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스펀지’(동아일보사)는파편화된단편지식을다룬다.누구는그것을잡학(雜學)이라표현하면서이잡학이부모와자식사이의단절된인간관계를뚫는커뮤니케이션수단이된다고했다.오늘날은휴대전화등온통1인미디어로만소통이이뤄지는바람에가족구성원간의진솔한대화를기대하기어렵다.
이러한사회적틈새를비집고‘영어덜트(youngadult)’소설이뜨고있다.영어덜트는주로10대후반에서20대초반에이르는독자를대상으로하는데,영어덜트를타깃으로하는카멜레옹이라는출판브랜드도등장했다.‘완득이’(김려령지음)는창비가펴내고있는‘청소년문학’시리즈의여덟번째책이다.
하지만출판사는처음부터성인용양장본을따로내놓았다.열일곱살고등학생이주인공인이소설은초등학교고학년부터성인까지를겨냥한것인데,지금영어덜트들이앓고있는성장통의의미를함께고민해보라고압박하는셈이다.그압박은어느정도먹혀드는것같다.청소년소설은팔리지않는다는것이철칙처럼여겨지는세상에서한달도안돼4만부나팔렸다고한다.특히청소년용보다성인용이몇배나더팔리고있다는소식이다.
이땅의영어덜트가지닌가장큰고민은대학입시와취업이다.20대백수가109만명이나되고,그나마요행으로취업을했다해도대부분‘88만원세대’라는달갑지않은닉네임을갖게된다.또엘리트교육의강화로입시에대한집착은더욱심해졌다.최근중앙정부는‘0교시’와‘야자(야간자율학습)’를허용하겠다며지방의교육위원회에권한을위임했지만,정작위임받은곳에선허용을거부하는바람에자식을둔부모는갈팡질팡하지않을수없다.
이런현실에서공부에는별관심이없고실존적문제로방황하는고3아이를둔엄마라면?최고의인기작가공지영은자신의경험을토대로매주화요일,철없는딸위녕에게편지를썼다.그리고그편지는2년이지나‘네가어떤삶을살든나는너를응원할것이다’(오픈하우스)란책으로나왔다.작가의장편소설‘즐거운나의집’(푸른숲)에등장하는주인공이름도위녕이다.
소설속의주인공은허구적인인물로볼수있지만,이편지의대상이된인물은실제작가의딸이다.그리고그딸은지금이땅에서가장외롭고힘든세월을보내고있는보통명사로서의딸이다.작가는편지마다한권의책을화두로삼는다.작가는딸과자신의사이에빗줄기같은창살이쳐져있다고느끼지만다행히책을좋아한다는공통점이있다.
작가인엄마는인생의다른많은것들이그렇듯,가끔좋은책의어떤구절에서인생이방향을트는소리를듣곤한다.그런엄마가마치감전된것처럼마음이찡했던책의구절을편지에인용하며삶의진정한가치에대한충고를일일이늘어놓는다.엄마는그것을딸의어린시절운동회에서목이터져라외쳤던응원이라생각한다.
엄마는나약하다.첫편지에서같이수영을하겠다고한결심은수영복이없어서,너무울어기운이없어서등온갖핑계를대며마지막까지지켜지지않는다.마지막에는진짜수영장에가긴하지만수영장이대형슈퍼마켓으로바뀌어결국실천하지못한다.그러면서도딸에게오늘할일을내일로미루지말라는충고는빼먹지않는다.
우리에겐아직남은오늘이있고또다른수영장이있다는이유를대며.작가는딸에게줄곧매순간시간의주인이되라고말한다.딸이선의와긍지를가지고있다면궁극적으로너를아프게할사람은아무도없으며성적이나성격,체중이어떻든딸은이시간의주인이고우주에서가장귀한생명(사람)이라는설명과함께.엄마는힘들어하는딸이지금이시기를좀잘못넘겨도괜찮다는생각을한다.아직젊고많은기회가있으니까.
딸과엄마가서로에게바라는소망은수없이많지만희망은단한가지다.그건서로사랑하는것이다.달리말하면서로존중하고자유롭게해주는것이다.이것은인류가누려온매우위대한지혜다.하지만그런지혜는무척단순하다.그래서엄마는딸에게내가나이들어얻은선물이라면’위대한것은단순하다는사실을깨달은것이라고자신있게말한다.’
나는이글을한무가지에연재될때처음읽었다.그때자신의상처때문에딸이상처받지않기를바라는엄마의마음을느꼈지만,자기개인사를또털어놓는데대한안타까움이없지않았다.그러나요즘나도한기자가쓴아버지에대한책으로나의과거사를간접적으로털어놓고는과묵한막내딸의눈치를살피던처지였다.그리고나도모르게애써미뤄놓고있던책을찾아읽었다.
그래서내린결론은딸이듣지못하는응원을나도목청껏외치기로했다.봄날의가뭄을이기려고깊이뿌리내린벼들이강한태풍으로부터자신을지키는법이니까.나또한빗방울처럼혼자였다는생각을하며젊은날을지냈지만,결국나를키운것은눈에보이지않은수많은이들의응원이었음을깨달았으니말이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공지영지음/오픈하우스펴냄/256쪽/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