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에게듣는山이야기]김영도한국등산연구소장 “산악인은자신의경험을산서를통해공유해야”
에베레스트한국초등외에도그가한국산악계에이바지한바는많다.70년과71년전국명산에34개의대피소를짓는사업을주도했고,71년로체샤르원정이성사되게하는데도큰몫을했다.9대국회의원이던77년대한산악연맹회장에취임한이듬해인78년북극탐험에나서는등현역으로서활발하게탐험활동을펼쳤을뿐만아니라80년회장에서물러날때까지대산련을단단하게자리잡게하며산악행정가로서의기량도보여주었다.
그리고82년부터는한국등산연구소소장으로지내면서수필집<우리는산에오르고있는가>와<산의사상>등을내고,독일어영어일본어3개국어독해능력을발휘해해외산서를번역하는등산악문화부문에서도적극적인활동을펼치고있다.라인홀트메스너의<검은고독흰고독>,<죽음의지대>,<제7급>,이본취나드의<아이스클라이밍>,에드워드윔퍼의<알프스등반기>,존헌트경의<에베레스트등정기>등여러권의해외산서를번역했고,요즘도또한권의해외산서를펴내기위해마무리를하고있는등산악서적에대한식지않는열정을이어나가고있다.
김회장은도봉산파출소앞에서만나자마자이날조선일보톱기사를장식한박정헌씨와최강식씨얘기부터꺼냈다.두사람이촐라체북벽등반을마치고하산도중자일파트너가크레바스빠지는사고를겪은다음최악의상황에서모진고통을겪다가구조되었으나심각한동상으로손가락절단수술을받아야한다는기사내용이었다.
김영도소장은내로라하는전문등반을해본적은없다.46년서울대예과시절친구들과어울려성동역에서기차타고창동역까지간다음논밭길따라우이동버스종점을거쳐백운대에올랐다가산성을따라세검정까지걸어갔고,60년대초수유동으로이사한후인연맺은고김장호시인이나평화출판사허창성사장등과어울려인수봉의평범한코스나오봉을오른게기억나는젊은시절의산행일정도다.그러나아마추어에서최고의전문가로성장하기까지긴시간이걸리지않았다.
올해우리나이82.언뜻그나이를떠올리면지팡이짚고나들이도조심조심하리라예상되건만그는꼿꼿하면서도기운찬청년의모습을지금도유지하고있다.김영도소장에게산길을걷는속도는나이와관계가없었다.
“원두커피끓이는솜씨는일품이었죠.산장안에들어설때마다풍기던은은한커피향은지금도느껴지는듯생생하답니다.”
파출소앞을출발해30분쯤걷자도봉산장앞갈림목에닿았다.김소장은산장을바라보며10여년전세상을등진도봉산장관리인유용서씨를떠올렸다.산장안에들어서자반백의유씨아내는모처럼산장을찾은김소장을반겨주었다.
“공화당사무국시절간부들은골프치러다닐때저는공화산악회회원들과어울려산에다녔습니다.그러다선전부장시절산장이필요하겠다는생각에전국명산에산장짓는일에앞장서게되었고요.그리고나니까로체샤르원정얘기가나오더군요.대장인박철암씨가경비가모자란다고하지뭡니까.그래서대통령께한국인들이히말라야고산에도전하려하니도와달라는내용의품위서를올렸더니400만원짜리수표두장이내려오더군요.”
“어쨌든산장건립으로산악계에알려진다음로체샤르원정을후원해달라는부탁을받았고,이를계기로대한산악연맹부회장과에베레스트원정대장에이어대한산악연맹회장까지맡게되었습니다.우여곡절도많았습니다.특히원정을한해앞둔76년초설악골눈사태사고로모든게끝났다싶었으니까요.”
도봉산장을나와만월암으로향하던중선인봉이빤히바라보이는지점에이르자그는에베레스트훈련등반중사망한전재운씨를떠올렸다.원정을1년반앞둔76년1월당시군복무중이던전재운씨는김영도대장의요청으로휴가를받아내설악산훈련등반에참가했다.그런데폭설에이은눈사태로전씨를포함한3명이목숨을잃었다.전국을떠들썩하게했던사고였다.
그런상황에서도밀어붙였다.경비의절반은국고지원으로해결하고나머지반을지원하겠다고약속한한국일보사주가갑자기사망하자아들을찾아가“선친의유업이무산되게해서는안된다”며끝내지원을이끌어냈다.원정에나서서는1차공격조인박상렬씨가마지막캠프를출발했다가해발8,700m지점에서비박하고초주검이된상태로하산,분위기가침체돼또다시무산되는듯싶었으나김대장은2차공격을강행시켜고고상돈씨의한국최초세계최고봉등정을이끌어낸것이다.
“박상렬대원이동료들의도움을받으며사지에서돌아왔는데도텐트밖으로나가보지도않았습니다.마지막캠프에서산소를마시고자야다음날산소를마실때효과가제대로난다고여러차례강조했는데,눈에박힌산소통이빠져나오지않자그냥자버렸고,그래서이튿날제대로힘을발휘하지못했고,그래서화가났던거죠.지났으니까말이지,후배가무사히귀환했는데기쁘지않을리있었겠습니까,ABC(6,500m)텐트안슬리핑백에엎드려엉엉울었으니까요.”
“정말용합니다.아줌마아저씨들이저렇게복장도제대로갖추고,평일에도올라올수있다는게말입니다.그렇지만건강이나여가선용을위해산에다닌사람들은달갑지않습니다.공기좋은산에다니다보면건강이좋아진다는식으로등산을격하시켜서는안됩니다.고전적인의미에서등산은미지의세계에대한모험이자도전입니다.현대적인의미에서는도식적인세계에서의탈출이랄수있을것이고요.건강이란등산의부산물일따름입니다.”
김영도소장은산에다니는사람이많아지는것에대해서는반가워하면서도장비가고급화되고지나치게기능화되는것에대해못마땅하게생각하고있다.좋은장비를쓰다보면체험의강도는반대로약해질수밖에없고,그러면결국깊은정신세계를경험한다는것은어려운일이기때문이다.
“마칼루초등에성공한프랑스팀대장이한말이있습니다.등산은스포츠이자정열이며일상에서의탈출이자일종의종교라는거죠.형이하학적으로는심판도룰도관중도없는스포츠지만,형이상학적으로볼때는무상의행위이며늘죽음과대결하는행위입니다.이게다른스포츠와틀린점이죠.”
만월암너럭바위에서선인봉기슭트래버스길을따라석굴암으로향하는사이눈길은무척미끄러웠다.김소장은가파른바위를내려설때마다기우뚱하며불안케했으나,그때마다곧쓸데없는걱정임을깨닫게했다.순간적으로균형을잡으며자세를바로잡고또다시잰걸음으로앞서갔다.
한국산서회창립회원이기도한김영도소장은산악인들이산악서적읽기에게을리하고,자신의산행기를쓰는데관심이없는데대해무척안타까워하고있다.산행중감동받은산서얘기를수시로늘어놓던그는“돈많이벌어좋은아파트에서좋은자가용끌면서사는것도좋은일이지만,남의좋은글을읽고가슴이설레밤잠을설치는일도있어야하는거아니냐?”고되묻는다.
“하찮은내용이라도정리해놓았다가나이먹어산에다지지못할때먼지푹덮인서재에서꺼내젊은날자신의산행기를읽는다면얼마나감동적이겠습니까.인생의즐거움은스스로찾아야합니다.더욱이등반가라면자신의등반을글로나타내야할줄알아야한다고생각합니다.그래야경험이공유되고,더욱훌륭한등반이나올수있을테니까요.산에미쳐다니는산악인일지라도자신의등반을정리할줄모른다면투자에대한효과를제대로못거두는셈이나다름없습니다.”
김회장은1924년평북정주태생이다.5살때평양으로이사해평양고보를나올때까지북한에서지냈고,46년현서울대인경성대예과에입학하면서서울에서생활했다.55년육군대위로예편한다음에는국회사무총장실에도근무하고,육사교수와성동고교사생활도했다.82년부터는한국등산연구소소장으로지내고있다.산서를사랑하고산서를통해우리의산악문화를발전시키려애쓰는한국산서회회원이기도하다.
“대학에서철학을공부했지만사회에나와서는등산이전공처럼되고말았습니다.그래서외국등산서적을여러권우리말로옮기고등산에대한글도많이쓴거죠.등산을통해얻은체험과사색을주제로한때강의도많이했고,등산학교같은기관을통해사회인들을만나는것도등산가로서의보람이었으니까요.한평생큰후회없이살아온것같습니다.”
석굴암아래경찰구조대막사에도착할즈음하늘은더욱파랗고햇살은더욱눈부시게쏟아졌다.정수리아래흰눈인선인봉도환한모습이었다.독실한크리스천인김영도소장은원로장로로있는수유동성북교회교우들과몇해동안산행을해왔다.일요일예배가끝난다음교회부근의산을오르다가“명색이에베레스트대장까지했는데북한산만오를수있냐?”며교우들을설득해덕유산,월악산,오대산,지리산도다녔다.3·1절에도정기산행에나설계획이다.이밖에도집부근의수락산을매주한차례씩오르고,국회의원출신지인들과어울려매달한차례씩산행하고있다.
아홉살아래인아내이혜경여사는이태전부터파킨슨씨병으로투병중이다.시간이흐를수록몸을제대로못움직이는병이다보니,그도자유스러울수없다.그렇지만산악인들이나지인들만나는일만큼은게을리하지않는다.창립회원으로있는한국산서회뿐아니라괴테를좋아하는모임에도특별한일이없는한참석한다.그렇게시내모임이있을때는집근처회룡역에서전철을이용한다.전철에서는서서있는것을철칙으로삼는다.건강때문이라기보다는전철안에서서책을읽을때가장집중이잘되기때문이다.번역작업까지도전철안에서서할적도많다.
“가까이사는막내딸이세계산악계거장들에대해제법꿰고있답니다.번역중인해외산서의원고를여러해동안교정보다보니저절로알게된거죠.제목은아직결정하지못했지만3월중에산서또한권을펴낼계획입니다.”
“77년원정이후에베레스트를가본적은없습니다.그래서늘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에서며칠간머물며옛일을떠올리고픈마음은있지만,시즌이면식수가부족해서난리라는지금의베이스캠프를상상하면안가느니못하리라는생각이듭니다.”
김영도소장은“그보다는재작년85,000원주고산고어텍스군용침낭커버를쓸기회나한번가졌으면한다”며“깊은산에들어가팀스피리트때사용하는매트리스를깔고침낭커버를덮어쓴채밤하늘의별을보는게지금은가장하고픈산행”이라고여든이넘은고령에도산에대한식지않는열정을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