이란네팔명을붙였다.

이산에도전한동아대팀은정민규대장(34)을비롯해서이석호등반대장(28),김인숙(여·26),윤종호(24),백진국대원(23)등5명으로만구성된단촐한원정대였다.이원정은동아대학교개교44주년및부속병원설립기념으로추진된것이었다.6년전의강릉팀과같은북면으로등반루트를잡은이들은초반부터속공전략으로나섰다.9월3일제1캠프를설치하고5일에2캠프(6,200m),그리고7일에는3캠프(6,400m)를설치하면서등정준비를마쳤다.

그리고8일새벽4시윤종호,백진국대원과셀파2명이2캠프를떠나정상을향했다.그러나이들은고도차1,000미터를극복하지못하고정상을200여미터남겨두고후퇴했다.9월10일,이번에는백진국대원과셀파2명이재차정상공격을시도했다.이번에는3캠프에서새벽3시40분에출발했다.이들은전날퇴각지점을8시경통과해서12시40분드디어정상에올랐다.마지막캠프를떠난지9시간만의등정이었다.

포항거봉산악회추렌히말원정대

한편마나슬루산군의추렌히말에출사표를던진포항거봉산악회는이산의서봉과중앙봉을동시에등정하면서기염을토했다.

김규영대장(29)을비롯해서오흥일부대장(29),김육년(27),홍성춘(26),장이석(26),임종걸(23),권오수대원(22)등7명은모두포철공고동문으로개교20주년을맞아포항제철의지원을받아원정대를꾸렸다.이들은모두가히말라야초행길이었는데도전대원등정이란야심찬계획을세웠다.

8월14일74명의포터를거느리고카라반을시작한원정대가카페빙하최남단4,550미터지점에베이스캠프를건설한것은8월26일,이틀뒤부터는본격적으로등반을개시했다.9월2일,구스퉁북릉하부의빙하에제1캠프(5,050m)를설치하고다음날에는구스퉁북릉을올라서추렌히말의3개봉우리가잘보이는곳에2캠프를설치했다.6일에는다울라기리6봉서릉의하단부에3캠프(6,280m)를,9일에는복병처럼숨어있는크레바스지대를통과하여추렌히말동봉의삼각형설벽밑에4캠프(6,600m)를설치했다.

그리고11일에는부대장과두셀파가동봉으로이어지는급경사의설벽을통과,중앙봉남면쪽으로고정로프를이용해하강하여5캠프(6,870m)설치를마쳤다.9월13일전대원이4캠프를출발하여5캠프를향했다.중도에홍성춘,장이석대원은역부족으로후퇴했고나머지5명의대원들은눈보라에시달리며마지막캠프에도착했다.9월14일새벽4시40분,먼저오부대장과김육년,권오수대원,그리고두셀파가서봉을향해출발했고,5시10분에김규영,임종걸대원이중앙봉을향했다.

중앙봉공격조는날카로운설릉상의조그만암릉을몇개넘어오전9시20분정상에다다랐다.서봉공격조는5캠프에서중앙봉의남쪽면으로오르다가좌측설사면으로길게트레버스하여설릉위로올라섰다.그리고9시30분에그설릉이끝나는지점에있는날카로운정상에도달했다.7명의대원중5명이그것도2개의정상에동시에올라서는순간이었다.중앙봉은70년가을일본대이후두번째등정이었고,서봉은네번째등정으로기록되었다.


한오름산악회안나푸르나3봉원정대

▲정상에선김길우대원과셀파장부

90년가을시즌의마지막승전보를보내온팀은부산한오름산악회의안나푸르나3봉원정대였다.송표명대장(42)과박봉립부대장(39),김길우(25),김양섭(30),유정남대원(여·27)등5명으로구성된이원정대는한국인에게는아직미등으로남아있던안나3봉에도전,베이스캠프설치13일만에정상에오르는개가를올렸다.

안나푸르나3봉은1984년에조선대산악회팀(대장고광수)이남면루트로시도했으나6,700미터에서패퇴했고,86년서울산악회가역시남면으로강가푸르나와연속등정을노렸으나제대로등반이이루어지못했었다.따라서1봉,2봉,4봉은이미한국대에게등정이되었지만3봉만은정상을내주지않고있었다.한오름산악회는이산의북면으로등반루트를잡고9월18일베이스캠프(4,500m)를건설했다.

25일제1캠프(5,400m)를설치하고27일급경사의설벽을통과하여2캠프(6,150m)를올렸다.10월1일,셀파들만으로루트공작을한끝에6,450미터에3캠프를설치했다.여기서4캠프를생략하고김길우대원과셀파셋이서정상공격을시도했지만등반속도가느려스노우밴드지점에서후퇴했다.10월5일다시정상공격에나선김대원과세셀파는13시간18분간등반끝에마침내정상에섰다.한국대의이등정은인도,일본,이태리,영국,스위스,네팔팀에이어8번째등정으로기록되었다.

한맺힌히말출리서봉동계초등

계명대산악회히말출리서봉동계원정대



90년겨울시즌히말라야로향한한국대는유일하게계명대산악회가파견한히말출리(7,893m)원정대뿐이었다.계명대팀은전년도원정에서숨진고정재홍대장을추모하고이산의겨울철초등을목표로다시등반대를결성하게되었다.네팔중부마나슬루산군에있는히말출리는주봉외에도서봉(7,540m)과북봉(7,371m)으로이루어졌는데서봉은78년봄일본대가,북봉은85년가을에울산원정대(대장이규진)가초등정했다.

주봉은60년일본대가남벽루트로초등정한이래17회의도전이있었으나단지6회의등정이이루어졌을뿐이었다.특히겨울철에는86년폴란드대가시도했으나서릉6,200미터에서단념하고어느팀도등정에성공하지못했다.산명히말출리(Himalchuli)는네팔어로‘날카로운산’이란뜻으로등반의어려움을상징적으로표현하고있다.주봉의동계초등을목표로한계명대팀은박동설대장(31)의지휘아래류구열(25),이석환(25),박근영(25),이종선(23),홍정기대원(24)등대부분재학생으로구성되었다.

이들은일찌감치카라반을떠나11월18일에는베이스캠프에도착했고24일에제1캠프(5,750m),29일에2캠프(6,350m)를올리면서사실상동계시즌이전에등반을개시한셈이었다.12월로접어들어히말출리등반의가장큰관건인100여미터급경사의대설벽을돌파하여12월4일3캠프(6,750m)설치를마쳤다.12월7일에는4캠프(7,240m)가어렵게설치되고류구열,이석환대원과셀파가계속해서7,500미터에5캠프를설치하고정상공격준비를마쳤다.그러나이때부터눈보라가불어닥치면서악천후가계속되자이들은이틀간이나버틴끝에3캠프로후퇴하고말았다.


원정대는여기서중대한결정을내렸다.최종캠프에서주봉정상까지는불규칙한크레바스와깊은눈으로접근이곤란하다고판단한이들은목표를주봉에서서봉으로변경하게되었다.서봉등정길에나선원정대는한차례정상공격을시도했으나무위로끝났다.그리고12월19일3캠프를홀로떠난이석환대원이8시간의사투끝에마침내강풍이몰아치는서봉정상에올라섰다.베이스캠프설치32일만의일이며이산의겨울첫등정이이루어지는순간이었다.

-출처/www.himalayaz.co.kr/월간마운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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