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세를 일기로 떠나신 장모님을 추모하며 *-
BY paxlee ON 2. 28, 2008
90세를일기로떠나신장모님을추모하며
사람은저마다의운명(運命)을따라살다가예고없이운명(殞命)하는것이삶이고인간사(人間史)이다.한인간의운명은참으로각양각색이다.인간이기에정해진길이따로없다.자기스스로남이만들어놓은길을따라가기도하고,스스로의길을자기가만들어가기도한다.가는길이쉬운길이면쉬운데로흥미와즐거움이줄어들고,새로개척해가는길은고난과어려움이많지만그만큼보람을느끼게해준다.그래서어느길이좋은길이고행복을가져다주는길이라고단정하기는어렵다.부모의의지에의해인간은목소리를높혀울면서이세상에태어나서백지에자신의인생역사를쓰다가쓰다가자기의의사와관계없이어느날갑자기이세상을떠나면서인간의운명(運命)은운명(殞命)으로끝나게된다.
지난12월말장모님께서병원에입원을하셨다.올해년세가90세여서노환으로시달렸으나갑자기병세가악화되어입원을하셔서치료를받으시면서어느날은조금차도가있어가족을웃는낯으로맞아주시기도하셨으며,어느날은갑자기악화되어가족의얼굴을알아보지못하는상태가반복되면서년말을보내고새해를맞이하였다.구정이가까워지면서병세는점점악화되어갔다.만일구정에돌아가시면어떻게하나노심초사하면서걱정을하였다.전화벨이울릴때마다신경이곤두서기도여러번이었다.가족이병원을지켜야도리인데도모두가바쁘다는핑개로간병인에게부탁을하고가족들은저마다의생활전선에서일을하면서도마음은항상병원에가있었다.
지난일요일새벽6:20분에전화벨이요란하게울렸다.집사람이먼저병원에달려갔지만6:30분에운명을하셨다는전언이귀를울렸다.3녀2남을두셨지만아무도마지막그운명의시간을지켜드리지못해영원히지울수없는한을가슴에안게되었다.부모님의자식에대한사랑은끝이없지만자식들의부모에대한효는알면서도행하지못하는현실의벽을뼈저리게느끼며살아간다.이세상에나를태어나게해주신부모님의사랑으로내가이만큼내인생을살아가고있다.부모님이자식에게베풀어주신사랑은영원하지만,자식들은시대의변화를이유로서로부모를모시지안으려하는세태를볼때마다가슴은무너져내린다.부모님과의피로이어진이연은죽어서도끈을수없는가장질긴연이다.
을지병원에장모님의영정을모셔국화꽃으로제단을설치하고장례을준비하였다.먼저딸과아들,그리고손자들,사위들이눈시울을붉히며모여들었다.큰집조카들이달려와서애도를하였다.그런데,장모님의친가는양구통천이라고들었는데,집사람의외가는그간한번도왕래가없어연락할길이없단다.장모님께서함구를하고계셨으므로그사연은모른다.위로딸이셋이고밑으로아들형제를두셨는데,큰아들은5년전뉴질랜드로이민을갔다.막내아들이장모님의상주노릇을혼자하게되었다.큰아들에게전화로연락을주었는데,우느라고전화로통화를할수가없었다.큰며느리는병원에입원하셨다는소식을듣고달려와한달여머물다가음력설조금전에돌아갔다.
그날저녁쯤에큰아들에게전화가왔는데,마음은달려가고있은데,영주권관계로못나오게되었다면서울부짖었다.그러고는장례에보태라며송금을하였다.아들노릇을못하는불효자식은얼마나가슴이아플까,사람노릇하며사는것이삶을얼마나힘들게하는지뼈저리게느끼며사는것이삶인지도모른다.둘째딸은결혼하여아들과딸하나씩를낳아잘살았는데,20여년전어느날밤갑자기복통을호소하여병원에가서주사를맞은후하반신마비가와서오늘날까지휠체어에의지하며생활을하여둘째딸은마음고생몸고생이말이아니다.셋째딸은아들두형제가장성하여자영업을하며그냥산다.막내아들도아들만둘이다.어머니와가장오래도록같이살아서누구보다어머니을잘이해하는편이다.
빈소를지키는첫날은가까운친척과인척들이드문드문찾아주어한가한시간이었다.밤이되면서자영업을하는상주의문상객들이찾아오고,인연의끈을이어주는문상객들이조문을해주었다.90세를넘기셨으니호상이다.그래서인지곡소리는쉽게들리지않았다.눈시울을붉히며눈물을보여주는것으로슬픔을표시하는것이변화된세태의현실이다.장모님과두아들이교인이어서목사님과교인들이방문하여기도를해주셨다.내일입관예배와모래발인예배와화장장예배까지해주신다고하였다.죽음앞에서머리가숙여지는것은인간의도리이고,운명이후의세계에서의평화로운새삶을누리시기를빌어주는마음은종교를떠나서인간의기본적인바램이다.
밤은깊어가고조문객은왁자지껄하게살아있는사람들의모습을보여주며상주들의마음을위로해주려고노력하는모습들이었다.복잡하게분주하게살아가는우리들의삶앞에맞이하는죽음의순간을지켜보면서삶의허무를되돌아보기도하며,삶의자세를다시가다듬기도하는계기를마련하면서조금더여유를가지고삶을바라보자고다짐도해본다.2시가지나면서조문객은모두돌아가고가족들만이빈소를지키는시간이되었다.부득이한사람들은돌아가기도하고,한쪽에선지친몸을가누지못하고잠을자기도하고,한켠에서고인의삶을돌아보면서많은이야기를나누는시간으로늦은시간까지자리를지키다가하나둘빈소와접객소에쓰러졌다.
그래도아들과딸들이책임감을가져늦게까지자리를지키고있었다.둘째날은모든장례절차를준비하면서한번더확인을하고조문객을맞이하기로하였다.상가의오전시간은가장한가한시간이다.10:30분에교회에서목사님이오셔서입관예배를드리고,11시에입관을하였다.이의식이삶과죽음을갈라놓는신체의변화를확인하는자리이며,어머니와의마지막대면이이루어지는시간이기도하다.이자리는그냥바라보기만하여도눈물이하염없이흐른다.어머니와의마지막이별을눈으로확인하는시간은삶의처음과끝이주마등같이지나간다.조금더편히모시지못한후회가가슴을때린다.이의식이끝나야비로서상주로서복장을갖추고문상객을맞이한다.
장례는화장을하기로정하고벽제지나용미리추모의집에모시기로하였다.큰딸과두째딸이병원에서사망진단서를발부받아사망신고를하고장례절차에필요한서류를준비하였다.12시가지나면서하늘에선하얀서설이내리기시작하였다.시간이지날수록눈은내리고쌓여갔다.상가를찾아오시는분들의교통불편이예상되어죄송한마음이앞선다.오시는분들마다길이막혀서고생하셨다는말을하셨다.막내아들의장인은강릉에서오는길에평소보다많은시간이걸렸다고하시며밤늦게도착을하셨다.상가를방문하여조문하는것은우리의전통문화이므로종교를떠나예의를표하는방식은조금다를수있으나,모두가고인을향한추모객들의마음은밤12시가지나서도계속되었다.
오늘은장모님이이성에서마지막날이라하늘에서장모님의한많은삶을돌아보시고하늘의눈물을대신하여이토록많은하얀눈을계속하여내려주시는것같다.밤새내리던눈이언제그쳤는지모르겠다.내일장례절차에차질이발생하지않을까걱정이되기도하였다.밤을지세고발인준비를하였다.화장장시간이오후1:20분이어서발인시간은11로잡았다.시간은충분하여여유를가지고준비를하였다.오전10:30분에교회에서발인예배를해주시고절차를밟아발인예를드리고11시에병원을출발하였다.길에내린눈은모두녹아있어불편은없었다.도봉산수락산에는하얀눈이그대로쌓여있다.장모님께서이성을떠나는날이세상에서행한모든잘못한언어와행동을저하얀눈으로덮어주시고영원히평화의세계로가시는길진심으로명복을빌어드립니다.
벽제화장장에도착하니12시전이었다.조금기다렸다가시신을임시안치소에안치를한후우리는예약된화장시간을기다렸다.23기의화장장은풀가동을하고있었다.1:05분경에안내를받아운구를하여6번화장장에도착하여장모님의관이화로에들어갈때,그시간은울음바다가되었다.가장슬프고가슴이찢어지는한이서리는시간이다.장모님의시신과영혼이영원히분리되어시신은이곳에두고영혼은하늘나라로올라가게된다.그애절한움음소리도서서히줄어들고,다음은교회목사님의마지막예배시간이다.기도하고찬송하며고인의명복을비는시간으로이세상의마지막의식은끝을맺는다.우리는화장시간이끝날때까지가장슬픈아픔의시간을지루하게기다렸다.
2시가다되어장모님의시신은다삭은뼈조각과재로변하여우리앞에나타나셨다.그뼈조각을모아분쇄기에넣고돌리니고운재가루가되어준비한항아리에넣어봉하여인계를받았다.그곳에서15km정도거리의용미리제2추모의집납골당에안치를하였다.추모의집은생각보다엄숙하고깨끗하여장모님을좋은곳에모시게되어마음이놓였다.장모님을보고싶으면언제나찾아갈수있는장모님의집은아주작은공간이지만장모님의평소성격에닥맞는주위가깨끗하고꽃으로장식된주위환경이너무좋았다.우리도장모님의사진을준비하여삼오날에는문패와조화의화관을달아드리기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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