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복 미래인력연구원 이사장의 산이야기 *-
[명사에게듣는산이야기]송복미래인력연구원이사장
한국의대표보수논객,연60회산행…"등산은학문하는것과같아"

한국의대표적보수하면떠오르는인물이누구일까?몇몇사람이거론될수있을것이다.그중에서대표적인물로꼽아도손색없는사람이있다.지난10년동안끊임없이정권에대해할말을하고,비판의글발을세웠던송복(宋復·71.전연세대)교수다.

보수하면보통낡고진부하며변화를싫어하는이념을떠올리는경향이많다.그러나실상을알고보면전혀그렇지않다.오히려보수는사회를유지하는힘이다.사람은태어나서누구나기존사회의가치와규범을익히는사회화(socialzation)과정을거친다.이사회화를달리표현하면보수화과정인것이다.

어렸을때익힌가치와규범은10대에인생의반항기를거쳐20대에다양한학문의접촉을통해이념적반항기내지는혼란기를겪게된다.이시기를거친후비로소가치를정립하고자신의눈으로세상을바라보게된다.따라서누구나처음부터바로보수가되는건아니다.다양한이념적스펙트럼을거친후자신의가치관에맞는이념을선택해서형성되는것이다.

▲정년퇴직후고전을재해석하는저술활동으로제2의인생을즐기고있는대표보수논객송복교수가지난1월13일북한산자락대남문을배경으로문수사에서포즈를취했다.

사회에서보수가많은이유도이런과정을필연적으로거치기때문이다.대개한사회나국가에서보수는35%,좌파는30%,중도는40%가까이된다.중도는보수적성향을띠는경우가많다.송복교수도이런과정을다거쳤다.그가60년대학을졸업하고처음선택한직장이장준하선생이사장으로있던사상계였다.

사상계는당시로서는한국의대표적인반체제,진보성향의잡지였다.박정희정권에비판의칼날을매섭게들이대던시절이었다.송교수가서울대정치학과4년때인59년9월사상계에서전국대학생논문현상모집에‘한국지식인의사명’이란논문이당선된인연으로입사한것이다.부상으로상금3만환을받았다.양복한벌이1만2천환하던시절이었으니거금이었다.

그는졸업몇달전부터출근하기시작했다.군에가기전까지1년여간열심히근무했다.사상계는그자신에게이념혼란기의한과정이었던셈이다.3년간군복무를마치고제대한그는직접잡지를만들어보자는호기가생겼다.청맥이란잡지를창간했다.편집장까지맡아1인3,4역까지했지만역부족이었다.적자를면치못했다.3년만에접었다.

먹고살려면무슨일이든해야했다.잡지기자를했으니이번엔비슷한일을하는신문사문을두드렸다.마침서울신문에서잡지기자경력을인정해줘수석기자로입사할수있었다.3년간청맥지에매달려일하느라몸과마음이지친상태였다.정치부등외근제의도있었지만지식을좀더쌓아야겠다는생각으로내근인외신부근무를자청했다.

외신기사를볼수록미국유학에대한욕심이생겼다.학문적호기심뿐만아니라미국이라는나라에대해알고싶은지적인욕구와기자적본능이동시에작용했다.그래서일단서울대신문대학원에입학했다.투잡스(twojobs)같은투웍스(twoworks)를했다.인생의전환기는누구에게나전혀예상치못한상황에서벌어진다.그도신문대학원에서큰충격과함께인생의일대변화를맞게된다.신문대학원교수로대학동기한명이있었다.서로마주치기어색해수업도신청않고외면하고있던터였다.

▲일자패회원들이북한산백운대를배경으로대남문에서기념촬영했다.


*정년퇴직후제2저술활동펼쳐

어느날지나가던길에누군가하는말이그의귀에솔깃하게들어왔다.“오갑환교수강의가기막히더라”는거였다.반신반의하면서다음학기강의를신청했다.그첫시간이한마디로충격그자체로그에게다가왔다.

그가막연히동경해온지식에대한열망을그강의를듣는순간‘유학에대한집념’으로연결됐다.유학갔다온그친구교수강의는한마디로지식체계가다르게느껴졌고,바로뇌리를자극했다.바로돌아와각오를새롭게다졌다.대학원공부를하면서유학준비까지했고,신문사일을하는1인3역을했다.

석사학위를받고이듬해드디어미국유학길에올랐다.동서문화센터장학금을지원받았다.신문사에서받던월급의4배가더됐다.네식구가미국에서풍족하게생활했다.유토피아가따로없었다.송교수에겐미국이바로유토피아였다.

마음먹은대로열심히공부에매진했다.또석사학위를받았다.이번엔미국대학학위다.73년귀국했다.74년까지신문사에서근무하다마침연세대사회학과에자리가생겨정착했다.대학졸업후잡지사기자,편집장,신문사기자등을거쳐15년만에교수라는자리에둥지를튼것이다.

남들은그냥공부만해서자리잡은교수자리를송교수는이리저리둘러왔다.어쩌면이다양한경험이그의교수생활동안많은현상을명쾌하게설명할수있는힘의근원이됐는지모른다.그도실제로기자생활에대한경험이좋은밑천이됐다고자랑삼아얘기하곤한다.

송교수개인의이념적내홍은신문사에근무하던시절크게겪었다.그는60년대국민소득100달러도안되는한국의기아상황을벗어나기위해서어떻게해야하는가에대한고민에빠졌다.처음엔분배와평등이우선시되는사회주의가최고의방법으로여겨졌다.신문사근무하면서박정희정권을비판하는글도썼다.중앙정보부에끌려가취조를받았다.

사회주의에대한공부도계속했다.할수록회의가들었다.‘과연사회주의로기아를벗어날수있을까’였다.그의가치의결론은산업화가민주화의기초이고,기아를벗어나는유일한길이라고내렸다.그의이념적혼란에종지부를찍는결론이었다.

그는이후보수적가치에대해내공을쌓아갔다.그내공은좌파라고평가받는DJ정부때부터빛을발하기시작한다.신문칼럼,저서등을통해거침없는비판을쏟아냈다.협박과위협도많았다.담담히받아들였다.반대편입장에서보면당연한반응이었다.

그가좌파만공격한건아니다.보수라고평가받는YS시절에도가만있지않았다.YS정권탄생에일조했고,대통령자문위원으로있으면서입바른말을숨김없이했다.회유도받았고,장관제의도받았지만정부비판과견제가학자의양심으로여겨고사했다.아마장관을했다면이후정부비판에조금은거리낌이있었을것이라고했다.자유주의가치중의하나인개인의자유에의한선택으로송복이라는인물이자리매김하고있었던것이다.

▲1지난97년논어를주제로부부서예전을연송복교수.바로옆이부인인하경희배화여전전교수.2지난2007년12월프레스센터에서열린출판기념회에서손자가나와축하해주고있다.3지난2004년조선일보시리즈‘제자,스승에길을묻다’에서제자김호기연세대사회확과교수와대화를나누고있다.4대학동기이면서50년이상우정을다져온고건전총리와악수를나누고있다.5일자패회원들이북한산올라가다잠시휴식을취하고있다.

한국의대표보수논객이자학자인송복교수는한마디로등산예찬론자다.讀書人說遊山似(독서인설유산사·/사람들은독서가등산과비슷하다고설명하는데)今見遊山似讀書(금견유산사독서·/이제보니등산이독서와비슷하다).퇴계이황의청량산유산기에나오는독서보다등산의가치를더평가한문구를그대로인용해서등산을극찬했다.

그의등산은미국유학갔다온73년부터시작됐다.거의매주산에올랐다.지금은연60회정도산에오르고있다.일주일에한번이상인셈이다.마음맞는사람들을모아산악회도조직했다.그가일일이일자(一字)를넣어호를붙여줬다.그래서탄생한산악회가일자패다.

구범모한국학중앙연구원명예교수,김성우한국일보전주필,박화진서울신문전논설위원실장,한영탁세계일보전논설위원,정호근전국회의원,김택득박사,김재혁전삼성중국총괄사장등과송교수의친구인인치택,박상봉,이태근씨등이그멤버들이다.

비가오나눈이오나매주일요일이되면어김없이산을찾는다.그의철학이다.그는등산의네조건으로지(指),극(克),정(定),성(省)을들었다.첫째조건인지(指)는등산은반드시리더가있어야한다는뜻이다.학문도마찬가지로스승이있어야한다는의미와일맥상통한다.혼자공부하고스승에배우지않으면위태롭다는것이다.현실과맥이닿는부분이다.

*“20대부터등산해라”학생들에게가르쳐

극(克)은마음을스스로다스릴줄알아야한다는뜻이다.사람의마음은원숭이같고의식은말(馬)과같은속성이있어마음을붙들어맬줄알아야한다.중심을잡는그힘이바로극이다.정(定)은목표가뚜렷해야등산이나학문이제대로된다는의미다.학생들에겐특정학교가목표로정해져야공부에더욱매진할수있고,등산도가려는산이정해져야헤매지않는다.성(省)은동료나경쟁자,반려자가있어야쉽게갈수있으며,발전이있다는뜻이다.

정년퇴직전까지학생들을데리고산에자주갔다.그들에게“20대부터산에다녀라.20대가안되면30대부터라도꼭다녀라.40넘기전에는반드시산에다녀야한다.그렇지않으면재앙이돼서돌아온다”고학생들을독려했다.송교수는등산의힘은병을예방할뿐아니라창의적사고에엄청난에너지를제공하고있다고수차례강조했다.경제적으로봐도생산성이너무뛰어난작업이등산이라는것이다.

그의생활은주말과주중이확연히다르다.주중5일간있는힘다해서공부한다.주말엔머리를완전히비우고산에간다.이런생활을그는지금30여년해오고있다.“아마북한산이없었다면책이나논문도못썼을것”이라고까지말했다.분명등산예찬론자는예찬론자다.

그는산을이용만하지않는다.산을이용한만큼꼭시산제(始山祭)와종산제(終山祭)로서한해를마무리하고감사한다.이용만하고,오만하면꼭보복당하는원리를산을통해서이미깨치고있는그다.정년퇴직하고일자패들과매주등산하는재미에빠진그는지금제2의인생을즐기고있다.

퇴직때송교수는동료4명과결의했다.노병들은결코학교근처에얼쩡거리지말자고.아직자리잡지못한제자들강의시간을뺐을이유없고,젊은교수들이부담느낄테고,노교수들이학교에나타나면스스로공해라고생각한다는이유에서다.

결의와동시에다짐도있다.외국유학갔다와현대학문에뛰어난젊은교수들이잘할수없는분야가무엇일까고민한끝에고전을재해석하기로했다.이도결국제자들을더깊고넓은학문으로이끌기위한작업의일환이다.첫작업의결실이지난2007년12월에나왔다.‘위대한만남,서애유성룡’(지식마당간)이다.

유성룡이7년간올린상소549건의내용을분석해서임진왜란의현대적의미를해석한책이다.80세될때까지우암송시열과석파이하응(대원군)에대한책도내놓을작정이다.그힘의원천은물론산이다.산에서받은원기를후학들을위한지식으로대물림하고있다.산에서무한한에너지를받아창의적사고를얻고,엄청난생산성을올리는산이야말로송교수에게없어서는안될보배인것이다.


-글:박정원차장대우/사진:이경호기자/월간산[460호]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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