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 [11-1] (1993년) *-

한국18개팀히말라야진출

93년은한국산악인들의해외원정이여러지역으로분산되면서모처럼히

말라야등반대수가감소되었다.한햇동안전부18개팀에서149명이히

말라야원정에참가해전년도30개팀214명보다현격히그수가줄어든

것으로집계되었다.네팔지역으로6팀,중국지역으로3팀,파키스탄5팀,

인도2팀,그리고구소련지역으로2팀이진출하여각지역별로비교적

고른분포를보였다.

이것은한국대가네팔지역을선호하던과거의성향에서완전히벗어났음

을보여주는예이다.또한에베레스트에5개팀이몰린것을비롯전부9

개팀이8천미터급원정대였고나머지는주로인도나파키스탄에서한국

대가경험한바없는고봉을택했다.이렇게한국대의해외원정성향이다

변화되고있는것은중국,소련과의수교로인한대상지의광역화와,6천

미터급산에대한초등루트나벽등반루트를택하는원정대가점차증가하

고있기때문이었다.

최고봉에베레스트에한국5팀공략

초등정40주년을맞은에베레스트에전세계산악인들의관심이집중된

가운데한국산악계에서도예년에보기드물게한해5개원정대가러시를

이루었다.특히네팔의에베레스트입산료가오르기직전인봄시즌에는

한국에서4개팀(전체23개팀)이몰려각기다른루트로등반을개시했다.

대한산악연맹은국내최초로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를파견남동릉을공

략했고,동국산악회팀은한국인에게여섯번의실패를안겨준남서벽에

도전장을냈으며,전북산악연맹팀은남릉경유남동릉을,그리고유일하게

티베트쪽으로접근한히말라얀클럽은노스콜을경유한북동릉루트를택해

한국초등을노렸다.(사진5-15)

허영호,에베레스트남북종단

히말라얀클럽초모랑마원정대



이들중가장먼저낭보를보내온팀은히말라얀클럽팀이었다.한국최초

로최고봉북쪽루트로도전한이팀은고인경단장(50·파고다외국어학원

장)이사재를털어꾸린원정대로오인환대장(47)을포함성순제부대장

(47·변호사),허영호등반대장(39),김범택(30),조재철(27),홍성택대원

(27)등6명으로구성되었다.

결과는허영호등반대장과나티셀파가4월13일정상에올랐다가남동릉

으로하산해두번째에베레스트종단기록을수립했다.허대장과셀파는

새벽8,300미터의비박지를출발,산소를사용하며7시간20분을오른끝

에오후1시20분정상에도달했다.이것은프레몬순기등반사상가장빠

른기일등정이란새기록이수립되는순간이었다.이등정으로허영호는

2회의에베레스트등정기록을갖게되었다.

정상에서두사람은올라온북면루트로내려가는것보다많은팀이있는

남면루트로내려가는것이더안전하다고판단,남동릉으로하산길을잡

았다.이미산소가바닥나기력이다떨어진이들은남봉밑8,600미터지

점에서더내려가지못하고비박을해야만했다.다음날두사람은거의탈

진상태에서한국의여성원정대제3캠프에도달하는데성공함으로써모

험적인북-남종단등반이마무리되었다.이등반은88년봄일본-네팔-

중국합동대가수립한남-북교차등반이후두번째로기록되었는데지원

을받지않은첫번째기록이다.(사진5-18)

한국여성에베레스트에오르다

대한산악연맹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

히말라얀클럽의허대원이등정에성공할당시한국여성대는로체페이스

에3캠프(7,300m)를건설해놓고있었다.대한산악연맹에서국고사업으

로파견한이원정대는출국전집행진과의많은불협화음끝에원정이성

사되었다.대장은서원대산악부장출신지현옥(32)이맡았고부대장에정

명숙(33),그리고대원에는곽명옥(30),이영순(29),오은선(27),권경옥

(27),임희재(26),강인숙(26),유명희(26),손승주(25),정근희(25),박금

옥(24),최오순(24),김순주(23)등모두14명의여성산악인이최고봉등

정을위해한마음으로뭉쳤다.

등반은순조롭게진행되어이들은4월23일사우스콜에마지막캠프(8,000

m)를설치하러올라갔다.그곳에는전날네팔여성으로는최초로최고봉

등정에성공한파쌍라무가남봉에서내려오지못하고있으니구조를요

청한다는교신이기다리고있었다.하지만한국여성대로서는그에응해줄

여력이없었다.이제갓8천미터에올라온그들은아지고소적응이안된

상태였기때문에자기몸마저도관리하기힘든상황이었고셀파들조차도

날씨가나쁘다는이유로구조를다음날로미루었다.

그리고다음날셀파들이눈보라로등반을포기하고내려가버림으로해서

파쌍라무의구조가능성은없어져버렸고그녀는결국사망하고말았다.

첫번째정상공격의기회가그렇게지나간후에5월5일두번째로사우스

콜에김순주와셀파2명이올랐으나역시심한바람으로후퇴했다.그리

고5월10일,지현옥대장과최오순,김순주대원이마지막이될공격에

나서셀파4명과함께마침내에베레스트의정상에섰다.

한국여성으로서는최초이며세계에서는16,17,18번째의여성등정자가

탄생한순간이었다.이날은에베레스트등정사상가장많은산악인이하

루에정상에오른날이기도했다.무려11개국에서40명이단하루동안

에지구의꼭지점을도달하는놀라운기록이세워졌다.(사진5-14,5-16)

무산소등정얻고,두대원잃다

동국산악회사가르마타남서벽원정대



한국산악인에게다섯번의패배를안겨주었던남서벽에도전한동국산악

회의‘4326한국사가르마타남서벽원정대’는의욕적으로등반을개시했

다.이인정단장(48)과이종량대장(38)의지휘아래박영석등반대장(30),

김진성(29),남원우(28),안진섭(25),김형우(25),김태곤(24)등8명으로

구성된이팀은악천후속에서도등반을강행,4월19일8,300미터5캠프

지점에서록밴드에150미터고정로프를설치하고정상공격준비를마쳤다.

이후신설이내려복구작업에시간을소모한끝에5월5일박영석과2명의

셀파가다시5캠프에올랐다.그러나록밴드상에는건설이많이내려스

텝을만들면서오르기가불가능했다.동국대팀은결국8,450미터지점에

서발길을돌릴수밖에없었다.이로써남서벽은국내산악인들에게통산6

회의실패를안겨주면서커다란숙제로남게되었다.

남서벽등반에실패한동국대팀은이번에는등반루트를바꿔5월11일남

동릉을오르기시작했다.5월15일사우스콜에도착한이팀은다음날곧

바로정상공격에나섰다.박영석등반대장과김진성,안진섭,김태곤대원

이어느정도간격을두고정상을향해출발했다.박대장은이미남서벽에

서고소적응이된상태여서산소장비를휴대하지않았다.

네명의대원중김진성대원은남봉리지에서체력이떨어져등정을포기

했고,나머지세대원은오후2시경정상에섰다.남서벽등정대신남동릉

으로3명의등정자가배출되었으며특히박영석대장은국내최초로최고

봉무산소등정기록을세우게되었다.그러나이들에게커다란불행이기

다리고있었다.이들이하산을시작하여두대원이남봉에도달했을때힐

라리스텝에서산소가떨어진안진섭대원이탈진해서몸을가누지못하고

있었다.

박대장이다시올라가그를인도해내려왔으나계속해하산하던안대원이

결국마지막캠프로오지못하고실종되었다.안대원의시체는다음날2캠

프근처웨스턴쿰에서발견되었다.불행은그것으로끝나지않았다.대원

중남서벽에대한미련을버리지못하고있던남원우대원이남서벽을혼자

서오르겠다고2캠프를출발,등반을계속하다가결국7,800미터지점에

서추락사망한것이다.안대원과남대원의조난은90년10월한일합동대

의함상헌대원이남봉근처에서추락사한이후에베레스트에서의두번째

조난사고로기록되었다.(사진5-17)

날씨운없어패퇴한전북연맹팀

93전북산악연맹에베레스트원정대

한편93년봄의국내팀중에서는가장먼저출국한전북연맹원정대는카

라반을시작하기도전에예상치못한난관에봉착해일정에차질을빚었다.

13명으로구성된전북팀은등반대원을9명으로제한한네팔관광성의새

규정으로인해같은문제에봉착한대산련의여성대와함께형식상새원

정대를결성해야만했다.여성대도14명으로구성되었기때문에5명을위

해별도의원정대를만들어야만할형편이었다.두원정대는1만달러에

달하는입산료를지불하고나서야전대원이카라반을출발할수있었다.

따라서엄격히따지면93년봄시즌의한국대는4개팀이아니라5개팀이

된셈이다.전북연맹원정대는전병만원정대장(43)과김용욱등반대장(35)

을중심으로이의재(31),유한(31),양재영(31),최정길(29),허선규(28),

유신영(27),진재창(27),한왕룡(27),신현민(25),박경일(25),이동윤(25)

등13명으로구성된전북지역의합동대였다.

우여곡절끝에3월24일전대원이베이스캠프에집결했고3월30일제1캠

프,3월31일2캠프를설치했다.그리고4월15일남릉7,200미터지점에

3캠프를,19일에는7,900미터지점에4캠프를설치하는데성공했다.
4월24일,1차공격조로선발된신현민,이동윤,진재창대원과셀파2명

이4캠프까지진출한후다음날새벽2시정상공격에나섰다.

그러나도중에셀파1명이두통으로등반을포기했고5시경에는진대원의

산소통에이상이생겨돌아섰다.나머지두대원과셀파도허리까지차는

깊은눈을헤치며전진하다해발8,400미터지점에서역부족으로후퇴를

결정했다.전북팀은적설량이많은것이실패의원인이었다고판단,내린

눈이어느정도크러스트되기를기다렸다.그리고5월7일,최정길대원과

다와셀파가2차공격을시도했으나역시눈이깊어제대로등반도못하고

8,300미터지점에서돌아서고말았다.

전북팀은여기에굴하지않고5월8일유한,허선규,이동윤대원을지명해

3차공격에나섰으나눈이허리까지빠지기시작했고루트를확인하며등

반하는데어려움이커져오전9시경끝내등반포기를선언했다.안타깝

게도그이틀뒤인5월10일에베레스트등반사상가장많은인원인40명

이정상을밟았다는소식을들으면서전북대는눈물의철수를했다.

호남산악인최초의에베레스트등정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초모랑마원정대



93년에베레스트에도전한마지막한국대는가을시즌티베트측루트에

도전한광주전남학산련팀이었다.이미4년전인89년겨울에에베레스트

에도전했다고배를마신바있는광주-전남지역산악인들이재차원정

대를꾸린것이다.이원정은광주시와전라남도,그리고각대학산악부와

가입단체들의지원금으로꾸려진것으로범전남권원정대였으며국내통

산23번째에베레스트원정이기도했다.

광주-전남초모랑마원정대는4년전에에베레스트원정에참가한바있는

임형칠대장(36)의지휘아래김영학등반대장(33),최행준(27),박현재(25),

정우연(24),이정현(22),정득채(27),박헌주(26),나관주(26),정찬주(26),

이창수(37·보도)등11명대부분이학생산악연맹소속대원으로구성되었

다.이들은네팔을경유육로로티베트로들어가8월22일에베이스캠프(5,200m)를구축했다.

8월23일등반을개시한호남팀은9월1일노스콜에3캠프(7,010m)를설

치했고,18일4캠프(7,900m)를설치한후다음날정득채,박헌주대원이

5캠프설치를겸한정상공격에나섰다.그러나이들은아직고소적응이

안된상태였기때문에8,100미터에서돌아서야했다.이후에도두번이나

정상공격을준비했으나번번히5캠프도설치못하고포기했다.

10월5일,박현재대원은3명의셀파를데리고3캠프를떠나또다시공격

에나섰다.그리고이날오후늦게록밴드바로밑에5캠프(8,300m)를설

치하는데성공했다.다음날새벽4시45분,희미한달빛을받으며박현재

대원과1명의셀파가마지막캠프를출발했다.오전7시에북동릉과만나

는지점까지오른이들은12시에는세컨드스텝을통과해8,600미터고도

까지올랐다.공격조는이곳에서전위봉까지우측으로우회하며등반했다.

그리고완만한설릉을계속오르니거대한커니스로이루어진정상이나

왔다.오후2시55분커니스상단에삼각대로보이는쇠파이프를잡고오

르니정상이었다.초모랑마여신이4년만에광주-전남산악인들에게정

상을내주는순간이었다.

93거봉산악회초오유-시샤팡마원정대



한국산악인에게개방된지3년째를맞는티베트에는전년도에이어초오유

(8,201m)와시샤팡마(8,027m)연속등정을목표로한원정대가들어왔다.

서울시산악연맹에소속된거봉산악회에서결성한이원정대는강태선단

장(44·동진레저대표)을포함홍영길부대장(39·거봉레포츠대표),장재순

부대장(써미트대표),엄홍길등반대장(33)과이상근(35),소흥섭(34),

박병태(28),박종숙(25),민경태대원(24)등모두9명으로구성되었다.

네팔을거쳐육로로국경을넘어티베트로들어간원정대는8월27일초오

유베이스캠프(5,100m)에도착했다.이로부터12일뒤인9월8일초오유

서면에3캠프(7,250m)를설치하고정상공격채비를마쳤다.9월10일밤

10시엄홍길,민경태,최병수대원이정상을향해출발했다.이들은전날

내린눈으로인해깊은눈을헤치며전진하다가새벽6시7,600미터지점

에설동을파고두시간눈을붙였다이지점부터는엄대원이스페인팀

두명과직등루트로오르고나머지대원들은본래루트로오르기로했다.

다시깊은눈과씨름을하며등반에몰두한지만11시간여만인11일오

후8시25분엄대장은스페인대원1명과마침내정상에도달했다.그로부

터1시간뒤에는민경태,최병수대원도정상에오르는데성공했다.초오

유등반을성공적으로마친거봉팀은서둘러캠프를철수해니얄람에서

하루를쉰뒤9월18일시샤팡마베이스캠프에도착했다.

북서릉노멀루를노린거봉팀의엄홍길,박병태,민경태트리오는셀파

2명과함께262캠프(6,750m)를세우고,그다음날엔더이상못올라가

겠다는셀파들을하산시키고세대원만으로3캠프(6,950m)를설치했다.

이어서세대원은9월28일새벽1시30분정상을향해출발했다.이들은

예상보다러셀을하는데시간이오래걸려7,200미터지점에서잠시휴

식을취한후오전8시30분다시정상을향했다.

그러나오후3시까지등반을해도정상이한참멀리있었다.다시한번비

박하기로결심한이들은설동을팠으나그곳은너무추워머물수가없었

다.하는수없이세사람은정상공격을계속하기로하고오후5시쯤설동을

나왔다.그로부터밤11시경해발7,450미터지점에도착했을때는모두가

지쳐더이상움직일수가없었다.다시설동을파고비박을한이들은다음

날오전10시30분에또다시정상을향해출발했다.조금가다가박병태대

원이졸고있어엄대장은그를하산시켰다.

나머지두사람은다시정상을향해무거운발걸음을옮겼다.이들은오후

내내등반을계속해아주가파른설사면을올라오후7시30분엄대장이

먼저정상에도달했고30분뒤에는민대원도정상에올라두사람은국내

에서두번째로8천미터급2개봉연속등정을이룩했다.그러나이들이어

렵게3캠프에도착했을때먼저하산한박병태대원이실종된사실을알게

되었고결국그는영영돌아오지않았다.거봉산악회는영광과비극을동

시에겪으며티베트원정의막을내렸다.

@@81년부터한국산악인들이꾸준히진출해온파키스탄지역에는

전년에9개팀이라는사상최다원정대를기록했는데반해93년에는

5개팀으로줄었다.이는한국산악계의숙원중하나였던낭가파르밧

이전년도에등정되면서파키스탄쪽으로의열기가잠시식었기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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