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준의 항토기행] 상주 3. *-
[르포라이터민병준의향토기행]상주3.
▲남장사보광전에는조선초기의철불좌상과나무로조각한목각탱이모셔져있다.

아쉬운마음으로곶감마을을지나면남장사(南長寺)다.퉁방울눈으로성난표정을표현하려했으나소박함과천진스러움이엿보이는석장승의안내를받고,목수가예술적인솜씨를한껏발휘한일주문을차례로지나는맛이참좋다.

상주둘레의남장사•북장사•갑장사•승장사를흔히‘상주4장사’라고불렀는데,이중에서현재남장사의규모가가장크다.또한불교가성했던이곳상주에서도현재가장사랑받고있는절집이기도하다.삼층석탑을거느린극락보전이있지만,중심건물은보광전이다.조선초기의철불좌상(보물제990호),그리고보광전과관음전에모셔져있는목각탱도불교예술의걸작으로인정받아각각보물제922호와제923호로지정되어있다.

남장사는진감국사가830년(흥덕왕5)인57세때중국당나라에서귀국하여장백사(長栢寺)라는이름으로창건한사찰이다.진감국사는중국종남산에서범패(부처님의공덕을찬양한불교음악)를배워우리나라에보급한인물로서그의행적은신라말최치원이지은쌍계사진감국사비에자세히나와있다.이기록에따르면832년이곳에무량전을짓고범패를보급하니사람들이구름같이많이모였다한다.결국남장사는우리나라최초로범패가보급된절집이라할수있다.규모가크지않음에도범종각엔종과함께사찰의사물(四物)을이루는목어•법고•운판이걸려있는이유가있었던것이다.

▲[좌]남장사보광전앞에는특이하게도파초를심어두었다.[우]절입구에서사악한기운의접근을막고있는남장사석장승.

남장사를나와노음산서쪽으로휘돌아북장사를들른다음외서면우산리에있는우복정경세(鄭經世•1563-1633)종가병암고택을찾는다.우복은조선중기의예학자로서임진왜란최초의의병장인김준신,그리고‘육지의이순신’이라불리던정기룡장군과더불어조선중기상주의3대인물로꼽히는분이다.정기룡장군보다한해늦게태어난우복은문신최고의영예직인홍문관과예문관대제학을겸임한대학자였다.서애유성룡의문하에들어가면서영남학파에속하게된우복이지만,이기설논쟁에서는기호학파의율곡을편들기도한소신있는인물로꼽힌다.

역시임진왜란때의병을일으켜왜적과싸우던그는조정에서는나라의기강과백성의생활안정을강조했으며,지방관이되어서는향인들의교화에도힘썼다.종택은대산루남쪽언덕에자리잡아우산팔경(愚山八景)을한눈에조망할수있는명당지로서현재장군의16대손이살고있다.

▲경천대전망대에서바라본회상들판.맑은가을날에보면감탄사절로나오는장관을이룬다.

이젠백두대간주변의상주를짚어볼차례가되었다.상주의지형은제법복잡하다.백두대간이서부로지나지만이산줄기가경계가아니기때문이다.백두대간을끼고있거나그서쪽의공성•모동•모서•외남•화동•화서•화남•화북면이렇게적지않은8개면이모두상주고을영역인것이다.

그래서백두대간분수령을경계로도계(道界)나군계(郡界)를나누던관습은적어도이곳에선통하지않는다.분수령이이지역에서면계(面界)역할조차제대로못하는까닭은분수령의산세가뚜렷하지않기때문이다.흔히‘중화지구대’라불리는이구간은아마도백두대간전구간중에서분수령의고도가가장낮은곳일성싶다.마루금은겨우해발200~400m내외를넘나들며이어지는야산지대를이룬다.그러나백두대간분수령으로선낮아도농사터로는고원지대다.이곳은평지와평균기온이3~5℃차이가나는까닭에당도높은과일을생산하는과수농업이아주발달해있다.

▲[좌]우담채득기선생이관직을버리고은거한경천대무정.낙동강조망이좋다.[우]사벌왕릉옆에있는화달리삼층석탑.
화동면과내서면을오가는백두대간신의터재에서멀지않은판곡리엔임진왜란최초의의병장인김준신의사제단비가있다.김준신의병장은앞서들렀던북천에서의병을이끌고왜군정예군과싸우다장렬히전사한분이다.당시김준신의병장은중과부적으로서처음부터이길수없는싸움임을알면서도“남아는마땅히죽어야할장소에서죽어야한다”며부하들과함께왜군수백명을죽이고장열하게전사했다.

왜군은전투에서이겼음에도예기치도않은곳에서타격을입게되자분풀이를하기위해김준신의병장가족이살고있는화동면판곡리로몰려갔다.그러나어찌무기도없는민간인이왜군정규군을당하겠는가.마을사람들은힘을합쳐저항했지만남자들은거의학살당했고,부녀자들은왜군들에게욕을당하지않으려마을에있던연못에몸을던졌다.그래서연못이름이낙화담(落花潭)이다.

▲화북장암리에있는견훤산성.산세를따라암벽을적절히이용했기때문에절벽과성벽이조화를이룬다.

임진왜란당시1,600여평에이르렀다는낙화담은세월이흐르면서메워져이제는불과60~70평남짓한연못으로변해버렸다.못가운데조성한작은섬엔수백년묵은노송한그루가옛이야기들려줄듯서있다.그옆엔노산이은상이김준신의병장의행적을기려쓴낙화담의적천양시(落花潭義蹟闡揚詩)가새겨져있다.

"임진년풍우속에눈부신의사모습
집은무너져도나라는살아났네
절사곡(節士谷)피묻은역사야어느적에잊으리

설악(雪岳)높은봉이본대로이르는말
꽃은떨어져도열매는맺었다고
오늘도낙화담향기바람결에풍기네.

‘육지의이순신’이라불리던정기룡장군을비롯해우복정경세,김준신의병장….이렇듯환란의시기에나라를구하기위해일어선세분이모두한해를두고앞서거니뒤서거니상주에서태어났으니참특별한인연임에틀림없다.택리지의저자이중환이‘조선인재의반은영남에있고영남인재의반은상선(상주와선산)에있다’고적은것은이분들에대한헌사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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