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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출신인아브루치는혈통이안겨줄편안한삶보다는모험과등반에더큰가치를두었다.그가24세때매서운추위를뚫고세계최초로오른알래스카의세인트엘리어스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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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루치는20명의대원들이50일동안버틸수있는3톤의식량을썰매에싣고빙하지대를횡단하는대캐러밴을펼친끝에끝끝내이산의정상에오른다.당시그와동행했던산악사진가가이탈리아산악회의창립자퀸티노셀라의조카비토리오셀라인데,현재‘세계산악사진의아버지’로불리는인물이며,이후세상을떠날때까지아브루치와깊은우정을나눈것으로유명하다.
이후아브루치의열정과도전은당시까지지구상에남아있던모든미답의극지와오지에집중된다.그는1899년121마리의개가끄는개썰매를지휘하며북극점에도전한다.아브루치는손가락을절단하고동상과설맹으로고통받으면서도집요하게앞으로나아갔으나결국북위86도지점에서돌아서고만다.당시아브루치원정대가식량마저소진된채필사의생환작전을벌이던과정은극지방탐험사의전설로남아있다.
1909년의K2도전역시초기히말라야등반사의신화이다.그는당시남동릉6,700m까지도달했는데,이능선은현재‘아브루치능’이라고불린다.훗날1954년의이탈리아원정대가K2세계초등에성공할때채택한루트가바로아브루치능이다.K2가자신의웅장한자태를사진을통하여세상에알린것도당시아브루치와동행한비토리오셀라의카메라를통해서였다.
드라마의주인공에게로맨스가빠질수없다.아브루치와미국부호의딸캐서린앨킨스의사랑은당시‘세기의로맨스’로세상을떠들썩하게했다.캐서린의아버지는당시미국공화당대통령후보로거론될만큼유력한정치인이자대단한부호였다.이탈리아왕족의아들과미국부호의딸사이에는그러나너무도많은장애물들이얽혀있었다.
아브루치는사실‘무늬만왕족’이었지별다른재산을모아놓지도못한상태였고,무엇보다도탐험과등반에미쳐있는가난한산사나이였을뿐이다.이두사람의사랑은결국이루어지지않았다.하지만아브루치는평생독신으로살면서캐서린과편지왕래를계속했다.전형적인로맨티스트의사랑법이다.
혹자는아브루치가‘단지왕족이라는이유만으로’그를폄하한다.
그가국가적차원의대규모원정대를꾸릴수있었던데에는물론왕족이라는출신성분과그에따른재정적뒷받침들이큰역할을해냈을것이다.하지만모든왕족들이다아브루치처럼탐험과등반을해낼수있는것은아니다.그에게산은자신의혈통보다소중했다.그는왕가의일원으로서세상을살아간것이아니라탐험가와등반가로서세상을살다간것이다.
"생산과분배,소유를함께"소말리아에’아브루치빌리지’농촌공동체세워
아브루치는1차세계대전당시연합국함대사령관으로서맹활약을펼쳐대단한명성을얻었다.하지만왕가에서는이‘제멋대로인왕족’의인기가높아지는것을반가워하지않았다.결국아브루치는해군제독직을사퇴하고아프리카로향한다.그는일찍이아프리카자이레의루웬조리산(4,829m)의세계초등기록을가지고있었고,1906년에는루웬조리산군의4,000m이상의산14개를모두오른적도있다.
원시의대륙아프리카는아브루치의이상향이었다.그는아프리카의소말리아에서전혀새로운삶의방식을꿈꾸었다.생산과분배그리고소유를함께하는일종의사회주의적이상을가슴에품고새로운농촌공동체를세우려한것이다.1926년3,000명의소말리아인과200명의이탈리아인들이16개의작은마을로구성된새로운공동체를세운다.바로저유명한‘듀크아브루치빌리지’이다.
그는1933년세상을떠날때까지이농촌공동체를위하여자신의모든것을다바쳤다.그가꾸었던꿈이현실속에서실현되려면몇세대의세월이필요할지도모른다.그것은아직도진행중인꿈이다.1976년,소말리아내전이발발하자아브루치조카의아들이그의묘지를이탈리아로이장하려했다.당시그것을만류한소말리아원주민대표의읍소가가슴을친다.
“우리의조상들이그의곁에묻혔고,우리역시죽고나면그의곁에묻힐겁니다.그는언제나우리를보호해왔고앞으로도그러실겁니다.이곳은우리의성지입니다.다른곳으로모셔가실수없습니다.”현재아브루치의묘지는여전히소말리아에남아있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27>