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산악인 고미영님의 초오유 등정기 *-

[히말라야초오유]’이젠더욱사랑하고행복할것같다’

“아무것도하지않고지내는것을견디지못하면,히말라야에서

는아무것도할수없다.”

장무에서니알람까지는끝없이펼쳐지는병풍속그림이다.지난봄발가락동상으로인해메마른가슴과함께우울하게내려왔던길이다.지금은들꽃하나도작은폭포도새롭게내가슴에다가온다.또다시황량한BC로가는나의마음은비장의각오에처연하기까지하다.계속마시는물이혈관을타고기관에각종영양소와산소를공급한다고생각하니힘이자꾸난다.맑은소변색이정상이다.

▲초오유정상에오른필자(고미영).등뒤로에베레스트와로체가보인다.

4,900m의초오유BC에도착했다.깨끗하진않지만유유히흐르는강물도있고,맞은편엔허허로운벌판에벌거벗은민둥산도있다.그사이에미리자리잡은원정대들텐트가가득하다.셰르파앙치링이미리준비한휴대용침대가고맙다.그위에서앉았다엎드렸다하며책을보고있으려니옆텐트의프랑스인사진작가크리스토퍼가영락없이바닷가에있는모습같다며셔터를눌러댄다.

이번엔후배가좋은음악을가득담아준MP3를들으며누워본다.아직까지도인상깊게남아있는프랑스칼랑크해변의바닷물같은하늘이다.저멀리초오유(8,201m)정상이나의보금자리를고요하고차분하게감싸주는듯하다.무심히흐르는강물이정처없이떠도는내마음이다.강물위로나는새가자유롭게떠도는내육체다.

9월13일,ABC에도착하여더욱가까워진초오유정상은여신의마음처럼넓어보인다.쿡과키친보이가3일동안다져놓은돌밭에한달동안머물나의보금자리를만든다.내마음을정리하듯텐트안을정리한다.푹신한매트리스가깔리고내가가져간매트리스가그위에하나더얹혀진다.나의체취가고스란히묻어날고마운침낭이가장위로자리잡고있다.여기를떠날때까지따뜻하고쾌적하게지낼수있겠지.

여자셰르파라불릴만큼순조롭게등반

다음날은등반의성공과건강을기원하는라마제가간단히진행되었다.지난에베레스트북면베이스캠프에서나를본적이있다던라마는어린시절부터사원에머물다가어른이되어어떤여자를알게되어세상으로나와서지금은셰르파를겸한이중생활(?)을하고있는사람이다.

밀가루같은하얀가루를서로얼굴에바르고니알람에서사온맥주와콜라를주위사람들과나눠마시며올려다본초오유정상은구름한점없는코발트빛가을하늘이다.같은키친텐트를이용할미국팀4명은C2에고소적응하러갔다고쿡인바브라함이얘기한다.키친보이펨바는티베트인으로5형제인데,아내는한명이고맏형인그로부터만아이를얻을수있는것이티벳의전통이라고한다.다양한세상이다.

다음날,앙치링은C1건설에먼저나섰고나는아침을먹은후혼자서중간캠프를향해걸었다.길은평탄하지만돌이많았다.2시간쯤힘도들이지않고걸으니중간캠프에많은사람들이쉬고있었다.C1으로가기위해서는제법경사진돌길로2시간더걸어야했다.걷다보니어느새C1가까이에가게됐고,사람들의걸음은테이프를천천히돌리는슬로비전처럼느리게걷고있었다.

앙치링은나를보더니밑에서퍼져있을줄알았는데여기까지올라왔다며깜짝놀란다.고도계를보니6,300m에와있다.거의쉬지않고걸었으니셰르파걸음하고비슷했던것이다.9월15일은호적상(?)내생일이라케이크와음식을준비해달라고바브라함에게주문했는데,어찌되었는지마음이급해전진캠프로향했다.

▲프랑스산악인올리비에와함께.

함께등반허가를내고장무에서만나ABC까지같이온일본인3명과프랑스인2명을초청했다.치바씨는75세로산소를10통이나준비할정도로정상에대한욕심이대단했다.딸준코와함께왔으나그녀에게는산소한통도양보하지않아결국은등반을포기하고말았다.그런욕심많은할아버지가평소인사잘하고관심을보였더니내심바라고있던여러종류의핫팩을선물로가져왔던것이다.초오유(터키보석의여신)정상이날부르는거같아맘속으로쾌재를불렀다.

같은키친텐트를사용하는미국팀가이드는마운틴매드니스여행사의사장크리스였다.그녀는미국최고의여성알피니스트이며이미에베레스트,로체를비롯한8,000m급6개봉을등정한여장부다.그들은3일동안고소적응을위해C1과C2에서자기로하고나섰지만,C2까지가지못하고돌아오고말았다.내가휴식을취하는동안앙치링은이미C2까지텐트와식량을옮겨놓았고우리도3일동안의여정에나섰다.

▲크레바스주위에수많은텐트가들어선C1

첫날은6,100m의중간캠프에서자고,둘째날C1으로향했다.이미두번을올랐던길이기에별로힘들이지않고오르는데기타를메고전진캠프로같은날도착했던러시아인알렉스를다시보게되었다.쉬지않고그남자뒤를바짝붙어가는데“Youareverystrong!”하며말을건다.어느나라에서왔느냐?누구랑왔느냐?묻는다.한국에서혼자왔다고했더니C1에도착하면차한잔하자고한다.오들오들떨면서화장실옆에서얘기를나누었다.가이드도없이왔다기에경험많고실력있는사람이구나짐작했다.
저녁은햇반과즉석미역국을끓여미리볶아온김치와언니가만들어준멸치볶음으로맛있게먹었다.잠도잘자고,다음날아침도햇반에시금치된장국을넣고끓여먹었다.앙치링은나보고여자셰르파라고했다.

C2까지는6~8시간걸리는거리로비교적어려운부분두군데가있다.거의도착해가는데두사람이내려오면서앞으로5일동안엄청난눈(3m)이올거라는예보가있으니빨리C1으로하산하라고한다.날씨는이미진눈깨비가내리기시작했고어두워지고있었다.지금내려간다해도위험하긴마찬가지고다행스러운것은C2는눈사태위험이없는곳이다.텐트안에서차대신미역국을마셨다.라면에밥말아서국물까지마시고초저녁부터잠자리에들었다.

다음날앙치링은머리아파서한숨도못잤다며희한하다는표정으로쳐다본다.그도그럴것이머리가아프다든가,소화가안된다든가,잠이안온다든가고소증세가전혀없으니신기했던모양이다.단,배고프면화내는사람인줄알기때문에자주물었다.“Areyouhungry?”지난봄에베레스트등반이많은도움이되는구나싶었다.

원정앞두고숨이턱까지차오를만큼산길달려

3일만에ABC로돌아가는데바브라함이눈보라속에차와간식거리를들고마중나와있다.무전할때마다내안부를묻던동갑내기다.미국인들이C2에서잘자고왔다고하니까“브라보,해냈구나”한다.그날저녁부터김치에돼지고기넣고고추장풀어서매운김치찌개를매일같이먹었다.같이식사하는미국인들은매일같은메뉴가지겹지않냐고묻는다.“당신은커피매일마신다고지겹습니까?”

김치의우수성을알고있기에가끔나의메뉴에손대기도했다.그날부터눈이내리더니5일동안계속퍼붓는다.그사이쉬면서샤워도하고얼굴마사지도하고미국인들이가져온DVD플레이어로영화도보았다.혈중산소포화도를재니85%전후로양호한상태다.

100개가넘는원정대가있어인사하고경험담듣느라지루한줄모르고하루하루를보냈다.저녁에는러시아팀에가서기타치고노래도불렀다.5,700m에서노래하다보니가끔호흡을가다듬어야할정도로숨도차지만훈련이거니생각하고열심히불렀다.알렉스는2004년자누북벽을등반해황금피켈상을받은등반가였는데기타도잘치고,노래도열정적으로잘했다.

▲C1에서C2로오르는세계각국의산악인들.

6일째날씨는좋아졌지만아무도먼저나서는팀이없다.그동안내린눈으로C1은가슴까지눈이쌓였고,눈의무게에못이겨부서진텐트도많다는것이다.제발우리텐트가아니기를고대할뿐이었다.오후에프랑스샤모니가이드팀17명이주축이되어서원정대대표들과셰르파들이모여회의를진행하였다.하루를더쉬었다가함께출발하자는의견으로정리되었다.

정상으로향한내마음은소풍가는유치원생처럼설렘으로가득찼다.러시아팀은회의에참석하지않았고C3에서다시보자는인사와함께하루일찍출발하였다.30년전초등학교동창이어떻게변했을까궁금한것처럼정상은어떤모습을하고있을까생각하면서짐을꾸렸다.양말과장갑을놓고고민하고있는데앙치링이정리해준다.

9월28일,새벽부터일어난바브라함은김치를끓이고밥을지었다.거기에김가루를넣고비벼서지퍼백에담았다.푸른하늘의하얀구름처럼내마음도,발걸음도가벼웠다.C1에도착하니다행히텐트는무사했으나,화장실로쓰던자리에필리핀에서온새로운등반대가메워버리고텐트를쳐놓았다.

밤에두번씩일어나야하는고역때문에화장실옆에자리를마련했는데난어쩌라고.죄지은사람처럼컴컴할때까지기다려야하고아침에는날밝기전에해결해야하는데참다가참다가훤해지면일어나게된다.

해결할때누군가텐트안에서뚫어지게바라보는사람들이어김없이있다.같이쳐다본다.요세미티거벽등반할때여자도서서소변을볼수있게만든기구가있다고들었는데다음에는어떤방도를강구해야지싶었다.많이만들어서베이스캠프에서팔면인기좋겠지.

앙치링은C2의텐트가망가졌으면손봐야된다며새벽에출발했고,나는햇반에시금치된장국을말아서먹고8시쯤출발했다.높은산에와서잘적응하고있는내가대견했고튼튼하게낳아준아버지가새삼고마웠다.까맣게그을린얼굴로이틀에1.5리터소주한병씩드시고는뒷짐지고논두렁을휘휘돌아보시는모습이선했다.막내딸이어디에가있는지도모른채.

6시간30분걸려서C2에도착했다.그토록강렬했던태양은오렌지빛하늘로물들인뒤숨어버렸고,만년설이뒤덮인산맥은끝도없이펼쳐져있어장관이다.이제는정상만이목표가아니고이런멋진곳에서있다는사실이가슴벅차고행복했다.저녁엔라면에밥말아먹고일찍잠자리에들었다.

아침엔어김없이햇반에즉석국을먹고앙치링은C3에텐트를쳐야되기때문에또먼저출발했다.7,600m까지가야하기때문에빨리걸을수없었다.아직은힘들지않다,참을만하다생각하며한걸음한걸음발길을옮겼다.“Don’tlookabovethere.”앙치링이늘하는소리다.앞사람뒤꿈치만보면서걷다가얼굴마주치면서로격려하고쉬면서사과도얻어먹고하다가C3에도착했다.알렉스를비롯한러시아팀이등정에성공한뒤C2로하산하기위해짐을꾸리고있었다.반갑게인사하고는꼭성공하길바란다며큰손으로악수를청한다.

새벽2시에출발하기로하고일찍부터누웠으나잠이오지않는다.내일이면정상에설수있겠지.에베레스트ABC에서퉁퉁부어있던모습이생각났다.발가락동상으로움직일수없던BC에서의열흘동안외로웠다.세상에혼자남겨진심정이었다.8,000m첫원정은나에게시련을주었지만거기서포기하거나주저앉을수없었다.다시시작했다.어떻게해야잘적응할수있을까?어떤훈련이적당할까?생각하고연구했다.

청계산을숨이턱에찰정도로뛰어올랐고,무거운배낭을메고지리산종주도여러번했다.손과발가락을보호하기위해일부러어려운루트도하지않았고,적당히몸안에지방을쌓기위해술과고기를마다하지않았다.이제는잘할수있을것이다.
잠깐잠이들었는데앙치링이깨운다.새벽1시30분이다.누룽지와즉석국을끓여먹고장비를챙겨출발한시간이2시50분.일본인치바씨가준핫팩을손바닥과발바닥에넣었다.참고마운선물이다.산소마스크를처음사용하는데답답해서자꾸벗었더니앙치링이난리다.참아야하느니라.

이미출발한사람들의랜턴불빛이한줄로이어져있었고,중간에포기하고내려오는사람들도많았다.꽤가파르게이어진정상으로가는길은두개의커다란록밴드가있다.고정로프를설치해주마를이용하는데꼭대기의것은낮에봤던것보다경사가훨씬더심했다.얼굴에산소마스크를차고두꺼운우모복과삼중화를신고주마링을하는사람들의모습은영락없이화생방훈련을하는대원들같아웃음이났다.

나를품어준산만큼내마음도넓어진듯

차츰날이밝아지면서티벳의하얀산들사이에시샤팡마도보였다.사람들이웅성거리는데중국대원한명이크램폰이벗겨져서500m쯤추락했다고한다.조심해야지하면서한발한발집중했다.날이훤히밝았고드디어오전8시30분에베레스트와로체가보이는곳에섰다.30분간머물면서사진과비디오를찍었다.위성전화로회사(코오롱스포츠)에전화도했다.좋은세상이다.

하산할때는산소마스크를전혀쓰지않고내려왔는데별다른증세가나타나지않았다.스키로하강하는유럽클라이머들이눈에띄었다.앙치링이정상에선기분이어떠냐고묻는다.

“아직감정이없어,배가안고프거든.”피식웃는다.바브라함한테서무슨음식이먹고싶냐며무전이왔다.“고추장푼김치찌개.”맛있는김치찌개와화려한케이크를먹고러시아팀캠프에갔더니알렉스가환한웃음과함께축하한다며안아준다.기타연주와노래가밤늦도록계속되었다.

다음날,프랑스인올리비에는자기생애가장특별하고원더풀한여자를처음만났다며카트만두에서다시만나기를고대하며아쉬운작별을나누었다.알렉스도짐을싸는동안나를옆에앉아있게하고는강하다는말을몇번이나했다.

두남자가떠난뒤빨래와샤워를하고얼굴마사지도하면서하산할준비를하였다.이틀후에야크가도착했다.가을에는60kg까지짐을져나르는야크는고지대에서없어서는안되는동물이다.온몸을다해서충성하고똥까지땔감으로이용한다.

3주전올라왔던길을다시내려가면서습관적으로자꾸정상을올려다봤다.터키보석의여신은여전히조용하게손짓하고있다.이제는잘가라는손짓이다.

나의첫8,000m등정이된이곳에서많은것을배우고,경험했던시간들을오래도록기억할것이다.내가선택하지않았더라면만나지못했을여러등반가들과의소중했던시간들,산은두렵고힘든대상만은아니라는사실,깊고넓게품어주는산처럼내마음도한뼘쯤은더넓어진느낌.그래서더욱사랑하고더욱행복할것같다.

-글·사진고미영코오롱스포츠챌린지팀-

/StandByYourMan/TammyWy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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