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영국산악인조지리맬러리(1886~1924)가세번째에베레스트원정을떠나기앞서비용을충당하기위해미국으로강연여행을떠났을때의일이다.미국의한신문기자가그에게물었다.“왜에베레스트에오르고싶어하십니까?”이수도없이반복되는질문에넌덜머리가난맬러리는피곤하고짜증스러운말투로퉁명스럽게내뱉었다.“그것이거기에있으니까요.(Becauseitisthere)”
‘그것’이란당연히에베레스트를말한다.맬러리는“에베레스트가그곳에있으니까에베레스트에오르려한다”고답했던것뿐이다.하지만그의이퉁명스러운말대꾸는이후등반사상가장유명한선문답이된다.단순히재치있거나모호한답변이었기때문만은아니다.그의삶자체가에베레스트등반이었고,에베레스트는세상의모든산을의미하는대표명사처럼인식되었으며,맬러리자신이세계등반사의유령혹은신화가되어버렸기때문이다.
조지리맬러리는1886년영국체셔주에서목사의아들로태어나케임브리지대학을졸업한전형적인부르주아계급출신이다.10대중반시절부터암벽등반을즐기긴했지만남달리빼어난솜씨를지녔던것은아니었던듯하다.그의성격은증언자들에따라크게다르게전해진다.어떤이는그가덤벙댔을뿐아니라건망증마저심했었다고전하고,다른이는그가매우충동적이며과감한성격을지녔었다고전한다.
이후그의등반경력을보면이는동전의양면과도같은것이아니었나싶다.맬러리는생애최후의등반에나설때조차손전등을챙겨가는것을잊었고,가장절망적인순간에이르러서도뒤돌아보지않고정상을향해전진했던것이다.
그에게가장깊은영향을미친사람은훗날영국산악회의회장직을역임했던제프리윈스롭영이었다.맬러리에게빙벽등반기술을가르친것도,그를에베레스트로이끈것도,그에게‘새로운꿈’을심어준것도모두제프리윈스롭영이었다.따분한교사생활과궁핍한경제사정때문에풀이죽어있던맬러리에게영은이렇게말했다.
“에베레스트에올라가!그리고그이야기를책으로써!그러면자네는부와명예를한꺼번에얻게될거야!”갈등을겪던맬러리가기꺼이1921년제1차영국에베레스트원정대에참여하게된것은그때문이었다.이를테면그는‘산악문학작가’가되고싶었던것이다.하지만그는끝내단한권의책도쓰지못했다.대신사후숱한산악문학의대상이되었을뿐이다.
1922년제2차영국에베레스트원정대마저쓰라린좌절만을겪고돌아왔을때,맬러리의심신은극도로지쳐있었다.만약아내와세아이들이없었더라면그는더이상그‘지옥의산’에도전하지않았을지도모른다.흔히세상사람들이오해하듯그는‘돈과시간이남아돌아서’에베레스트에오르려했던것이아니다.
오히려그와는정반대로‘돈과시간을벌기위해’그토록필사적인노력을기울였던것이다.두차례에걸친막대한국가적재정지원마저수포로돌아가자그는손수원정비용을마련해야만했다.‘에베레스트가그곳에있으니까오른다’는그유명한선문답내용은이과정에서빚어진하찮은에피소드에불과하다.
1924년제3차에베레스트원정대는사실맬러리의존재를탐탁치않게여겼다.개성이너무강하고충동적이어서도무지명령따위가먹혀들지않는이고집불통의사나이가불편했던것이다.하지만영국국민들은맬러리가참가해야만한다고생각했다.맬러리는그때이미‘에베레스트의사나이’로널리알려져있었던것이다.
에베레스트에대한영국의집착은대단했다.자신들을‘세계의중심’이라고여겼던그들은북극과남극이모두‘이방인들(foreignersㆍ영국인이아닌사람들)’에게첫발자국을내어주자‘제3의극’이라는신조어까지만들어에베레스트초등에목숨을거는분위기였다.그리고그들이생각할때에베레스트정상에첫발자국을디딜사람은다름아닌맬러리여야만했던것이다.
1924년6월8일,조지리맬러리는에베레스트북측8,220m의제6캠프에머물러있었다.그가아내에게남긴마지막편지가가슴을친다.“아주힘들었어.돌아보면엄청나게노력을했고진이다빠져버렸다는기억밖에없어.텐트문밖을보면희망은사라지고눈만덮인황량한세계가눈에들어와.”
하지만그는결국텐트를박차고나와정상을향해올라갔다.그리고는끝내돌아오지않았다.향년38세.그가그렇게살다간이유를다른데서찾는것은옳지않다.부와명예혹은국가적숙원사업따위는유치한핑곗거리에지나지않는다.이유는단하나,단지에베레스트가그곳에있었기때문이다.
◆1999년맬러리-어빈수색원정대
정상향해손뻗은채로하얀대리석처럼…
조지리맬러리가최후의등정을함께한파트너는당시22살의앳된청년앤드류어빈이었다.1924년당시이두사람이어디까지올라갔을까하는것은오랜세월동안세계등반사상최고의미스터리로꼽혀왔다.영국인들은그들이정상에올랐다고믿고싶어했다.
만약그것이사실이라면1953년텐징노르가이와에드문드힐러리가세운초등기록을무려31년이나앞당기는셈이다.하지만올랐다는증거도,오르지못했다는반증도찾을수가없었다.1999년그들의실종75년을맞이해특별한임무를가진원정대가구성되었다.
영국의국영방송BBC다큐멘터리팀이꾸린‘맬러리-어빈수색원정대’이다.최강의산악인들과최고의방송스태프들이꾸린이원정대는훗날‘2005한국초모랑마휴먼원정대’의한전례가되기도했다.1999년5월1일,이원정대의톱클라이머콘라드앵커는8,520m지점에있는한테라스(암벽이불쑥튀어나와평평하게되어있는곳)에서맬러리의시신을발견했다.
에베레스트의유령혹은신화로불리웠던역사속의사나이가무려75년만에자신의자태를세상에공개한것이다.등산복은이미삭아서없어져버렸지만그의피부는그대로남아있었다.눈과햇볕에바래하얀대리석같은피부였다.정상을향해손을뻗고있는그의자세는추락직후까지의식이남아있었음을보여준다.
75년만에발견된그의시신과유품들은또다시격렬한‘에베레스트초등논쟁’을불러일으켰다.하지만BBC다큐멘터리팀은오르지못했을가능성이보다높은것으로결론지었다.이원정대는화보중심의‘에베레스트의유령’,논문중심의‘그래도,후회는없다’라는두권의책을발표했는데,이들중후자는국내에서도번역출간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