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상주 1.*-
BY paxlee ON 12. 4, 2007
- [르포라이터민병준의향토기행]상주1.
- *“경상도(慶尙道)라는이름은경주(慶州)와상주(尙州)를함께부르면서유래되었다”
*"백두대간과낙동강이빚어낸삼백(三白)의고을상주는흰쌀과누에고치,곶감의고장이다.
▲상주화북의견훤산성에서바라본속리산조망.천황봉에서문장대로이어지는백두대간마루금이생동감넘친다.
쌀,누에,곶감의공통점은무엇일까.바로하얗다는것이다.영남지방의큰고을이었던상주(尙州)는예부터이세가지로유명해상주를흔히‘삼백(三白)의고을’이라고불렀다.우선‘삼백미’로불리는상주쌀은경기미와어깨를견줄정도로질이좋았고,임금의수랏상에도오르던진상품이었다.게다가생산량도많아한때상주에서생산되는쌀의양은강원도전지역에서생산되는그것에비해두배가까이됐다고한다.
그다음은누에.역사적으로보면우리나라에서누에치기를시작한지는4,000년쯤되었는데,상주함창읍은신라시대부터명주산지로이름난곳이었다.하지만한때는산기슭을온통차지했을뽕밭은지금은많이줄어들었고,양잠농가도더불어사라져예전명성에는미치지못한다.그러나요즘도함창장날엔명주장이설정도로그전통이이어지고있다.은척면두곡리에은척뽕나무로불리는350년쯤된늙은토종뽕나무가있는것도이고장의누에치기가아주오래됐음을알려준다.
곶감의명성은아직도대단하다.
상주는시내한가운데는물론이요,마을길가에도온통감나무다.그래서가을엔주민들이감을따는광경을쉽게만날수있고,가을에서겨울사이엔어딜가나주렁주렁매달린곶감이익어가는건조장을쉽게볼수있다.
여기서잠시궁금증하나.요즘곶감은분명히말간빛이도는주황색인데왜‘삼백’에속할까?사정은이렇다.타래에그대로건곶감에서는하얀분가루가생기지않고사람이손으로만지작거려야만분이생겨난다.수십년전까지만해도곶감을걸어놓고손으로만지며모양을만들었기에하얀분이나와곶감을감쌌던것이다.이렇게해야곶감을오래보관할수있었기때문이다.하지만요즘은기술이발달해하얀분이나오지않아도장기간보관이가능하다.
▲함창읍내에있는전고령가야왕릉.낙동강을중심으로일어난
여섯가야중하나인고령가야태조의무덤이라고전해오고있다.
이렇게‘삼백의고을’로유명한상주는영남지방에선확고한권위를차지하고있었다.우선영남의행정명인경상도(慶尙道)는천년신라의고도경주(慶州)와상주(尙州)고을의첫글자를하나씩따서지은것이다.또영남의젖줄인낙동강은삼한시대에상주벌판에자리잡았던사벌국(沙伐國)의도읍이던낙양(洛陽)에서유래했는데,‘낙양의동쪽에와서야강다운면모를갖추고흐른다’고해서붙은이름이라하니상주사람들이갖는자부심을이해할만하다.
뿐만아니다.이곳상주는낙동강주변으로매우기름지고널찍한들녘이펼쳐져있기때문에오래전부터사람이살기시작했다.곡창일뿐만아니라천혜의방어막인백두대간을두르고금·쇠같은지하자원도품고있어삼국시대에는전략적으로매우중요한요충지였다.화북면속리산자락에있는견훤산성과모동면백화산에있는금돌산성이그증거가된다.
그래서신라는상주를북방경영의전초기지로삼았고,삼국을통일한뒤에는이곳을제2의도읍으로일컬을만큼소중하게여겼다.이런상주의위상은고려를지나조선까지이어졌다.세종때에는경상도감영이설치되기도했던상주의전성시대는임진왜란중인1593년(선조26)경상도감영이대구로옮겨가면서시들고말았다.물론그덕분에현재의상주는도시로서의이미지보다는편안한시골로서의이미지가아주강하게남았지만말이다.
▲공갈못노래비.상주고을에전해져내려오는채련요인
‘상주연밥따는노래’가새겨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