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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이어산사진만찍은고김근원(오른쪽)씨와아들상훈씨가1995년’산악사진-이론과실제’를함께낸뒤환하게웃고있다.한국일보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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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산에다니는사람들중에는김근원(1922~2000)이란이름을아는사람이드물다.하지만더욱드문것은그의사진을한번도본적이없는사람이다.그들은김근원의사진작품들은보았으되,그것을찍은사람이누구인지는알지못하는것이다.그의작품은현재우리나라에서발행되는세권의산악전문월간지에거의매달빠지지않고실린다.
오직흑백만으로,혹은빛과그림자만으로묘사된한국의산하를본적이있는가?실경산수가수묵화와추상화사이에서절묘하게빛을발하는사진작품을본적이있는가?그사진을찍은사람이바로‘한국산악사진의아버지’김근원이다.김근원이라는이름은아주오래전부터역사속의한페이지처럼인식되어왔다.
그의산악사진활동이곧한국현대등반사와궤를같이하고있기때문이다.덕분에어린시절부터그의사진을보며자라온나는어느날문득그가우리와동시대를살고있다는사실을깨닫고는기이한문화적충격같은것을느꼈다.마치역사속의인물이현실속으로성큼걸어나오는놀라운장면을목도한것같은충격말이다.
하지만이제그는이세상에없다.수년전이곳을떠나실제로역사속으로들어가버린것이다.이제우리는다만그가남긴작품만을통하여그의산사랑과예술혼을들여다볼수있을뿐이다.나는생전의그를단한번뵌적이있다.전시회장에서먼발치에서나마바라본것은여러번되지만서로얼굴을맞대고도란도란이야기를나눠본것은꼭한번뿐이었다.
당시의나는어찌어찌하여그의촬영산행의말석에끼는영광을누리고있었다.가까이에서바라본김근원은매우왜소하나다부진할아버지였다.그가사용하던카메라들역시고색창연하고무거운애물단지(!)들뿐이었는데,그것들의엄청난무게가저양반을짜부러뜨리지나않을까싶어조마조마한심정이었다.
그는니콘과롤라이플렉스,그리고아사히펜탁스와린호프테크니컬등을사용했던것으로기억한다.그는생면부지의젊은청년이었던내게카메라배낭을맡긴것이못내미심쩍었던지자꾸뒤돌아보면서도쉬지않고능선을향해전진했다.이윽고그가남몰래점찍어두었던촬영포인트에도착하자제일먼저한일이원두커피를내리는일이었다.
“무겁지?이거한잔마셔.”그가내게건넸던유일한말이다.나는그때한잔얻어마셨던‘김근원선생표커피’의맛을지금도잊지못한다.커피몇잔을맛있게비워낸그는이내낮은콧노래를흥얼거리며촬영준비를했다.결코서두르는기색이없었다.마치자신이원하는그림이나올때까지라면내세에서까지라도기다릴용의가있다는듯느긋하고자신만만한태도였다.어느새일몰시간이다가오자산에짙은음영들이드리워지기시작했다.
그속에앉아있는김근원의모습은이미산과하나가되어있는풍경이었다.내기억속에남아있는가장아름다운한컷이다.김근원은1922년경남진주의독실한기독교집안에서태어났다.신사참배거부사건으로그의집안어른들대부분이투옥되는쓰라린체험을한끝에서울로이주한것은그의나이13세때의일이다.서울에서그가진학한학교는엉뚱하게도경성음악전문학원이었다.그가한일본인사진작가로부터본격적으로사진수업을받은것도이즈음이다.
엄격했던일본인선생은당시그에게1년내내계란사진만찍게했다고한다.지겹고끔찍했던수업기간이었겠지만훗날김근원은회고한다.“계란의형태는곧바위의형태가되었고,계란의색은곧눈의색이되었다.”그다음1년동안은인화술만배웠다.타고난음악광인그는인화를할때클래식음악을크게듣는것으로유명하다.그의사진작품들이뿜어내는간결하되장중한느낌은어쩌면이과정에서연유한것인지도모른다.
그가본격적으로산사진에매달린것은한국전쟁이끝난직후부터였다.그는1956년한국산악회에입회하게되었는데,평생이사실을자랑스럽게생각했다.그의초기작들은대개한국산악회와함께한등반이나탐사의보고사진들이었다.1956년의‘울릉도독도보고전’,1957년의‘스키사진전’과‘한라산등반보고전’,1960년의‘설악산등반보고전’등은예술적가치뿐만아니라학술적가치도빼어난소중한기록들이다.
사진작가로서의첫번째개인전은산악사진에매진한지20여년만에열린1976년의‘북한산’전시회다.이즈음에그는이미일가를이루어독창적인작품세계를펼쳐보였다.그리고는작고직후인2001년의회고전에이르기까지16회의개인전을열어우리가늘상오르내리는한국의산하들을최고의예술품으로승화시켜놓았다.김근원의사진작품들을들여다보고있노라면숭고한아름다움이느껴진다.가장놀라운점은그것이더없이‘한국적’이라는것이다.
그의산은요세미테도,알프스도,히말라야도아니다.끝없이중첩된야트막한산들,치솟은바위조차풍광속에녹아들어조화를이루고있는산들,고사목과운무저편에꿈결처럼펼쳐지는산들,바로우리에게너무도익숙한한국의산들이다.김장호가글을통하여“우리의산이야말로명산”이라는것을깨우쳐주었다면,김근원은사진을통하여그위업을이룩해냈다.
그가그려낸산들은부박한세태의저편,피안의어느경지에속해있는듯하다.그래서그의작품들속에서는근원적인그리움의냄새가물씬풍긴다.한국의산은그의사진을만들었고,그의사진은다시우리들을산으로불러내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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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이은산사랑
아들김상훈씨도사직작가…아버지작품으로사진집출간
산사진에대한김근원의지독한사랑은대를이어계속되고있다.그의아들인김상훈역시산악사진작가로활동하면서선친의작업들을정리하고계승하는일에몰두하고있는것이다.중앙대사진학과를졸업하고한때산악전문월간지의사진부장을역임한그가김근원과의공동작업으로펴낸책이’산악사진-이론과실제'(1995)인데,아직도이분야에관한한최고의저서로손꼽히고있다.당시김근원은이책을출간한직후"사진전열번여는것보다힘들었다"고고백한적이있다.
김근원의사후에몇권의사진집들이출간되었는데이는모두김상훈의노고에의한것이다.‘김근원산악포커스'(2003)와’한국스키의발자취’(2003)는편저자의이름이김상훈으로되어있지만실제로책안에실린사진들은모두김근원의작품들이다.1950년대와1960년대에찍은사진들은예술성못지않게기록성도높은희귀작들이다.다만이두권의책은인쇄상태가그다지좋지않아김근원의작품을제대로감상하는데에는역부족이라는점이매우안타깝다.
김근원의작품집들중가장아름다운책은1987년에출간된’한국의산’이다.하지만한정판으로출간된이책을구하기는하늘의별따기다.덕분에그의사진을사랑하는사람들은매달산악전문지에실리는유작들을띄엄띄엄살펴보며입맛을다져야만했다.그런뜻에서최근에출간된‘산,그숭고한아름다움'(2005)는김근원매니아들에게매우반가운선물이다.좋은종이에제대로된인쇄로나온이책을현재구할수있는김근원의대표작으로꼽아도무방할듯하다.이책의편집자역시김상훈이다.
-글/산악문학작가심산/한국일보200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