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카메라에 담는 손재식 *-

[山,그리고사람]<4>산을카메라에담는손재식


자일깔고바위에매달려사진찍고글까지쓰며1인3역
느긋하게즐기며일과놀이를완벽하게조화시키는손재식

손재식.국내최고수준의산악사진작가로서일과놀이를완벽하게조화시킨사람이다.

나는어떠한산악회에도소속되어있지않다.남들에게폐를끼치고싶지않아서이다.내게는빨리걷거나잘오를수있는능력이없다.머쓱한변명을늘어놓자면사실은그럴의향조차도없다.내가생각하는산은단체행동의공간이나기록경기의대상이아니다.

산이란모름지기천천히걸어오르며즐겨야된다.나의이러한등산관을어여삐여기고너그럽게품어줄산악회는이세상에없다.덕분에나는늘홀로,아니면나와같은산행태도를지닌사람들하고만산에오른다.농담삼아이르기를산중한량(山中閑良)들의느슨한연합체이다.

성질급한사람들이나와함께산에오르다가는제풀에스트레스를받아나가떨어지기십상이다.시냇물이나오면발을담그고,숨이조금만차면주저앉아사과를깎아먹으며,멋진풍광앞에서면그자리를떠날줄모른다.심지어바위를오르다가도엉덩이를붙일만한그늘막이나타나면자리를확보해놓고길게누워낮잠을즐기기도한다.

그들은성질을못이겨냅다소리를지른다.“야임마,너지금놀러왔냐?”나는더욱편하게자세를고쳐잡으며당연하다는듯대답한다.“응,나지금놀러온거야.”그런내가임자를만났다.나보다더느린속도로산을즐기는사람이바로산악사진작가손재식(50)이다.

언젠가그와단둘이도봉산에올랐을때의일이다.떡과미역국등으로간단히점심을해결하고나자그가배낭에서해먹(그물침대)을꺼냈다.“산에서자는낮잠이야말로최고의단잠이지.”막잠이들려는순간빗방울이후두둑떨어지기시작했다.우리는오버행으로이루어진바위밑으로자리를옮겼다.

나는준비해간와인을꺼냈고,그는우크렐레(작은기타모양의악기)를꺼냈다.우리는추적추적내리는산비를바라보며와인을마시고우크렐레를연주하다가저도모르는사이에스르륵잠이들어버렸다.그단잠에서불현듯깨어났을때시야를가득메웠던비에젖은도봉산이얼마나청신하고아름다웠는지….오래도록잊혀지지않을만큼행복한산행이었다.

그는산악인인동시에예술가다.그가찍은산사진들은이미국내최고수준의작품으로정평을얻고있다.그는다양한주제와앵글의산사진들을찍지만그중에서도단연빛을발하는것은‘산악인으로서찍은’사진들이다.사진작가들은많다.그러나산악사진작가는드물다.산을원경으로찍은산악사진작가들은많다.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가는길.풍광이멋있고편의시설이잘갖춰져전세계등산애호가로부터큰사랑을받고있다.산악사진작가손재식도지금그곳에서히말라야를카메라에담고있다.월간’MOUNTAIN’진우석기자제공

하지만바위와얼음에찰싹달라붙어실제로등반을해내면서산과산사람을찍을수있는산악사진작가는희귀하다.그런뜻에서손재식은,미국출신의세계적인산악작가갤런로웰(1940~2002)과비견되는‘한국의갤런로웰’이라고할만하다.손재식은그의저서‘하늘오르는길’(2003)의표지앞날개에실린약력에스스로를이렇게소개하고있다.“사진을전공하기전에산을배워,산과사진이삶의중추가되었다.”

“너는글을써,사진은내가찍을게.”우리가함께산행을시작할즈음그가내게한말이다.하지만한동안나는그와산행을할때마다언제나카메라를들고갔다.그리고그와동일한지점에서동일한앵글을잡고셔터를눌러댔다.그러나결과는언제나같았다.그렇게황새를따라가려는어리석은뱁새짓하기를몇번,그이후로나는아예카메라를놓고말았다.따지고보면당연한노릇이다.

한사람이평생에걸쳐이룩한성취를그저어깨너머흉내내기로배워보겠다는속셈자체가애당초말도안되는짓거리였다.하지만그는카메라를든채로나의영역으로넘어왔다.작가로서가아니라‘산악인으로서’글을쓰기시작한것이다.

1998년9월28일오후5시.한국탈레이사가르(6,904m)북벽원정대의신상만(당시32세)최승철(당시28세)김형진(당시25세)대원이세계최초로북벽정면의블랙타워를돌파한뒤무려1,800m를추락하여사망했다.6명이출발했다가3명만귀환한비극의원정대였다.손재식은그때살아돌아온3명의대원들중한사람이다.

유족들로부터그들의이야기를책으로써달라는부탁을받은것은나였다.하지만나는자료들을반년가까이나품에안고있었으면서도쓸수가없었다.식은땀을흘리며악몽에서깨어난적도여러번이다.그들의이야기를결국책으로만든것은손재식이다.그가쓴글과그가찍은사진들로이루어진책‘하늘오르는길’은한국산악문학의한정점을보여준다.

손재식이국내의한산악전문지에수년째연재하고있는‘한국바위열전’역시우리산악계의큰보물과도같은글이다.한국을대표하는바윗길과얼음길들을초등자들과다시함께오르는과정을담은연재물인데,사료적가치와통쾌한사진그리고문학적향기가두루어우러진명품이라할수있다.그는이연재물에서스스로선등을하며자일을깔고,바위와얼음에매달려사진을찍고,그모든과정들을글로남기는1인3역을하고있다.오직손재식만이할수있는독창적인작업이다.

그는이힘든일을해내면서도언제나느긋하게그과정을즐긴다.그는내가알고있는한‘일과놀이를가장완벽하게조화시킨’사람이다.그는일주일중사나흘을산에서보내고일년중서너달동안해외원정을떠난다.이렇게‘치열하게노는’손재식이또하나의프로젝트를시작했다.바로히말라야8,000m급14좌의베이스캠프를모두돌아보는사진촬영트레킹이다.

손재식은3월15일그첫번째대상지인안나푸르나(8.091m)베이스캠프를향해떠났다.일정을보아하니지금쯤마차푸차레(6.993m)아래에서여유롭게카메라셔터를누르고있을것같다.산악문학작가

◆히말라야14좌베이스캠프트레킹
전문산악인아니라도설산진면목볼수있어

히말라야에는8,000m가넘는산이14개있다.그산들의정상에오르는것은극소수의전문산악인이나가능한일이다.하지만그산들의베이스캠프까지만오르는것은일반등산애호가들도가능하다.단,베이스캠프라해도평균4,000m이상의고도에위치해있으므로,고산병에대한각별한주의가필요하다.

14개의베이스캠프가운데8개는네팔에있고,5개는파키스탄에있으며,1개는중국에있다.이들중가장대중적인사랑을받는곳은풍광이수려하고편의시설이잘갖춰져있는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4,130m)트레킹이다.산악사진촬영을겸한손재식의14좌베이스캠프트레킹프로젝트는4년에걸쳐이루어진다.

첫해인올해에는3월에안나푸르나,6월에낭가파르바트,11월에초오유와시샤팡마에간다.히말라야14좌중가장서쪽에있어유럽대륙에가까이있는낭가파르바트베이스캠프는온갖기화요초들이만발하여가장아름답다는평을듣고있다.2007년에는3월에마나슬루,7월에K2,가셔브룸1,가셔브룸2,브로드피크,11월에마칼루로향한다.

이해7월에내정되어있는4개의산은모두파키스탄에속해있는것들로,그베이스캠프들이서로지척의거리에있어한꺼번에둘러볼수있다.2008년에는3월에칸첸중가,11월에다울라기리에간다.칸첸중가는히말라야14좌중가장동쪽에위치해있으며인도의시킴지역과국경을맞대고있다.

거의유일하게불교적색채가짙은지역이다.마지막으로2009년3월에는에베레스트와로체에간다.이두산역시지척의거리에있다.빠른산행을힘겨워하고느긋하게사진찍는것을좋아하는사람들에게는대단히즐겁고유익한체험이될것이다.

-한국일보에서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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