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바위열전 [33] 북한산 인수봉 크로니길 *-

한국바위열전[33]북한산인수봉크로니길

◇마지막크랙을오르는크로니의바둑맨김준형씨.

아침부터때아닌소낙비가내렸다.“어이쿠이거망했군.소식이없었는데말이야….”“금방그칠거같지않아.”여기저기서체념소리가들려왔다.그러나산과술을등가에놓는사람들은오늘같은날쾌재를불러야한다.날궂은핑계로전부치고판벌릴일이어디그렇게흔한가.야영장주변은마치단축수업이발표된날의교실처럼술렁대는분위기로바뀌어갔다.

“크로니의바둑이실력을보여주지.”입담좋은조병래씨가먼저‘오늘의바둑이(캠프를지키는사람이라는뜻의크로니식표현)’를자처하며소주병을조심스럽게어루만진다.바둑이란집지키는개,혹은보신탕의활성화된표현으로짐작했지만알고보니생각보다많은의미를지니고있었다.때로는등반보다어렵고차원높은난이도를갖는다.

바둑이가되려면무쇠같은심장과폐를가져야한다.부식과술이떨어졌을때번개처럼조달해야하기때문이다.만일체력과요리실력이미달되면가차없이등반팀으로보직변경된다.그렇게되면하루에자일100번사리기등의강도높은훈련을거쳐야한다.세상에그저놀고먹을수있는일은없다.

주안상을물리고전쟁터로향하다

1980년대후반,알프스의아이거북벽을오르던어느괴짜산친구가갑자기등반을포기한일이있었다.등반능력이모자랐다고하지만후일밝혀진바에의하면진실은그게아니었다.이유는담배가떨어져서였다.아이거북벽이담배한갑의무게라….막걸리두잔에공개된그런고백처럼산에서의일화들은종종생뚱맞기그지없다.

원조바둑이가누구인지알아내는것역시크로니식구들의의식구조를밝히는일만큼이나간단치않다.사실인지모르지만장택훈·양은석씨등이고수의반열에올랐다는설이있을뿐이다.된장이보글보글끓는동안인수봉에갈사람들은무시로하늘을쳐다본다.바둑이들은집요하게소주병을바라본다.

크로니길이태어나던당시엔얼마나술을마셨을까.억수로?그렇지만은않다.술을살돈이없었기때문이다.그때나지금이나변하지않은게있다면역시돈의위력이다.개척자들의면면은아리송해도4홉들이귀한소주를선물했다는이영화씨의이름은그래서정확히기억해낼수있는것이다.

가난할땐세수대야에비누하나달랑놓고쓰다가제법살만하게되자욕조에도하나화장실과세면대에도하나씩두고사니무지하게좋더라는모가수의성공담처럼,비누는물론맘만먹으면날마다소주를마실수있는지금의산악인들은부족한것이없다.오히려늘많아서문제가된다.

사람이많아음식쓰레기도많이생기고바위에볼트도많고탈도많다.하늘이조금밝아졌을때.우이동으로급파됐던김준형이입가에자랑스러운미소를흘리며캠프에도착했다.빗속을뚫고돌아온그의배낭엔막걸리와소주,그리고족발이가득들어있었다.크로니가‘주로니’가될지언정칭찬받아마땅한일이다.

그런데김준형의으쓱한어깨에힘이빠지기도전에비가그치고햇살이비치기시작했다.이렇게되니과연주안상을물리고전쟁터로나갈사람이누군가.이미버린몸이된노련한선배들이등반팀명단에이름을올리기엔이미늦은터.그속에서설용환총무와최희철등반대장의교통정리로8명의전사가분연히일어난다.

온갖유혹을꾹꾹참아낸후배들이다.“가자,바위하러.”크로니길은다른때처럼붐비지않았다.일찍부터벌린판을접기엔이미늦은까닭이다.오늘은주인들의독무대.벙어리크랙에우드팩을때려박으며개척에앞장섰던금창연씨가동참했다.목표는오리지널크로니길이다.두개조로나누어출발한다.

최재영이1조의선등,정근성이또한조의앞장을선다.“어려워요.”아직물기가사라지지않은크랙에발을끼우며최재영이멈칫한다.현역육군상사답게군인다운풍모가넘치는정근성도물기앞에자유로울수없다.첫마디아래진을치고내려다보니금창연씨가선등을해보겠다고불쑥나선다.갑자기무슨생각이들었을까.35년전의그빛나는젊음에서얼마나멀리흘러와지금에이른것일까.아득하다고하기엔너무나또렷한기억이다.

◇여섯째마디의벙어리크랙으로건너가려면로프를잡고출발지점근방까지내려와서과감하게몸을날리듯건너야한다.

1970년크로니길개척이후10년간의전성기

크로니길은1969년3월홍진만·하정문·유동옥·박영배·김성국·방만익·장병채·정범진등에의해산악회가탄생되고난이듬해인1970년에개척되었다.창립멤버를포함한8명의회원이그산파들이다.이들은군대라는산을넘어야할스무살또는그또래의나이들이었다.

유동옥은그때망바위에서루트파인딩을하고제일먼저군에입대했다.서정주식의표현을빌자면이날이때까지그들을키워놓은것은결국‘8할이바위’라고해야할까.즐거우나괴로우나늘같이하던산친구들.오랜친구라는뜻을지닌크로니의이름으로뭉친지어언36년이지났다.


그동안바위를거르는날이얼마나됐을까.아마짐작도못했을것이다.그날뭉친크로니들이어울려신명나게놀던결과가후일한국등반사에획을긋게될줄은아무도몰랐다.1970년인수봉크로니코스개척,1971년서울근교113개코스연장등반및설교벽개척,1975년설악산노적봉남벽개척,1977년설악산토왕성빙폭초등,1978년적벽크로니길개척,1978년제주도성산일출봉초등,79년변산반도깃대봉초등까지창립이후10년은앞으로영원히다시오지않을크로니의전성기였다.

1970년5월,약15일간의개척등반을마치고,박영배와김연태는고대인쇄소에가서등사기를밀어보고서를만들었다.그리고동숭동카톨릭학생회관에서검악산악회장,요델산악회의김방원,인수산장의이경구씨등산악인들을초청하여보고회를가졌다.보고서에의하면당시개척의리더는박영배였으며대원은김성국·방만익·김연태·이승용·금창연·김정기·김원(김항원)등이었다.


등반장비는군용자일40m4동,군용US스틸카라비너30개,점핑세트4조,레더3조,해머,봉봉하켄,앵글하켄,리스하겐,홍진관회장에게받은자동차용볼트,군용버너와코펠등이다.그리고암벽화는군용워커를사용했다.기록을보면대원들이골고루등반을교대한것이눈에띤다.

1차등반박영배의선등으로룬제(꿀루와르)로진입하켄과볼트를설치하며1피치완료하고,2차등반김성국의선등으로소나무좌측크랙을7m정도올라앵글하켄설치.25m의슬랩을올라넓은테라스에도착.확보용앵글하켄을설치2피치완료하였다.3차등반방만익의선등으로테라스우측슬랩을출발.10m정도오른후좌측10시방향6m슬랩을오름.다시우측으로5m슬랩을거쳐밴드로진입.확보용볼트설치.3피치완료.김항원이올라보고나서어렵다고하며중간지점에해머로인공홀드를만들었다.


4차등반벙어리크랙진입을위해5개의볼트를설치(당시전진용볼트가5~6개이상이면의미없는등반방식이라생각하였다).상단볼트에서7m정도내려와펜듈럼으로침니를건너뛰어벙어리크랙밑에도달.크랙에풀과이끼가가득하여베이스캠프로철수하였다.

기존B코스로올라가서확보용볼트설치하고하강하여긴나무와해머로풀과이끼를제거.다음날아침부터봄비가내려이틀간휴식을취했다.이때김항원·김연태·이승용·금창연·김정기대원이합류하여분위기가고조되었다.5차등반벙어리크랙밑에확보용볼트와전진용볼트를설치하고크랙에는작은봉봉하켄을설치하고레더에올라서다.


그러나벙어리크랙에하켄을설치할수없어베이스캠프로철수.그날밤회의끝에백운산장이영구씨에게톱과낫을빌려우드하켄을제작하였음.6차등반박영배의선등으로우드하켄과낫을옆구리에차고벙어리크랙을등반.알맞게낫질한우드하켄2개를설치하고크랙을돌파하여끝나는지점에전진용볼트를박았다.


볼트에서좌측으로트래버스하여Y자형의발자세로5m정도직상하여밴드에도착하였음.7차등반은방만익의선등으로직상슬랩10m와우측15m크랙을레이백자세로올라동양길왕볼트에서5피치완료(처음으로다른길과만남).8차등반김성국의선등으로앵글하켄을설치하며40m긴크랙을올라확보용볼트를설치하고6피치완료.다음날은비로인해하루휴식을가졌다.

9차등반방만익의선등으로이끼가조금낀크랙을등반.작은소나무를지나앵글하켄과봉봉하켄5개정도를박으며무사히정상에올라서다.

세월이흘러도변함없이남는것

링이떨어져나간볼트를지나치는순간저건너망바위에오른김준형과주우석이보였다.그들이빠른속도로오르기시작하더니이내저아래슬랩에모습을드러낸다.‘바둑이에서그새보직이변경되었나?’설용환이‘에프엠자세’로벙어리크랙을해치우는동안그아래까지곧바로따라붙는다.“으으으발이야!”“추락!”


얼마전몸이으스러지는추락사고이후재기를위해노력해온주우석의신음소리와벙어리에붙은금창연씨의일성이동시에들려온다.“펜듈럼해서넘어오면바위가누워있거든.그런데어느날보니‘빠~딱’서있는거야.”벙어리크랙은이제옛날만큼공포는없다.

오른쪽벽에4개의볼트를추가로설치했기때문이다.힘빠지면크랙중간에매달려쉴수도있다.그러나어려웠던옛순간을기억하는사람들은예외다.비를뚫고솟아오른햇살의위력이수명을다했는지갑자기가스가차기시작했다.순식간에앞을분간할수없게되었다.앞서간최재영과뒤에선최희철의목소리만들릴뿐모습은보이지않았다.

저아래누운크랙에마지막주자가보였다.김준형이다.크로니길이태어난이후가장많은10명의회원들이동시에붙었지만모두함께정상에갈순없다.길기도하거니와급변한날씨로인해하산을서둘러야했다.일찍정상에도달한사람들은후면으로,나머지사람들은그자리에서하강을시작했다.인수봉에서가장긴하루여행이드디어끝났다.

아침나절이아득하게느껴졌다.물방울속에구현된이외수의소설속세상처럼사라진세월도그렇게꿈같다.젊음도온데간데없고죽자고매달리던사랑도지나갔다.그런가운데남은것은아직도고통과공포를즐기는끔찍한취미,무엇이든끝을보는집요함과담배와아이거를교환하는방법등이다.그리고또하나크로니!

INFORMATION/크로니길등반가이드

크로니길은1970년3월에서5월사이에크로니산악회의박영배·방만익·김성국·이승용·금창연·김항원·김연태·김정기등이개척한길이다.전체길이250m에슬랩과크랙이골고루섞여있는길로처음엔일곱마디로개척되었으나아홉마디로나누어등반하는것이편하다.

등반은대슬랩왼쪽에있는제단에서오른편으로뻗은크랙으로시작한다.등반도중탈출조건은양호한편이다.첫째마디(25m)잼크랙을지나왼쪽사선방향으로뻗은밴드를따라오른후크랙밑에설치된쌍볼트에확보한다.둘째마디(28m)테라스위로이어지는7~8m쯤의디에드르형크랙으로진입한다.크랙을벗어나면오른쪽으로10m쯤이동해3m정도의직상크랙을올라B코스와만나는왼쪽지점으로오른다.

셋째마디(30m)덮개처럼덮여있는바위의왼쪽크랙과슬랩을따라오르다가넓은테라스에서확보한다.넷째마디(30m)오른쪽의요철이있는슬랩을지나왼편으로꺾어밴드로오른다.밴드에설치되어있는볼트중왼쪽에있는쌍볼트로건너가서확보한다.다섯째마디(25m)왼쪽의요철이있는슬랩을밟고곧바로오른다.

세개의볼트를통과한후상단볼트에줄을걸고테라스근방까지내려온다.왼편의침니를건너크랙아래까지펜듈럼하여이동한다.여섯째마디(22m)오른손과오른발을넣고왼발·왼손은밖으로밀어내는형태의잼크랙을오른다.크랙의오른쪽벽에확보용볼트가설치되어있다.

상단부의벙어리크랙을통과하여남면제1밴드상의쌍볼트로오른다.일곱째마디(25m)10m정도의슬랩을오르다가두터운바위의좌향크랙을올라동양길이겹치는삼각테라스에서확보한다.여덟째마디(25m)전구간스태밍이가능한디에드르형의크랙을오르다가쌍볼트가설치된중간지점에서확보한다.

아홉째마디(40m)오른쪽슬랩에있는볼트에통과한후크랙을따라올라오버행바위밑의쌍볼트에서확보한다.걸어갈수있는넒은침니로진입하여그곳을빠져나온후잡목을헤치고정상으로오른다.

/글·사진손재식사진작가/월간마운틴2005년12월호에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