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끈 –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않았다. *-

“등반은길없는세상을건너가는인간의길이다.”

2005년1월16일네팔히말라야의촐라체(6440m)라는봉우리에서박정헌(36)과최강식(26)두산악인이조난된지9일만에극적으로살아돌아온이야기이다.이책은소설같은실화가우리를감동시킨다.두사람은눈과얼음으로뒤덮인수직고도약1700m에이르는험난한촐라체북벽을등정하는데성공한다.그러나반대편으로하산도중최강식대원이크레바스(갈라진얼음사이)에추락하면서다리가부러지고박정현은갈비뼈가부러지는중상을입어두사람은절체절명의상황에놓이게된다.

절벽아래로떨어진동료와연결된로프를잡고안간힘을쓰고있는사람에게는두가지선택이있다.로프를끊고자신만이라도살아남던가,아니면끝까지버티다같이떨어지던가.‘이대로로프를끊어버릴것인가.’생사를눈앞에둔박정헌은잠시고민에빠진다.그러나혼자살자고후배를크레바스속에버릴순없었다.“형님,살려주이소~.”크레바스안에서경상도사투리가섞인후배의투박한절규가울려퍼졌다.“다리가부러졌어요.”순간정신이번쩍들었다.크레바스를2m앞둔경사면에벌떡일어선선배는남은힘을열손가락에쏟아부어자일을움켜쥐었다.

후배는감각이사라진다리로필사적으로자일에매달렸다.배낭속등강기(올라갈때이용하는등반장비)를이용해한뼘한뼘크레바스를탈출하기시작했다.박정현은부러진갈비뼈가우두둑소리를내며온몸에고통을전했다.그런사투의구조작업1시간.햇빛이비치는크레바스바깥으로후배최씨의머리가나타났다.“살았다!”말이없던선배박씨는후배의몸을바깥으로끌어낸뒤기쁨의소리를질렀다.몇시간에걸쳐로프로연결된후배를끌어올린다.다행히최강식대원이의식을회복해매듭을만들어겨우올라올수있었다.

그러나영하15도를넘는살을찢는살인적인추위에1시간동안구조의사투가끝났을때는두사람모두한발을떼기조차힘들었다.천근만근의무게에호흡조차곤란한상황이었다.후배의두발목은퉁퉁부어올랐고,선배는숨을몰아쉴때마다왼쪽가슴을칼로찌르는고통을느꼈다.망연자실,그자체였다.5시간거리의베이스캠프를앞두고두사람은자신들이등정했던눈덮인촐라체봉을쳐다보며마음을다잡았다.“가자.살아서돌아가자”선배가후배를부축했다.하지만내한몸가두기도어려운상황에서금세한계상황에도달했다.

선배의팔에서힘이빠져나가는것을확인한후배는엉덩이로기어갔다.양손으로바위를짚은채엉덩이를옮겨조금씩조금씩밑으로이동했다.그러나이날밤,두사람은강추위속에서비박(텐트없이밤을지새는것)을해야했다.“미안해,혀~엉.”후배최씨는선배의눈을마주치지못했다.“괘얀타,그럴수도있다.”선배도하늘만바라봤다.후배는크레바스에빠진자신이너무나원망스러웠다.선배또한잠시나마줄을끊고달아나고싶은마음이든자신이괴로웠다.하지만머릿속은온통두려움뿐이었다.‘과연살아서이산을빠져나갈수있을까….’

1월17일아침.선배박씨는크레바스사고때안경을잃어버려온통시야가흐렸다.시력이마이너스0.3.안경없이는지척을분간하기조차힘들었다.가다쉬다를반복하던중70~80도의급경사가나타났다.눈벽에피켈(얼음송곳)을찍으며내려왔다.한발,한발….마지막발을내딛는순간얕게박힌피켈하나가튕겨져박씨의이마를깊게긁고지나갔다.터져나온붉은피가흰눈위에잉크처럼뿌려졌다.5㎝길이의상처였다.마음은한없이약해지면서도‘포기하지말자’‘포기하면죽는다’고스스로를다잡았다.두사람은배낭을버렸다.몸뚱아리만으로도벅찼기때문이다.

의식없이걷고또걸었다.입이타올랐다.사흘째물을마시지못했다.등정하기전날부터영하의날씨로물통이꽝꽝얼어버린탓이었다.박씨는얼음을피켈로찍어서마구삼켰고후배도같이얼음빙수를만들어마셨다.두사람의입안은거친얼음조각에다헐어버렸다.잇몸에서피가나왔다.17일밤.두사람은밤새고통으로신음소리를토해냈다.잠을이룰수가없었다.박씨는“비명을들으며서로가살아있다는것을확인했다”고했다.이튿날,아침.후배최씨가꼼짝하지못했다.발에피가공급되지않아물먹은솜처럼부풀어올랐다.

“형님!먼저가십시오.저는힘듭니다.”가장가까운인가(人家)가수백m밖이었다.만감(萬感)이교차했다.망설이던박씨는“내가마을사람을불러곧너를데리러오겠다”며등을돌렸다.몇발자국못가눈이몰아치기시작했다.박씨의걸음이빨라졌다.3시간쯤걸었을때오두막두채가나타났다.벌써눈은발목깊이로쌓여있었다.달려가문을두드렸지만대답이없다.호주머니속피켈망치로문을부수고들어갔다.마른장작만천장까지쌓여있을뿐이었다.‘이제어떻게하나….’지금상태로다시돌아갈수가없었다.

하지만오늘밤이지나면후배,강식이의삶의희망은사라진다.‘그녀석부모를무슨낯으로보나.’크레바스에서의갈등이다시밀려왔다.그러나박씨는바닥에털썩주저앉았다.허물어지는몸을이겨낼수없었다.아무생각도나지않았다.의식이희미해졌다.자신도모르게쓰러져그대로잠이들었다.그후몇시간이지났을까?‘삐-그덕.’문열리는소리에박씨는벌떡일어났다.시커먼그림자가성큼들어왔다.후배였다.“강식아!”후배최씨가눈위에찍힌선배의발자국을따라필사적으로오두막까지들어온것이다.

서로부둥켜안고눈물을흘렸다.선배가“잘왔다.이자식아.진짜잘왔다.걱정돼서죽을뻔했다”고소리쳤다.후배는“눈이쏟아지는데,그대로있으면죽을것같아따라왔다”며웃어보였다.그뿐이었다.이날두사람은4일만에오두막에남아있는꿀과말라비틀어진초콜릿조각을녹여배를채웠다.쌓인장작으로불도쬐었다.2시간간격으로잠을깨,불이꺼지지않도록했다.그다음날,야크를몰고지나가던현지노부부의도움을받아둘은기적처럼생환하게된다.두사람의이야기는여기서끝나지않았다.

정상을허락한촐라체는그들에게잔인한대가를요구했다.심한동상에걸린두사람은결국산악인에게는생명과도같은손가락과발가락대부분을잘라야했다.박정현씨는결국양손엄지를제외한8개의손가락을잘라내는수술을받았다.크레바스위에서후배의자일을쥔손가락이다.후배를살린대신산악인으로서의생명을잃은것이다.후배최강식씨는손가락,발가락을모두잘라야한다는판정을받았다.그는수술을거부하고고향진주로내려가경상대병원에서손가락,발가락이썩지않도록하는치료를받고있다고한다.

출처참고:남선우월간MOUNTAIN발행인/신지은조선일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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