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원정대’의 히말라야 등정기 *-

희망원정대’의히말라야등정기

아름다운실패의기록

가만히서있는데도숨이목구멍까지차올랐다.아무리심호흡을해도모자라는공기는채워지지않는다.해발4700m,네팔히말라야나야칸가봉(5846m)하이캠프.밤새몰아친눈보라에텐트들이절반은묻혀있다.천지사방에눈보라가몰아쳤고,희미하게보이는사람들얼굴은어둡다.해발1350m사베르베시에서시작했던8박9일의산행.예기치않은끝이예감됐다.

온통잿빛인하늘뒤로마지막목적지나야칸가봉이숨어있는데,등반대장고미영(42·코오롱스포츠)씨가선언했다.“?10년만에처음보는악천후입니다.전문산악인도가기어려운날씨입니다.하산(下山)하기로결정했습니다.여기까지정말수고하셨습니다.”잠시침묵이흐르더니,왼쪽팔이없는이수미(31)씨,왼쪽발이없는이지연(23)씨,그리고오른쪽다리가없는김진희(41)씨그리고그들을도와8박9일동안히말라야를걸어온모든대원들은허벅지까지쌓인눈속에서서로를껴안고덕담을던졌다.

“고생많았어요.여기까지온게어딘데….”그래도분위기가어색했다.누군가가큰소리로말했다.“웃자,웃자!”동행했던연예인들이콘서트를시작했다.이영범,이범학,방대식,홍종명,유승혁,오은주….희망원정대를위해만든곡(曲)‘너라면돼’가히말라야계곡에울려퍼졌다.“너라면돼,너라면돼.너는이세상에혼자가아냐~”웃자고했던원정단장인류홍규준장(공군사관학교부교장)은하산도중에끝내울었다.“그냥,사람들이장하고,가슴속에뭔가북받쳐서….”

이러저러한사고로팔·다리를잃은절단장애인7명이히말라야에도전했다.7세부터이들을돕기위해따라온경찰관,연예인을비롯한대원34명으로이뤄진‘희망원정대’다.연예인봉사단체인사랑의밥차(대표정준호)와조선일보가공동주최하고코오롱스포츠가협찬을,STX가후원을해이뤄진이번원정대는지난달27일랑탕히말지역나야칸가봉을목표로인천을떠났지만악천후로인해하이캠프에서발길을돌렸다.누군가가그랬다.실패했으되,포기하지않는다면끝이아니라고.미완의도전기,14박15일동안이들이겪은행복과좌절을기록했다.

  • #1출발

  • 산행첫날인3월29일아침.해발1350m사베르베시에서원정대가산으로들어갔다.앞으로무슨일이닥쳐올지모르고있는대원들에게고미영대장이말했다.“사점(死點)이라는게있습니다.산을걷다보면숨이막히고,도저히더걸을수없는시점이지요.그때포기하지마십시오.사점만넘기면그다음에는무념무상입니다.저절로걸어집니다.”일행은‘죽음의포인트’를생각하며푸른하늘을바라봤다.티베트불교의만장이휘날리는데,아직은사점이라는말이와닿지않는다.

    하지만정상민(34)씨는일찌감치그사점을넘긴사내였다.세살때였다.“엄마한테용돈을받아서가게로가다가트럭이덮쳤어요.자빠져서보니까,내다리가트럭바퀴축에말려들어가뱅뱅돌고있는거예요.고함소리에엄마가수건들고와서내온몸을싸안고병원으로갔어요.그다음엔기억이없어요.”이수미(31)씨도마찬가지.“잡지사기자였는데,어느날버스에서내리다가버스가개문발차를한겁니다.탁하고넘어졌는데,보니까내몸뚱아리는버스바깥에있고,내왼쪽팔이뒷바퀴에껴서저만치끌려가고있는거예요.나는여기있는데!

    두사람다사점을넘겼지만이후그들의삶은“웃고있지만정말힘들고”(정상민)“전염병환자대하듯아무도옆에오기꺼려하는”(이수미)허망한인생으로변해버렸다.상민씨가말했다.“그래서히말라야에온거예요.올초에첫아들웅천이가태어났는데,애가크면‘아빠가장애인이지만비장애인도가기어려운히말라야에다녀왔다’고말해줄겁니다.아빠가장애인이면애도상실감이크거든요.”상민씨가가족사진을목에걸었다.서른넷먹은사내목소리에물기가서려있었다.

    그렇게우리는산으로들어갔다.히말라야에서가장아름답다는계곡랑탕히말에는봄꽃이피고있었다.거센바람에살아남기위해땅에납작엎드려피어나나민들레,한국진달래보다잎이두꺼운히말라야진달래티카,그리고그사이에소,말들이갈긴똥이군데군데누워있었다.

    희망원정대최연소대원인손제인(7).태어날때부터두발과양손손가락이없는제인이는소똥이보이면“소똥조심”,바위지대가나타나면“바위조심”을외치며어른들을즐겁게했다.원정대원들은처음부터끝까지제인이를걱정했다.해발3000m를넘으면귀신처럼나타나는고소증,그리고행여있을지모를사고에제인이는언제나제1의관리대상이다.자기발로걷고,말을타고,그리고삼촌처럼보살펴준포터유르미(23)씨의도움으로제인이는해발4200m베이스캠프까지올랐다.

    “맥박수가조금높아,더이상은어렵다”는팀닥터신호식씨의판단으로하산결정이떨어지자,제인이는“왜나만내려가냐”고울고불고난리를피웠다.해발3700m산장에서재회한제인이는“삼촌들어서와.소똥조심했지?”하며우리를반겼다.

  • #2히말라야를닮는사람들

  • 하지만길은험난했다.완만했던숲길은사흘만에바윗길로변했고해발2000m지점에서원정대는목이아플정도로경사가진고갯길을만났다.모두겁에질렸다.특전사출신인경찰관김철수(42)씨도“와,이걸어떻게…”하고내뱉었다.그는왼쪽다리가없는청년정창영(27·사회복지사)씨를부축하는멘토다.300m정도되는그고갯길,한시간걸렸다.그사이에의족과맞닿아있던창영씨다리는피투성이가됐다.

    고개꼭대기찻집에앉으니설산전경이한눈에들어온다.웅장하고,위대한해발2375m찻집에서장애인들의상처부위는그들의의지와경치의위대함에비례해망가지고있었다.그런창영씨가말했다.“유치원교사로일할때,아이들에게장애인을설명하면서도내상처를보여주지못했어요.돌아가면,글쎄요.좀다를거같은데요?”그렇게사람들이히말라야를닮아가고있었다.

    그렇게우리들은히말라야에빠져들었고,어느덧백두산보다높은해발3008m고다타벨리에도착했다.그리고며칠뒤조금더큰자신감과조금더힘든여정을거쳐해발3400m랑탕마을에도착했다.전형적인히말라야설국(雪國)풍경이시작됐다.그리고다음날,정말어렵게고도를300m높여칸진곰파마을에닿았다.

    원정대대원들과내기를벌인포터얄부(28)씨가마을앞에있는4200m짜리칸진리소봉을40분30초만에정복하고내려왔다.일반인은6시간이걸리는코스다.의심반,기대반으로그를기다리던우리들은그에게기쁜마음으로상금100달러를선물했다.그날밤부터폭설이쏟아졌다.실무를맡았던트레킹여행사유재수상무는“이곳은밤새눈이오고낮에는햇볕에녹는곳”이라고했다.폭설은그런데일주일동안멎지않았다.

  • #3은하수가보이지않는밤

  • 고소적응을마친이틀뒤고미영대장이사람들을모아놓고말했다.“이제부터귀찮고예민해지고싸우게됩니다.서로를먼저생각해주십시오.”공기가희박해지고몸이힘들어지면서사람들은조금씩예민해져갔다.도움을주는사람도,도움을받는사람도.식사투정이늘었고,일정을두고대립하는시간이잦아졌다.

    현지주민들이어렵게산악소인야크고기를내놨지만,대부분식사를물렸다.“미리포기하지않는다”고모두가결의를다진뒤,한순간솟아오른태양빛을받으며원정대는베이스캠프로출발했다.천지사방이흰눈을뒤집어쓰고반짝였다.티베트불교장식탑인마니추르를지나설산으로들어가는데,다시눈보라가몰아쳤다.

    “이고개만넘으면넓은능선입니다.조금만힘냅시다.모두아이젠을착용하시고요.”고미영대장이지시했다.정신을차려보니눈앞에설산사면이하늘까지솟구쳐있다.“한40도?”대장은아무렇지도않게측량했지만,40도경사가어디아이이름인가.미리셰르파들이눈길을만들어놓았지만올라갈엄두가나지않는다.

    이지연씨가말했다.“그래도가야죠.얼마나기다렸는데.”그녀는경찰관멘토조서희(41)씨손을붙잡고포터의도움을받으며또박또박하늘로올라갔다.의족과맞닿은지연씨발목은이미곪아있다.지연씨는능선을앞에두고눈밭에쓰러졌다.“…하늘바라봤어요.”그녀는더이상말이없었다.

    제인이의포터유르미씨.난감해하는사람들눈치를보던그가제인이를들쳐업더니비탈을뛰어오른다.불길에뛰어들어사람을구해내는소방관처럼,그는우리들눈에영웅으로보였다.그를따라오른능선에서,일찌감치미리출발했던김진희씨가쓰러져있었다.

    그날아침지급받은식량은삶은달걀2개와육포몇조각과물한통.그렇게쓰러지고,걷고,하늘한번구경하며우리들은결국해가떨어지기전에베이스캠프에도착했다.단한명의낙오자도없었고,연예인들은4200m설산에서유쾌한콘서트를열었다.뒤늦게도착한김진희씨를가수이범학(42)씨가부둥켜안았다.캠프저아래강이흘렀다.흰구름이낮게깔려왔다.

    어둠깔릴무렵,여자경찰관박은순씨가위성전화로남편과통화를했다.그녀는“야,남편너무보고싶다,사랑한다!”고씩씩하게전화를끊더니마구마구우는것이었다.그러곤1분에3달러인통화료를여행사사람에게내면서이번엔마구화를내는것이었다.“야,저나쁜사람6달러벌고사람울리고!나내일저전화기부숴버리고말거야!”

    거친농담에모두통쾌하게웃고나서는저마다전화통을빌려서는텐트뒤로가서소근대다가조용히울어댔다.그렇게히말라야에서사람들은그리움을배워갔다.이방인관광객들은오리털침낭속에들어가잠을청했고,포터들은바위틈에모여몸을부대끼며잠이들었다.내가네팔에태어났더라면나또한저들과비슷한인생을살고있을것이다.그런상상에몸을뒤척이다텐트밖으로나갔더랬다.그날밤,은하수가보이지않았다.

  • #4아이의뒷모습

  • 이틀을더베이스캠프에남았다.고산적응도중요했고,날씨가중요했다.그와중에애굣덩어리제인이가하산했다.날리는눈발속에서제인이가유르미삼촌등에업혀우리에게손을흔들었다.아이의뒷모습이한참동안눈에밟혔다.“너가안내려가면삼촌들이위험해”라는사랑의밥차채성태사장한마디에아이는결정을받아들였다.그리고고소증에시달리던가수황규영(42)씨가하산했다.오늘은고도를500m높인하이캠프가목표다.

    바위지대를지나,눈덮인능선끝에이르니남궁정부(70)씨가앉아있다.55세때지하철사고로오른쪽팔을잃은구두장인남궁씨는이후장애인용신발을개발해지금까지5만켤레의구두를만들었다.그로인해‘벌떡일어나걷게된’장애인수도그쯤된다.그런데그가하산을하기로했다.닥터신호식씨가말했다.

    “고소적응은문제없지만기력이….”얼핏노장인의선글라스아래에눈물이비쳤다.

    그리고정상민,정창영두장애인이발길을돌렸다.“악천후에더이상대원들에게피해를끼치고싶지않다”고했다.셰르파들이만들어놓은눈길이너무좁아,그들을부축하고걷기에는무리였다.대신상민씨는고미영대장에게가족사진을넘겼다.자기를대신해서라도꼭가달라고.

  • #5나야칸가의석양(夕陽)

  • 악전고투끝에4700m하이캠프에도착했지만,모두가끝을예감하고있었다.굉장히추운날이었다.비장애인1명,장애인4명이포기를하고나머지대원들이하이캠프에도착했지만,성공을축하하는분위기는없었다.조용히자기텐트로들어가몸을누이고20m앞도보이지않는눈보라를뚫고잠시산보를하며우리들은내일을기다렸다.

    어느틈에우리는공동체,아니가족이되어있었다.대한민국의장애인으로서,이렇게오랜시간동안걸어본사람도드물것이다.그리고장애인과함께이렇게오랜시간을부대끼며지낸사람들도드물것이다.우리모두의결론은하나였다.“모두가오르거나모두가내려간다.”

    다음날아침,K2봉도전을위해동계훈련중이던선발대에서연락이왔다.“하이캠프2(해발5300m까지눈이허리까지차있다”고했다.그리고30분만에희망원정대는하산결정을내렸다.맑았던한순간눈앞에모습을드러냈던나야칸가봉이가슴속에솟구치는먹먹한느낌하나에모두가침묵했다.그리고사람들은짐을꾸렸다.

    최고고도콘서트라는한국기네스기록에도전했던연예인들은하이캠프에서앰프와스피커와발전기를설치하고노래를했다.추위에발전기가몇번씩멎어버렸지만,그전력은인간의음성으로대신했다.이지연씨가말했다.“정말최선을다했는데,이제내려갑니다.나야칸가?벌써다녀왔습니다.최선을다했으니까.”

    만3박4일동안걸어올라왔던하이캠프에서칸진곰파산장까지하산하는데딱다섯시간걸렸다.미리내려가있던‘가족’들과재회했고,그날밤파티가벌어졌다.거짓말같겠지만,그날은정말은하수가쏟아질듯했다.연예인이영범씨가한구석에서기도했다.“모두가무사히히말라야를보고돌아왔습니다.이들에게평화를….”오래도록그기도문이기억에남을것이다.그리고일부러외면했던나야칸가의석양(夕陽)을카메라에담겠다는소망도오래도록남을것이다.

    글·사진=카트만두박종인기자/2008.04.19.조선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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