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오름 *-

[계절의빛]제주오름
가을맞아더욱화려해진신비의동산제주오름

▲억새가은물결처럼일렁이는따라비오름.이보다화려한가을풍광이있을까.

바람이친다.어둠을밀쳐내려는지힘이잔뜩실려있다.먹장구름이아무리짓눌러대도결국새날은밝아왔다.희뿌옇게밝아오자오름동산들은서서히기지개를펴기시작한다.가까이거미오름(동검은오름)은아직잠에서덜깨어났는지납작엎드려있으나,그뒤로오름왕국의맹주한라산이정수리에부악(釜岳)을왕관처럼얹은채위엄넘친웅자를자랑하고있다.

반대쪽풍광도그에못지않다.다랑쉬오름은산,아니거대한장벽처럼웅장하게솟구치고,성산일출봉은멀리서도신비의성처럼느껴진다.바다건너우도는먼바다로떠나가는거함처럼느껴진다.높은오름(高岳·405.3m)은역시제주동부지역오름의군주답게일망무제의조망을보여주었다.

제주는기생화산(寄生火山)오름의천국이다.지중해시칠리섬에트나산이260개로기생화산이세계에서가장많은산으로꼽히지만,제주에는그보다도70개이상많다.제주면적을놓고볼때5.5㎢당하나씩솟은셈이니가히오름의왕국이라일컬을만한것이다.

그오름은철마다다른모습으로변신하다.이른봄희끗희끗한눈이벗겨지면서파릇한기운이스며들다가여름이면희망넘치는푸른동산으로변한다.그러다지금과같은가을이면억새물결로찬란하게빛나는것이다.

구좌읍최고봉높은오름에서맞는새날

▲신화창조를기대하며또다시새날이열리고있다.높은오름.

아직어둠이물러가지않은새벽5시2인승지프짐칸에쭈그리고앉아꾸벅꾸벅졸며어디로가는줄도모르고오름여행에나선다.제주시를출발해동부산업도로를따르던차는구좌읍송당리에도착,좁은콘크리트길을따르다구좌공설공원묘지앞에선다.섬뜩한분위기속에서여기가어딘가둘러보는데오름취재안내에나선고길홍(高吉弘·61·산사진가·전제주산악안전대대장)선생과이용진씨(李溶眞·51·외방여행사대표)는“서둘러야한다”면공동묘지옆길로접어든다.

수풀우거진산길을따라10여분오르자뒤편으로조망이터지면서많은오름들이보이기시작한다.희부연대기속에서하나하나고개를내미는오름들은단순한기생화산이아니다.맑은영혼들만머물수있는신성한곳이었다.히말라야설산들이신들의산이라면제주의오름은신들의영혼이머무는성소(聖所)였다.

쑥부쟁이파르르떨고,억새가가녀린몸을흔들어대는산길따라산릉에올라서자발아래는굼부리(분화구)요좌측멀리로는거대한오름이솟구친다.오름왕국의대왕오름한라산이다.정상에올라분화구를끼고한바퀴도는사이해가서서히떠오른다.먹장구름이제아무리힘껏누른다해도햇살이비집고스며들어결국날이밝아왔다.

▲1)오름동산에서또다른오름을본다.높은오름.2)높은오름에서일출을기다리는고길홍선생과이용진씨.3)화려한가을을구가하는높은오름.4)따라비오름동산을오르는오름나그네들.

그러자분화구안의억새들은신났다.밝아질수록억새는더욱찬란해진다.오름에서맞는새날은빛이스며드는아침창가에앉아신세계교향곡을듣는기분이다.새로운세상을,여태껏경험하지못한신비로운세상으로들어서는듯흥겹다.

고길홍선생은한라산에서성산일출봉에이르기까지지금눈에보이는제주동부일원의오름을일일이설명해주려마음이바쁘고,그바람에묵직한삼각대까지들고왔음에도사진촬영에는신경쓰지못한다.우리가지금올라선높은오름이구좌읍에서가장키큰오름이요,동쪽으로거대한산봉처럼보이는다랑쉬오름(382.4m)은깊이가115m에이르고화구바깥둘레가1,500m에이를만큼거대한분화구가형성돼있다한다.스케일이크고남성적인면이두드러진다는다랑쉬오름에서한라산을끼고넘어가는일몰을볼때면가슴이쿵쾅거릴만큼대단타고극찬한다.

성산읍에서해장국을먹는사이밤새덮었던먹구름이강풍에밀려북서쪽바다로밀려나가고파란하늘이드러나자오름은한층또렷해져갔다.고선생은다시페달을밟으며두번째목적지인따라비오름(342m)을찾아나섰다.‘따라비’라는지명은모자(母子)오름이이웃에있어지아비와지어미가서로따르는형상이라는데서비롯되었다는풀이가있는가하면,모지오름·장자오름·새끼오름이가까이모여있어가장격이라하여‘따애비’라불리던것이따래비(땅하래비·地翁岳)로와전되었다고도한다(고김종철저<오름나그네>1권).반면고길홍선생은땅의아버지에서이름이비롯된듯싶다고풀이한다.

억새천국따라비&숲속의연못물찻오름
▲억새평원에서바라본억새동산.따라비오름.

지프는동부산업도로에서벗어나좁은길로들어서선한동안삼나무우거진숲길을따른다.그러다어느순간앞이환해지면서억새평원이나타났다.평원을꽉채운억새들은이삭이은빛으로화려하게패어가고여름내내파랗던대는누렇게변해가며있다.고선생은예전에는억새가더욱좋았는데,목장에서목초용풀을키우는바람에많이퇴색되었다고아쉬워한다.

이미10여명의사진동호인들이평원에서서삼나무숲뒤편에솟아오른따라비촬영에몰두해있고,많은탐승객들이산릉을따라따라비를오르내리고있다.억새가물결치는오름도멋진풍광이지만,동산위를줄지어오르는사람들역시억새못지않게아름답게느껴진다.그들을좇아억새동산을오른다.억새는산으로접어들수록오히려키도커지고한층우거진다.잔대,산부추,야고등가을꽃들도억새숲속에서보랏빛으로아름답게피어나며가을하늘을구가하고있다.여기저기서노랫소리가난다.하기야이렇게낭만적인분위기속에서입을꼭다물고있다면목석이아니고무엇이겠는가.

따라비는분화구3개가모여형성된희귀한오름이다.맨위쪽분화구는많은비가내린직후에는물이고인다지만지금은억새가물결치고있을따름이다분화구외곽을한바퀴도는사이또다시제주를한바퀴순례하는착각에빠지고만다.

▲1)따라비오름을찾는탐승객들의차량행렬.한폭의수채화처럼느껴진다.2)따라비오름은분화구세개가모인희귀오름이다.3)물찻오름은들머리숲이좋아한여름에도찾는이가많은오름이다.

분화구위에서잠깐쉬었다가자고앉았건만고길홍선생과이용진씨는일어날기미를보이지않는다.하기사시원한바람에부드러운오름들이평원을장식하고바다도가까이보이니이보다더나은가을맞이동산이어디있을까싶어진다.

남제주군수망리에서남초로를따라조천으로향하던지프는깜빡조는사이숲길로들어서고있다.물찻오름탐승은이렇듯숲탐방과다를바없다.거문오름또는검은오름이라고도불리는물찻오름(水城岳)은제주시에인접해있고,들머리숲이좋아한여름에도탐승객이많이찾는오름이다.제법긴숲길이건만전혀지루하지않다.이렇게손타지않은숲이있다는게오히려반갑고기쁘게느껴질따름이다.

숲길에차를세워놓았는데도오름이보이지않는다.평원의숲길을따르는사이어느샌가산릉에올라선다.도로에서150m높이의분화구외곽까지이어지는길도온통숲이다.거목이뿌리째뽑혀쓰러지고굵은가지가부러지는등태풍나리의피해가곳곳에보여안타깝게느껴진다.

“오늘도금붕어보일라나.”

▲[좌]사철물이마르지않는물찻오름.[우]송악산에오르면산방산과형제봉(오른쪽바다의돌섬)을포함해제주남서쪽풍광이파노라마로펼쳐진다.

이용진씨는지난여름물찻오름굼부리못에서금붕어를보았다고귀띔해준다.제주의수많은오름중굼부리에물이차있는오름은많지않다.부악의백록담외에사라악,물장울,동수악,물영아리,금악,그리고이곳물찻오름정도다.‘물찻’은물이찼다는뜻일수도있겠지만제주말‘잣’은성(城)이란뜻이라고오름들머리의안내판에적혀있다.즉,분화구안쪽이낭떠러지를이루고그안에물이차있어‘물찻’이라불린다는것이다.

분화구외곽으로올라서자숲우거진분화구안쪽이마치연못처럼느껴진다.뒤편으로평원처럼널찍하고완만한산릉이온통숲을이룬가운데한라산이슬그머니고개를치켜세우고있다.커다란덩치의성판악뒤편에솟구쳐더욱웅장하면서도산록의수많은오름을모두끌어안은‘어머니의산’답게부드럽기그지없다.

분화구외곽을따라돌다적당한지점에서원시림같은숲을뚫고물가로내려서자연인두사람이물빛을즐기고있다.분화구라는생각이전혀들지않는곳이다.널찍한수면은막떨어진낙엽이둥둥떠다니며역시가을을맞이하고있다.무릇오름이조망때문에일단오르면발이떨어지지않는다면물찻오름은짙푸른물속으로빠져든마음을건져내지못해선뜻일어서지못한다.

오후2시반,점심시간이훌쩍지나갔는데어느누구도점심먹자보채지않는다.배고픔을잊은건지,오름에취한탓인지.그러다기왕이면다음목적지인송악산부근모슬포항부근의식당에서점심을먹는편이시간을아낄수있다는데모두들동의한다.

송악산서바다풍광즐기고금오름노을로마무리

▲1)물찻오름에서바라본제주오름의맹주한라산.산록이온통숲으로덮여있다.2)안쪽이절벽을이루고있어섬뜩한느낌을주는송악산굼부리.3)숲속의연못처럼신비감넘치는물찻오름.

오후4시를넘어섰는데도오후햇살은더욱화려하게춤을춘다.새벽부터강하게불어대던바람이하늘을가득채운먹구름을한점도남김없이먼바다로밀어내고말았다.모슬포항을출발해해안도로로접어들어송악산으로향하던지프는주차장직전공터에서멈춘다.

고길홍선생은곧바로사면길로올라붙는다.5분쯤올랐을까,파란잔디깔린언덕이반기고그너머로그늘져더욱깊고신비스런분화구와그좌측으로넓디넓고푸르디푸른바다가펼쳐진다.그바다에가파도와마라도가뗏목처럼두둥실떠있다.

송악산역시오름이다.그것도1차폭발에이은2차폭발로묘한형태로형성된이중화산이다.화산석을밟으며분화구외곽을도는사이한쪽은바다요한쪽은한라산을비롯한오름왕국의제주가멋지고넉넉한모습으로펼쳐진다.섬뜩한분위기의굼부리를쳐다보다고개를돌려바다를보았다.오름을보았다.가파도와마라도를보았다.오름의나라제주는단순히오름의집합체가아니었다.억겁세월제주에머물다간신들의유토피아였다.

“금악에서마무리지읍시다.노을에물드는부악도보고,바다로빠져드는노을도보면서말이에요.”

▲1)금악에서맞이하는일몰.2)따사로운햇살이반겨주는송악산탐승.3)금빛호수처럼신비로운금악굼부리.

중산간도로를따르다분재예술원을지나한림읍금악리오거리에서차가뒤로넘어갈듯가파른된비알콘크리트길을따라산을올라서자커다란분화구가반긴다.물찬분화구너머로비양도가보이고,그왼쪽으로바다가서서히붉어진다.

고길홍씨와이용진씨는촬영장비를챙기곤급히분화구너머쪽으로자리를옮긴다.물찬분화구를배경삼아한라산을찍기위해서다.일몰맞는사람의마음은이리도바쁜데물새들은못에앉아지저귀며하루해를차분히마감하고있다.

두사람은몇컷찍곤또다시급히분화구건너편으로이동한다.이번에는바다로떨어지는낙조를찍기위해서다.붉고둥근해는서서히내려앉다갑자기바닷물위에해무가띠를두르는바람에붉은쇳물이끓어오르는듯한장관은보여주지못한채바닷물에빠져식고말았다.그사이한라산은다시어둠속으로모습을감추었다.오름왕국제주는이렇게또밤을맞았다.

오름찾아가기

하루3개오름답사가적당…자연탐승자세유지해야

▲[좌]제주의모든오름을끌어안을듯넉넉한모습을보여주는금악굼부리.[우]송악산에서마라도를바라보는고길홍선생(왼쪽)과이용진씨.

제주에는300개가넘는오름이있다.대부분도로를벗어나있어노선버스로찾아가기에는쉽지않다.오름취재에동행한고길홍선생은출발전찾아가는방법을확실하게확인하고,오전에2곳방문하고점심을먹은다음오름하나를더오름으로써마무리짓는일정으로계획을세우면큰무리가없다고한다.

단적어도아침햇살을오름에서맞을수있을만큼서둘러야하고,산을오른다는마음보다는자연을즐긴다는탐승자세를지녀야한다고답사자세에대해강조한다.또한고길홍선생은“제주사람들도오름찾는데애를먹는다”며,“가능하다면길을아는사람을동행하는게좋다”고권한다.또한“조망이나형태가서로다른오름을찾아야지루하지않다”며,어디를가든11월중순까지는억새풍광을즐길수있으리라예상했다.

오름을찾아가기위해서는정확한도로지도를꼭지참해야한다.물찻오름등몇몇오름을제외하곤햇볕과바람을피하기가어렵다.따라서늦가을오름나들이때에는챙넒은모자와방풍방한복에신경을쓰고따스한물이담긴보온병정도는지니고가야한다.

오름나들이참조사이트및문의전화오름오르미들(www.orumi.net),오를오름회(www.ormorm.com),제주사진연구회(회장홍성주011-691-0405),오름사진작가고길홍(016-691-5727).

높은오름구좌읍송당리.제주시에서중산간도로(16번도로)를따라성산일출봉방면으로계속동진하다가구좌읍송당리송당사거리를지나3km쯤더가면도로오른쪽으로구좌공설공원묘지입구가보인다.이길을따라1km쯤가면공동묘지가나타난다.공동묘지뒷산이높은오름이다

따라비오름(따래비오름)표선면성읍리.동부산업도로상표선면성읍이리입구맞은편콘크리트길로들어서야한다.콘크리트길은곧사라지고,삼나무숲길을거쳐4km쯤가면목장에이어너른평원이펼쳐진다.이억새평원끄트머리삼나무숲뒤편에솟아오른오름이따라비다.승용차는접근이어려울만큼길상태가나쁘다.가시리사거리에서75번도로를따라3km북서쪽으로진행하다부흥목장길로진입하면노면상태는한층좋지만풍광은성읍이리쪽만못하다.

물찻오름(검은오름또는거문오름)구좌읍교래리.제주시에서5·16도로를따라성판악으로향하다제주CC입구에서3.5km쯤더가면삼거리가나타난다.여기서왼쪽1112번산록도로를따라1km더들어가면오른쪽에물찻오름입구안내판이서있다.울창하게우거진숲길을따라5km쯤들어서면물찻오름탐방로입구가나온다.

송악산남제주군안덕면상모리.워낙유명한관광지라찾기쉽다.제주도남서단에위치한남제주군대정읍(모슬포항)이나산방산기슭해안도로를타고10분정도면송악산주차장까지갈수있다.

금악(금오름)한림읍금악리.제주시와남제주군대정읍을잇는16번중산간도로상한림읍금악리금악삼거리에서남동쪽이시돌목장방향으로1km쯤가면도로왼쪽으로금오름정상까지이어지는콘크리트목장길입구가보인다.소가울타리밖으로나오는것을막기위해문이닫혀있더라도자물쇠가잠겨있지않아문을열고들어설수있다.

[제주오름/제주지역에있는기생화산을이르는제주사투리.제주에는이런기생화산이380여개있는것으로알려져있다.~~오름,~~봉,~~산등의고유한이름이붙어있으며한라산을제외한모든산을일컨는데,산보다는작은봉우리들을오름이라한다.]
/글/월간산한필석차장대우/사진/월간산정정현부장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