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벳 옛 풍습에서 원초적 본능 되찾다 *-

[중국히말라야탐사2]티벳옛풍습에서원초적본능되찾다
*매리설산순례길따라류쿠~빙중루~치나통~추나니초답사

데카르트의제자이자아나키스트로서언어,불교,문화인류학자였던다비드넬의나침반이궁극에가르킨곳은바로금단의땅,간유(눈의나라?티베트)였다.청해성의쿰붐사원에서,사천의간쯔(Garze)에서,그리고리탕과파탕에서네번의잠입시도에도번번이중국과티베트의검문소에가로막혀되돌아서야했던그녀,끝내포기하지않았다.차라리그전에방문했었던시킴(Sikkim)에서도얼마든지티베트의문화와종교를접할수있었을텐데말이다.

이러한의구심은사실어리석다.“카라코룸과히말라야를그렇게떠돌아다녔으면넘쳐나게높은설산들을돌아보았을텐데너는왜다시이곳에왔는가”라고물음과마찬가지다.나무지팡이에작은배낭을짊어지고라사로향해걷고있는그녀가나타난다.나도함께따라간다.밖은청중이않은객석처럼암흑인데머릿속에아른거리는세계만이다비드가서있었던무대처럼빛나고있다.

▲샬윈(Salween)강,메콩강,양쯔강의중상류는삼강병류(三江竝流)를이루는데그협곡을건너기위해원주민들은외줄다리를이용한다.


*넉넉지않은형편에서도낭만넘치는중국인들

곤명(1,895m)에서서쪽으로581km를달려류쿠(六庫·750m)에내렸다.류쿠는운남성누쟝리수족자치주(怒江?栗?粟族自治州)의주도(州都)다.동행한동성과훈석의덕으로계획에도없던이곳에올수있었다.학창시절사회과부도를보았을때어떻게이렇게큰대하(大河)가나란히붙어서흐를까라는의구심은오래도록잔상으로남아있었다.

근래중국측회국측회과학연구소(中國測繪局測繪科學硏究所)중국등산협회(中國登山協會)에서발행된청장고원산봉도(靑藏高原山峰圖,1989년)의지도위를걸으면서과연이곳에갈수있을까했는데,지금여기에서있다는사실이믿어지지않을정도다.

▲바위산에달이뜬듯구멍이뚫린석월량(石月亮).

샬윈(Salween)강,메콩강,양쯔강의중상류를각각누쟝(怒江),란창쟝(瀾滄江),진샤쟝(金沙江)이라고하는데이전체지역을통칭하여삼강병류(三江竝流)라고한다.운남성서북부횡단산맥종곡지구에위치해있으며세갈래의큰강이청장고원의탕구라산맥에서흘러내려운남성경내에들어선후남북평행으로뻗고있다.누쟝과란창쟝의제일짧은직선거리는18.6km밖에안된다.이런풍경은세계에서유일한곳으로2003년7월,세계자연유산(世界自然遺産)으로지정되었다.

여명이내리는새벽속으로전세낸택시는달려나간다.얼마지나지않아차는갑자기샛길로접어들고멈춘곳은철와이어줄로만든오래된다리위다.운전사는마치관광가이드처럼소소히설명을덧붙인다.이친구덕분에빙종루(丙中洛)까지의300km여정이누쟝위에슬그머니찾아온아침햇살만큼이나반짝여보인다.

다시차는달린다.좁은곳은강폭이채30m도되지않는누쟝의절벽으로난가로수길은한굽이돌때마다모습을바꾼다.물안개피어오르는좁은협곡의기암절벽,그절벽에올라붙은작은키의소나무,강물에깎인각양의괴석들,그리고양쪽으로솟아오른서쪽의가오리꽁산맥(高黎貢山·고려공산)과동쪽의누산맥(怒山),피나쉐산(碧羅雪山)이강을밀치듯섰다.

길가에는미얀마에서불법으로벌목된원목들이,굴러나갈지의심스러운낡아빠진트럭에싣고있다.나보다두살밑인동성은중국국적을가진조선족이다.학교를졸업한후에는우리가방금스치고지나온그런‘도라꾸’를끌고북한에들어가원목을구입해서중국에파는장사를했다고한다.의자에비스듬히기대어피워문담배연기를길게뿜으며당시의시간속으로빨려들어간다.

“그때본북한은참가난했어요.농사를짓기에땅들은황폐했고벌목으로산들은헐벗었지요.중국조선족사람들이먹을것을가끔압록강강변에갖다놓습니다.그러면북한주민들이강을건너와봉지를챙기면서이렇게얘기합니다.‘가져가서돼지라도줄라고.’”북한주민들은그렇게교육을받아서인지아니면한가닥자존심때문인지가난한티를내지않으려고했단다.

“나무를실으러갈때반드시챙기는것이담배와여자속옷입니다.일을하다문제가생기면담배한갑이나스타킹하나면만사형통이었으니까요.”택시운전사도동성과같은지린성(吉林省)출신한족(漢族)으로몇년전에이곳으로이주했다고한다.그래서둘의이야기는더살갑다.사실류쿠의정류장에우리가내렸을때빙종루까지가는대중교통이있었다.그러나우리는사진촬영과좀더여유를갖기위해택시를전세(빠오처)내자고내가제안했다.

물론비용은셋이모은,매리설산을북쪽으로돌아더친(德欽)까지의기간동안에쓸공동비용이아닌내자비를쓰기로했다.택시를찾아가격협상을하며거리를헤맬때대부분의기사들은평균500위안을요구했는데이사람은400위안에오케이했다.왕복600km에들어갈리터당연료비에식사비,빙종루에서하룻밤숙박비를계산하면남는것이없어보였다.동성을통해그이유를물어대답을기다렸다.

▲포대기에애기를안은아주머니와자전거를매단아저씨가외줄다리로날아왔다./화려한장신구를한리수족할머니의푸공시장나들이./똥신주(同心酒)는젊은남녀가한잔의술을입술을맞대고마시는거지요.

“당신들은참행복한사람들입니다.내가여기에정착하게된것도이계곡의좋은날씨와아름다운풍경때문이지요.”
“그럼정착하기전에이곳에왔었나요?”원래질문에답은아니었지만다시물었다.
“그럼요.저도여행을좋아했지요.그래서이곳에왔었고.지금은류쿠에집을마련하고결혼을하여혼자여행하기는힘듭니다.”

지린에서이곳까지는대륙을건너는대장정이다.기차로쉬지않고달려도일주일에서열흘은족히걸리는거리다.운전사-그와함께한하루동안이름을물어보지못했다-는체형은말랐지만얼굴은평온했다.느릿한그의말이이어진다.

“빙종루까지당신들이주는돈은많지않지만내일되돌아오면서다른손님을태우면됩니다.대신일을하면서언제든지여행을할수있고여러사람을만날수있다는게얼마나행운입니까!이직업을택하게된이유이기도하고요.”

이것도중국한족들의유능한상술인가할정도로의아해했다.흡사‘내영혼의닭고기수프’에나오는택시운전사가여기로이사를왔나착각이들정도다.한낮의나른한언덕사면에화전을하여경작한옥수수밭,그사이로느릿한소와염소들,대나무숲이둘러쳐진리수족(?栗?粟族)의집들이옹기종기붙었다.운전사는우리가말하지않아도알아서차를세운다.

“이외줄다리가누쟝에남은마지막일겁니다.”

그곳에는주민들이새로지을집의시멘트벽돌을강의반대편으로실어나르고있었다.20kg이넘는무게를매달아도르래에의지한채로그들은공중으로몸을던졌다.외줄다리는80여m너비로각각높이가다른두줄이강의양쪽바위에고정되었는데출발하는지점이높게설치되어쉽게미끄러져내리게했다.

▲치나통은정감있는마을이다.추수가끝난밭으로거름을내는아낙네들./북쪽에서남쪽으로일직선으로흐르던강물이누쟝제일만(怒江第一灣)을굽이돈다.

*리수족젊은남녀의독특한술문화‘똥신주’

반대쪽에서포대기에아이를안은아주머니와자전거를매단아저씨가날아왔다.보기만해도아찔했지만보고만지나칠우리가아니다.훈석이벽돌을나르던남자와함께도전한다.먼저,접은밧줄을사타구니사이로넣어엉덩이를감싸고허리에묶는다.그리고쇠줄에건도르래에매듭한줄을건다.남자는속도조절용으로바닥에베어놓은풀을한움큼줄에감싸쥔다.훈석의얼굴은웃고는있지만잔뜩긴장된모습이역력하다.발을떼자둘은함께매달려20미터높이강물위로재빨리날아간다.되돌아온그는놀이공원에다녀온어린아이처럼흥분을감추지못했다.

“형정말무서웠어요.홀로코스트는게임도안되요.”
높은곳은무조건싫다던동성이도아찔한세계에결국던져지고말았다.

부꽁(福貢)시장에는갖가지의채소와과일,누쟝에서건져올린물고기가좌판을가득매웠다.거둔농산물을시장에내다팔고필요한생필품을사려는리수족아낙네와아가씨들이온몸에산호,터어키석,붉은호박,은세공장신구로한껏치장을하고나왔다.운전사는우리가처음접하는리수족에관해재미난풍속을들려준다.

“리수족여자들은가슴이엄청크지요.또독특한술문화가있습니다.”
무표정한그의얼굴에처음으로웃음을짓는다.
“이들이마시는술중에똥신주(同心酒)라는것이있습니다.젊은남녀가한잔의술을입술을맞대고마시는거지요.”

술을마실때입술이닿는다는것빼고는별특별한것도아니었다.술잔은다르지만우리도러브샷이라는게있지않은가.운전사덕분으로시간가는줄모르는여행에벌써태양은중천을넘어가고있었다.작은연못정원이딸린식당에서마른고추,산초,천마등갖은약초를넣은매콤한국물에오골계와송이버섯,연근,죽순에다양한채소로만든허궈(샤브샤브)를먹었다.술얘기도들었고안주도푸짐하니빠이주(白酒·고량주)두어잔이빠질쏘냐.호기심많은셋은함께한운전사에게똥신주에대해더재촉했다.

“똥신주는술의종류가아니라마시는방법을뜻하는것입니다.남녀가즐겁게술을마시면한마음이되고또그날밤한방에든다는숨겨진뜻이있기도합니다.”

이말에취기가오른총각셋은눈이똥그래졌다.
“빨리갑시다.똥신주마실수있는마을로.”

너스레잘떠는동성이급해졌다.운전사는우리의희망을져버리지않고어느마을앞에차를세웠다.잔치가있는날인지예쁘게차려입은아가씨들이반긴다.대화가쉽지않은훈석과나는뒷전에꿔다논보릿자루,넉살좋은동성이나서술을청했다.한잔씩을받아마신술잔은다시채워서돌아온다.동성이본색을드러낸다.

“똥신주,똥신주함께마시죠~.”

말끝머리가바이브레이션을이루며애교를섞는다.아가씨들은까르르좋아라웃는다.다시잔을채워준다.동성은포기하지않는다.여자들엉덩이옆에다시바삭달라붙어서는같이마시는시늉을한다.훈석도지원사격에나섰다.그는우리나라S대기업에다니다가갑자기그만두고세계를여행했고지금은곤명에터를잡았다.당시그는기획실에근무를했으니술에관해서라면둘째라면서러울만큼경험이있었을터였다.

마침내한아가씨가술잔가까이로입술을가져온다.동성의장난이효력을발휘하는순간.김샜다.장난이었다.그리곤똥신주가무슨뜻인지아느냐고되물어왔다.이렇게우리의짓굳은웃음소리는누쟝강물의바람을타고살랑거렸다.아쉽기만했던똥신주타령은이후미인이나타났다하면꿈틀되살아났다.

▲빙종루(丙中洛)는리수족,누족,짱족(藏族)이뒤섞여사는데믿는종교또한제각기다르다.라마교의곰파와초르텐,성당,교회가뒤섞여있다./1911년킹던워드에의해알려진카와카부(Kawakabu·5,128m).주민들모두에게신산(神山)으로여겨진다.

바위산에달이뜬듯구멍이뚫린석월량(石月亮)을지나들어간,꽁샨두롱족누족자치현(貢山獨龍族怒族自治縣)의꽁샨(貢山)은작은현도(縣村)였다.여기에서서쪽으로가오리꽁산을넘어들면이라왓디(Irrawaddy)강상류,두롱쟝(獨龍江)이흐른다.이강은영국인식물학자프랭크킹던워드(FrankKingdon­Ward)가1937년미얀마의이라왓디강상류에솟은하카보라지(HkakaboRazi·5,881m)봉유역을처음으로답사하고쓴책속첨부된지도에타론(Taron)으로등장하는데이를중국어로음차하여지금에두롱쟝으로불리게되었다.

이강유역은7,400명가량의두롱족(獨龍族)삶의터전인데특히여자들은얼굴에흉측한문신을하는풍습이남아있다고한다.아쉽지만우리의촉박한일정은이곳에들어갈여유가없다.지질구조상이곳은인도판이유라시아판을밀어붙임으로써히말라야산맥이생성되고그동쪽끝자락에위치한횡단산맥이형성되었다.심하게이동중인지판은잦은지진을발생시키고또한곳곳에유황온천을만들었다.

밭에서일을하는누족(怒族)남자들은검은터번을머리에두르고무릎까지내려오는두루마기모양의원피스에,천으로허리를둘러매었으며끝이절단된긴칼을차고있다.또이들은활총과화살을휴대하기도했다.북쪽에서남쪽으로일직선으로흐르던강물이누쟝제일만(怒江第一灣)을굽이돌고그곳을지나자넓은삼각주에과일나무들이선빙종루(丙中洛)였다.마을의북서쪽에하얀눈을뒤집어쓴삼각뿔의암설봉이나타났다.

1911년킹던워드가해발6,666m가넘는다고추정하여케니춘푸(Kenichunpu)로,미국인박물학자조셉락(JosephF.Rock)의사진이1926년에내셔날지오그래픽(NationalGeographicMagazine)에실려세상에알려진카와카부(瓦布·Kawakabu·5128m)로주민들모두에게신산(神山)으로여겨진다.

*라마교뿐아니라다양한종교믿는빙중루주민들

이마을은리수족,누족,짱족(藏族)이뒤섞여사는데믿는종교또한제각기다르다.라마교의곰파와초르텐,성당,교회가뒤섞여있다.티베트인들은모두라마교를믿을거라는편견은쉽게무너졌다.영국이미얀마를지배하고있을당시선교활동의흔적들이다.

정든택시운전사와작별을고했다.훈석이알아서팁도챙겨준다.즉시우리는매리설산답사의실질적인출발지인차와롱(察瓦龍)까지의접근을위한정보를수집하고약간의식량을구입했다.변변한지도조차없던참에다행히이마을부근의관광지도한장은어두운밤길의횃불이었다.

다음날덜덜거리는지프에실려수백미터의바위협곡시먼관(石門關)을뚫고치나통(秋那桶)마을로들어갔다.그곳에매리설산을몇번가이드했던사람이있다고했다.치나통은정감있는마을이다.돌판을얻은지붕,그처마밑에주렁주렁매달린옥수수,또그밑벽에매달린대나무바구니속에계란이소복하다.추수가끝난밭으로거름을내는아낙네들과소두마리를이용해밭을가는촌로를지나쳐가이드가있다는집에들어갔다.우선내어준수유차를마신후에그의입에서나온정보는수유차만큼이나시큼했다.차와롱까지차량은갈수없고말을타고이삼일가야한다는대답이었다.

서둘렀다.한시간이라도지체할시간이없었다.타고온지프차의운전사를구슬리고달래길이끝나는곳까지일단가자고했다.바쁜우리의사정을아는그는적정이용료에몇배가량을불렀다.어쩔수없다.좁고덜컹거리는절벽길을달린다.차가튀어오를때마다우리의머리는낮은천장에심하게부딪혔다.

이런시달림에반해티베트말,걀모누추(GylmoNuChu)에서유래한누쟝계곡은아름다움을넘어서신비롭기까지하다.내표현으론부족하여다비드넬의에서들어보자.‘누계곡만큼우아함과장엄함이완벽히조화를이룬곳이세상에또있을까싶다.우리는구불구불하게이어진아름다운숲길을따라하염없이걸어나갔다.

때때로다채로운모양의크고작은바위들이눈에띄는,인공적으로가꾼정원같지만자연의산물그자체인잔디밭을지나쳤다.그중에는초원위에비석처럼서있는바위며,한면이풀로뒤덮인바위들이있었다.또푸른나무들사이로살그머니얼굴을내밀고있는진기한모양의바위도있었다.골짜기의모든것이수수께끼같은아름다움을감추고있었다.마치오래된전설을다룬동화책에그려져있는삽화속을거니는느낌이었다.

그순간만큼은귓전에서빛의요정들이속삭인다해도,잠자는숲속의미녀가사는궁전이눈앞에펼쳐진다해도전혀놀라지않았을것이다.’지프운전사가위험하여더가지못하겠다고생때를쓴다.그를돌려보내야겠다고판단을할즈음뒤에서트럭이따라왔다.놓칠세라얼른트럭의짐칸에배낭을던지고올라탔다.나무장대가가로막힌검문소를지났다.이제행정구역상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자율현(察隅縣)차와롱진((察瓦龍鎭)으로들어선것이다.

밤이깊도록트럭은전조등을켜고위험천만한암벽을깎아만든길을달렸다.치나통에서들은말과는달리공사중인길은계속연결되어졌다.짐칸에탄우리는추위에온몸을부들부들떨었다.작은다리를건너고도대체어딘지모를곳에차는멈췄다.먼지를뒤집어쓴몸으로옛날마방(馬房)으로쓰였을처마밑에잠자리를마련했다.침낭에기어들어가자말자곯아떨어졌다.

2006년10월18일,새벽에일어나주위를한바퀴돌았다.키큰선인장이자라는아래절벽밑에티베트승원인곰파가있고주위에초르텐과마니석이세월을말해준다.동쪽으로계곡물이쏟아져나왔다.순간아침찬기운에스치듯소름이돋았다.다비드넬이난창강변에서출발,도카르고개(DokarLa·4,487m)를넘고아벤(Aben·2,230m)을거쳐드디어누쟝에도착한지점을그녀는라캉라(Lhakang-ra)라고했다.바로이곳임에틀림없었다.좁은계곡안으로뛰어들어갔다.옆의바위벽에는많은불상이채색되어있다.다비드의기록이다.


‘라캉라강의왼편기슭으로건너가니주변경관은급작스레달라졌다.골짜기가갑자기좁아지고가팔라졌다.양쪽으로는200m도넘어보이는높고어둠침침한절벽이우뚝버티고서있어,고개를들어보니하늘은그절벽들틈새로리본처럼좁은모양을하고있었다.그렇지만그런풍경이암울하고황량한느낌을주지는않았다.그것은아마도칙칙한바위위에새겨져있는그림이나조각등이자아내는기묘한분위기때문인듯했다.

바위위에는수백명의부처와보살과여러신들외에예로부터이름높은라마승들의모습이잔뜩새겨져있었는데,모두가한결같이선정(禪定)에잠긴자세로눈을반쯤뜨고않아내면을응시하고있었다.움직임이없는그조용하고성스러운군상들은좁은협곡안에서말로는설명하기힘든뭔가독특한정신적분위기를자아내고있었다.사이사이에는부처의지혜를찬양하는문구나신비스런내용이담긴짧은문구뿐만아니라철학적논문의일부가새겨져있기도했다.’

다비드는티베트말을읽고말할줄알았다.그때의모습은사라지고무슨이유에서인지모든불상의얼굴이심하게훼손되어진상태였다.

▲킹던워드는차와롱에대해,사람들은친절하고선한본성을지녔으며자연에잘적응하며살아가고있다.특히여자들은아름답고매력적이다라고기록하고있다./열여덟살의처녀,라마라무(LamaLamu).


*남자들에게길들여진여인만이아내자격

이길은티베트사람이면죽기전에누구나한번은순례하기를원하는매리설산의순례코스의남서쪽끝자락으로지금은추나니초(Chunanico·1,850m)라불린다.다비드가밟은길에나도첫발을내디뎠다.이토록다비드에게열광하게된것은다름아닌그녀의여행방식에서였다.당시대부분의탐험가들은무소불위의권력을휘둘렀으며왕의행차그이상이었다.1902년K2(8,611m)로가던아브루치대공이그러했고같은시기티베트창탕고원을탐험했던스벤헤딘이그러했다.그럼이곳을여행한조셉락의경우를보자.

그는비록오스트리아출신이었지만미국농무성과하버드대학의지원을받고내셔널지오그래픽의중국주재원으로활동했다.의학용식물채집을위한락의캐러밴대열은길이가장장800m에이르고오스트리아요리에숙달된요리사를비롯하여수십명의하인들이포함되었다.또등짐진말들,그리고노상강도들의습격을막기위한수백명의용병들이따랐고초호화판식사는말할것도없었으며배터리로돌리는축음기와접는욕조까지싣고다녔다.


이에반해다비드넬은나침반,카메라,지도,그리고작은텐트,식량으로삼을짬파가루와차를담은자루뿐이었다.티베트인의옷을입고얼굴과머릿결에검은숯칠을하여순례자로변장한그녀의동행자는시킴출신의용덴뿐이었다.용덴은다비드가양자로삼은라마승이다.권총을가지고다녔지만그녀를보호해줄것이라곤강한자신의신념과의지밖에는없었다.그러한악조건에서도다비드는고원을가로질러라사에도착한첫번째외부여성이되었다.

이곳부터누쟝의강변은넓어지고건조한풍경을나타낸다.복숭아만한빨간열매를단선인장군락을지나허연산사태가난자갈길을넘어옛날티베트연대기에‘포도가많이나그것으로포도주를만들어라사로보냈다’라는기록의차와롱지방땅을달렸다.그중심마을자낭(Zhanang·1,950m)에도착했다.몇잔의차를마시고도뛰는심장을가라앉히기는힘들었다.

차와롱은미얀마,인도와의국경이멀지않고특히인도와는국경분쟁중이라중국정부로부터변경입경허가서(邊境入境許可書)를받아야출입이허락되는곳이다.다비드는이곳을타나(Thana)라했고이곳검문소에서체포가두려워어두운밤에마을을돌아지나쳤다.우리도옆에보이는경찰서가걱정은되었지만잡히면얼마의벌금과추방을당하는,그이상을걱정하지않았고오히려하나라도놓치지않으려고마을을차근차근둘러본다.

넓은토지,진흙을성벽처럼쌓아올린3층집,정원에껍질이벌어져알알이박힌석류,그리고노란유자.만나는사람마다반갑게맞는따뜻한얼굴을잊지않기위해꼭꼭담았다.킹던워드는자낭을치아나(Chiana)또트라나(Trana)라불렀으며당시인상을이렇게표현했다.‘사람들은친절하고선한본성을지녔으며자연에잘적응하며살아가고있다.특히여자들은아름답고매력적이다’라고.

킹던워드의기록에감사했다.물가에서우리총각들은다시한번애간장을태우는순간을맞았다.빨래하는처녀의미소에넋을잃은것이다.동성의너스레가다시힘을발휘할때다.그는가지고온작은로션을처녀에게선물했다.그리고그녀앞에자신의내의를벗어세탁을부탁한다.싫은기색없이옷을정성들여빨래방망이로두드리고헹구어돌려준다.동성이똥신주얘기를꺼냈고그녀는우리가그자리를떠나기전에저녁초대를했다.자신의집까지알려주었다.

13세기말몽골대제국을여행했던마르코폴로는지금의사천성시창(西昌)에서운남으로향하면서티베트의혼인관습을<동방견문록>에이렇게적었다.‘남자들은무슨일이있어도처녀를아내로맞아들이는법이없다.그들은만약여자가많은남자들에게길들여지고익숙해있지않다면아무런가치가없다고말한다.그래서그들은다음과같은방식으로짝을맞는다.여러분에게말하지만다른낯선땅에서온사람이이고장을지나가다가유숙하기위해천막을치게되면,촌락과부락의나이든여자들은자기딸을이들에게건네면서,그들이원하는대로해도무방하고동침해도좋다고말한다.

그러면남자들은그녀들을취하고즐기면서머물고싶은만큼머물면서데리고있을수있다.다만여자를다른곳으로데리고갈수는없다.남자는자기가하고싶은대로한뒤여자에게보석이나정표를주는것이관습이다.~남자들은많은정표를소유한여자를더기꺼이부인으로맞이하려하고다른여자보다더낫다고생각한다.그들이이러한여자들을부인으로삼으면그녀를매우대단하게여기지만,다른사람의아내를건드리는것은크나큰죄악으로생각하기때문에그런일은극도로기피한다.16세에서24세사이의청년이라면그고장에가봄직할것이다.’

*열여덟처녀는‘술취한님’의여인이되고말았다

이이야기를동성과훈석에게들려주었다.우리는더욱신이났다.오랜만에몸을씻고새옷으로갈아입었으며어두워지기무섭게방문을나섰다.약속시간에맞추느라개가시끄럽게짖어대는어두운골목길을지나그녀집으로들어갔다.어색한분위기는끼어들틈을주지않는다.연거푸마셔대는비주(맥주)와55도알콜의빠이주에정신은빠르게몽롱해져간다.손을잡고티베트의전통춤을배우며또함께추었다.노래도부른다.

열여덟살의그녀이름은라마라무(LamaLamu),‘신성한공주(公主)’였다.오늘밤그녀는10세기중국무명여성시인이노래한‘술취한님’의여인이었다.

문밖에서개가짖는다./오라,알겠다,님께서오셨구나./나는버선발로향수뿌린계단을내려간다./변변치못한내님은오늘밤취해있다./비단장막을둘러친내침상에그를눕힌다./비단옷을벗을까?천만에.혼자서는어림도없다./내님은오늘밤취해있다.취한채그냥내버려두자./그래도혼자자는것보다는나으니까.

차와롱의첫날밤은그렇게깊어갔다.

-글·사진김창호서울시립대OB/월간산[459호]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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