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과 소멸의 파노라마 ‘지오바노 세간티니’ *-

생성과소멸의파노라마지오바노세간티니'(1858~1899)

자화상,34X24,1893

-필생의3부작’생명’-

-필생의3부작’자연’-

-필생의3부작’죽음’-

내가운영하는‘심산스쿨’에는강사실겸응접실로사용하는자그마한공간이있다.이곳에있는커다란1인용소파앞에는유리탁자가하나놓여있는데,그유리밑에는두권의두툼한도록들이비치돼있다.홀로이곳에앉게되는사람들이심심풀이로뒤적거려볼수있도록준비해둔것이다.

영화계통의친구들은으레‘헬무트뉴튼작품집’을집어든다.광고사진을방불케하는그의누드작품들이훌륭한눈요깃거리가되어주는까닭이다.반면산계통의친구들은예외없이‘지오바노세간티니작품집’을뒤적인다.하지만잠시뿐이다.그들이좋아하는알프스가단지배경으로만등장하기때문이다.

이따금씩미술을전공하는친구들이찾아와도사정은별반다르지않다.그들은처음접하는화가의작품세계에호기심을느껴잠시힐끗거리다가는이내헬무트뉴튼에게로눈길을돌린다.이탈리아북부아르코의작은마을에서태어나스위스알프스의엥가딘에서삶을마친지오바노세간티니는그렇게모호한경계위에서있는화가다.

일본과유럽등지에서는일찍이‘알프스의화가’로널리알려져있지만우리나라에서는산악인과미술인들모두에게여전히낯선존재이다.산악인들이보기엔‘산밑마을사람들을그린화가’에불과하고,미술인들이보기엔‘당대의주류로부터멀리떨어져있는변방의화가’일따름인것이다.

나는아주우연한계기로세간티니라는화가를알게됐다.오랜프랑스유학생활을마치고돌아온대학동기생이“너알프스좋아하지?”하며툭던진세장의그림엽서들.훗날알게된사실이지만그것이바로그유명한‘세간티니3부작’이었다.웅장한산자락밑에서태어나고,살고,죽는인간의일생을단세컷으로표현해낸것이었는데,무어라한마디로표현하기힘든숙명적인슬픔을담담하게증언하고있는작품이다.

그엽서들을책상앞에붙여놓고습관처럼들여다본까닭이었을까?어느사이엔가서서히그의작품세계속으로빠져들게되었고그결과지금은이태리어판,독일어판,영어판,일어판등그의도록들대부분을보유한열혈팬이돼버렸다.세간티니는무척불우했던유년시절과청년시절을보냈다.

가난한집안에서태어나굶기를밥먹듯했으며,제대로된학교교육을받아본적도없다.그의아버지가‘아메리칸드림’에홀려미국으로돈을벌러떠나면서세간티니를밀라노의한친척집에맡겼는데,그곳에얹혀살기가너무괴로워결국가출한이후소년원을제집처럼드나드는삶이었다.

10대후반의이른나이에결혼을했지만남의집돼지우리를돌보며벌어오는수입으로는가족의입에풀칠하기도버거웠다.엎친데덮친격으로군대에끌려가게되자그는‘식구들을먹여살리기위해’탈영을감행했고이후‘도망자의삶’을살게된다.

이렇듯세상끝으로쫓겨난그가가족들을데리고정착한곳이바로스위스알프스의산간오지마을이었다.세간티니에게고되지만안정된삶을제공한곳은다름아닌알프스였다.그에게있어서의산이란생존경쟁과범죄와전쟁의참화등세상의그모든피곤한삶으로부터자신을지켜낼수있는안전한피난처를의미했는지도모른다.

그는남은생을이곳에머물면서쉴새없이그림을그렸다.가난한목동과땔감을해오는여인과이름모를야생초들이그의화폭을채웠다.햇살따스한여름의노곤함과모든생명체들을얼려버린겨울의적막감이그의그림의주제였다.그리고이모든형상들의뒤편에는신록의알프스와만년설의알프스가언제나고정된배경처럼펼쳐져있었다.

세간티니가등반을즐겼다는기록은찾아볼수없다.몇장남아있지않은기록사진들을살펴보면독수리사냥을위해자일을메고바위앞에서포즈를잡은모습이유일한등반관련사진일뿐이다.그의지속적인관심은인간과대자연,그리고신의섭리에집중돼있었다.

그는자신만의주제를자신만의화풍으로끝까지밀어붙인고독한화가였다.언젠가세간티니의작품집을유럽미술사에정통한미학자에게보여준적이있다.그는한참동안이나양미간을찌푸리고있더니이렇게답했다.“세간티니는당대의어느유파와도거리를두고있어.세간티니는세간티니일뿐이야.”세간티니는그죽음마저‘알프스의화가’다웠다.

해발3,000m에가까운고원지대에서그림에몰두하고있던어느날,목이말라서눈을녹여마셨는데,그만그것이맹장염으로번져두달후정상부근의목동용오두막에서숨을거둔것이다.세간티니는산을바라보는나의시각에적지않은영향을미쳤다.그는자신의모든작품들을통해이렇게증언하고있는듯하다.“등산보다는삶이중요하다.산보다는인간이먼저다.하지만인간도삶도대자연앞에서는한낱일시적인현상에불과하다.”

세간티니미술관에있는필생의3부작’생명-자연-죽음’
만년설배경으로…생성과소멸의파노라마

세간티니는생전보다사후에더높은평가를받은화가다.독창적인작품세계에대한재조명이이루어지면서그의집안역시융성하게되었는데,훗날그의손자는국제산악연맹(UIAA)의부회장직을역임하기도했다.세간티니의작품들은유럽의유수한미술관에널리퍼져있는데,그의대표작으로꼽히는‘생명-자연-죽음’3부작은현재생모리츠에있는‘세간티니미술관’에진열돼있다.

이3부작은그가사망하기직전의4년동안집중적으로제작됐는데,파노라마형식의거대한화폭에담겨있다.가장규모가큰‘자연’은가로가403cm,세로가235cm에달한다.첫번째작품인‘생명’은어린아이를안고있는어머니를그렸다.일찍이부모와헤어진세간티니는많은작품들속에서모성에대한그리움을표현하고있다.배경으로펼쳐져있는것은알프스의아름다운초원풍경이다.

두번째작품인‘자연’은어딘지모르게쓸쓸한느낌을준다.하루의일과를끝낸후소떼들을몰고돌아가는가족들의모습이몹시도고단해보인다.배경으로펼쳐진알프스의연봉들이장쾌하다.마지막작품인‘죽음’은온통눈으로뒤덮혀있다.아마도시신을운구하기위한것인듯달구지하나가놓여있는데조문객들의모습이담담한슬픔을표현한다.배경으로펼쳐진알프스의만년설들이냉랭하게느껴진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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