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산악계의대부“산악인은시인과같이타고나는것”
대장장이의기백과시인의감성을겸비한사나이,
알프스의3대북벽그랑드조라스워커스퍼초등으로국제적명성과알래스카안데스히말라야에서도위대한업적을남겨
라이너마리아릴케는말했다.“매일시를쓰지않아도살수있다면당신은시인이아니다.”그의말처럼시인이될운명을타고나는사람이따로있다면대다수의시인지망생들은절망할수밖에없다.그렇다면산악인의경우는어떨까?이탈리아산악계를대표하는‘살아있는전설’리카르도카신(97)은이렇게말했다.“산악인은선원이나시인처럼태어나는것이지만들어지는것이아니다.”
선원이될운명을타고난사람은설사주위가모두산으로둘러싸인곳에서자란다해도항구와만나는순간내재되어있던잠재적열정이폭발해버리듯,산에오를운명을타고난사람역시그러하다는뜻이다.리카르도카신이창립한‘레코스파이더스’는이탈리아에서가장유명한산악회중의하나이다.
한때이탈리아산악회레코지부장을맡기도했던그가만년의안식처로삼은곳역시이탈리아북부의레코였다.덕분에많은사람들이카신은레코출신일것이라고생각한다.하지만그는산이라고는전혀볼수없었던사보르가뇨에서태어났다.가난한개구쟁이였던카신은제대로된학교교육이라고는거의받아보지못했다.
12세때이미대장간에취직하여풀무질을하면서생활전선에뛰어들어야했던그에게레코는일종의‘항구’와도같은도시였다.보다많은돈을벌수있는일자리를찾아친구를따라나선레코에서그만거대한암벽과마주치게되었던것이다.가난하지만모험심가득한소년은레코에서일자리를얻은후처음으로맞게되는일요일에그곳에서가장높은레세고네산정상에오른다.
“별을보며새벽에떠났다.초라한장비,남한테서빌린배낭,좋은옷을버릴까봐몸에걸친낡고해진덧옷,필사적으로높은곳을바라보던광기,처음으로정상에섰을때의환희…이것이나의생애의결정적인갈림길이었다.절대로고칠수없는산병(山病)의시작이었다.”이후그는미친듯이산에오른다.
당시의그는크고무거운피톤을직접만들어서썼다.그의유명한애칭‘대장장이카신’은그래서만들어졌다.이별명은훗날그가직접자신의이름을딴등반장비업체를설립함으로써가장신뢰받는브랜드의메인카피가되었다.카신의등반스타일은직설적이고과감하며불퇴전의결의로특징지워진다.
그는자연적인등반선을존중하되거의직등에가까운루트를뚫는다.일단등반을시작하면제아무리험난한악천후를만나도결코후퇴하지않는다.어찌보면대단히무모한스타일이라고비난받을만도하다.카신의해명은그러나단순하다.“내겐시간이없었다.다른이들은일주일이고한달이고같은루트에매달릴수있었지만나는언제나생계를위하여노동을해야했다.나는내게허락된시간을최대한활용하려했을뿐이다.”
덕분에북부이탈리아돌로미테의1930년대는그의독무대였다.1935년의치마오베스타북벽초등은‘세계등반사100대사건’에꼽히는대기록이다.그는낙뢰와폭풍이몰아치는악천후속에서이틀동안비박을감행하며거의500m에이르는오버행절벽에새길을뚫었다.
1937년의피츠바딜레북동벽초등시에는끔찍한사고를겪기도했다.그의기량과체력그리고불퇴전의결의를따라갈수없었던두명의동행자들이결국탈진하여숨을거두고만것이다.하지만이때까지만해도그는국제산악계에는거의알려지지않은‘이탈리아촌뜨기’였을뿐이다.
그에게국제적인명성을안긴것은두말할나위도없이1938년의그랑드조라스북벽초등기록이다.그가자신의동료들과함께이‘알프스최후의과제’를해결하기위하여그랑드조라스에나타났을때레쇼산장의가이드들은코웃음을쳤다고한다.유럽최강의산악인들이모두패퇴한산에듣도보도못한‘이탈리아촌뜨기’들이감히도전장을내밀다니그랬을법도하다.
하지만카신은단한번의시도로그랑드조라스의워커스퍼를돌파해버리고만다.이탈리아가선진산악대국의반열에올라서는역사적순간이다.내가카신에대하여감탄하는것은그이후의삶이다.자기분야의정상에오른사람들은대개명예의전당에자리를잡고앉아보신(保身)과수성(守成)에골몰하기마련이다.
그러나그는언제나자리를박차고등반의최전선으로달려나갔다.카신은1956년가셔브룸4봉원정대를이끌고나아가정상등정에성공했다.1961년알래스카최고봉매킨리의미등루트였던사우스버트레스에도전했을때그의나이가52세였다.이곳은현재그의이름을따서‘카신릿지’라고명명되어있다.
65세가되던해인1974년에그가도전했던산이최근에엄홍길이또다시패퇴한로체남벽이다.카신의로체남벽원정대는정상에오르지못했다.그의생애최초의패배였다.하지만65세에로체남벽에도전했다는것자체가존경받아마땅할일이라고나는생각한다.1987년에는피츠바딜레초등50주년기념행사가열렸다.카신은당시78세의고령이었음에도불구하고50년전에자신이뚫었던루트를10시간만에다시올라세인을놀라게하였다.
그를이토록강한사나이로만든힘의원천은과연무엇이었을까?카신은‘산과의대화’라고답한다.산은모든루트에서자신에게‘여지껏몰랐던새로운언어’를가르쳐주었고,자신은산과의대화를통하여‘감각적커뮤니케이션’을익혔다고고백한다.“산은우리의정신을풍요롭게해주는강력한원천이다.그런뜻에서산과나의대화는끝나지않을것이다.”/심산산악문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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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로체남벽첫패퇴후회고록써
리카르도카신은평생30건에달하는대암벽세계초등기록을세웠다.이쯤되면엄청난저서를남겼을법도한데그는오랫동안글을쓰지않았다.아마도글보다는행동을앞세우는그의기질에서연유한것일수도있고,거의무학(無學)에가까운학력때문에빚어진현상일수도있다.이런그의태도에커다란변화를가지고온것이바로1974년로체남벽원정대의패퇴였다.
그는생애최초의패배를맛본이후오랫동안침잠해있다가자신의등반인생을찬찬히되짚어보는회고록을한권썼다.바로노인의지혜가그윽한빛을발하는‘나의등반50년’(1981)이다.그의별명은널리알려진대로‘대장장이카신’이다.그가대장장이출신이며장비제조업체를설립했다는것외에도우직하고투박한그의인상에서연유한바큰별명이다.
하지만‘나의등반50년’을읽어보면그가얼마나섬세한감성의소유자이며예술가적직관을가지고있는가를확인하게되어혀를내두르게된다.“나는산악인을선원과시인에비유했다.나자신은책벌레가아니며시도읽은적이별로없다.하지만나는시인이잿빛어린일상에서강렬한상상력이창조하는세계로탈출하려한다는것을잘안다.시에대한공감없이는산악인이산과대결하거나선원이바다와대결할수없다.”
암벽등반을하는산악인은절벽의시인이다.카신이토레트리에스테동남릉을오르고돌아오자그에게악수를청한어떤산악인이그렇게말했다고한다.“저700m의암벽위에당신은시를남겼소.”대장장이는육체적인인간이다.시인은정신적인혹은예술적인인간이다.리카르도카신은이두존재를한몸에구현한인간이다.“극도의난관에도전하는것은건강한희열과정신적고양을추구하는일이다.이희열과고양은등반의성공혹은실패와무관하며,오직위험한싸움을통해서만얻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