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악산과 인왕산 산행기 *-
북악산과인왕산산행

산행일시/2007,11,18.일요일오전09:30.

모임장소/전철1호선종각역3번출구앞.

산행회원/가을님,편강님,하늘님,트로이님,미풍님,서리태님,

소나무.

산행코스/종각역(전철1호선3번출구)-종로타워앞마을버스02번

승차-성균관대학교후문와룡공원입구하차-말바위

쉼터-숙정문-촛대바위-곡장-청운대-백악마루(북악

산정상)-돌고래쉼터-창의문-부암동-기차바위-인왕산

북악산산행기점에서

오늘은서울의진산북악산과인왕산산행을하기로하였다.

종각역3번출구앞에도착하니트로이님과미풍님이와있다.

가을님이도착하고,편강님이오고,서리태님이다가왔다.

하늘님은산행기점인와룡공원에서만나기로하였다.

우리는3번출구로올라가종로타워앞을지나서,

마을버스타는정류소에서조금기다렸다가2번버스를타고,

말바위쉼터아래서내려걸어올라가다가주차관리소앞에서

하늘님이손을들어인사를한다.만남의반가운인사를나누고,

공터에둘러서서트로이님의리도로가벼운스트레칭운동을하였다.

오늘서울날씨가영하3도라고하는데,찬바람이불어오고

추위를느끼게하였다.걸음을빨리하였으나땀이나지않았다.

가을은이렇게멀어지고,단풍은지고낙엽은길에산에딩군다.

말바위쉼터에이르니관리사무실에서주민등록증을제시하고

산행신청을한후번호표를받아목에걸고산행을하란다.

사무실을벗어나니서울성곽을따라길이연결되어있다.

성곽넘으로먼저보이는것이그유명한상청각건물이다.

지금은서울시에서매입하여대중고급식당으로변했단다.

그리고북악스카이웨이팔각정이가까이보인다.

다시조금오르다보면숙정문이우리앞에다가선다.

숙정문(肅靖門)은서울의4대문중의북문에해당한다.

북악산은청와대뒷산으로유명하지만,경복궁의진산이다.

서울성곽은남산에서시작하여흥인지문(동대문)을지나

낙산(駱山/125m)에서북악산(342m)으로해서,

인왕산(338m)을지나서대문에서숭례문(남대문)을지나,

다시남산(262m)으로이어지는약18.2km이다.

옛날조선조시대는경복궁을중심으로동쪽의흥인지문,

서쪽의돈의문,남쪽의숭례문,북쪽의숙정문과

그중앙에보신각을두어,이서울성곽안의4대문안을

서울(한양)이라고하였는데,현재는삼각산(북한산)과

도봉산,수락산,불암산,봉화산,망우산,용마산,까치산을

경계로한강을건너남한산성과청계산,관악산으로

이어지는서울의산과근교산까지서울이확장되어

전통문화를자랑하는세계적인도시로발전하고있다.

촛대바위

북악산에는유난히소나무가많아가을이지만,

그푸르름이산을지키고있어산객들의마음을

한결푸르게밝게이끌어주고있음을느끼며오른다.

촛대바위는별로높지는않지만,눈길을끌어당긴다.

곡장이라는곳을올라가니성곽의전망대와같다.

이곳에는해설자가있어곡장은성곽이ㄷ자와같이

되어있어성곽외부를넓은시야로감시할수있으며,

삼청각의현재의모습과북악마루의마루는순수한

우리말로정상이라며,북악산정상을이르는말이란다.

인왕산의기차바위와치마바위에대한전설도알려주었다.

곡장을내려와조금오르니청운대가있고그곳에서

다시북악마루를오르는길은계단길이이어지고있다.

북악마루에서서울시내를내려다보는시야는눈부시다.

세종로네거리가정면으로뚫려있고,높은빌딩들이

숲을이루고있는서울의중심가는고층빌딩들의전시장이다.

남산의높은타워는서울의상징이기도하고,인왕산넘어

안산도한가롭게서있다.북한산의보현봉이높게만보인다.

도봉산을멀리보이지만,백운대와인수봉만경대가

형성한삼각산의본모습은보여주지를않았다.

청와대뒷산이지만,정상에서는청와대가보이지않는다.

계절을잊은진달래한송이와함께

북악마루에서창의문으로하산하는길은급경사의

계단길이끝도없이지루하게이어지고있었다.

편강님이계단길을내려오다가무릎이아푸다고하소연…

걸음이늦어진다.서쪽에서불어오는세찬바람은매섭고,

계단길은하산을힘들게하여쉬면서천천히내려갔다.

창의문에도착하여관리사무소에번호표를반납하고,

하늘님이집에서김장관계로전화연락을받고

여기서귀가를해야하겠다고하여,그냥헤여지기가

섭하여,자하문안쪽공터에둘러앉아점심식사를…

산책을나온것처럼,소풍을나온것처럼,모여서

약술과막걸리를한잔하고,꿀맛같은점심식사를하였다.

하늘님은귀가를하고,우리는부암동을지나

인왕산골목길을지나능선길로오르는데,

길을잘못들어바위에미끄러지면서오르다보니

한쪽에철을잊고피어난진달래한송이를발견하고

반갑다고그옆에가서사진촬영을하고올라갔다.

기차바위를지나고,치마바위위를지나서올라서니

북악산아래청와대건물이선명하게눈에들어온다.

치마바위의전설에얽힌경복궁궁궐의모습은여전하다.

명종과폐위된신씨(愼氏)와의애틋한사랑이야기다.

인왕산치마바위

연산군의폭정으로중종반정이성공하여중종이

왕위에오른후왕비가된분이단경왕후이다.

단경왕후신씨(愼氏)는연산군추종자신수근의딸이다.

중종반정반대세력으로반정과정에역적으로참살되었다.

반정으로실권을쥔세력들이단경왕후는역적의딸이라,

후환이두려워역적의딸을왕비로삼을수없다는

공신들의끈질긴요구에결국굴복하여왕후신씨를

폐위시켜사가로내보낼수밖에없었다고한다.

왕후로책봉된지겨우7일만에폐위가되었단다.

중종이임금이되기전10여년을함께한부부가

만인지상이신임금이된후신하들의강요에의해

사랑하는부인을조강지처를폐위하는심정은…..

인왕산에서내려다보이는경복궁

중종임금은종종경회루에올라폐비신씨가살고있는

인왕산쪽을바라보곤한다는소문을들은폐비신씨는

인왕산에올라병풍바위밑에솟아있는바위에

궁중에서입던치마를걸쳐놓아왕이바라볼수있게

거의하루도거르지않고아침에치마를펼쳐놓았다가

저녁이되면거둬들이면서서로간의사랑의정을

주고받았다고하니얼마나애달픈사랑의이야기인가.

이때부터이바위를치마바위라는이름이붙었다고전한다.

한나라의주인이었던왕으로서도어쩔수없었던것은

정통의계승이아닌반정으로오른왕이기에당한수모이다.

인왕산치마바위는슬픈사랑의이야기가전하고있다.

인왕산선바위

인왕산에는조선시대호랑이의출몰로호환(虎患)이

끊이지않았다고전한다.민가는물론이요.경복궁이나,

창덕궁에까지들어와소란을피웠다는이야기가있다.

피해가커지자조정에서군대를동원해호랑이를

잡을정도였다.불과100년전인1901년에도경복궁에

호랑이가출몰한기록이있다고하니,이런곳에호랑이가,

아무리인왕산을둘러보아도호랑이가서식할곳이못된다.

또다른이야기는수려한경치덕분에인왕산을배경으로한

산수화가많다고한다.겸재정선의인왕제색도

널리알려져있다.국보제216호인이작품은비온뒤

안개가피어오르는인왕산의모습을잘표현한걸작이다.

그의400여점유작가운데가장크고,겸재특유의화법이

잘나타나조선후기실경산수화를대표하는작품으로평가된다.

그리고북악산과인왕산은1968년북한의김신조일당이

청와대를습격하기위해자하문으로침투한사건이일어난후

일반인의출입이통제됐다가인왕산은1993년2월24일부터

등산이가능하게되었고,북악산은2007년4월부분개방된후

10월부터와룡공원에서창의문까지완전개방되었는데,

양쪽산행기점관리사무소에서등산신청서를작성하여

주민등록증을확인하고번호표를받아목에걸고산행한다.

서울의진산중하나인인왕산은조선시대한양을둘러싼

4개산가운데풍수적으로우백호에해당한다.

조선초에는서쪽에있는산이라서산(西山)이라불리다

세종때부터인왕산(仁王山)이란이름으로불리게되었다.

인왕산정상에오르니이곳에도개나리가꽃을피우고있었다.

아마도개나리는봄과가을의날씨온도를감지하지못하나보다.

북악산아래청와대.

인왕산정상에서산하의시야는서울의모습을가장많이보여준다.

남산아래서울의빌딩숲과강남삼성동의무역회관,6,3빌딩과

하늘공원아래월드컵경기장,목동의빌딩숲까지한눈에들어온다.

한강의풍부한수원은서울을이만큼발전시킨젖줄이기도하다.

우리와가장가까운곳에자리잡고있지만쉽게찾아갈수없는

북악산과인왕산산행은서울의참모습을잘보여주는산행이었다.

언제한번서울역앞에서남산을산행하고장충동으로하산하여

동대문에서낙산의낙산공원을거처북악산을오르고,다시인왕산을

오르는서울성곽코스를일주해보는것도의미가있을것같다.

인왕산서울성곽과등산로

하산길도돌계단이있고오름길에는철계단길이이어졌다.

북악산같이가파른길은아니였지만,은행나무아래는노란낙엽이,

단풍나무아래에는붉은낙엽이그대로쌓여있어서낙엽그자체가

또다른단풍을연출하는것같아그아름다움이마음을움직인다.

이제가을의끝자락은멀어지고겨울의산행이우리를기다리고있다.

7명이함께한북악산과인왕산산행은가벼운산행으로산책하는것

처럼,소풍을즐기는여유로운마음으로기분좋은산행을하였다.

종로문화체육회관쪽으로하산하여낙엽이쌓인사직공원을지나

세종문화회관뒤쪽종로빈데떡집에서뒤풀이를하고있는데,

아우게님이찾아와함께산행마무리를맛있게풍성하게하였다.

-/사진제공/4050정다운산악회/트로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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