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안 리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의 산이야기 *-

[명사에게듣는산이야기]조안리스타커뮤니케이션회장
“산을통해신의존재느껴…세계의웬만한산들다돌아봤다”

▲조안리회장이북한산과청명한하늘을배경으로인왕산정상가는길목에서포즈를취하고있다.

산은진정인간에게무슨의미를줄까?느끼는사람,받아들이는사람에따라천차만별다르겠지만산을통해신의존재,하느님의존재를느낄수있다면그만큼산의존재를의미있게받아들이는것이아닐까?

어떤사람이그정도로산을느낄까?한국알파걸의원조격인알파우먼조안리(63)회장이그렇다.조안리회장의인생은한마디로도전으로점철돼있다.그도전대부분을성공으로이끌었다.그것도남성중심적인한국사회에서여자의몸으로.그녀의운명은어쩌면가톨릭신부와의결혼으로세상에떠들썩하게예고편을알렸는지모른다.

그예고편이전에징조와복선은이미있었다.초롱초롱하고똑똑한소녀시절,공부좀하는학생이면누구나명문중학으로진학했겠지만그녀는스스로성심여중을택했다.가톨릭재단에서세운학교다.그녀운명의시작이다.여중3학년때영세를받기위해이름도조안리라고본인이직접세례명을지었다.불어의‘잔다르크’가가톨릭식발음으로‘요한나’가되고,이게영어식발음으로‘조안’이된다.조안리라는이름은,인물은이렇게탄생했다.

사회적상황이인간의존재를구속하고,개인의이름이그사람의운명을일정부분결정짓는다고보면조안리는이미자신의운명을스스로결정짓기시작했다.학교선택에서부터개명까지.나아가고교도같은재단인성심여고로진학했다.고집세고자존심강하며,어렸을때부터자신의일을알아서한조안리는고교입학해서도공부는곧잘했다.정신적으로도꽤성숙했다.자연히사람의심리에관심이많았다.서울대심리학과에가기로마음먹었다.실력도충분했다.

그러나그녀의운명은그길이아니었다.교장수녀의손에이끌려서강대설립자이자초대학장인케네스킬로넨(KennenthKiloren·한국명길로연,그녀는켄이란애칭으로불렀다)에게로갔다.교장수녀는그녀에게“넌신앙심이약하니,이학교에서신앙심을더키워훌륭한인재가돼야한다”고했다.하지만그운명도아니었으니어쩌랴.그녀와케네스신부와의운명적인첫만남이이뤄졌다.그녀는한눈에온세상을보는것같은느낌을받았다.말씀과모습이너무나인상적이었고,한순간에어린가슴을온통차지해버렸다.세속적인말로한눈에빠져버린것이다.

그녀는바로방향을틀었다.서강대에가볍게합격하고장학금까지받는다.장학생들만따로학장과면담자리를가졌다.서로못알아볼리없었다.훗날케네스학장은그녀에게이렇게말했다고한다.“다른학생들은모두두렵고어려워하는데,조안리는전혀주눅들지않고당당한모습이굉장히인상적이었다.”

▲인왕산등산객에게사인해주고있는조안리회장.

*일이편해지면오히려불안…도전으로

살아

그게바로조안리회장의모습이다.남녀성에대한고정관념과이데올로기를훌훌던져버리고남성보다뛰어난모습과활동을보이는알파걸(alphagirl).급변하는현대사회에서2007년에태어난신조어이고,새로운사회계층을이르는말이다.이들은그원조격인알파우먼이있기에가능했다.한국알파우먼의1세대가조안리다.미국에서는콘돌리자라이스나마돈나같은인물이꼽힌다.알파걸의특징은당당하고적극적이며,스스로에대한자부심이강하다.남성과다른여성의특성을알고적극활용한다.페미니스트가되어야할필요성을느끼지못한다.사회적출세와성공적인재테크를중요하게여긴다.과학,공학,비즈니스에관심이많고이성적인편이다.그녀는이런특징대부분을갖췄다.

그녀는입학한뒤케네스신부의한국어교사이자산행안내자가됐다.서울의모든산을두루섭렵했다.산이그들의데이트코스였던셈이다.지금운명을달리한신부가그산에서그녀곁에있을것같아그녀가산을좋아하는지도모르겠다.

그녀와의잦은만남이학교는물론교구,나아가교황청에까지소문이났으니세상이발칵뒤집혀졌음은물론이다.급기야신부를교단에서연금하고,정신병원에입원까지시킨뒤미국으로돌려보냈다.그러나그과정은조안리에게사랑을더욱깊게만들뿐이었다.‘길은멀어도마음만은’정도가아니었다.학교에서는소란을일으켰으니자퇴하라고압력했다.‘내가왜그만두냐’는식으로오기로버텨졸업했다.

그해바로미국으로날아갔다.주변의탄원으로여권과비자가나오지않았지만새학장을찾아가‘나를그냥보내주는게소문을없애는데더좋을것’이라고담판지어끝내받아냈다.도전하면포기하지않는그녀다.교황청의결혼허락까지받아내고미국성당안에서조촐하게식을올렸다.그때그녀나이23세였고,신부는49세였다.마침내도전을성공시켰다.

그러나신부의경제적능력은제로였다.일주일간고민끝에냉정하게결론내렸다.“남자가못벌면내가벌면된다”고.그녀의세상에대한선전포고다.결혼직후일리노이대학원에서심리학석사을받았다.LA주정부민원담당공무원으로첫사회생활을시작했다.약3년간공무원생활을끝내고한국조선호텔홍보코디네이터로자리를옮겼다.그게73년이다.

한국에홍보란개념조차생소한시절그녀가새로운장을열었다.갈등도있었지만여자의섬세함으로조직과사람마음을장악해나갔다.업무능력도자연히인정받았다.

“산을통해신의존재느껴…세계의웬만한산들다돌아봤다”
▲인왕산산행을하다잠시휴식을취하고있다.
그러나그녀는여기서안주하지않았다.그녀는기본적으로편안한것을싫어한다.편하고쉬우면오히려뭔가불안해진다.이게그녀가가진정신력이다.4년여의코디네이터생활을청산하고국내에서첫홍보회사를만들었다.32세에스타Executive-service를설립한게77년이다.초기엔호텔에오는비즈니스맨들을위한서비스회사였다.사업은번창했다.돈도많이벌었다.업종을전문화하기위해국제홍보에초점을맞추기로했다.회사명도스타커뮤니케이션으로바꿨다.지금까지이회사와거래한기업은아메리칸익스프레스,스위스연방은행,제너럴일렉트릭,루비통,비자인터내셔널,유나이티드항공등이름만들어도알만한기업이수두룩하다.

그녀의성격을제대로파악할수있는일이차세대전투기사업(FighterExperimental)에서벌어졌다.미국의맥더널더글러스가스타커뮤니케이션에한국의차세대전투기사업인율곡사업에지명될수있도록홍보를부탁했다.다른몇군데도기안을올렸다.기안서는제일훌륭했다.당연히선정될줄알고있었는데,결정은계속미뤄졌다.그래서물어봤더니,한국은남성위주의사회여서여성이사장으로있는회사를쓰면과연홍보효과가있을것인가를놓고내부논의중이고,회사관계자들은사장이어떤사람인가파악하기위해계속방문하고있다는답이돌아왔다.

조안리회장은일언지하에“나는내가여자란사실을바꿀수없으니당신네들이결정되면나한테연락해라.만약그와중에회사관계자가다시나를보기위해찾아온다면시간당300달러를내야할것이다”라고말하고끊어버렸다.그리고잊었다.1주일뒤선정됐다는연락이왔다.왜뒤늦게결정했냐고물었다.엄청난금액이오가는율곡사업을단칼에잘라낼수있는여자같으면아무리한국사회라도같이사업할수있을것같아결정했다는답이돌아왔다.그녀의냉철한판단력과추진력이사업을성공으로이끈것이다.

▲1암벽등반배우던시절.맨왼쪽이이인정대산련회장.2세계대학생평화봉사사절단선발직후기념촬영.조안리회장은조직위원장이다.3북한산에서한비야팀장과함께.
사실그녀의어릴적꿈은정치인이었다.알렉산더,시저등위인전을즐겨읽었다.그러나그녀의결론은정치는타협의산물이라는것이다.그녀스스로타협하기를싫어했다.그녀가정한원칙이있을뿐이었고,그원칙을지키면서일하겠다고다짐했다.그녀의원칙은국가나사회가필요로하는일을하면서돈을벌고,종교적양심에어긋나는일은절대하지않으며,학연지연혈연하는‘연’없이실력으로제대로해보겠다는것이다.

*5년전암벽등반배워…뉴질랜드로트레킹갈것

그녀는이원칙을무슨일이있어도지켰다.누구나사업하려는사람은본인의원칙을가지고,그원칙을꾸준히지키면성공한다고조언했다.특히미래사회는여성다운섬세함을갖춰야유능한사람이될수있다고강조했다.역시알파우먼다운충고였다.
그녀의능력은이것으로끝나지않았다.주한미상공회의소수석부회장등을거쳐지금은월드미스유니버시티세계조직위원회겸세계대학생평화봉사사절단위원장과국제백신연구소모금홍보특별고문으로활동하고있다.사업하면서세계50여개국을오가며쌓은인맥은나이쉰을넘기면서부터봉사와헌신의삶을사는데활용하고있다.어쩌면많은사람이공유했어야할신부의사랑을혼자독차지한여성사업가가뒤늦게그사랑을남편대신베풀고있다고볼수있다.이베품과헌신의삶도운명적인사건으로발생했다.

지난2000년업무차독일에갔을때일이다.호텔욕실에서바쁘게전화받으러나오다넘어져갈비뼈가부러졌다.그부위만치료하고지나쳤다.한국에돌아와몇달뒤두통으로병원에갔다.호르몬등온갖검사다하고이곳저곳촬영해봐도아무이상없었다.마지막으로의사가퇴근하기직전농담같이뇌MRI검사를해보자고했다.3개월전독일에서넘어졌을때부딪힌뇌에서서서히피가나와응고되기시작했던게나왔다.조금더늦었으면운명을달리할순간이었다.

▲492년조지부시미대통령초청오찬에서.5주한미상공회의소부회장시절방한한클린턴대통령과함께.6국제백신연구소특별고문자격으로기부금을낸외환은행이사장과함께.
즉시입원했다.마침미국에있는딸도한국에와있을때였고,딸과잘아는친구아버지인명망있는의사와쉽게연결되어수술을받은것이다.우연치고는너무짜맞춘듯하다.완쾌된지금봉사의삶을살고있는그녀는“어쩌면내인생은너무나운명적이라는생각이든다”고했다.중학교선택,케네스학장신부와의만남,미국유학,취업과회사창업,봉사와헌신의삶등짜여진각본에의해움직여진느낌이라는것이다.

그녀의얼굴엔한결여유가있어보인다.그이면엔도전적이고치열하게살았던흔적들이언뜻언뜻비친다.도전정신은아직남아지난2002년부터암벽등반을시작했다.적지않는나이에못말리는열정이다.많은사업을하고,세계각국을돌아다녔지만한국의산만큼그녀의마음을끄는것도없다.네팔,아프리카,미국,유럽등세계의웬만한산을트레킹과사파리를통해다경험했다.내년엔뉴질랜드마운트쿡에갈예정이다.

한국의산은언제나포근하고친숙하게다가온다.그녀는산을통해하느님을보고존재를느끼기때문이다.아니어쩌면케네스신부와다니던모습을상상하고있는지모른다.아련한기억에남는그옛날애틋한감정으로세상을떠들썩하게했던40년전으로돌아가서말이다.그녀는“내곁에항상켄이있는것같다”고했다.그게바로산을통해서얻는만족감일것이다.산은그녀에게남편이고,하느님이고,신인것이다.

-글박정원차장대우/사진이상선차장/월간산[458호]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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