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성공은 즐거움에서” 로열 로빈스(1935~) *-


"모든성공은즐거움에서"로열로빈스(1935~)

거대한수직벽오르며미국식등반기술창안…자신이름딴의류기업유명브랜드로성장

로열로빈스는요세미티에서초등경쟁이한창이던1950,60년대즉’요세미티황금기’의대표적산악인이다.그가오른하프돔은둥근공을반으로뚝자른듯한거대한암벽으로,요세미티의상징이다.

로열로빈스가암벽등반도중바위에기대잠시휴식을취하고있다.

“한소년이맨발로나무에기어오른다.오직순수한즐거움때문이다.다른이유는중요하지않다.흥미롭다.새롭다.물론다소의위험이뒤따른다.하지만이전에는결코가보지못했던곳으로다가가는짜릿한모험이다.세월이흐르면그아이는거대한바위로갈것이다.이제는게임이복잡해진다.암벽화와자일그리고하켄이필요하다.하지만여전히모험이라는요소는똑같다.맨발로나무에오르던시절의흥분과즐거움을여전히느끼게되는것이다.”

1970년대에출간된이후현재에이르기까지거의30여년동안이나전세계암벽등반가들이교과서처럼읽어온‘기초암벽기술’(1971)의한구절이다.이책은이태후에나온‘진보된암벽기술’(1973)과더불어이미‘현대의고전’이되었다.단순히암벽등반에필요한기술들을열거해놓았기때문이아니다.이책은암벽등반의태생과지향점그리고철학과윤리를극히단순하나분명한어조로만천하에공표했다.

저자인로열로빈스(71)는말한다.“그것은소년이나무에오르는것과같다.즐거운놀이일뿐,그이상도그이하도아니다.하지만이놀이에도지켜야할윤리가있다.”1935년미국의웨스트버지니아에서태어난로빈스는10대후반부터암벽등반에심취했다.그는18세때미국최초의5.9급루트로꼽히는타퀴즈록의‘오픈북’을선등하여주변사람들을놀라게했다.

로빈스에게있어서‘가장즐거운놀이터’는미국캘리포니아의요세미티국립공원이었다.그는거벽등반기술을스스로고안해내고직접적용시키는일에자신의청춘을다바쳤다.지식인냄새를물씬풍기는두터운뿔테안경을쓰고자신이올라야할바위를골똘히연구하고있는그의모습은한시대의아이콘이되었다.사람들은그를‘거벽의철학자’라고불렀다.

로빈스는‘요세미티등반의황금기’를온몸으로구현한거벽등반가그룹의대표주자였다.1957년의하프돔북서벽초등,1961년살라테월초등,1964년엘캐피탄노스아메리칸월초등,1968년엘캐피탄단독초등등은등반사에길이남을영광의기록들이다.그는또한요세미티식인공등반기술을알프스의거벽에도여지없이적용시켜유럽산악인들의입을쩍벌려놓은장본인이다.

그가1962년에알프스프티드뤼서벽에다이렉트루트를뚫고다시3년후에수퍼다이렉트루트까지만들었을때‘늙은대륙’유럽의자존심에는회복할수없는금이갔다.천박한신생공화국의히피들이몰려와유럽에서는듣도보도못한등반기술을구사하며알프스의거벽을초등했으니경악할만도하다.

로열로빈스의등반경력은이렇듯화려하다.전통적으로미국인들을얕잡아보는유럽의등반사에서도결코지울수없는이름이로열로빈스다.하지만뜻밖에도그는자신이등반가로서성공하지못했다고자평한다.“저는최고의등반가가되기를원했지만결코그렇지못했습니다.”내가그를좋아하는대목이다.“저는제능력의최고점에도달했을지도모릅니다.하지만그것이제가원했던것을얻었다는것을의미하지는않습니다.

제주변에는언제나저보다뛰어난등반가들이많았습니다.그들은심지어제가상상도할수없었던등반들을멋지게해치웠습니다.”그는겸손하다기보다는냉철한사람이다.균형잡힌시각과열린마음을가졌다.그는‘최고의등반가’가되려고했던자신의목표가‘잘못되었다’고서슴없이말한다.“그런목표는자신을불만에빠뜨립니다.

보다훌륭한목표는‘우정’과‘즐거움’이죠.이제목표를그렇게수정하니삶이훨씬더‘즐길만한어떤것’으로다가옵니다.”그는심지어자신이이룬요세미테의초등기록들조차도대수롭지않게평가한다.“운이좋았을뿐입니다.당시에는대단한등반능력이없어도초등할수있는바위들이지천에널려있었으니까요.”

40대에이미세계적인명성을얻었던그는이후히피와다름없었던예전의생활방식을버리고자신의아내와더불어새로운사업을시작한다.아웃도어의류를전문적으로생산하는업체인데,회사의브랜드자체가‘로열로빈스’다.처음에는구멍가게수준이었지만지금은연간매출액이천만달러를훌쩍넘어서는견실한기업이되었다.그가귀띔해주는사업의성공비결조차단순하기그지없다.“목표에너무집착하지않는거죠.중요한것은잘할수있는일을즐겁게하는겁니다.업적이란집착하지않을때더효과적으로이루어지는경향이있어요.”

로빈스는50대이후등반보다는카약을즐긴다.그이유가지나치게솔직하면서도명쾌하다.“카약에는엄청난기술을소유하지않고도최초로행할수있는영역들이많이남아있습니다.마치60년대의제가요세미티를개척할때와비슷한상황이죠.게다가육체적으로도좀더수월하고.”로열로빈스를생각하면언제나맨발로나무에오르는개구쟁이소년이떠오른다.중요한것은업적이아니라즐거움이다.그는남들이가지않은길을개척하면서더없는즐거움을만끽했다.그가세상에남긴독보적인업적과사업적인성공은다만그즐거운여행의부산물일뿐이다.산악문학작가

"볼트남발은등반윤리훼손"워렌하딩과대립
요세미티등반의황금기에는두명의거인이있다.바로워렌하딩과로열로빈스다.두사람은등반스타일과성격에서현격한차이를보인다.워렌하딩은거의불가능에가까운거벽에볼트를때려박으며올랐다.로열로빈스는그것이자연은물론이거니와등반윤리자체를훼손하는파렴치한짓이라고여겼다.그는바위에때려박는볼트대신바위틈새에끼워넣는너트의사용을적극옹호했다.

워렌하딩은1970년,300개의볼트를때려박으며요세미티의’다운월'(일명’월오브더얼리모닝라이트’)을초등했다.로열로빈스는그직후같은루트를오르며워렌하딩이박아놓은볼트들을몽땅제거해버렸다.볼트는자연을훼손할뿐아니라등반의즐거움을감소시키고루트의가치자체를하락시킨다는것이다.하지만루트의상단부에서는볼트를제거하지않았다.그것이난이도때문이었는지태도의변화때문이었는지는분명치않다.

이로써극적으로촉발된등반윤리논쟁은1970년대세계산악계최대의화두로떠올랐다.여론은로열로빈스편으로기울었지만워렌하딩은끝까지고개를숙이지않았다.훗날로열로빈스는이문제에대해서도원숙한태도를보였다."다운월에서하딩의볼트를제거하지말았어야합니다.제가잘못생각했던거지요.하딩의등반철학에동조하는사람들은그들의길을가고,저의등반철학에동조하는사람들은우리의길을가면되는거지요.논쟁을벌이고공격적인행동을하는대신초연했어야합니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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