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체-에베레스트 연속 등정자 윤중현씨 *-

[이클라이머의삶]로체-에베레스트연속등정자윤중현씨

윤중현(尹重鉉·38)은해발8,516m의로체정상에올랐다가최종캠프로내려서는길은너무도고통스러웠다.전날밤2~3인용텐트에서대원과셰르파6명이지냈으니잠한숨잘수없었다.쪼그리고앉아있다가다리를쭉뻗으면발이텐트밖으로나가곤했다.그런상태로좁은텐트에서버티다밤11시반경정상으로향해발걸음을옮겼다.그로부터9시간뒤정상에올라서는순간은너무도기뻤다.2000년K2등정이후7년만에오른8,000m급거봉이었다.

정상에서최종캠프까지표고차800m설벽에는고정로프가깔려있지않았다.자칫미끄러지는날이면2,000m아래웨스턴쿰빙하로곧장떨어질판이었다.다리가풀리면서툭하면주저앉았다.눈꺼풀이내려앉는것을막을수없었다.눈을감으면순간적으로깊은잠에빠져들었고그러다눈을뜨면여기가어딘가싶어깜짝놀라곤했다.

9년전공가산에서추락사한후배오종락의얼굴이떠올랐다.정신차리지않으면종락이처럼영원히집에돌아갈수없으리라는생각이들었다.정신을바짝차리려눈에힘을주었다.그래도졸음은계속쏟아졌다.그렇게힘든하산길을이겨내고그는캠프로살아돌아왔다.그리곤며칠뒤세계최고봉등정길에또나선것이다.

윤중현은로체등정을마치고닷새정도쉬기는했지만곧바로세계최고봉에도전한다는것은체력적으로무리였다.최종캠프인사우스콜(7,950m)에올라섰을때에는매우지친상태였다.그래도포기하지않고선배김홍빈,후배김미곤과함께정상으로향했다.앞서간동료들과1시간이상벌어진상태로남동릉루트에서가장어렵다는힐라리스텝아래에도착했을때는체력이거의바닥나버렸다.그러나떼지어힐라리스텝을내려서는외국산악인들을보곤용기를얻었다.

▲로체정상을향하는윤중현씨.

“대다수외국산악인들이정신은아예없고,몸도혼자서는서있지못할정도로지쳐있었어요.셰르파들이앞뒤에서잡아주고밀어주면서겨우한발씩내려섰죠.저런사람들도정상에올랐다내려오는구나싶어지면서힘이생기더군요.그래서끝까지밀어붙일수있었습니다.”

*군입대이틀앞두고도등반대회에참가

국내히말라야원정대가운데에베레스트와로체연속등반에나선팀은88년대산련팀이후여러팀이있었고,그중많은팀이성공리에원정을마쳤지만,연속등정을이루어낸대원은지난해봄한국도로공사팀의윤중현과김미곤(35)두산악인에불과하다.

▲로체에이어에베레스트정상에선윤중현씨.

윤중현의연속등정은사실뜻밖이었다.96년이후2000년K2원정에이르기까지매년히말라야원정에나섰지만이후7년의공백기가있었다.먹고사는일에얽매이다보니원정을코앞에두고도제대로운동할여유도없었다.그럼에도불구,그는김미곤과함께국내최초의에베레스트-로체연속등정에성공한것이다.

그는“에베레스트에먼저도전하려다로체가먼저기회가왔기에밀어붙였고,또사우스콜에도착했을때컨디션이바닥난상태였지만그래도이기회를놓치면다시는오를수없으리라는생각에정상을향했다”고말한다.

일단목표가정해지면끝까지밀어붙이게된그의성향은97년낭가파르밧(8,125m)원정때의쓰라린경험에서비롯된다.당시그는제1차공격조에포함돼대원2명과함께최종캠프에올랐다.그러나캠프도착이후몰아친강풍과폭설에갇혀이틀간거의굶으면서좁은텐트에서지내야했고,탈진상태에서폭풍설을헤치면서사지에서탈출과같은하산을해야했다.

베이스캠프도착며칠후2차공격에나섰어요.도저히안되겠더군요.이미체력이바닥나있었던거죠.결국얼마오르지못해포기하고말았습니다.그때얻은교훈입니다.기회가왔을때놓치면다시기회를잡기쉽지않다는거죠.”


▲K2제2캠프에서.뒤로브로드피크가우뚝솟아있다.

전남해남의한농촌에서3남2녀중막내로태어난윤중현은산꾼형을둔덕분에고교시절부터산에맛을들였다.고교2학년때친구두명과함께지리산종주산행을했을정도로산에빠져들었다.89년조선이공대전자과에입학하자마자자연스럽게찾아간곳이산악부실이었다.조선이공대산악부는2년제대학답지않게전통을자랑하는동아리였다.특히초창기선배들이워낙강해따라가기가쉽지않았다.산행은그야말로빡셌다.입회직후부터모든게스파르타식이었고,장기산행때배낭두세개메고걷는것은기본이었다.거기에다정신교육이라며툭하면괴롭히곤했다.

▲세계제2위고봉인K2정상.

“어찌나많이맞았던지2학년축제때는다른동아리학생들이‘줄빳따’맞는동기와후배들이안쓰러워선배들에게그만때리라고항의했을정도니까요.오죽했으면동기모두탈퇴할생각을했겠어요.”

그래도바위가너무나도좋았다.‘바위체질’이다싶었다.새내기답지않게암벽등반을시작한지두어달만에월출산시루봉암벽에나있는루트를모두앞장서오르고,재미삼아한등반시합에서우승상품으로받은빤빤이창암벽화를신은이후광주·전남일원의암벽에서못오르는루트가없을정도로급성장했다.매번결과가그다지좋지않지만1학년때생긴전국암벽등반대회첫대회부터입대이틀전열린제3회대회까지참가하는열정을보이기도했다.

“제3회대회는수원에서열렸어요.그래서대회이튿날입대했죠.대회를마치고산친구들과어울려술마시다보니집에서받은입대격려자금이바닥나고말았어요.어쩔수없이영등포에사시는누나집에가서차비를받아새벽첫차를타고논산으로갔습니다.그때는정말머리속에산과산친구들로꽉차있었던것같아요.”

*공가산하산길에후배유명달리해

입대후에도산과의인연은끊지않았다.“훈련소에서자대배치를앞두고산에다녀본사람있으면손들라지뭐예요.당연히들었죠.그래서공수부대산악팀에배속됐습니다.”

입대얼마뒤대통령기전국등산대회가열린다는얘기가들리자부대장은장교와하사관2명,그리고윤중현4명을한팀으로묶어대회에출전시킬계획을세웠다.부대이름을붙인비호산악회팀이다.대회장소가춘천삼악산이라공포된이후한달간전지훈련에나섰다.코스란코스는다오르내리고,대회의대미를장식하는구보경기가중요하다는생각에뛸만한곳도다뛰어다녔다.그결과일반부우승이란큰상을부대에안겨주었다.

▲89년월출산시루봉등반./87년고교시절지리산천왕봉.

그렇게군생활을하면서도산에다닐수있었음에도성에차지않았다.당시광주·전남산악계에는히말라야원정붐이일고있었고,군면제를받은동기들이고산원정에나선다는소식만들려오면부러움에마음이착잡해지곤했다.

고대하던고산등반의꿈은제대3년뒤인96년처음으로찾아왔다.목포를비롯한광주·전남지역산악인들로구성된중국사천성대설산맥최고봉공가산원정이었다.미니아콩가(MinyaKonka·7,566m)라는이름으로도잘알려진공가산북동릉초등을노린등반이었다.북동릉은80년대에일본팀이세차례나도전했으나무려8명이나목숨을잃고등정에는실패한악명높은루트였다.

그러나루트초등의꿈을안고나선원정은6명의대원대부분고산등반경험이없는데다정보마저거의없는상태였던지라제대로진행되지않았다.결국6,200m진출을끝으로포기해야했다.

“지금까지도가장힘들었다고기억에남아있는산입니다.정말뼛속깊이파고드는추위였어요.바람은어찌나불어대던지고정로프는연줄처럼하늘로날아오르고,바닥에서날아오른눈가루에얼굴을맞으면찢어져나가는것처럼아팠으니까요.그래도대원6명이똘똘뭉쳐정상을향했어요.식량이떨어져더이상등반할수없는상태가되어서야포기했지만요.”

이듬해인97년낭가파르밧원정을통해8,000m급등반경험과함께‘기회가왔을때밀어붙여야한다’는귀중한교훈을얻은윤중현은98년공가산재도전에나섰다.김재명대장을비롯해첫원정때참가했던대원이3명이나참가했기에경험과현지정보가풍부했다.첫도전때와달리빠른속도로등반을펼쳐베이스캠프도착30일만에대원6명이정상공격을위해마지막제5캠프(6,800m)에올라섰다.

▲98년공가산등반.

그러나한명은체력약세로출발을포기하고,대원5명이정상으로향했고,7,000m를넘어서면서또다시2명이되돌아서는바람에결국3명만이정상에올라섰다.재도전에서이룩한북동릉초등정이었기에하늘을날듯기뻤다.그러나그에게는엄청난비극이기다리고있었다.

“북동릉에서캠프로내려서기전잠시담배한대피면서잠깐쉬었다가기로했어요.그런데종락이가먼저가겠다고일어서는순간넘어지더니수천m아래빙하로추락하고말았어요.”

국내에서준비해간2,000m고정로프로도모자라막판에는초반부에설치한로프를거둬사용한대원들은정상공격에나설때에는7mm30m로프한동만가지고출발했다.대부분청빙지대인데다속도차가많이나고서로확보한채등반하다한사람이라도실수하는날이면전원추락할가능성이높기에줄을묶지않고하산하던중이었다.

“정신이없었죠.포기하고마지막캠프로내려서던대원들은크레바스를넘어서지오도가도못하고있었어요.대장인재명이형은후배들을안전하게인도하려고먼저내려가고,저는종락이찾겠다고빙하쪽으로내려섰어요.한200m나내려갔을까,갑자기눈이푹주저앉지뭐예요.10여m추락한것같아요.정신을차리고보니까크레바스안이더군요.”

뒤따라내려가던임찬수대원이지니고있던보조자일을내려주는덕분에윤중현은크레바스에서빠져나올수있었지만베이스캠프로내려섰을때그의손과발은심한동상에걸려새카맣게죽어있었다.다행히하행캐러밴중현지인들이가르쳐준대로약초달인물에담근결과귀국후손톱과발톱이빠져나간뒤정상으로되돌아왔다.

▲두번째도전에서공가산정상에오른윤중현씨.

“정신이없었던거죠.일단캠프로내려가상황을판단한다음구조든시신수색이든했어야하는데완전히지친상태에서수천m를내려서려니했으니까말이에요.1년아래예요.참좋은친구였어요.힘도좋았고요.마지막캠프에서집에돌아가면순대에막걸리나실컷먹자고했는데….요즘도누구에게든허리벨트에매달확보줄은짧게하라고일러주곤해요.종락이사고는허리에묶은슬링을일어서면서밟아넘어지면서일어났다고생각하니까요.”

공가산정상을오른그에게K2원정이기다리고있었다.그러나고질병인허리디스크가도지는바람에산입문이후오랜세월염원해왔던K2등반은포기해야했다.99년카라코룸8,000m급3개봉한시즌등정을목표로원정에나선전남연맹팀은가셔브룸1봉(8,068m)과2봉(8,035m)은계획대로등정했으나,K2는남남동릉해발7,700m지점에정상공격에필요한장비와식량을올려놓은이후끊임없이퍼붓는폭설과강풍에밀려포기해야했다.

“원정에참가하지못하는대신트레킹에나섰어요.K2에서부터G1,G2베이스캠프까지모두방문했죠.당시전남연맹은가셔브룸1봉과2봉,그리고K23개봉을등반하고있었거든요.선배두분도마찬가지였을거예요.베이스캠프에서산을바라보고,또등반하러캠프로올라가는대원들을보면서겉으론웃으면서도속으로씁쓸했으니까요.”
▲에베레스트등정후사우스콜캠프로무사히내려섰건만동료들의사고소식에비탄해하고있는윤중현씨.

K2등정실패로전남산악연맹팀은분루를삼켜야했으나그에게는기회가다시찾아온다.이듬해인2000년K2재도전에참가하게된것이다.첫도전에서와마찬가지로남남동릉을목표한원정대는1,2차공격을통해8명이라는많은대원을정상에올리며,K2등반사상단일팀최다등정기록을세운다.윤중현도등정자중한명이었다.

“대원10명가운데8명이올랐어요.대원대다수가원정경험이많다보니손발이착착맞아떨어지고,속도도빨랐어요.시즌초등을기록했으니까요.그래도정상에서내려설때는정말힘들었어요.남들은저벅저벅내려서는데나혼자힘들어쩔쩔맸죠.최종캠프출발이후다시캠프로돌아올때까지20시간가까이등반했으니몸도지쳤지만잠이쏟아지는걸정말참기힘들더군요.꾸벅꾸벅졸다가미끄러지면정신이번쩍나면서이렇게걷다가종락이처럼되는게아닌가두려웠어요.”

2000년K2원정을마칠때까지중현의머릿속에는오로지산으로만가득차있었다.그러나서른이넘어서면서앞으로살아갈일이걱정되었다.몇년간선배와함께대출업을해오다2003년당시붐을일으키던PC방을차렸다.

“3년간매일12시간안팎앉아서지냈어요.정말힘들더군요.괜찮아진허리도그때다시나빠졌어요.그때박상수선배가에베레스트원정에가지않겠냐고물었던거예요.그래서일단원정을다녀온다음다른일을해야겠다는생각에PC방을정리했죠.”

그에베레스트-로체원정은2006년에서한해뒤로미루어져2007년에이루어졌던것이다.윤중현은로체에이어에베레스트정상을밟는기록을세웠지만정작기쁨을누리지못했다.정상에올라섰을때김미곤은2시간넘게,양손장애인인선배김홍빈도1시간이상기다리고있었다.산소가희박한죽음의지대에서동료들을너무오래기다리게했다는생각에기쁨의순간을누릴수없었다.게다가어렵게하산,최종캠프문을열고들어서는순간그에게는비보가기다리고있었다.남서벽등반중이던오희준과이현조씨의사고소식이기다리고있었다.

*“이젠약혼녀를자일파트너삼아먹고사는일에전념할터”

“제가정상을향해올라가고있을때오희준과이현조는남서벽제4캠프에서자고있다가봉변을당했어요.눈사태에텐트가무너져내리면서추락사한거죠.정말미치겠더군요.제2캠프를출발할때서로잘갔다오라며인사를나누었는데말이에요.희준은좋은친구였고,현조는좋은후배였어요.로체와에베레스트연속등반을마음먹은것역시희준이의의견을따랐던거예요.간김에둘다모두올라가라는충고를받아들였으니까요.”

윤중현은지난해봄원정을마친뒤고산등반은일단생각하지않기로했다.그원정을다녀온뒤로는먹고사는일에전념하겠다고자신에게약속했다.자신과의약속을지키기위해서다.그러나산을떠난것은아니다.요즘도한달에두차례이상산을찾는다.대신파트너는클라이머가아닌약혼녀오은정씨(34)로바뀌었다.

“산은중독인것같아요.정상을향할때면그렇게힘들수가없어요.등반이제대로이루어지지않으면빨리하산하고싶은마음이들고요.그런데희한하죠,집에돌아오면다시고산이떠오르는걸보면말이에요.아무튼당분간고산은생각하지않기로마음먹었어요.이번에는정상을향해밀어붙일힘을먹고사는일에쏟고싶어요.자신있어요.은정이도저를믿고있으니까요.”

-글한필석차장대우/월간산[461호]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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