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박범신씨에게 듣는 산이야기 *-

[명사에게듣는산이야기]소설가박범신씨

“육체의호사가아니라영혼의안식만나고싶다”

▲인왕산정상인근의박범신씨.

“산은사원(寺院)이다.경외해야할신과같은존재이고,갈망과헌신의상징이다.그품속을낮은어깨고요한걸음새로걸을뿐이지,올라가정복할수는없다.등반은산의포근한품에안겨,자연의위대함을조금이라도느끼겠다는것이지,정복하겠다는건결코아니다.육체의호사가아니라바로영혼의안식을산에서만나고싶다.”

소설가박범신씨(61)를인왕산에서만났다.인왕산은조선조도성을세울때북악(北岳)을주산으로하고,낙산의좌청룡과함께인왕산이우백호에해당하는빼어난산이다.인왕산기슭은큼직큼직한바위계곡과맑은개울,송림이어우러져조선시대사대부들의살림터와풍류처로각광을받기도했던산이다.

박범신씨의삶은산과점철되어있다.그가처음산과인연을맺은건1967년.전주교육대를졸업한해였다.처음발령받은곳이바로덕유산(1,614m)과적상산(1,034m)으로둘러싸인전북무주괴목국민학교(당시이름)였다.그의첫객지생활이었다.동시에세상에대한외로움과괴리,소외감을가져다준장소이기도했다.이방인으로서겪는소원(疎遠)함은아이들을가르치는일에몰두해도풀리지않았다.그의유일한안식처는인근산을오르내리는일이었다.

산에오르는뚜렷한이유도없었다.단지산에오른다는그자체가정신과육체의위안이되었을뿐이었다.적상산을무척이나올랐다.일주일에서너번이상이었다.산이주는느낌,바로그포근함이너무고마웠다.인생의동반자라고까지할정도였다.그땐몰랐지만나중에“아,이게산이었구나”하는느낌이었다.산이준이위안은아마나중그가한국을대표하는소설가가되는데정신적힘이되었는지도모를일이다.

그의등단은1973년중앙일보신춘문예‘여름의잔해’란소설로이루어졌다.이후그는‘불꽃놀이’(80년),‘풀잎처럼눕다’(82년),‘숲은잠들지않는다’(84년),‘불의나라’(86년),‘물의나라’(87년),‘황야’(90년),‘위기의남자’(91년),‘수요일은모차르트를듣는다’(91년),‘마지막연인’(92년),‘태양의방’(92년),‘잃은꿈남은시간’(92년),‘틀’(93년),‘겨울강하늬바람’(93년),‘적게소유하는자가자유롭다’(93년)등을거의매년한편이상작품집을쏟아냈다.

그러나그는1993년말돌연절필을선언한다.20여년간계속해온작업에대한정신적피폐함을느꼈을까,아님세상에대한또다른두려움을느껴서일까?그는말한다.

“그냥단지쉬고싶고,인간본연의실존적인모습을고민하고싶어서당분간절필을선언했을뿐인데,세상은나의절필을마치기다렸다는듯이나를세상밖낭떠러지로밀어내는느낌을지울수없었다.난이게아닌데하면서도받아들일수밖에없는상황이돼버렸다.너무섭섭했고,때로는세상에배신감까지들정도였다.”

그는이때또다시산을찾기시작한다.경기도용인에화장실도없는상태의집에거처를마련한그는막무가내이리저리산을찾아다녔다.정신적인안식처로서산에대한거의맹목적인사랑은다음과같은일화에서도잘나타난다.

한번은밤9시무렵볼일보러잠시밖으로나갔는데,하늘의별이너무매력적이었고,마치잡아보라고유혹하는것같이반짝였다.그별을쫓아새벽녘까지산길을헤매고다녔다.집에돌아오니시간은새벽3시를넘고있었다.라이트도없이야간산길을걷느라길이아닌곳으로가는건예사였고,가시에찔리고이름도모를벌레에쏘이고웅덩이에빠지기일쑤였다.

▲킬리만자로정상에서세계적인산악인엄홍길씨(사진오른쪽)와함께한박범신씨(산진왼쪽).

인근굴암산과태화산(641m)이마치집앞마당이나된듯시도때도없이오르내렸다.거의산에대한경외감수준이었다.1990년히말라야첫트레킹경험도그에게산에대한무한한경외감을느끼게했다.그는이후안나푸르나,에베레스트등히말라야트레킹을다섯번이나더갔다왔다.2005년12월엔장애우들과함께희망원정대라는이름으로아프리카탄자니아의킬리만자로정상우후루피크(5,895m)를밟기도했다.영혼의안식처로서산에대한경외감은더욱쌓여만갔다.

“산은어머니의자궁이다.인간은그곳에서열달동안있었지만어떻게생겼는지기억도못하며,볼수도없다.이건마치사람들이산에갈때자기가지나치는부분부분만보며,전체가어떻게생겼는지전혀보지못하는모습과꼭같다.그러면서도인간은전혀겸손하지도않고교만하면서거만하기까지하다.산이란자연속에서시간을되돌아보고겸손을배워야한다.”

96년그는3년간의절필을끝내고화려하게복귀한다.‘흰소가끄는수레’(96년),‘제비나무의꿈’(96년)등을잇따라발표했다.그의복귀에대한변(辯)과3년간의절필에대한내면적이유는97년발표한소설‘킬리만자로의눈꽃’에잘드러나있다.죽은고기나찾아다니는하이에나처럼인생을유기하며살아가는인간들,사랑에서조차늘아웃사이더인우리들자신의삶을뒤돌아보게해주는소설이다.

다시작품활동을시작한다.젊었을때만큼작품발표는덜했지만,다양한사회활동으로그부족분을보충했다.한국문인협회와국제펜클럽회원으로활동하면서한국문학발전에이바지함과동시에명지대학교에서후학들을가르쳤다.

그는2005년‘나마스떼’를발표하고,그소설남자주인공의고향인히말라야를2006년3월부터방문,70여일간고행의산행에들어간다.이때쓴편지형식의글들을모아산문집‘비우니향기롭다’를발표했다.그는이책에서존재의가없는하찮음과존재의가혹한무거움을만났던경험을그대로써내려갔다.

‘고독은버나드쇼의말처럼방문하기엔좋은장소지만체재하기엔쓸쓸한장소입니다.아니쓸쓸한장소에서끝나는것이아니라자신이약해지고무너져가고있다고느낄때고독은처형의장소가될수있습니다.’

▲2005년12월장애우들과함께희망원정대라는이름으로킬리만자로정상가는길에서.

‘갖은고생을다해서최종목표지점에올라왔는데도너무지쳐서그런것일까요.아무런환호도솟아오르지않습니다.물론슬픔도없지만요.다만지나간내모든시간이다전생에서겪은일인것같습니다.사람이죽을때는짧은순간자신의전생애를축약해서보게된다는데,지금의내가그렇습니다.평생용서할수없었던정한도,평생해체할수없었던욕망도,평생버릴수없었던아집도여기선힘을못씁니다.그것들은더이상나를억압할수없습니다.’

‘사색은달리는자에겐머물지않습니다.머물러서서먼곳을볼겨를이없으니사색은내게서점점더멀어지고,그다음엔세상이만든습관과관성에따라달려가면서악을쓰다가,어느순간문득멈추어뒤돌아보면,삶의어느지점에서부터사색하는걸잊어버린것인지,원래의그자리조차찾을길없는것이바로50대의내가살아온세상이었습니다.’

‘이곳에선시간이천천히흐릅니다.실러는시간의걸음에는세가지가있는바미래는주저하면서다가오고,현재는화살처럼날아가고,과거는영원히정지하고있다고말했다지만,이곳에서시간의흐름은오히려그반대로흐르고있다고보면됩니다.과거는주저하면서다가오고,미래는정지되어있으며,현재는장강의물처럼느릿느릿,흐르지않는듯이흘러갑니다.이곳의현재에선뛸필요가없지요.’

‘나는무엇을찾아왔던가.삶은필연적으로구심력을쫓아오는회귀와원심력을따라가는유랑사이에놓여있습니다.많은날들집으로돌아왔듯이지난두달반동안,나는끝없이유랑의길로흘러다녔습니다.

그러면서,천길낭떠러지위에걸린출렁다리를아슬아슬하게건널때,만년빙하의파노라마를올려다볼때,그리고깊은밤내발의물집들을잡아뜯으며침낭을뒤집어쓰고씁씁하게돌아누울때,나는자주왜,무엇을찾아낯선시간속으로흘러다니는것일까하고생각했습니다.지나간삶은더러후회투성이였고,미래는불확실했으며,오늘의내영혼은잔인한시간의주름속에갇혀있었습니다.’

▲2001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트레킹하다원주민소년소녀들과함께.

그는히말라야에서인간의고독,겸손,사색,시간,여유,비움,존재에대한무한한고민을그대로쏟아냈다.인간실존에대한근원적의문이었다.그러나정답은없었다.단지본질에조금더접근하는느낌이들뿐이었다.

산은무엇일까?인간에게주는의미를뭘까?1980년부터16년동안히말라야14좌를세계에서다섯번째로완등한폴란드산악계의작은거인크지슈토프비엘리키는말했다.

"산은지극히주관적인곳이다.도시에서10년걸려체득할수있는것을산에서는단5분만에경험하기도한다.그래서산은사람을변화시킨다.정신적으로건강해지고포용력이넓어지게한다.산에다니면서받는감동,그것이내가산에다니는이유다."
그러면박범신씨에게산은뭘까?그에게물어보았다.

“산을걷는다는것은자본주의의경쟁체제에찌든인간의독성(毒性)이나독기(毒氣)를빼내는행위입니다.한일주일정도걸어보면두고온사람,편리한세상등온갖생각,잡념이솟아납니다.그러나다시일주일더걸어보세요.육체적피로와힘듬으로인해그런생각할여유조차없어집니다.다시일주일더걸어보세요.모든사고는관념으로만작용하고,더이상실존하는게없어집니다.그관념도구체적인방법으로실천에옮길건아무것도없습니다.

무(無)와유(有)가똑같아지는세상입니다.흔히들말하는종교의무념무상의세상이지요.여기선시간이란개념도의미없지요.다인간이만들어낸부산물에불과하죠.산이란자연속에서인간은겸손함을배우고,인간성을회복해야합니다.”“인간은함께있으면서도혼자이고,혼자이면서함께인것을왜모르는가?”라는화두를던지는것같았다.

-글:박정원기자/사진:이상선차장/월간산[444호]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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