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피니즘의 선구자, 주스토 제르바수티 *-

‘영혼의자유’찾아나선알피니즘의선구자,주스토제르바수티

변호사출신伊엘리트산악인몬테시에라·마터호른등올라
"나의즐거움을위해등반할뿐"1930년대대표적알피니스트

알프스최고봉몽블랑의북쪽가장자리에위치한몽블랑뒤타귈(4,248m).바위벽과빙벽코스가많아알피니스트들로부터큰인기를얻고있다.

이탈리아의변호사주스토제르바수티는1930년대알프스북벽시대를선도한지적인산악인이었다.

등반사를연구하다보면이따금씩아주곤혹스러운질문들과마주칠때가있다.내가느낀최초의의문은어째서영국이알피니즘의종주국이되었는가라는것이다.영국은알프스가자리잡고있는유럽대륙으로부터동떨어져있는작은섬나라에불과하다.잉글랜드의최고봉이라는스카펠의해발고도는978m에불과하다.

섬전체로범위를넓혀스코틀랜드의산들을들여다봐도사정은별반다르지않다.최고봉인벤네비스의해발고도는1,334m이며,그나마두루뭉실한앉음새를취하고있어밋밋하기그지없다.높이에있어서나험난함에있어서나우리나라의덕유산(1,614m)발끝에도미치지못한다.

질문은형이상학적이로되답변은뜻밖에도경제적토대에서나온다.영국이알피니즘의선두에설수있었던것은간단히말하여산업혁명덕분이다.산업혁명의결과로막대한부를축적할수있었던19세기의영국은당대의최강국이었다.부(富)는여가(餘暇)를낳는다.그리고알피니즘은여가의산물이다.

상기해보라.산에오른다는것은돈도밥도안되는‘쓸데없는짓’이다.먹고살기에바쁜사람들이산에오르려애쓸리가없다.먹고살만할뿐더러시간도남아도니까산에오르기시작한것이다.그런뜻에서알피니즘은‘부르주아의놀이’라고할수있다.

그러므로등반사의초창기에자신의이름을아로새긴산악인들의대부분이부르주아계급출신이라는사실은자연스러운결과다.이들은자신의출신계급과전문직업을바탕으로확고한경제적토대를마련한다음여가를온통등반에쏟아부었다.그런뜻에서이들은모두순수한의미의‘아마추어’였다고볼수있다(당시의‘전문산악인’이란가이드를직업으로삼은소수의사람들을지칭하는용어였을뿐이다).

19세기후반과20세기초반에걸쳐알피니즘을정착시키고발전시킨사람들은대부분부르주아계급출신으로서별개의전문직을가지고있는아마추어산악인들이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이러한사정은영국이외의여타유럽선진국들에서도마찬가지였다.이탈리아의변호사로서1930년대알피니즘의최전방을지켰던주스토제르바수티(1909~1946)도그런인물들중의한명이다.

제르바수티는이탈리아의프레올레에서태어나토리노대학에서법률과정치학을전공한당대의엘리트였다.일찌감치변호사자격증을획득하여경제적안정을이루었지만그에게있어서바이블이란성경도법전도아닌머메리였다.제르바수티는언제나자신이가장존경했던산악인앨버트머메리의유고집‘알프스에서카프카즈로’를가슴에품고그가걸어갔던길을완성하고싶어했다.

그의본격적인등반은22세가되던해인1931년에시작되었는데첫번째대상이되었던산이머메리가초등했던몬테시에라였다고한다.제르바수티는“위대한선배의숨결을함께호흡할수있어서더없이행복했던등반이었다”고회고한다.1930년대는알프스의북벽등반기이다.

당시제르바수티는이탈리아를대표하는산악인으로서프랑스나독일의산악인들과‘선의의경쟁’을벌이면서한시대를풍미하였다.그는매우지적이며온화한성품의소유자로알려져있지만등반스타일만은첨단을고집하여언제나새로운방식으로새로운길을찾아나섰다.

1932년만해도동계등반이보편화되자않았던시절이다.그는한겨울에마터호른에도전하여목숨을건비박을감행한끝에결국회른리능선을통하여정상에오른다.현재의기준에서보면형편없었다고밖에는표현할길이없는당시의장비와기술수준을염두에두면놀라운시도였다.

1932년의치베타북벽에서는끔찍한사고가있었다.그의동행인이었던빅토르슈바이거가근육마비와탈진에이어광란상태로빠져든것이다.제르바수티는더이상의등반을포기하고슈바이거를자일로꽁꽁묶어놓은후바졸러산장까지뛰어내려가구조대를이끌고올라왔다.

가까스로구조를끝낸다음산아래호텔로돌아왔을때는새벽2시가넘어있었다.그런데뜻밖에도호텔에서는그의투숙자체를거절했다.제르바수티는그제서야깨달았다.필사의구조활동을벌이는동안그의얼굴과온몸이피투성이로변해있었던것이다.

그는그랑드조라스북벽의가장유력한도전자들중의한명이었다.결국리카르도카신에게초등의영광을넘겨주고제2등을기록했지만유럽의산악계는초등팀보다6시간을줄여재등에성공한그에게아낌없는찬사를보냈다.하지만그는이정도로는성에차지않는다는듯연달아같은산의동벽에도전하여이롱델릿지를통한초등의기록을남긴다.

제르바수티의가장인상적인등반은프랑스의산악인뤼시앙드비와함께한오랑(3,564m)북벽의초등이다.그는안개가끼고우박과벼락이쏟아지는최악의조건하에서순수한바위의높이만1,100m가넘는이거벽을기어코돌파해냈다.이후뤼시앙드비는제르바수티의가장믿음직한동반자가되었다.하지만시대는이미제2차세계대전의광풍속으로휩쓸려들어가던때였다.

1939년이되자이탈리아산악회는그에게프랑스산악인과의파트너십을끊으라고종용했다.당대의엘리트지성인으로존경받았던제르바수티는그러나단호하게거절했다.그는이후‘국경을넘어서는산악인들의연대’를상징하는유명한발언을남겼다.“나는국가의위신을위하여등반하는것이아니라나자신의즐거움을위하여등반할뿐이다.”

몽블랑뒤타궐새루트찾다추락사
현재’제르바수티필라’로불려

제르바수티가추락사한몽블랑뒤타귈의’제르바수티필라’를한산악인이오르고있다.

주스토제르바수티는제2차세계대전이끝나자마자몽블랑뒤타귈에새로운루트를개척하기위하여도전했다.그는자신만의루트를개척하여중앙필라로접어들었으나악천후가닥쳐와하강을결정한다.하지만자일두가닥을모아쥐지않고한가닥만잡는어처구니없는실수를저질러100m아래로추락하여사망한다.

이루트는현재‘제르바수티필라’라고불린다.향년37세.평생을알프스의험난한벽과얼음위에서보낸우아하고행복한삶이었다.사망한이듬해인1947년,그의유고집‘스칼라테넬레알피’가출간되었다.제르바수티특유의따뜻한성품과지적인사유가녹아들어있는아름다운책이다.

그는획일화한국가주의와폭력적인도그마에맞섰던개인주의를옹호하고자했던자유사상가의풍모를지닌사람이었다.알피니즘의본질에대해서도그는열려있는태도를취했다.“알피니즘을정의하려는나의기도가헛된결말밖에남기지못한것은당연한일이다.객관적인알피니즘자체가존재하지않기때문이다.”

그렇다면제르바수티는‘개인적으로’산에오르려는인간의욕망을어떻게정의하였을까?“등반은속박과한계에저항하여영혼의자유를확인하고자하는욕망이다.또한그것은육체적건강과정신적에너지,우아한행동스타일,계산된무모함이주는쾌감일수도있다.

그것은또강렬한탐미적경험,미묘한감성,미지의세계를탐색하려는인간의결코충족되지않는욕망에대한탐구인지도모른다.아마도이모든것을합친것이그욕망의가장훌륭한정의가될것이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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