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5급은다시5.0에서5.9까지10단계로나뉜다.암벽등반기술이없는사람도오를수있다면5.4이하로평가된다.틈새에손끼우기같이기본적인기술이요하는길이라면5.4에서5.7정도로평가한다.지속적인훈련과순간적인파워그리고안전장치의숙련된사용이요구된다면5.7에서5.9정도다.요컨대인간이오를수있는가장어려운바윗길의난이도를5.9라고표기하게된것이다.
하지만기록과한계는깨지기위해서존재하는법.어느날누군가가인간이도저히오를수없을것같은바위를가리키며그난이도를묻는다.되돌아올답변이란빤하다.“저기는오를수없어.”그가다시묻는다.“만약올라간다면?”그리고는그가코웃음치는사람들을비웃기라도하듯그바위에길을내고야만다면?등급체계에새로운패러다임을만들어내는수밖에없다.
바로5.10이다.세계적인암벽화회사로유명한‘파이브텐’이라는브랜드는그런뜻을가지고있다.5.10이란‘더이상오를수없는최고의경지’를뜻한다.우리말로옮기자면‘만점’(滿點)이라고나해야할듯하다.난이도가5.10을넘어서면등급체계는보다세분화한다.
5.10이라는난이도를다시a,b,c,d로나누는것이다.5.10급의난이도에서도가장어려운것은두말할나위도없이5.10d다.그렇다면이것이궁극의바윗길인가?그렇지않다.어느날또다른누군가가나타나5.10d로평가된바윗길보다훨씬더어려운바위에길을내고야만다.
그러면그길은5.11a로평가된다.그렇다면그다음은?또그다음은?현대등반의역사란어떤뜻에서곧‘난이도의한계를뛰어넘으려는시도의역사’라고할수있다.이역사의선두에서서끝없이기록을갱신해나갔던산악인이바로볼프강귈리히(1960-1992)였다.
1960년독일의팔츠에서태어난그가암벽등반의세계에빠져들기시작한것은14세때였다.독일인최초의에베레스트등정자이자미국요세미테에서거벽등반기술을수입해온라인하르트칼밑에서등반기술과철학을익힌그는에어랑켄대학에서스포츠과학을전공하며자신만의등반스타일을만들어나가기시작한다.
볼프강귈리히는근력을키우기위한섬세하고도지독한트레이닝,자일이나파트너없이저혼자절벽과승부하는놀라운담력,실내암장에서나가능할법한기술을극한상황의고산에서도적용시키는겁없는도전등으로현대등반사에독보적인족적을남겼다.
귈리히는최고의난이도를자랑한다는바위들을찾아전세계를순례한떠돌이철새였다.그가미국캘리포니아타호레이크에있는‘그랜드일류전’(5.13c)에붙어벌인8일간의사투는전세계바위꾼들사이에하나의신화다.
기어코세계에서두번째로그바위에오른귈리히는너무탈진한나머지이후30시간동안아무것도먹지못하고잠조차잘수없었다고한다.미국요세미테의‘세퍼릿리앨러티’(5.11d)를하드프리솔로로돌파한것은전무후무한기록이다.
그는파트너도자일도없이수직200m의바위절벽을기어오른다음천정처럼가로막힌6m의바위를거꾸로매달려통과한뒤그위로사뿐히올라탔다.널리알려진그의별명‘크랙의발레리나’가탄생한것은이기념비적등반을통해서였다.
전세계5.13급의바윗길을모두섭렵한그는이제전인미답의경지를개척하기시작한다.바로5.14급의바윗길이다.귈리히의최고걸작으로꼽히는것은독일프랑켄유라의‘액션다이렉트’다.145도로기울어져있는길이12m의오버행이다.
그는무려11일동안이나이바위에매달려연구와훈련을거듭한끝에마침내새길을뚫고야만다.오직손가락끝만으로허공에매달린채체공시간을최대한줄이는방법으로바삐몸을놀려이코스를통과하는데걸린시간은정확히7초였다.인류최초의5.14d급난이도의바윗길이탄생하는역사적순간이다.
그는자신이상상해내고훈련했으며,끝내실천에옮긴최첨단암벽등반기술을눈과얼음으로뒤덮힌고산거벽등반에도적용시켰다.귈리히가카라코람의네임리스타워와파타고니아의파이네중앙탑에서도5.12급의고난도등반을거침없이해치웠을때세계등반계는벌린입을다물지못했다.
도대체이끝없는난이도갱신의질주는언제쯤잦아들것인가?사람들은모두언젠가는그가‘인간이오를수없는’바위에오르다가추락사할것이라고수근거렸다.하지만이익살맞은독일청년은전혀예상치못했던방식으로자신의삶을바삐마감했다.1992년8월31일,볼프강귈리히는독일의무한질주고속도로아우토반에서한껏엑셀을밟아대다가이세상을떠났다.서른두해동안타오른불꽃같은삶이었다.
▲현대암벽등반의다양한스타일
추락·휴식여부따라4종류…난이도못지않게중요시
현대암벽등반에서난이도못지않게중시하는것은스타일,즉‘어떤방식으로올랐느냐’이다.루트에대한사전지식없이등반을시작하여첫번째시도에서단한번도추락하지않고자유등반으로오르는것을‘온사이트’(onsight)라고한다.이에비해한번이상경험해본루트를추락하지않고오르는것을‘레드포인트’(redpoint)라고한다.등반시도중추락했을때내려와휴식을취한뒤다시오르는것은‘요요잉’(yoyoing)이며,추락한지점에매달려있다가다시오르는것은‘행도깅’(hangdogging)이다.
볼프강귈리히처럼첨단의암벽등반가들은이등반스타일을매우엄격하게따진다.1979년그가뉴욕근교샤왕겅크의‘수퍼크랙’(5.12c)을오른것은3일간의요요잉을통해서였다.1987년에그가개척한미국조슈아트리의‘문빔크랙’(5.13b)과독일프랑켄유라의‘월스트리트’(세계최초의5.14b)는레드포인트방식에의한등반이었다.1988년그가참가했던독일트랑고원정대의네임리스타워유고루트의돌파방식역시레드포인트였다.
그가선호했던‘자유등반’이란또다른패러다임에속한다.안전장비를설치하되,오직추락시에만그것에의탁할뿐,등반시에는전혀그것을이용하지않는등반방식을말한다.간단히말해확보물을잡거나딛지않을뿐더러,그것에매달려휴식을취하는일도용납하지않는등반스타일이다.여기서더나아가‘단독자유등반’이란어떠한안전장비도사용하지않고파트너도없이혼자오르는스타일이다.이경우추락은곧사망과직결될수밖에없다.볼프강귈리히는요세미테최난코스들중의하나인‘세퍼릿리앨리티’(5.11d)를바로이‘단독자유등반’스타일로돌파해냈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