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벽 등반의 대가 워렌 하딩 *-

거벽등반의대가워렌하딩(1924-2002)


‘어리석은’18개월의고행거벽등반의신기원열다
수직1Km美엘캐피탄절벽에매달려숙식하며675개피톤사용해초등기록.


미국요세미테국립공원의엘캐피탄.전세계의‘바위꾼’들이꼭오르고싶어하는초대형화강암암벽으로,바위의순수고도차이만1,086m에이른다.

한산악인이엘케피탄의수직벽을오르고있다.

워렌하딩이바위에매달려진행방향을살펴보고있다.

내가미국캘리포니아의요세미테국립공원에간것은꼭10년전이었다.우리일행은LA공항에내리자마자렌트카회사부터찾았고,허름한밴하나를빌려뒤트렁크에등반장비들을가득채워넣은다음뒤도안돌아보고요세미테를향해달렸다.

그리고는꼭보름후,갔던길을되짚어한국으로되돌아올때까지우리가했던짓이라곤단하나,요세미테의거대한바위에매달려있는것뿐이었다.남들눈에비추어보면참으로어이없는미국여행이다.하지만‘바위꾼’들에게는평생의꿈이다.

기독교신자들의메카가예루살렘이라면,암벽등반가들의그것이요세미테인까닭이다.캘리포니아의한적한도로를족히여섯시간쯤달렸을까.스카이웨이를연상시키는산중도로를굽이굽이에돌아요세미테계곡이내려다보이는휴게소에도착했을즈음이다.

달빛교교한요세미테계곡의한가운데쯤어딘지이세상의것이아닌듯한느낌을주는거대한존재가우뚝솟아있었다.바로엘캐피탄(ElCapitan,2,695m)이다.우리는‘엘캡’(약칭)에바투붙어있는유명한야영지‘캠프4’에슬리핑백을펼쳐놓자마자곧바로곯아떨어졌다.

이튿날아침이었다.나는꿈에그리던엘캡을제대로감상하려고올려다보다그만뒤로나자빠졌다.비유적인표현이아니다.그야말로육체적으로나자빠진것이다.하지만그렇게뒤로벌렁나자빠져도엘캡의전모는한눈에파악되지않았다.

엘캡은단일한바위로이루어진거대한화강암절벽이다.요세미테계곡의아름다운초지위에우뚝솟아있는이영물(靈物)은바위만의순수한고도차이가1,086m에달한다.무려1Km를넘어서는수직의바위벽을올려다본적이있는가?말로는도저히설명이안된다.

사진으로보아도원근감을느낄수없어실제의느낌을전달할방법이없다.이렇게설명해보자.서울여의도의63빌딩밑에가서그건물을올려다본적이있는가?어지러움을넘어아찔함이느껴질뿐이다.63빌딩의수직표고차는264m다.그렇다면엘캡은?63빌딩네채를수직으로쌓아놓은형국이다.

맙소사,인간이저기를올라갈수있다고?엘캡을처음봤을때내가내뱉은탄식이다.엘캡에서도가장날카로운바위사면을‘노즈’(Nose)라고부른다.이엘캡의노즈를처음올라거벽등반의시대를활짝열어젖힌사람이바로워렌하딩(1924~2002)이다.

거벽등반이라는용어에대해서는약간의부연설명이필요할듯하다.거벽등반의원어는영어의‘BigWallClimbing’이다.말그대로‘거대한벽’에오르는등반인데,암벽등반의한갈래이면서동시에그것의본래패러다임을훌쩍뛰어넘는전혀새로운개념이다.

실제로기껏해야인수봉이나선인봉에매달려왔던내게엘캡의자태는하나의충격이었다.약간의과장을허락한다면,그것은‘전혀새로운장르’에속한다.기존의암벽등반에서쓰이던기술과장비로거벽에도전한다면백전백패를면할수없다.

거벽등반가들은수직혹은오버행의바위절벽에매달려몇날몇일동안등반을계속한다.대표적인거벽등반장비가‘포터렛지’인데,우리말로는‘허공침대’라고나옮겨야될듯하다.거벽등반가는수직의절벽에이허공침대를매달아놓잠을잔다.그이전에는상상할수도없었던등반방식이다.

워렌하딩은1924년미국캘리포니아의오크랜드에서태어났다.그는공군비행기정비공으로2차세계대전을치룬다음측량부문건설기사로일하다어느날불의의교통사고를당한다.오른쪽다리가부러져더이상건설현장에머무를수없게된그는우연히요세미테국립공원에들렀다가‘운명의바위’와마주친다.바로엘캐피탄이다.

당시그바위절벽에오를수있다고생각한인간은단한명도없었다.하지만하딩은엉뚱한결심을한다.“내가저바위절벽에올라보겠어!”그의엘캡등반은1957년에시작된다.수직의바위절벽에피톤을때려박으며점차고도를높여가는원시적인형태였다.

이등반에는무려18개월이소요된다.그리고마침내1958년11월12일,그는마지막12일동안을바위절벽에매달린채등반을계속한결과,675개의피톤과125개의볼트를사용한끝에,엘캡의정상에올라서고야만다.현대거벽등반의시대가열리는역사적순간이다.

이때정상에올라선하딩의제1성이몹시도인상적이다.“마지막볼트를설치하고정상에올라섰을때,내가엘캡을정복했는지엘캡이나를정복했는지확신할수가없었다.지금생각해보면엘캡이당시의나보다훨씬나은상태였던것같다.”그는자신이오른코스를‘노즈’라고명명했다.

미국은역사와문화가천박한나라다.하지만이천박한신생공화국도역사에기여한바가있다.현대미술사에서팝아트가해낸역할,현대음악사에서재즈가해낸역할,바로그런역할을해낸것이미국의거벽등반이다.그리고거벽등반의개척자들중에서도마땅히굵은글씨로표기되어야할이름이워렌하딩이다.

그는또한미국히피문화의등반사적대변인으로서신랄한가치전복적발언들을일삼아왔다.전세계등반계의스포트라이트를한몸에받았던워렌은언제나심드렁한목소리로이렇게내뱉곤했다.“등반?그런건미친놈들이나하는짓이죠.아무런가치도없고의미도없어요.마치우리들의인생처럼.”

▲볼트남용으로’요세미테의무법자’별명도

요세미테는전세계암벽등반가들의메카다.널리알려져있는등반루트만도1,000개를훌쩍넘는다.워렌하딩은그중에서도가장격렬하고위험한루트30여개를개척하여스스로그루트명을지었다.‘노즈’‘월오브더얼리모닝라이트’‘이스트버트레스오브미들캐시드럴’‘로스트애로우다이렉트’‘하프돔남벽’등이그의작품이다.하지만그는볼트의지나친남용으로자연을많이훼손했다하여‘요세미테의무법자’라는불명예스러운별명도얻었다.

자유등반의옹호자인로열로빈스와벌인‘등반윤리논쟁’은오랫동안현대등반계의화두가되기도했다.워렌하딩은‘심각한등반’을맘껏비웃은독설가로도유명하다.그의유일한자서전‘다운워드바운드:암벽등반에대한미친가이드’(1975)는이른바요세미테타입등반가들의시니컬한교과서로널리읽힌다.“등반가의제1요건이요?어리석음입니다.죽을수도있는상황에서자신을고통에처하게하면서많은시간을보내기위해서는무엇보다도어리석어야만하지요.”기성의가치관을통렬히비꼬는히피식농담이다.

그는심지어죽음과마주하고서도한없이가벼운태도를취했다.1968년갤런로웰과함께했던하프돔남벽초등당시그는절벽에매달려3일동안이나비에젖은채고립되어있었다.“너무지쳐죽음조차관심밖이었습니다.저는종교인도아니어서두려울것조차없었죠.저를공격할악마들이없었으니까.그냥단순히죽는거였어요.”

아이러니컬한것은당시조난소식을듣고부랴부랴구조대를만들어그를살려낸사람이바로평생의라이벌로열로빈스였다는사실이다.하지만‘현대등반의메피스토펠레스’는가까스로생환한다음제일먼저와인을홀짝이며그저“운이좋았네?”라며껄껄웃어댔을뿐이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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