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그들이생각하기에‘인간이결코오를수없는’산이바로마터호른이었다.거의예각삼각형에가까운날카로운바위절벽으로이루어져있을뿐만아니라주변에다른위성봉들을거느리지않고있어그저올려다보는것만으로도두려움을선사하기에충분한산이었다.
현대등반사에서단하나의이정표를꼽아야한다면두말할것도없이에드워드윔퍼(1840~1911)의마터호른초등(1865년)이다.이기념비적등반의주인공이당시나이불과25세의앳된젊은이였다니놀라운일이다.
게다가그는여느등반가와는달리어린시절부터등산을일삼아온경험이있었던것도아니다.그는20세때처음이루어진알프스방문을이렇게회고한다.“영국의어느출판사가내게알프스의명산을그려달라고부탁했다.당시나는등산이라곤책을통해서만알고있었을뿐,산을본적도없고하물며산에오른적도없었다.”
하지만이20세때의첫여행이그의삶을송두리째바꿔놓는다.당시그가화가로서참여했던등반은영국산악회가이끌었던알프스몽펠부원정이었다.원정은실패했지만윔퍼는훌륭한그림을그려냈다.이로써그가맡았던임무는충실히수행한셈이다.하지만여기서그는경계선밖으로뛰쳐나간다.
이듬해화가로서가아니라산악인으로서다시한번몽펠부에도전하여끝내그정상에올라선것이다.당시그는‘미지의세계에대한이상한충동’에사로잡혀온몸이부들부들떨릴정도로흥분했었다고고백한다.그리고이제그의눈에는‘오르기전에는포기할수없는’운명의산이가득들어찬다.바로마터호른이다.
윔퍼는그이후5년동안마터호른에만여덟번의도전장을내민다.말그대로청춘의모든것을송두리째이산에쏟아부은것이다.그모습이아름답기도하고어이없기도하다.풍찬노숙과끝없는좌절의나날들.그럼에도도저히잠재울수없는비이성적인욕망과열정.어쩌면청춘은무모하기때문에아름다운것일지도모른다.
결국그는1865년7월14일,기어코마터호른의정상에올라서고야만다.세계등반사는물론이거니와윔퍼자신도이날을결코잊지못할것이다.윔퍼는생애최고의영광과가장쓰라린비극을이날하루에모두맛본다.
당시윔퍼일행은스위스의회른리능선을통하여정상으로향하고있었다.같은날같은시각이탈리아를대표하는가이드장앙투안느카렐일행은이탈리아능선을통하여오르고있었다.이를테면영국과이탈리아가마터호른초등을놓고격돌하고있었던셈이다.
윔퍼의회고에따르면그의일행이먼저정상에닿은것은간발의차이였다.카렐일행은그들이정상에오른것을보자그만발길을되돌려버렸다.윔퍼는그사실을가슴아파했다.“나는카렐이지금우리와함께정상에있었으면좋겠다고생각했다.
카렐이야말로제일먼저정상에설자격을가진사람이었다.”비극은당일하산길에서벌어진다.윔퍼일행들을하나로묶었던자일이낙석에의하여끊어지는바람에그들중4명이1,200m아래의빙하까지추락하여사망한것이다.등반사에서‘마터호른의비극’이라일컬어지는이사건의후폭풍은엄청났다.
사람들은마터호른초등을찬양하기보다는무모한짓을하여사람을4명이나죽게만들었다면서윔퍼를맹렬하게비난했다.윔퍼는사고경위서를제출하고법정에출두해야했으며판결과는무관하게끔찍한여론재판에시달려야했다.그모든과정들이당시25세의앳된청년에게는몹시도견디기힘들었을것이다.
윔퍼는결국불멸의초등기록을세움과동시에박수는커녕치유할수없는상처만을받고알프스라는무대에서퇴장하고만다.이제용암처럼타올랐던청춘은가고기나긴여생이그의앞에남아있다.그는남은삶을보낼무대로유럽이외의지역으로눈을돌린다.
이를테면방랑자겸산악인으로서의삶을택한것이다.그는남미의안데스산맥과캐나다의록키산맥그리고그린란드를탐험한다.오늘날의시점에서바라보자면엄청난선구자의역할을해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