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느데스티벨(46)은그잡지의표지를장식하고있었다.잡지안에접힌상태로끼워있던대형포스터의주인공역시그녀였다.물론거대한암벽에붙어있는멋진모습이었지만나는그녀가실제의산악인이리라고는상상조차하지못했다.눈이부실만큼빼어난미모와완벽한몸매를갖춘그녀의사진을보며나는생각했다.정말프랑스는하다못해산악잡지에서조차모델들만큼은끝내주는여자를쓰는군.
카트린느데스티벨은한동안내가그리던‘꿈속의연인’이었다.세월이흐르면서그녀가‘모델’이아니라‘산악인’이라는것을알게되었지만사정은그다지달라지지않았다.바위에매달린그녀의모습을담은각종사진들은언제나내책상앞의액자와집필실의유리창과컴퓨터의바탕화면을독차지하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은나만의독특한취향만도아니었다.1980년대후반전세계의등반장비점에서는언제나그녀의모습을담은포스터들을볼수있었다.여기서의문이생긴다.프랑스인들이‘알프스의요정’이라고칭송하는절세의미인카트린느데스티벨.그녀는과연등반을잘해서유명해진걸까아니면미인이기때문에사랑받고있는것일까?
프랑스에는알제리에서태어난스포츠스타가두명있다.하나는축구선수지네딘지단이고,다른하나는클라이머카트린느데스티벨이다.카트린느가클라이밍에몰입하게된것은파리근교의퐁텐블로숲에서였다.다복한5남매를둔그의부모들은휴일마다이곳으로가족소풍을나오곤했다.
숲안을가득채우고있는크고작은볼더링(bouldering)바위들이어린소녀의영혼을송두리째매혹시켜버렸던것이다.그녀는열살도되기전에바위에매달려깔깔댔고,열네살이되었을때에는또래의그어떤사내아이들보다뛰어난볼더링솜씨를뽐내게되었다.
볼더링을즐기던소녀는보다높은바위를찾아나서기마련이다.카트린느는18살이되기전에프랑스의베르동,이태리의돌로미티,벨기에의프라일등지에널려있는고전적인암벽루트들을대부분마스터했다.19살때는영국웨일즈의전설적인루트들인보이드와시타델등을올랐는데이는당시까지그어떤영국의여성클라이머들도선등하지못했던곳이다.카트린느의등반은보수적인영국남성산악인들의고정관념에커다란충격을주었다.
여지껏그들이‘훌륭한여성클라이머’라고말할때그것은곧‘징징대지않고남자의뒤를따라올수있는여자’정도를의미했던것이다.하지만카트린느는보란듯이저홀로그무시무시한루트를선등해서올라갔다.그것도시종일관생글생글미소를지으며.“즐겁잖아요?무엇보다도재미가있고.”언제나그렇게웃으며등반하느냐고누군가가묻자카트린느는그렇게대답했다.
“등반할때저는언제나어린시절의퐁텐블로숲을생각해요.너무행복했던시절이었죠.이제는볼더링바위가거벽이되고,제가어른이되었을뿐,달라진것은아무것도없어요.”카트린느가심지어여성산악인들로부터도시새움과질투의시선을받게된것은아마도이대목어딘가쯤일것이다.
놀라운등반능력,빼어난미모,완벽한몸매,거기다가매혹적인미소까지갖추었으니얄밉게보일만도하다.아울러광고와영화등각종영상매체에서그녀를섭외하기위하여앞다투어몰려든것도충분히이해할수있다.1986년이되자그녀는여성하키팀의물리치료사라는직업을버리고전업등반가로나선다.그리고이후3년동안세계전역의각종암벽대회에서숱한우승기록을세운다.
카트린느의아름다운모습이전세계의산악잡지들과각종포스터들을도배하다시피한것은이즈음이다.하지만1989년이되자그녀는돌연각종매스컴의카메라앞에서종적을감춘다.왜그랬을까?“어느날문득내가누군가하는생각이들었어요.나는없고,사람들이원하는‘이미지’만이존재하는듯한어떤상실감같은것에시달렸죠.나는내게주어진이미지너머로올라서고싶었어요.”
사람들이그녀에게원했던것은‘등반장비가잘어울리는예쁜여자모델’이었을지도모른다.카트린느는이제그들이원하는‘등반계의바비인형’으로남기를거부하기시작한것이다.
그녀의대변신에가장든든한지원군으로참여해준사람은미국의거벽등반가제프로우였다.그녀는제프로우와함께파키스탄트랑고의네임리스타워를자유등반으로올라이번에는전혀다른방식으로세상을놀라게했다.
1990년가을,그녀는일찍이월터보나티가5일간의사투끝에새길을냈던‘보나티필라’에단독으로도전한다.당시그녀가자유등반으로이루트를돌파해내는데걸린시간은정확히4시간20분이다.전세계의남성등반가들이입을쩍벌렸음을물론이다.하지만은근한비아냥혹은폄하도잇따랐다.
“35년전에개척된기존루트를속도등반으로올랐다는게뭐그리대단한가?”
이게무슨뜻인가?이제야비로소남성등반가들이그녀를‘대등한상대혹은적수’로인정하기시작했다는뜻이다.이제더이상바비인형이기를거부한카트린느는그러나여전히생글생글웃으며이렇게맞받아쳤다.“나도더이상카피본으로남고싶지는않아요.내자신이원본이라는것을보여드리죠.나는프티드뤼에나만의루트를개척해서올라갈겁니다.”
홀로프티드뤼개척등반세계놀라게
‘여성”예쁜’수식어불식…"우리는모두클라이머일뿐"
1991년의세계등반사에서단하나의‘사건’을꼽으라면두말할나위도없이카트린느데스티벨의프티드뤼개척등반이다.당시그녀가개척등반을선언했을때그성공가능성을믿는사람은거의없었다.프티드뤼라는대상자체에더이상의개척가능성이별로남아있지않았고,무엇보다도여지껏알프스의거벽에자신의이름을아로새긴여성산악인은단한명도없었기때문이다.
카트린느가홀로이벽에9일동안매달려있을때가지고올라간장비목록을보면가슴이싸해진다.5㎜로프80m,10㎜로프40m,프렌드3세트,피톤2세트,하켄30개,포타렛지,10일치식량.예쁜바비인형은간데없고다만목숨을내건산악인만이있을뿐이다.그녀는여전히웃으며덧붙인다.“무겁겠지만미셀투르니에의소설한권도챙겼죠.그벽에붙어있으면너무고독하고무서울테니까요.”
끝내자신만의새로운루트로프티드뤼의정상에올라섰을때그녀는한없이울었다.그고운얼굴은피투성이가되어있었고,손발의상처에서는피고름이흘러나오고있었으며,그아름다웠던육체는뒤틀린장작개비처럼말라붙어있었다.이제그누구도그녀의이름앞에‘여성’이나‘예쁜’이라는수식어를갖다붙이지못한다.카트린느는일그러진얼굴로이렇게말했다.“우리는모두클라이머에요,그뿐이죠.”
[심산의산그리고사람]<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