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대에서내다보는조망은참좋다.상주사람들이‘낙동강천삼백리물길중경관이가장아름다운곳’이라고자랑하는명소답게낙동강고운모래밭위로솟은절벽이일품이다.또기암절벽아래강물이크게휘돌아흐르고그물돌이너머로펼쳐진널찍한회상들판은최고의장관이다.백마강(금강)낙화암에서바라보는부여들판,섬진강오산의사성암에서내려다보는구례들판의그것과어깨를나란히할만한명품풍경이다.이곳경치역시들판의벼가누릇누릇익어갈무렵이으뜸임은두말할나위도없을것이다.상주사람들이오죽하면하늘이만들었다고하여‘자천대’라고자랑했겠는가.
경천대를나와남쪽으로방향을잡게되면상주시내로들어서게된다.백두대간에서발원해동류하는북천을건너면상주시가지.하지만이작은냇가를건너는일은그리간단치않다.이곳은바로임진왜란때조선중앙군과왜군선봉주력부대가내륙에서최초로본격전투를벌인임난북천전적지이기때문이다.
때는현해탄건너섬나라일본이한반도를전쟁의도가니로몰아넣었던1592년임진년으로거슬러올라간다.그해4월13일,아침에대마도를출발한왜군선봉은물밀듯이부산앞바다에들이닥쳤다.14일부산진성,15일동래성을함락한왜군은19일엔언양성을넘어뜨리고,22일영천성을거쳐별다른저항도없이북진에북진을거듭했다.그사이조선은18일에유성룡을도체찰사,신립을도순변사,이일을순변사로임명해백두대간의조령•죽령•추풍령에방어선을편성하였지만,조선의앞날은그야말로풍전등화였다.
이때왜군을막기위해남진한조선군은23일상주에도착했으나이때병력은고작60여명정도였다.상주판관권길과호장박걸이밤새워소집한잔병과장정은800여명에불과했다.그런데왜군은무려17,000명.이때이미의병을일으켜상주에있던김준신의병장등은상주성사수를주장하였으나이일은성을버리고북천에서적을막기로한다.
드디어운명의25일,조선군은북천에진을치고고니시가이끄는왜병정예군17,000여명에대항한다.어이없게도이일은포진도하기전에적의급습을받자도주하고만다.하지만종사관윤섬,이경류등과판관권길,사근도찰방김종무,호장박걸,의병장김준신등을비롯한800여장병은한발도물러서지않고싸웠으나중과부적으로패하고말았다.북천은이들의피로붉게변했다.나중에이곳을철환산(鐵丸山)이라했으며,이들이빠져죽은연못을학사담(學士潭)이라불렀다.
왜군의북진을늦추기위해초개와같이몸을던졌던호국영령에게묵념하고북천을건넌다.이어25번국도를타고서쪽으로달리다보면곶감마을로잘알려진남장동이오른쪽으로나온다.전국곶감의60%를생산하는상주는무려7,600여농가가연간4,500톤의감을깎아곶감을만들어내고있는데,그중에서도이곳남장동이으뜸이다.
감은종류에따라반시,고등시,둥시로나눠지는데,떫은맛이없어홍시를만드는반시와고등시는경남일원과전북완주•남원등지에서많이자라고,떫은맛이나는둥시는상주지방에서많이난다.하지만상주둥시는곶감이되면서떫은맛이없어지고당도가두배로증가하여여느고을의곶감을앞지르고있다.그래서전국적으로도둥시라하면상주감을가리킬만큼유명하다.
하지만아쉽게도길손이상주를찾은9월중순엔2층구조로지어진곶감건조장이텅비어있었다.부녀자들이삼삼오오모여감껍질을깎고곶감타래에거는생동감넘치는광경은10월초순부터11월중순까지만볼수있다.이때부터한두달정도건조장에걸어놓고건조시키는데,이때가되면껍질이벗겨져서온몸으로바람을맞는곶감들이말간주황색으로익어가고있는풍경을구경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