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링 테크닉’ 창시자 ‘월터 보나티’ *-

‘홀링테크닉’창시자’월터보나티’

52년만에밝혀진’울분의K2’…누구도믿을수없다
1954년伊’세계2위봉초등’열광"공격조는어린나를사지에남겼다"
보나티폭로후왕따…나홀로산행,최근동료고백으로진실밝혀져

이탈리아산악계후배들이보나티의업적을기리기위해설립한보나티산장.

월터보나티가세번의도전끝에초등한그랑카푸생.극한의상황을극복하며산에올랐을당시보나티는스물한살의젊은이였다.

보나티가알프스마터호른을혼자오르다바위에매달려휴식을취하고있다.

1954년은이탈리아산악계최고의해였다.그토록오랫동안염원해왔던세계제2위봉K2(8,611m)의초등에성공했기때문이다.제2차세계대전을일으킨전범으로낙인찍히고패전국으로서온갖치욕을감내해야만했던이탈리아의국민들에게이쾌거의소식은더할나위없는기쁨을선사했다.

그렇지않아도다혈질로유명한이탈리아인들이거의광란의도가니에빠져들었다는것은불문가지의사실이다.하지만단한사람의청년산악인만은깊은상처를받았고울분을가눌수없었다.현재세계등반사의거인으로기록되고있는월터보나티(76)이다.

1930년이탈리아의베르가모에서태어난보나티는19세에암벽등반을시작한이후놀라운급성장을거듭해일찍이주목받았던차세대유망주였다.그의이름을알프스전역에떨친것은흡사수도사들의고깔모자처럼생겼다하여‘그랑카푸생’(3,838m)이라불리우던해괴한바위봉우리의초등.보나티가세번에걸친극한도전끝에끝내이봉우리의정상에오른것이21세때의일이다.

그는2년후회계원이라는안정된직업을포기하고가이드자격증을획득하여자신의전생애를산에다건다.그리고는바로이듬해24세의최연소대원으로합류하게된것이바로1954년이탈리아K2원정대였다.1954년당시이탈리아정부가발표한공식성명서에는초등자들의이름이없다.다만“용감한이탈리아산악인들이세계최초로K2등정에성공했다”는식의애매한수사가있었을뿐이다.

혹자들은팀워크를높이평가한올바른자세라고칭송하기도했지만사실은어설픈미봉책이었다는지적도있다.원정대내부에서서로를비난하는추태가벌어졌던것이다.논쟁의핵심은최후의지원조였던보나티가임무를게을리하여자칫하면공격조원들이커다란위험에빠질뻔했다는것이다.보나티의항변은정반대였다.

자신은주어진임무를완수했으며오히려공격조들의이기주의때문에거의죽다살아났다는것이다.당시보나티에게주어졌던최후의임무는캠프8에있던산소통을캠프9의공격조들에게전달해주는것이었다.하지만약속된장소에도착해보니캠프9는이미더높은지대로옮겨진이후였다.공격조들은그에게“산소통을그곳에내려놓고내려가라”고했다.

보나티의주장에따르면“날이너무저물었으므로캠프9에서하룻밤자고내려갈수없느냐”고부탁했지만공격조들은냉정하게거절했다고한다.덕분에그는포터마디와더불어8,100m의노출사면에서‘죽음의비박’을감행해야만했다.이는아직까지도세계등반사상가장처참한비박들중의하나로기록된다.보나티는다행히무사했지만포터마디는열손가락을모두잘라내야하는끔찍한동상에걸리고말았다.

이튿날공격조두사람은정상등정에성공했다.하지만그들의거절로인해죽음의비박을감행해야만했던청년보나티가입을꾹다물고박수만을쳐댔을리가없다.그는공개적으로공격조를비난했다.하지만이미‘국민적영웅’이된원정대원들은오히려보나티를극렬히비난했다.“보나티가산소통을제대로전달해주지않아무산소등정을할수밖에없었고하마터면초등의영광을놓칠뻔했다.

그와포터를캠프9에서잘수없도록내쫓았다는것은사실무근이다.”보나티는이후이탈리아산악계에서‘기피인물’이되었다.무책임할뿐만아니라유언비어를날조하고다니는바라진아이정도로취급되었던것이다.보나티는오랜세월이흐른다음출간한그의자서전‘내인생의산들’(2001)에서당시이탈리아전국이K2초등의기쁨으로광란의도가니에빠져들때자신만은“피눈물을흘렸다”고술회한다.

그리고그는이를악물고결심한다.다시는국가적차원의대규모원정대에징발되어노예처럼당하지는않겠노라고했다.이후보나티는이탈리아가아니라전세계를대표하는산악인으로우뚝서게되었는데,그의가장위대한등반으로꼽히는55년의프티드뤼남서필라등반과65년의마터호른동계단독직등은모두혈혈단신의몸으로혼자서해치운것들이다.

현재전세계의산악인들중에서도54년의K2초등자들과당시원정대장의이름을기억하는사람은드물다.하지만월터보나티라는이름은등반의세계에무지한일반인들에게조차귀에익은이름이되었다.최근월터보나티에게반가운소식이하나날아들었다.당시의초등자인리노라체델리가만년의자서전‘정복의댓가:K2초등의참회록’(2006)을출간하였는데,이책속에당시의진실이낱낱이밝혀져있는것이다.결론부터말하자.당시청년보나티의주장은사실이었다.

그리고당시초등자와원정대장및이탈리아정부의주장은거짓이었다.또다른초등자였던아킬레콤파뇨니와자신은산소통을분명히제대로전달받았으며,무서운청년신예보나티에게초등의영광을뺏길까봐그를캠프9에받아들이지않았고,그결과보나티와마티를‘죽음의비박’이라는사지로몰아넣었다는것이다.당시의결정은추악했으되,52년이지난지금에라도진실을밝혀준라체델리의용기는아름답다.보나티도이제얼어붙었던마음을풀고당시의선배들을용서했으면좋겠다.

●’홀링테크닉’창시자보나티
세계가놀란한겨울단독등반…35세은퇴

월터보나티의최대업적들중의하나인55년의프티드뤼남서필라단독등반은당시까지의모든등반형태를뛰어넘는것이었다.그는5일동안홀로이벽에오르면서장비와식량을넣은커다란짐(홀링색)을끌어올리는전혀새로운기법을창시하였다.홀로확보를하며등반과하강을끝없이반복하는이런기법은약10년후미국의요세미티거벽등반자들에게전수되어‘홀링테크닉’이라명명되었고,현재에는전세계적으로널리통용된다.

당시보나티가오른남서필라는현재‘보나티필라’라고명명되어있다.65년은에드워드윔퍼에의해마터호른이초등된지꼭100주년이되는해이다.전세계산악계가기념해야만될해인데,보나티는그기념행사를저혼자기획하고실행에옮겨버렸다.세계등반사에굵은활자로아로새겨진이등반은그야말로경천동지할만한사건이다.한겨울에,거의수직에가까운등반루트를새롭게개척하며,아무도동반하지않고오로지혼자의힘으로오른것이다.

이‘마터호른등정100주년기념동계단독직등’(세계초등)을끝으로월터보나티는극한등반에서은퇴한다.만35세에은퇴를감행하다니그의성격답게‘쌈빡하다’고밖에는달리표현할말이없다.보나티는드물게행복한여생을보내는산악인이다.그는극한등반의세계와결별한이후전세계를방랑했다.여행과강연및집필은그의중요한생계수단이다.

이탈리아산악계의후배들이그를기려설립한‘보나티산장’은이탈리아알프스2.150m에위치해있는데,몽블랑환상(環狀)산행인‘투르드몽블랑’을할때반드시들르게되는멋진산장이다.팔순을바라보는그는현재아내로사나포베스타(왕년의유명여배우)와함께이탈리아밀라노에서살고있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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